왕보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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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한 말과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1
1.1. 삼국지연의에서의 모습
1.2. 미디어 믹스
3. 후한 말과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2
4. 한국 고려시대의 인물


1. 후한 말과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1


王甫
(? ~ 222)
자는 국산(國山)으로 그의 전기는 정사 삼국지 촉서 양희전에 기재되어 있는 계한보찬전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익주 광한군 처현 사람으로 원래는 유장(劉璋) 휘하의 서좌였다. 풍모가 늠름하고 인물 평가와 정치 수완이 뛰어났으며 의논하는 것을 즐겼다. 유비가 촉을 평정하자 면죽현령이 되었다. 곧 형주로 가서 의조종사로 관우 휘하에서 일했다. 221년에 이릉대전에 참가했지만 222년 6월에 촉군이 자귀에서 육손에게 대패했을 때 전사했다. 그리고 정사에서의 기록은 이걸로 끝. 인물 평가를 잘하고 정치 수완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보아 나름 유능한 인물로 보이지만 이 정도 기록은 관리들 중에서도 심심치않게 나오는 표현이라 실제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1.1. 삼국지연의에서의 모습


삼국지연의에서는 유장의 부하였다는 언급이 없으며 관우를 보좌하는 수군사마로 나와 형주군의 수군을 지휘하는 높은 위치까지 격상 되었다. 관우가 양양을 점령하고 번성을 공격하려고 하자 형주 수비를 위해서 봉화대 설치와 형주 통치 대행으로 반준 대신 조루를 기용하라고 조언하는 역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결국 관우는 봉화대 설치만 받아들이지만 그가 번성에만 온 힘을 쏟는 사이 여몽의 계략으로 봉화대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형주가 여몽에게 떨어진다.
이 때 믿었던 반준이 항복하자 관우는 왕보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으며, 위군과 오군에게 쫓기고 익주와 상용에서 구원군이 오지 않자 맥성에서 버티던 관우가 북문의 포위를 뚫고 익주로 가려고 했다. 왕보는 좁은 길에 오군이 매복하고 있을 거라면서 큰 길로 가라고 제안하지만 오히려 관우는 매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왕보와 주창을 맥성에 남긴 다음에 큰 길로 가다가 결국 붙잡혀 죽었다.
왕보는 왠지 마음이 불안했고 주창은 흉몽을 꿔서 불안했는데, 결국 오군이 관우와 관평의 목을 맥성 앞에 내걸자 왕보는 낙담해 성벽 아래로 스스로 떨어져 자결했고 주창은 자기 목을 칼로 찔러 자결한다.
왕보의 아들 왕우는 부친의 풍모가 있고 관직은 상서우선랑까지 올랐으며, 그의 사촌형으로는 왕상왕사가 있다.

1.2. 미디어 믹스


[ No.288586 (8c17adb4269fd6f4382cb19bd21bec9be8de9219) ] 이미지 등록됨
관우 사망소식을 듣자마자 관우를 따라가겠다며 낙사하는 장면이 시각적으로 슬프게 표현되었다.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Wang_Fu_%28ROTK11%29.png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057.jpg
삼국지 12, 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지력, 정치력, 매력이 모두 70대인 그저그런 문관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활용도는 애매하다.
삼국지 3에서의 능력치는 육전지휘 74/수전지휘 70/무력 63/지력 73/정치력 68/매력 83로 어디하나 크게 빠지는 것이 없는 만능형의 장수이나, 안타깝게도 무력과 지력이 7씩 부족하여 장군도 군사도 되지 못하는 불쌍한 무장이라 할 수 있다. 저 능력치로 어정쩡하게 군사나 장군이 되어봤자 봉록만 더 먹을 뿐이라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높은 매력을 살려서 태수를 시키는 게 안 된다는 게 문제.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59/무력 36/지력 76/정치력 77의 그저그런 문관이지만, 교사를 가지고 있는 거 하나는 좋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52/무력 43/지력 78/정치력 75/매력 73에 특기는 농업, 고무 2개. 농업 셔틀로 쓰면 되는데 수명이 짧은 게 흠이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2/무력 41/지력 79/정치력 78/매력 73으로, 삼국지 11 때보다 무력이 2 떨어진 것에 비해 나머지 능력치는 소폭 상승했다. 드디어 통솔력이 60대로 올랐으나, 무력이 낮기 때문에 실제로 전장에서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특기는 잉여인 매복#s-3이기 때문에 PK에서 내정형 스킬로 바꿔주자. 또한 몰년이 219년이긴 하지만 엄연히 자살은 비자연사이기 때문에 실제보다 10년은 더 오래 살아서 왕보의 약점인 수명이 보정된 지라 범용성이 늘었다.
삼국지 12에서는 통솔력 62/무력 41/지력 79/정치력 78의 무난한 문관 스탯으로 나왔으며, 특기로 경작을 가지고 있어서 군량 생산용으로 쓸만하다. 전법은 총맹사(궁군병격)이며, 다른 궁병과 조합하면 좋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일러스트는 두 손을 펼친 채 관우를 말리는 모습이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상업 2, 설파 1, 교섭 1. 전수특기는 상업이고 전법은 공격약화. PK를 한다면 상업 특기를 제거하고 농업 특기를 대신 추가해 준 뒤, 전수특기도 농업으로 변경해주자. 문관형임에도 특이하게 무기 수집에 관심이 있다. 연의에서 수군사마로 나오는데 수영 특기가 없는 건 다소 아쉬운 점.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요화와 같이 레벨 40인 전차로 등장한다. 맥성에서 관우가 죽으면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관우가 살았어도 이후 별동대를 파견하지 않으면 왕보는 등장하지 않는다.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역시 맥 전투에서 레벨 1의 물자대 우군으로 등장하여 보통은 가장 먼저 사망한다. 전차대인 주연한테 맞으면 한 방에 죽는다. 사망 시 대사가 좀 찡하다. "관우님, 저승에서 기다리겠습니다만, 그 날이 먼 훗날이길...!" 콘솔판에서는 살아남으면 아군으로 끝까지 쓸 수 있지만 살리기 어려운 건 똑같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가상모드의 맥성 구원전에서 맥성을 지키는 우군 보병으로 등장. 이때의 왕보는 이 게임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사랑받는 우군이라고 봐도 된다. 조조전 특성상 우군은 거의 경험치만 빨아먹는 애물단지 취급받기 십상이지만, 이 전투의 왕보는 온갖 다굴에도 굴하지 않고 맥성을 꿋꿋이 지켜주니 지켜보는 입장에서 참으로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보물로 철투구를 쓰고 나오는데 안타깝게 끝까지 살려도 철투구를 헌납(?)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그렇게 유용한 보물도 아닌데다 건업에서 반장을 퇴각시키면 얻을 수 있으니 상관 없지만...
삼국전투기에서는 로어셰크로 나온다.

