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대앞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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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대앞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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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기
0.8 ㎞ →




다른 문자 표기
로마자(영어)
Hankuk Univ. of Foreign Studies[1]
한자
外大앞
간체자
韩国外国语大学
가나
外大(ウェデアプ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로 27 (이문동 360-5)
관리역 등급
보통역 (3급)
(광운대역 관리 / 한국철도공사 수도권동부본부)
운영 기관
경원선
한국철도공사
개업일
경원선
1974년 8월 15일
1호선
역사 구조
지상 2층 구조, 지상 1층 승강장
승강장 구조
2면 2선 복합식 승강장[2]
철도거리표
경원선
외대앞

1. 개요
2. 역 정보
3. 역 주변 정보
3.1. 휘경4건널목(폐지)
4. 일평균 이용객
5. 승강장
6. 사건·사고
7. 연계 교통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수도권 전철 1호선 122번[3].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로 27 (이문동 360-5) 소재.


2. 역 정보[편집]




파일:외대앞역.jpg

구 역사(1974년 준공, 휘경4건널목 폐쇄 전)


파일:HUFS-pf.png

타는 곳

1974년 8월 15일 개업 때의 역명은 휘경(徽慶, Hwigyeong/Hwigyŏng)이었다. 이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가 묻힌 휘경원에서 나온 법정동명 휘경동에서 따왔다.

휘경동과 이문동의 경계에 자리하며 정확히는 이문동 쪽이다. 정작 휘경동에는 회기역이 있고, 휘경원 터도 회기역 부근이다. 이 까닭은 회기역이 이 역보다 나중에 열려서 그렇다. 정확히 휘경동 산7번지 일대로 서울시립대학교 후문 및 도서관이 있다. 휘경원은 뒤에 남양주 진접으로 이장한다.

1996년 1월 1일에 당시 부역명이자 인근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따온 외대앞역으로 바뀌었다. 당시 철도청에서도 역명 변경을 내심 바랐는데, 중대사고가 빈번해서 대중에게 나쁜 쪽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1977년부터 휘경역 사망사고가 났고[a], 1984년에는 휘경역 열차 추돌사고[b], 1990년에 휘경역 휘경4건널목 사망사고 등이 일어났다.[c] 그리하여 바뀌기 직전인 1995년에 철도사보(현재 한국철도공사 본사 기록실에 보관 중)를 보면 외대앞역으로 바뀐다는 소식이 나오자 휘경역 역무원들이 "이 저주받은 휘경역이 이름 바꾸면서 사고가 없어지길 바란다"고 쓴 수기도 있다. 그리고 휘경역에서 외대앞역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사고가 사라졌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1996년 외대앞역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구내 공사를 실시해 외대앞역 앞의 휘경4건널목을 절연구간에서 해제하고 급전구간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로마자 표기도 Oedae로 바뀌었다. 당시에는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로마자로 옮기는 식으로 표기하여, 한대앞역이 "Handae-ap"인 식이었다. 지금도 1호선 열차의 전자표시기 가운데 일부는 Oedae로 표시된다. 끝의 a 와 e가 뒤바뀌어서 Oedea로 표시되었던 적도 있다. 안내방송은 "This stop i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로 바뀐지 오래이다.

중앙선이 덕소까지 연결되기 전에는 성북역(현. 광운대역)에서 용산까지 현재의 중앙선을(왕십리, 옥수) 경유하여 가는 전철이 있었다. 아침 1대에 한해 창동역발 열차도 있었다. 2005년 12월 16일수도권 전철 중앙선 회기~덕소 구간이 신설되면서 운행계통이 성북~용산에서 덕소~용산으로 바뀌어 더 이상 외대앞역에서 중앙선을 바로 이용할 수 없자 강남통학 외대생들이 전철 노선의 부활을 요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선로 포화와 평면교차 문제로 운행을 하지 않는 만큼 이 노선은 부활하지 않았고, 강남통학 외대생들은 회기역에서 내려 동대문02 마을버스를 타는 쪽으로 타협한다. 원래 경원선 본선이 왕십리-청량리-회기로 운행하였는데, 수도권 전철 1호선과 중앙선을 만들면서 왕십리-청량리-회기 구간의 선로와 평면교차가 되게 선로를 깔았다.

