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평(삼국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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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왕평 삼국전투기.png

1. 개요
2. 작중 행적
2.2. 남만 전투
2.3. 가정 전투
2.4. 오장원 전투
2.5. 전투외편 2
2.6. 낙곡 전투(흥세 전투)
3. 작중 묘사



1. 개요[편집]


최훈 작가의 작품 삼국전투기에서의 왕평을 서술하는 문서.

란마 1/2히비키 료가로 패러디되어 등장한다.[1]


2. 작중 행적[편집]



2.1. 한중 공방전[편집]


연의의 서황의 불화를 채용하지 않고 정사에서 이유불명의 항복을 채용한 듯 보이며 이 항복과정에 캐릭터 패러디를 섞어 항복과정을 코믹하게 표현하였다.

조운에게 장합이 대대적인 공습을 받다는 보고를 받은 하후연이 병력의 반을 장합쪽으로 보내라고 지시할 때 등장한다.이 때 길치니까 다른 사람 보내라고 디스당하는건 덤.

하후연황충에게 전사하자 전멸한 병력중 극히 몇몇을 수습하여 장합, 서황, 곽회에게 소식을 전하고 자신은 하변의 조홍에게 하후연의 사망 소식을 전하게 위해 이동한다. 하지만 문맹인지라 길을 착각하여 하변이 아닌 가맹 쪽으로 향하게 된다(...).[2] 결국 가맹에 도착하여 조홍을 찾지만 가맹에는 당연히 조홍은 없고, 제갈양장비, 마초와 마대가 있었다. 이후는 생략되었지만 촉의 본거지에 들어왔으니 투항한 듯.

2.2. 남만 전투[편집]


옹개의 난을 제압하기 위한 토벌부대에 편성됐지만 길치라서 길을 헷갈리는 바람에 옹개 정벌에는 참여하지도 못했다(...)

옹개 사후 맹획이 쳐들어올 때 제갈양이 영격에 지원할 이를 자원받을 때 장익과 함께 지원하지만 조운이 엎드리라고 소리치자 장익과 함께 버로우를 탄다. 제갈양이 조운이 아닌 왕평과 장익, 마대에게 영격을 맡기는 듯하였으나, 사실 왕평과 장익, 마대가 맡은 역할은 조운이 처리한 것들을 청소하는 역할이었다.

맹획이 6번째 싸움에서 상병들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조운과 함께 대응할 방법을 몰라 퇴각하기도 했다.


2.3. 가정 전투[편집]


제갈양강유를 통해 서량이 중립을 지키겠다는 약조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며[3] 가정의 통로를 확보해야한다고 말하자 가정의 확보가 북벌의 중요 포인트라는 것을 인지하고 마속과 함께 가정으로 향한다. 이 때 또 표지판을 잘못 읽고 금성으로 갈 뻔해서 마속에게 한 소리 듣기도 했다(...).

가정의 길목에 진영을 세우려하지만 마속이 손자병법을 운운하며 산 정상에 진영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하자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전술을 짤 때에는 임무와 처한 상황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들의 임무는 통로 확보니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통로를 점해 안정적으로 지켜내고 주력이 왔을 때 통로를 열어 지친 위군을 쓸어버리게 하면 그만일 뿐이라고 이에 반대한다. 하지만 마속은 왕평의 말을 무시하고 산 정상에 진영을 세운다.

결국 마속장합에 의해 산이 포위되고 급수로를 끊긴 뒤 패퇴하고 왕평은 사력을 다해 분투하여 피해를 줄인다.

가정 전투가 끝난 뒤 제갈양과 조운이 관직이 강등되는 것에 비해 전멸을 막은 공이 인정되어 참군으로 승진한다. 그리고 마속은...


2.4. 오장원 전투[편집]


제갈양이 사망한 뒤 위연이 자신을 두고 다른 이들이 퇴각하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해 잔도를 태운 일로 반역의 혐의가 붙자 양의의 지시에 따라 타 버린 잔도 대신 산을 뚫어서 새 길을 만든 다음 위연을 토벌하기 위해 선봉으로 선 뒤 위연의 부대를 향해 "네 이놈! 네놈들이 대체 누구에게 창을 겨누는 것이냐!? 승상의 시체가 아직 식지 않았거늘 이것이 무슨 대역무도한 짓이냔 말이다!!!"라고 일갈한다. 왕평의 일갈을 들은 위연의 병력들은 싸울 의지를 잃고 와해되고 위연은 마대에게 사로잡힌 뒤 처형된다.


2.5. 전투외편 2[편집]


전투외편 2편에서는 239년 기준 안한장군으로 마대, 장익 등과 더불어 촉의 파워 랭킹 6위라고 묘사된다.


2.6. 낙곡 전투(흥세 전투)[편집]


낙곡 전투 편에서는 장완이 사전에 계획한 대로 수로를 통한 위군 공략을 위해 한중에 병력을 3만 가량만 남기고 모두 남하시켜서 유민이 푸념하자 우리는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라며 질책했다.

이후 유민에게서 조상과 하후현의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비를 위해 제장들의 의견을 묻는다. 두기가 낙성과 한성을 방패삼아 분지인 남정에서 농성을 제안하자, 위군이 평지로 들어오는 것은 위험하다고 하며 거절하고 산에서 위군을 영격하기로 결정하고 낙곡에 병력을 주둔시키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두기 등이 문맹이라는 이유로 말을 듣지 않자 호군인 유민만을 데리고 낙곡으로 이동한다. 유민에게 최소한의 병력을 주어 흥세산을 점거하게 한 뒤 병력이 많아보이게 만들어 하후현의 주력을 묶게 만들고 왕평 본인은 자오도 방면으로 들어오는 하후패의 부대를 대파한다.

이후 비의의 지원군이 도착하자 위군을 포위섬멸하여 커다란 피해를 주는 대승을 거둔다.

흥세 전투를 끝으로 거의 등장하지 않다가 국산 전투 편에서 사망처리된다. 죽을 때마저 천국 가는 길을 까먹는 건 덤(...).


3. 작중 묘사[편집]


문맹이라는 설정과 길치라는 설정을 붙여 어리버리해보이지만 작전을 수행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흥세 전투에서 위군을 상대할 때 영리한 술책으로 시간을 번다.

첫 등장할 당시에는 조조군으로써 등장했지만 조조군 시절에도 빨간색 조조군 군복이 아닌 옅은 노랑색의 개인 군복을 입은 것으로 묘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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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관인 유민은 무스로 나온다.[2] 패러디 캐릭터인 히비키 료가도 서브컬쳐에서 가장 유명한 길치 캐릭터로 사실상 길치 캐릭터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3] 이 때 약조가 믿을만한 것이냐고 묻기도 했으며 제갈양의 설명을 듣고 대충 납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