2. 후한환관


王甫,
(? ~ 179)
후한 영제 때의 환관.
왕보와 조절이 두태후(두묘)를 섬기면서 아첨을 일삼자 168년, 태후의 아버지 대장군 두무진번은 이들을 제거하려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번갈아 태후에게 환관들을 제거할 것을 청했으나. 태후가 계속 망설였기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결국 시일이 지체되어 이들의 계획이 환관 측에 알려지자 선수를 쳐 두무 일파를 공격하기로 했다.
조절이 변란이 일어났다 해 영제를 피신시킨 사이 왕보는 칼을 빼들고 관리들을 위협하면서 스스로 황문령이 되고 두태후를 위협하여 인수를 빼앗은 다음 환관들을 저지하기 위해 궁궐로 들어온 진번을 죽였다. 이후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가 두무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외치자 사기가 떨어진 두무의 군사들은 왕보에게 항복했으며, 왕보는 도망치는 두무와 두소 형제를 잡아 죽였고 영제는 왕보를 중상시로 승진시켰다.
171년에 영제가 남궁으로 쫓겨나 있던 두태후를 뵈러 왔을 때 두태후를 섬기던 환관 동맹이 두태후를 위해 아뢰어 태후에게 보내는 물품을 늘리게 했다. 이것을 안 왕보와 조절은 동맹이 영제의 생모 동태후를 비방했다고 모함하여 죽게 했다.
왕보와 조절의 권세가 커지자 태위 단경은 스스로 환관들에게 아첨했고 왕보의 양자 왕길은 백성들을 함부로 죽였으며, 이에 사예교위 양구는 환관들을 제거하려 했다. 179년에 왕보가 문생에게 경조 경내에서 관청의 재물 7천여 만 전을 독점해 매매하게 했는데, 양표가 왕보의 부정을 적발해 양구에게 알려주자 양구는 왕보가 집에서 쉬는 것을 틈타 궁궐에 가서 왕보 일당의 죄악을 고하고 이들을 붙잡아 하옥시킨 후 모진 고문을 해서 죽였다.
조정에서는 왕보의 재산을 몰수하고 가족들을 귀양 보냈으며, 왕보의 시체를 절단하고 거리에 전시했다.

3. 후한 말과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2


王普
(? ~ ?)
조조가 형주를 평정한 후에 유장이 그에게 복종하려 했지만 사자로 갔던 장송이 조조에게 원한을 품고 헐뜯으면서 동맹이 무산되었는데, 적벽대전 이후 조조의 세력이 밀려나자 유장이 반 독립 상태가 되고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격파하자 유장의 세력에 위협이 느껴졌고 장송, 법정유비를 지원군으로 불러들인다.
그런데 장송이 유비와 내통한 것이 드러나면서 유비, 유장이 싸움을 벌이게 된 끝에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왕보는 하후찬 밑에서 광한군의 주부로 있었으며, 하후찬이 진밀을 초빙하려고 할 때 진밀이 질병을 핑계로 집에 누워 움직이지 않으면서 하후찬, 고박과 함께 진복의 집을 방문했지만 하후찬이 진밀의 문답에 반나절이 지나도 대답하지 못하면서 진밀을 초빙하는 것에 실패했다.

4. 한국 고려시대의 인물


王俌, ? ~ 1128년
고려시대의 왕족으로 숙종의 넷째 아들이다. 대방후(帶方侯)로 봉작되었고 대방공(帶方公)으로 진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