신이문 방면 승강장은 바로타 구조의 1번 출구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과 다르게 회기 방면 승강장은 엘리베이터는 커녕 휠체어리프트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아 휠체어 이용객의 접근이 아예 불가능하다. 따라서 회기 방면으로 이용하는 휠체어 이용객은 인근의 회기역이나 신이문역에서 승하차하거나 회기역에서 외대앞 방면으로 횡단해야 한다.[4] 엘리베이터가 맞이방에 있긴 하지만 모두 출구로만 연결되어 있다.


3. 역 주변 정보[편집]


이문휘경뉴타운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계획에 따라 2015년부터 재개발, 재건축이 활발해졌다. 2018년 역에 맞닿은 구역들은 철거 및 분양을 진행했다.

가장 유명한 곳은 한국외국어대학교이다. 대학교 옆에는 천장산이 있으며, 산자락을 따라 달동네를 이뤘었다. 달동네는 이문뉴타운으로 밀렸다.[5] 천장산은 옛날에 중앙정보부지부가 있었기 때문에 2000년대 중반까지 출입이 제한된 곳이며, 이로 인해 중앙정보부담장을 따라 이루어진 달동네이다.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천장산에 있었던 중앙정보부지부는 1972년에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곳이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들어서 있다. 외대앞역에서 천장산이 가까우나, 유일한 입구가 의릉 입구와 겸하기 때문에 오르기 위해서는 신이문역으로 가야 한다.

2, 3번 출구로 나와 큰 길을 따라 중랑천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이경시장이 나온다.[6] 조그만 동네골목시장에 가까운 재래시장으로, 이쪽은 이문4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경희대학교 학생들도 이 역에서 많이 내린다. 경희대 후문과 남문의 법학관, 구한의과대학, 오비스홀, 문/이과대학, 정경대학, 크라운관 등이 외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회기역에서 시종착하는 동대문02버스를 타기 귀찮아하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경로이다. 동대문02버스가 자주 오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짐이 적다면 이 역에서 내려서 걷는 것이 더 빠르다. 외대 캠퍼스 옆 골목을 이용하면 캠퍼스를 가로지르지 않고도 경희대 후문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외대 캠퍼스 쪽이 지름길이고 더 안전하다.

한국산업인력공단서울지부와 가장 가까운 1호선 역이다. 그러나 버스환승을 할 때에는 회기역에서 서울 버스 동대문03으로 환승하는 편이 낫다.


3.1. 휘경4건널목(폐지)[편집]


파일:attachment/외대앞역/huigyeong4.jpg

역 남쪽 바로 앞길은 지하차도인데 2008년 10월에 개통했다. 전에는 휘경4 건널목이 있었다.[7]

휘경4건널목은 극심한 교통체증을 일으켜서 시내버스 배차가 들쑥날쑥했다.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차량을 성북/의정부행 전동차가 들이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인천/수원행 열차는 외대앞역에서 관제를 통해 출발을 통제해서 사고를 피했지만 성북/의정부행은 이미 회기역에서 출발하여 속도가 붙은 채로 들어오는 상황이라 제동거리가 부족하여 갇힌 차나 사람을 들이받는 사고가 잦았다. 이는 당시 이 건널목이 절연구간이라 열차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망사고도 여러 건 있었다. 1977년 2월 19일에 한 여학생이 기차에 치여서 사망한 사건[a]을 시작으로, 1979년에는 술 취한 행인이 차단기를 조작해 올려놓아 열차와 자동차가 정면으로 들이받아 2명이 크게 다치는 대형사고를 일으켰다.[8] 1983년에는 무단으로 들어온 행인을 피하느라 열차가 절연구간 안에서 멈추면서 승객 400여 명이 그대로 갇히는 사고가 있었으며[9], 1984년에는 역을 앞두고 멈춘 전동차를 뒤따르던 화물 열차가 미처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아 전동차 후면부가 으스러지면서 3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다치는 대참사도 터졌다.[b] 1986년에는 당시 선로작업 때문에 임시로 반대방향 선로에 열차를 운행시킨 탓에 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아 반대 방향 선로로 들어간 열차가 택시를 들이받아 3명이 크게 다치는 한편[10], 1990년에는 휘경역 휘경4건널목 사망사고라고 해서, 건널목 안에 쓰러진 취객을 역무원이 끌어내다가 회기역에서 출발한 열차에 치여서 순직했다.[c] 매년 최소 1건씩은 사망사고가 일어날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역명 변경 및 구내공사 1년 전인 1995년에는 역에서 건널목으로 진입하려던 열차가 전기공급장치 고장으로 인해 건널목 한복판에 멈춰선 사고도 있었다.[11] 1996년에 역 이름을 바꿀 때에 휘경4건널목에 전기 공사를 시행하여, 건널목을 절연구간에서 급전구간으로 바꾸고 나서야 휘경4건널목은 죽음의 건널목 소리를 피할 수 있었다.

