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충(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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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행적


王忠

1. 개요[편집]


후삼국시대 고려의 인물.


2. 행적[편집]


고려사절요에 '명지성 원보 왕충'[1]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왕충이 명지성의 호족이라면 923년 장수 성달과 그 동생 이달, 단림이 고려에 귀부할 때 함께했을 것이다. 혹은 저 셋 중 하나가 다른 호족들처럼 왕씨 성과 이름을 받은 것일 수도 있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924년 7월, 조물성 전투에서 후백제군에 포위된 조물군에 장군 애선과 함께 파견됐다. 왕충 등은 수미강, 양검 등이 이끄는 후백제군에 패배했고 애선은 전사하기까지 했으나, 조물군은 끝내 함락되지 않았다. 이듬해 925년의 2차 조물성 전투에서는 원윤 왕충이 상중하 3군 중 중군을 이끌어 후백제군과 싸웠다. 상군과 왕충의 중군은 패배했으나 박수경과 은녕의 하군이 대승을 거두고, 후백제군은 끝내 조물을 점령하지 못했다.

원윤이었던 왕충의 품계는 이후 원보까지 올라갔다. 928년 8월, 후백제의 장군 관흔이 양산에 성을 쌓자 왕충이 군사를 이끌고 양산의 후백제군을 공격했다. 이번에는 승리를 거둔 왕충은 관흔을 대량성으로 쫓아냈으나, 관흔이 대목군에서 식량을 얻고 오어곡에 진을 치자 죽령 길이 막혀버렸다. 이후 왕충은 태조의 명에 따라 조물성에 가서 동향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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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王遣命旨城元甫王忠, 帥兵擊走之. (고려사절요 태조 11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