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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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本紀) ]
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13·14권 「후비전(后妃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혁련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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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本紀) ]
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13·14권 「후비전(后妃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혁련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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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여(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약(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연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이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帝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라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장사목후(長社穆侯)
王慧龍 | 왕혜룡

시호
목(穆)
작위
장사후(長社侯)

왕(王)

혜룡(慧龍)

불명
생몰
391년 ~ 440년
국적
동진후진북위
출신
태원군(太原郡) 진양현(晋陽縣)
부친
왕집(王緝)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북위의 명장. 동진의 상서좌복야 왕유의 손자이자, 산기상시 왕집(王緝)의 아들.


2. 생애[편집]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할아버지 왕유가 여러 손자들 중 제일 뛰어난 것이 용과 같다며 "혜룡(慧龍)"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원흥 3년(404년) 3월, 유유에게 항복했던 왕유는 불안하여 아들 왕수와 함께 유유를 습격할 계획을 꾸미다가 발각되어 이내 멸족당했다. 이때 14세이던 왕집의 아들 왕혜룡만이 사문(沙門) 승려 빈(彬)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렇게 100여 일 동안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숨어지내던 왕혜룡은 승려 빈과 더불어 북위로 가기 위해 장강(長江)을 건너려 하였는데, 나루를 지키던 관리가 왕혜룡을 보고 왕씨의 자제가 아니냐 의심하자 승려 빈이 자신의 제자라고 둘러대어 통과할 수 있었다. 이후 서쪽으로 올라가 강릉(江陵)에 이르러서 숙조부 형주(荊州)자사 왕침의 옛 관리인 전(前) 형주치중 습벽강(習闢疆)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

의희 원년(405년) 10월, 형주자사 위영지가 사망하여 잠시 빈틈이 생기자, 강릉현령 나수(羅脩)가 습벽강, 유기공(劉期公), 왕등(王騰) 등과 왕혜룡을 주군으로 받들어 강릉에서 거병을 모의하였다. 그러나 머지 않아 병주자사 유도규가 형주자사에 임명되어 부임하니, 나수는 거병을 하지 못하고 승려 빈과 함께 왕혜룡을 받들어 북쪽으로 도망쳤다. 그들이 양양(襄陽)에 이르렀을 때, 사마덕종이 임명한 옹조(雍州)자사 노종지의 도움 덕에 무사히 강을 건너고 호뢰(虎牢)로 들어가 후진에 망명하였다.

태상 2년(417년) 9월, 후진이 패망하자 왕혜룡은 다시 도망길에 올라 북위로 망명하였다. 명원제 탁발사가 왕혜룡을 불러 그와 친히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누니, 왕혜룡은 황제 앞에서 남정하여 유유를 징벌해달라 호소하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명원제는 왕혜룡의 모습에 감동하여 도움을 주겠다고는 하였지만, 훗날 남벌을 실시하여 송나라와 격전을 벌일 때 왕혜룡을 중용하지는 않았다.

태상 8년(423년) 11월, 명원제가 왕혜룡을 낙성진장(洛城鎮將)으로 임명하고, 군사 3,000명을 주어 낙양의 금용성(金墉城)을 진수케 하였다. 그리고 10여 일이 지났을 무렵에 명원제가 붕어하고 태무제 탁발도가 즉위하였다. 태무제는 남방 출신의 한족에게 군사를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해 명원제의 임명을 취소하고 군권을 회수하였다.

최호의 동생인 최념(崔恬)은 왕혜룡이 진나라의 명문가인 태원 왕씨의 자제라는 것을 듣고 자신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당시 태원 왕씨 집안은 대대로 코가 붉게 물드는 비사증이 있기로 유명했고, 강동에서도 태원 왕씨 가문을 가리켜 "사왕(皻王)"이라 불렀기에, 왕혜룡의 얼굴을 본 최호가 말했다.

"왕가 자제라더니 과연 믿을만하구나."