건널목으로 인한 교통정체의 대표희생양은 개편 앞의 134번, 개편 뒤의 273번이다. 건널목 앞에 같은 번호의 시내버스가 2대씩 있는 광경이 빈번했다. 심할 때에는 건널목 앞부터 한천로와 만나는 부분까지도(약 500m) 차량행렬이 이어졌다. 간발의 차이로 차단기에 걸린 134번이 열차 4대가 지나가고 나서야(약 10여 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실화도 있다. 이 구간은 옛 134번이 회차할 때에 단독으로 경유하던 경로로서, 2004년 개편 때에 134번이 705번으로 바뀌어 동대문으로 단축되면서 버스가 없어진 이 구간을 1215번이 3번 경유하도록 이어받았다. 이 뒤 신설된 273번도 똑같이 경유하도록 만들어지면서, 1215번은 2006년경에 월계동 방면 운행시 외대앞에서 바로 석관동 방향으로 가도록 바뀐다. 134번의 당시 회차경로는 외대앞 → 이경시장 일방통행로 → 한천로 → 이경시장 → 외대앞이었다(한천로 완공 전에는 휘경로-한천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유턴했다). 현재 273번의 외대앞 ~ 중화역 구간에서 이문1동주민센터 정류장 다음에 바로 이문동삼익아파트 정류장으로 가도록 이어보면 당시 경로가 나온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1993년에 휘경로에 지하차도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나왔다.[12] 그러나 외대앞역 바로 앞에 자리한 상업지역을 이용객들이 지나가지 않게 될 것이 뻔하였으므로, 주변 상인들이 심하게 반발하여 2005년에서야 착공할 수 있었다.

2009년에 선로를 횡단하는 보도육교가 역사와 일체화하여 만들어져서 이 육교의 4개 출입구를 3~6번 출입구로 신설하여 건널목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줄 알았으나, 건널목은 남아있다. 육교로 오르내리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거리가 꽤 긴 구조였는데, 중간에 한번 꺾이는 관계로 계단을 4개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라가는 방향에만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고, 4~5번 출구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었다. 2010년 11월 17일에 있던 주민공청회에서는 건널목을 없애지 않는 걸로 정했다. 이후 경보기를 예전보다 작은 것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이 건널목을 유지하려면 동대문구에서 100% 유지 및 관련비용을 부담할 것을 요구했으며, 안 그럴 경우 2012년 8월 25일부로 완전히 폐쇄한다고 통보했다. 폐쇄한 뒤 바로 철거한다.[13] 그러나 동대문구청장을 포함한 300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오고, 1명은 철로에 드러눕는 일까지 벌어져서 8월 27일에 일단 2012년 12월 31일까지 임시로 존치한다고 합의하였다.[14]

이 건널목을 없애려고 하는 까닭은 이미 대체시설이 있는데 건널목이 있으면 대체시설의 의미가 사라지고, 건널목과 앞서 설명한 외대앞역의 특이한 구조 때문에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지며, 열차의 평균속도가 떨어진다. 반면에 동대문구와 지역주민들이 유지하려는 까닭은 통행이 압도적으로 편리한 데다가, 주변상권 및 노점상 등의 상권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루에 3만 명이나 이용하는 건널목이 없어지면 계단을 오르내리기 싫어하는 이용객은 아예 근처에 오지 않을 것이므로 손님이 격감하며, 노점상은 갈 곳이 없어지니 덤비는 것이다. 거기에 자전거나 리어카 통행도 많은데, 이들은 대체시설을 사용하기 힘들거나 불가능하다.

한편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는 건널목을 존치하고 싶으면 유지비용을 모두 동대문구에서 부담할 것을 요구했는데, 휘경4건널목은 열차가 하루에 450번 지나가므로 사고방지를 위해 3교대로 9명이 항시 근무하는 등의 이유로 다른 건널목에 견줘서 압도적으로 유지비가 높다. 그래서 동대문구는 초반에는 20%, 나중에는 50% 부담만 하겠다고 했다.

