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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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遼東征伐

한반도에 있던 정치세력이 요동을 정벌하려 했던 군사적 행동을 뜻한다. 다만 일반적으로 수식어 없이 요동정벌이라고 하면 대체로 여말선초 시기에 있었던 3차례 시도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고구려의 경우 태조왕 시절부터 광개토대왕 시기까지 요동의 패권을 두고 쉴새없이 전쟁을 벌였다. 요동 일부를 점령했다가 축출당하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요동에 대한 정벌 시도 역시 셀 수 없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는 광개토대왕이 요동성을 함락시키며 요하 너머 중원의 거점을 완전히 축출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후에도 설오유가 이끄는 신라군이 670년 3월에 압록강을 건너 당나라를 선제 공격하고 몇 달간 요동 남부를 점거한 사례가 있지만 이 사건은 요동 정벌만이 목표가 아닌 나당전쟁의 일부로 본다. 전쟁의 목적이 기록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학계에서는 기선제압, 혹은 남쪽 웅진도독부 정벌을 위한 양동작전 등의 설이 나오고 있다.

이후 발해 시기에도 요동에 대한 군사작전은 계속되었으며, 발해의 요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거란에 의해 발해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이어졌다.

2. 목록[편집]



2.1. 제1차 요동정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1차 요동정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제2차 요동정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위화도 회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 제3차 요동정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3차 요동정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기타[편집]


한반도에 있던 세력 중 요동땅에 군대를 파견한 사례는 고려 외에도 있었다. 나당전쟁의 시작을 알린 설오유의 2만의 신라원정대, 나선정벌 당시 변급(1차 원정), 신유(2차 원정)이 이끈 조선포수들이 바로 그것.

다만 이들은 요동땅을 차지하겠다는 의도보다는 각각 선제공격[1], 상국에 대한 지원군 파견에 가깝기 때문에[2] 요동 정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4.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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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 시절 1차 고구려-수 전쟁요서로 선공한 것을 두고 요서정벌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2] 지원군 파견으로 치면 신라는 이사도 토벌을 명분으로 김웅원을 당나라 본토에 지원군으로 보낸 적이 있고 고려는 장사성 토벌을 이유로 최영을 원나라 본토에 지원군으로 보낸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