또, 왕혜룡의 코가 큰 것을 보고 최호는

"진실로 귀한 혈통을 타고 났도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를 듣고 기분인 언짢아진 사도 장손숭은 태무제를 알현해, 최호가 남방인을 칭찬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헐뜯는 것이다라며 참소하였다. 태무제 역시 노하여 최호를 문책하니, 최호는 면직당하고 황제 앞에서 사죄한 후에야 겨우 죄를 면할 수 있었다. 이후 북위로 귀순한 노종지의 아들 노궤가 왕혜룡은 승려 빈이 왕유의 집에서 사통하여 낳은 아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리면서, 왕혜룡은 한동안 태무제에게 홀대받아 오래도록 승진하지 못하다가, 낙안왕 탁발범(拓跋範)의 부(傅)에 제수받고 영 병형양3주대중정(領並荊揚三州大中正)을 겸하였다. 하지만 왕혜룡은 상표하여 남쪽으로 부임하고 싶다 청하였고, 최호의 도움을 받아 남만교위, 안남대장군 사마초지의 좌장사로 고쳐 임명되었다.

시광 3년(426년) 2월, 송의 형주자사 사회가 강릉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문제 유의륭은 장수 도언지, 단도제 등에게 군대를 이끌고 사회를 토벌케 하였다. 왕혜룡은 사회를 원조하기 위해 사마 노수(盧壽) 등과 10,000명의 병력을 발동해, 나아가 사릉수(思陵戍)를 뽑고 항성(項城)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한 달도 안 지나서 사회가 패망하니, 왕혜룡은 군대를 거두어 물러났다.

신가 3년(430년) 3월, 송의 영삭장군 왕현모(王玄謨)가 활대(滑臺)를 침공해왔다. 왕혜룡은 초병장군에 임명되어 안힐(安頡) 등과 공동으로 송군을 물리칠 작전을 짰다. 그때 왕현모가 50여 일 동안의 대치를 깨고 먼저 북위군을 공격하자, 왕혜룡은 기병(奇兵)을 갖추어 왕현모를 대파하였다. 이에 태무제는 왕혜룡을 용양장군으로 삼고 장사후(長社侯)로 봉한 뒤, 검, 말, 돈, 비단 등의 하사품을 내렸다. 이후 왕혜룡은 형양(滎陽)태수로 옮겨져 10년 동안 지역을 다스리면서 농업과 군대를 나란히 정비하여 치적을 쌓았다. 왕혜룡의 선정에 대한 소문은 멀리까지 퍼져 나갔고, 그가 재임하는 기간 동안 백성 10,000여 호가 귀부해왔다.

신가 4년(431년) 2월, 관군장군 안힐과 안남대장군 사마초지가 송의 장수 주수지(朱脩之)가 지키고 있는 활대를 쳤다. 이때 왕혜룡도 태무제의 명을 받들어 활대를 쳐 함락시켰고, 주수지와 동군(東郡)태수 신모(申謨)를 사로잡았다. 활대를 구원하기 위해 역성(歷城)까지 나아갔던 단도제는 북위의 수광후 숙손건(叔孫建)의 기습으로 군량이 불타 없어져 귀환했다. 이후로도 송의 문제 유의륭은 단도제와 도언지 등을 여러 차례 보내 자주 남쪽 변경을 자주 침노했지만, 번번이 왕혜룡에게 막혀 예봉이 꺾이고 유의미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한번은 도언지가 친구 소빈(蕭斌)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노궤는 굳세지만 우둔하고, 사마초지는 호쾌하지만 꺼리낌이 없어 걱정거리도 되지 않으나, 북으로 망명한 자들 중 오직 왕혜룡과 한연지만은 심히 두렵다네.

라는 글을 적기도 하였다.

문제 유의륭은 장차 왕혜룡을 제거하고자 반간계를 써서, 북위에 "왕혜룡이 사마초지를 붙잡아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하였으나, 태무제는 넘어가지 않고 옥새를 찍은 조서를 보내

유의륭이 장군을 호랑이 보듯 두려워하여, 장군을 중상모략한다는 사실을 짐은 스스로 잘 헤어리고 있다. 풍진지언(風塵之言) 따위에 개의치 말도록 하라.