2012년 말에 다시 한번 쟁점이 되고, 2013년 1월 11일에 긴급공청회가 열렸지만 주민들은 건널목 존치를 바라는 입장이라는 뉴스만 올라와 있을 뿐이다.

2018년에는 건널목을 폐쇄하고, 대신에 국비로 대형 화물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쪽으로 한국철도시설공단과 동대문구 간의 협의가 진행되었다.[15] 주민들이 역 리모델링과 확장을 조건으로 동의하여 2021년 2월 1일부터 공사를 개시, 2022년 중순에 완공 예정이었지만 계속되는 지연으로 2023년 3월 31일 완공되었다. 계속되는 공사 지연으로 외대앞역 앞에는 공사지연에 항의하는 현수막과 시위자를 볼 수 있다. 외대앞역이 지하차도자리까지 확장되며, 이 자리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기존 출입구와 달리 한번에 오르내릴 수 있다. 완공과 동시에 건널목은 3월 31일 0시를 기해 폐쇄되었다.[16] 이로 인해 2021년 12월 1~2번을 뺀 모든 출구가 통제됐다. 회기역 방면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1번 출구로 진입해 계단을 통해 반대쪽 선로로 넘어가거나 2번 출구로 진입하여 2층 맞이방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

2021년 3월에는 구 3~6번 출구 자체가 완전히 철거되어 사라졌다. 따라서 당시 한국외대쪽에서 상행을 이용할 때에는 2019년에 새로 만든 1번 출구를 이용해야 했으며, 하행을 이용할 때에는 '1번 출입구 태그-1번 승강장-2층 맞이방-반대편 계단을 통해 2번 승강장' 또는 '건널목-2번 출입구-2층 맞이방 태그-계단을 거쳐야 했다.

2022년이 되면 이문휘경뉴타운 이문4구역 재개발이 이뤄져, 재개발조합 쪽에서 건널목 일대의 도로를 폐쇄할 예정이다. 아파트 완공 뒤에 도로 방향이 바뀐다.

2023년 3월 30일에 보도육교가 완공되어 휘경4 건널목은 입체화 계획이 나온 지 3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4. 일평균 이용객[편집]


연도
파일:Seoulmetro1_icon.svg
비고

[ 1974년~2009년 ]
1974년
9,624명

1975년
11,429명

1976년
13,394명

1977년
20,569명

1978년
26,626명

1979년
30,054명

1980년
23,872명

1981년
24,377명

1982년
23,759명

1983년
24,755명

1984년
24,407명

1985년
25,994명

1986년
30,176명

1987년
29,865명

1988년
30,039명

1989년
28,856명

1990년
27,024명

1991년
30,395명

1992년
28,904명

1993년
32,818명

1994년
33,584명

1995년
34,952명

1996년
36,156명

1997년
35,721명

1998년
35,156명

1999년
34,340명

2000년
29,761명
비고
2001년
34,431명

2002년
36,701명

2003년
41,352명

2004년
34,375명
[1]
2005년
33,467명

2006년
27,833명

2007년
25,983명

2008년
24,912명

2009년
25,812명


2010년
26,298명

2011년
26,665명

2012년
26,504명

2013년
26,367명

2014년
26,029명

2015년
24,920명

2016년
24,572명

2017년
23,949명

2018년
23,090명

2019년
20,614명

2020년
12,570명

2021년
12,334명

2022년
15,291명

2023년
17,967명

출처
한국철도공사 광역철도
수송통계 자료실

[1] 모니터에는 Hankuk Univ. 라고만 나오기도 한다.[2] 1번 상대식, 2번/미사용 승강장 섬식[3] 동묘앞역 개통 전 123번[a] A B 「列車에빨려轢死」, 동아일보, 1977-02-19[b] A B 「徽慶전철역 전동차 貨物列車에 받혀 3명死亡」, 동아일보, 1984-10-02[c] A B 「철도건널목 안내원 취객구하려다 순직」, 동아일보, 1990-07-24[4] 다행히 1호선 회기역섬식 승강장인 덕분에 횡단이 매우 쉽다.[5] 관련 게시글, 출처: 티스토리[6] 관련 게시글, 출처: 티스토리[7] 카카오맵[8] 「술취한 行人이 遮斷機장난 2명重輕傷」, 경향신문, 1979-10-08[9] 「철길보행자 피하다 電鐵 30分불통소동」, 경향신문, 1983-10-26[10] 「엉뚱한 線路로 달린 電動車」, 동아일보, 1986-11-08[11] 「퇴근길 電鐵 또 고장 의정부行 30여분 중단소동」, 경향신문, 1995-02-25[12] 「휘경역 지하차도 내년 3월에 착공」, 동아일보, 1993-12-01[13] 「외대역앞 철도건널목, 이달 25일부터 폐쇄」, 머니투데이, 2012-08-16[14] 「외대앞 철길건널목, 연말까지 잠정 존치하기로」, 환경일보, 2012-08-29[15] 「<서울>지역 골칫거리 외대 철길 건널목 폐쇄 추진」, 티브포드, 2018-01-10 (현재 접속 불가)[16] 「46년 외대앞역사 리모델링...'철도 건널목'도 폐쇄」, Btv뉴스, 2020-11-09

절대적인 이용객 숫자가 많아 경원선 구간에서 전체 6위의 승하차량을 보이지만 줄곧 이용객이 감소해왔다. 2005년수도권 전철 중앙선이 개통되면서 애용하던 승객들이 대거 회기역으로 이탈했다. 중앙선 전철이 망우-구리-덕소로 빠지면서 기존 용산-성북 열차를 이용하던 승객들이 환승저항을 피해 회기역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두 역 사이의 거리도 불과 800m이어서 더더욱 이탈이 많았다.

2015년에 25,000명 선이 무너진 뒤로 다시 승객 감소세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위의 신이문역처럼 휘경동 일대가 낙후지역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인구 유입이 없었기 때문이다. 2020~2021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으로 인해 한국외국어대학교, 경희대학교가 원격수업을 하면서 이용객 수가 12,000명대로 급감하기도 했다. 2022년 대학들이 현장수업을 재개하면서 이용객 수가 15,000명대로 회복되었다.

추후 이문휘경뉴타운 사업이 완료되면 다시 잃어버린 이용객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근 휘경 SK뷰(휘경2구역)의 입주가 완료되었고, 이문휘경뉴타운 1구역과 3구역인 래미안 라그란데이문 아이파크 자이의 입주도 각각 2024년, 2025년 완료될 예정이다.


5. 승강장[편집]


파일:외대앞역1.png
파일:attachment/84017387.jpg
남쪽 끝에 2층 선상역사가 자리하며 2면 2선의 승강장을 가지고 있으나 구조가 특이하다. 1호선 신도림역은 완행승강장만 이런 구조이며, 인천 1호선 국제업무지구역도 상행이 왼쪽, 하행이 오른쪽 문이 열린다.
신이문
1


2

회기

개업 당시에는 현재 서울역 방면의 승강장(2번 승강장) 외에는 없었고, 맞이방과 출입구, 매표소는 건널목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맞이방도 개통당시에는 개찰구 바로 앞에 있는 공간 정도인 크기였다. 이런 아담한 역을 개통 4년차인 1978년에 이미 하루 2만 5천 명이 이용해 인원이 많이 몰릴 때는 매우 혼잡했다. 심할 때에는 역을 빠져나오는 데에도 10분이 걸리는 경우가 있었다.[17] 신이문역회기역이 승객을 분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80년 즈음에 지금의 1번 승강장을 만들고 역사도 1번 출구 쪽으로 확장하여 2배 정도로 늘렸다. 당시 1번 승강장 부지는 이미 가옥으로 빽빽했다. 곧 확장을 위해 주거민들을 이주시키고 가옥을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회차선이나 대피선을 만들 얼마 되지 않는 여유공간까지 사라져서 건널목이 바로 앞에 있는 것과 함께 운행난도가 높은 지역이 되었다.

맞이방과 출입구, 매표소는 역 남쪽 끝인 건널목 옆에 자리한다. 곧 청량리 방향 승강장에서 매표소로 올라가는 계단은 1-1칸 앞, 광운대 방향 승강장에서 매표소로 올라가는 계단은 10-4칸 앞에 있다. 통학 시간에 외대생과 경희대생은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앞칸은 주로 경희대생이, 뒷칸은 외대생이 이용한다. 까닭은 회기역 상행선은 출구가 4-3에 있고 외대역은 출구가 10-4에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이 신이문역 방향 1번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밑에 있다. 회기역 방향으로 가는 승객은 반대편 승강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또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

2016년 8월에 시작된 스크린도어 설치공사는 12월에 완료되었다.