라며 왕혜룡을 오히려 안심시켰다. 반간계가 통하지 않자 유의륭은 자객 여현백(呂玄伯)을 고용해 왕혜룡의 수급에 200호의 남작과 1,000필의 비단을 현상금으로 걸었다. 여현백이 왕혜룡을 찾아가 거짓 투항하고, 왕혜룡에게 긴히 논의할 일이 있다며 독대를 청하니, 왕혜룡은 이를 의심하여 좌우 사람들에게 명해 여현백의 몸을 수색케 하였다. 과연 왕혜룡의 예상대로 여현백의 품 안에서 1척 길이의 칼이 나왔다. 여현백은 자포자기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죽음을 청했으나, 왕혜룡이 말했다.

"자객은 그 주인을 위해 일하는 법이다. 나는 차마 이 자를 해칠 수 없구나."

그리고는 좌우에 명하여 여현백을 풀어주고 죽이지 말라 당부하였다. 사람들이 다시 오면 어떡하냐 걱정하자 왕혜룡은

"어차피 생사는 하늘에 달렸으니 다시 와서 나를 해친다한들 어찌할 수 있겠느냐? 무엇보다 우리는 이미 인의(仁義)를 방패로 삼았거늘, 어찌 또 자객이 올 것을 걱정하느냐?"

라 말하고 집으로 갔다. 사람들은 그의 넒은 아량에 깊이 탄복하였다고 한다.

왕혜룡은 어렸을 적부터 환난을 겪은 것이 마음의 상처로 남아 항상 우울증에 시달렸고, 〈제오자서문(祭伍子胥文)〉이라는 시를 지어 그 기분을 표현했다. 부인 최씨가 1남 1녀를 출산한 이후부터는 부부의 밤일도 하지 않았고, 베옷을 입고 채식을 하며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는 길한 일이 있어도 과하게 기뻐하지 않았고, 모든 행동거지에 예의가 있어 태자소부 유아(游雅)가 칭송했을 정도였다. 또, 왕혜룡은 정치에도 일가견이 있어 제왕의 제도에 관한 책 18편을 편찬해, 이를 엮어 《국전(國典)》이라 하였다.

태평진군 원년(440년), 사지절, 영남장군, 호뢰진도부장(虎牢鎮都副將)에 임명되었고, 그 해 말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에 공조 정엽(鄭曄)에게

"나는 객지에 머무는 남방인이라 조정의 옛 은혜는 없었으나, 조정에서 자애로이 받아주어 나는 목숨을 바쳐 전쟁터를 누빌 수 있었다. 본래 오(吳)의 시장에서 원수의 무덤을 파내고 그 시체를 채찍질함으로써 가문의 원한을 풀고자 하늘에 맹세하였는데, 병이 위중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오직 국가의 신령을 우러러 볼 수 없으니, 실로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구나. 내가 이리 단명하는 것에 무슨 할 말이 있으랴? 내가 죽고나면 나를 하내(河內)의 동향(東鄉)에 묻어, 옛 묘지의 형식대로 봉분을 세우지 말고 내 머리만 족히 덮을 정도로만 묻어다오. 만약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내 너에게 결초보은하겠다."

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 북위의 법에 따르면 남조에서 귀부한 이들의 시신은 모두 상건(桑乾)에 매장하게 하였기에, 정엽 등은 조정에 상표하여 양해를 구했고, 조정에서도 이를 허하였다. 조정에서는 왕혜룡을 안남장군, 형주자사로 추증하고, 시호를 '목후(穆侯)'라 하였다. 아들 왕보흥(王寶興)이 후사를 이었다.

조정의 관리들은 왕혜룡의 묘소 곁에 절을 세우고, 왕혜룡과 승려 빈의 초상화를 놓았다. 과거 왕혜룡에게 은혜를 입은 바 있던 자객 여현백은 그 곁에 기거하면서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왕혜룡의 묘지를 지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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