2019년 상반기에 기존 1번 출구를 폐쇄하고 6월경부터는 1번 승강장과 1번 출구를 평면으로 연결하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어느 방향이든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무조건 계단을 올라가 2층 대합실을 경유해야 했던 비효율적인 동선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다만 새로운 1번 출구를 이용하더라도 인천 방면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2층 대합실을 경유해야만 한다. 새로운 1번 출구는 2019년 9월 9일에 완공 예정이었다가 10월 9일로 미뤄진 후 완공되어 역사 대합실 확장공사가 진행되는 중에 한국외대 방면의 유일한 출구로써 기능했다. 현재는 확장공사가 완료되어 한국외대 방면으로는 4, 5번 출구가 더 생겼다.


6. 사건·사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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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0월 2일 오전 11시 42분 경에 이 역에서 남쪽으로 200미터에 신호 대기로 정차하던 성북(당시 명칭, 현 광운대역)행 전동차를 춘천 방면으로 가던 화물열차가 들이받아 승객 3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형사고가 있었다. 휘경역 열차 사고라고 불린다. 유류운송을 하던 디젤기관차가 휘경 제4건널목 앞에 서 있던 전동차와 추돌한 사고이다. 화물열차 기관사가 사고지점 1㎞ 전방에서 전동차를 발견하고 멈췄으나, 밀리면서 전동차 뒷부분을 들이받았다. 당시 9량[18]으로 전동차 가운데 뒤쪽 2량이 크게 부서졌다. 사망자 3명은 모두 8번째 객차 뒷부분에 탔었다. 이 사고로 인해 이 날 오후 3시까지 청량리역~성북역 구간의 전철이 운행 중단되었다.[b]

이때 승객들은 내부 비상레버를 당겨 출입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이 때 부서진 뒷차 2량이던 당시 차랑번호 1004, 1304호는 폐차되었고, 2년동안 휴차되다가 차후 인천역 사고로 1042호가 폐차되면서, 1006호는 14편성으로 옮겨졌으며 2편성 TC는 1979년산으로 운행하게 되었다. 사고원인은 신호기고장으로 추정했는데, 알고 보니 800m 앞에서 ATS의 경보음이 잘못 울린 것으로 착각하여, 장치를 풀고 그대로 달린 것이다. 결국 화물열차 기관사는 구속되었다.[19]

2006년 5월 10일에 역사 바로 옆에 자리한 상점의 불이 번져서 역사가 타는 사고가 일어났다.[20] 이 때문에 기존에 역으로 들어가던 계단을 폐쇄하고 임시통로를 만들어 사용해 왔었다.

2011년 1월 16일 오후 9시경에 끼이익 소리가 나더니 고장으로 열차가 멈췄다.[21] 이 사고로 광운대 방향으로 가던 전동차 운행이 1시간 30분 가까이 지연됨과 함께 의정부 방향은 청량리까지만 운행했다.

2020년 1월 31일 오전 7시 41분에는 인천급행 열차 안에서 한 취객이 난동을 부리다가 승객들에 의해 이 역에서 끌어내려졌다. 하지만 열차가 정차해 있는 사이에 열차 출입문의 유리창을 박살내는 추태를 부렸다. 일명 지하철 강철의 연금술사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모든 승객이 내려서 후속열차를 타야만 했고, 7분 지연되어 운행했다.[22]


7. 연계 교통[편집]


외대앞역 연계 버스 정보
정류소
구분
노선
외대앞역 (06539)
마을
외대역앞 (06293)
간선
외대역앞 (06294)
간선

[17] 「서울地下鉄 開通4년에 살펴본 明暗 (1) 러시 아워」, 동아일보, 1978-02-07[18] 일반 전동차는 짝수단위로 편성하는데 신문기사에는 9량으로 표기되었다. 아마 실제로는 10량 편성인데 9량으로 오기가 된 것 같다. 1984년경에 철도청 전동차들은 이미 10량으로 전환하는 시기였다.[b] [19] 「화물列車 기관사令狀」, 1984-10-03[20] 「지하철 1호선 외대역 앞 건물 화재」, KBS, 2006-05-10[21] 「외대앞역 전동차 고장...1시간 반 운행 중단」, YTN, 2011-01-17[22] 「술 취해 출근길 지하철 창문 깨트린 남성경찰 입건(종합)」, 뉴스1, 2020-01-31


8.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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