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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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의 역임 직책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앙겔로스 바시나스
(2007~2009)

게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
(2009~2014)


바실리스 토로시디스
(2014~2019)


게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의 수상 이력



게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의 기타 정보





그리스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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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게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
Georgios Karagounis
본명
요르고스 카라구니스[1]
(Γιώργος Καραγκούνης)
출생
1977년 3월 6일 (47세)
피르고스
국적
[[그리스|

그리스
display: none; display: 그리스"
행정구
]]

신체
176cm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유소년
파나티나이코스 FC (1993~1996)
소속
파나티나이코스 FC (1996~2003)
아폴론 스미르니스 FC (1996~1998 / 임대)
인테르나치오날레 (2003~2005)
SL 벤피카 (2005~2007)
파나티나이코스 FC (2007~2012)
풀럼 FC (2012~2014)
국가대표
파일: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39경기[2] 10골 (그리스 / 1999~2014)




1. 소개[편집]


“게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는 클럽 및 국제경기 경험이 풍부하며 저는 그가 이번 시즌에 합류한 것에 대해 기쁩니다. 그는 클럽의 영향력 있는 선수이며, 축구계에서 명성있는 선수로, 곧 그리스 국가대표팀에서 최다 출장 기록을 지닌 선수가 될 것입니다. 그의 영입은 우리 선수단의 질적 향상을 가져왔습니다.”

마틴 욜


그리스의 前 축구선수.


2. 클럽 경력[편집]



2.1. 파나티나이코스 FC 1기[편집]


게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는 1996년에 파나티나이코스에서 아폴론 스미르니로 임대를 가서 데뷔하였다. 아테네 연고의 처음 몇년 동안, 그는 우수한 재능의 잠재성을 보였는데, 그는 중원의 핵으로써 매우 에너지가 넘치는 선수이며, 클럽의 주요 득점원이었다. 아폴론에서 데뷔 이후 2년을 보냈던 그는 1998년에 그리스 거함 파나티나이코스로 복귀하여 더 많은 기술을 숙달하였다. 파나티나이코스에서 그는 이어지는 5년간 선수단 1군의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하였다. 비록 파나티나이코스는 이 기간동안 몇가지 논란을 수반하는 이유로 알파 에트니키 우승을 못하였으나, 팀은 항상 리그 우승에 경쟁하였고,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와 UEFA컵 경기에서 훌륭한 행보를 보였고, 카라구니스 또한 팀에 소중한 득점을 올리곤 했다. 그는 녹색 군단에 합류한 첫 시즌에 24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해 6골을 넣었고, 2000-01 시즌에는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였으며, 카라구니스는 녹색 군단이 참가한 이 시즌의 챔피언스리그 12경기에 모두 출전하였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한 올드 트래퍼드 원정 경기에서는 직접 프리킥으로 잊을 수 없는 득점에 성공하였다. 이어지는 기간동안 아포스톨로스 니콜라이디스 경기장에서 열린 홈경기에서, 그는 아스널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헤딩으로 데이비드 시먼을 따돌려 아름다운 골을 넣었고, 팀을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


2.2.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편집]


프로 데뷔로부터 7년 후, 카라구니스는 처음으로 해외로 둥지를 옮겼고, 그가 2003년 여름에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를 떠나 정착한 곳은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인테르나치오날레였다.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의 첫 시즌에 그는 소속팀의 2003-04 시즌 리그 경기에 불규칙적으로 출전하였으며, 주로 유럽대항전[3]경기에 출전했었다. 이탈리아와 해외에서의 첫 시즌 후,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의 리그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선수로, 연고지 라이벌 밀란이 리그를 우승하는 가운데 소속팀은 4위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었으나, 포르투갈에서 열린 UEFA 유로 2004의 그리스 선수단에 별탈 없이 들어가 나중에 큰 인상을 남겼다. 그리스가 UEFA 유로 2004를 우승한 후, 이탈리아로 돌아가 자신과 서포터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출전할 많은 기대를 갖고 2004-05 시즌의 리그에 참가하였으나, 그는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 지휘 하에 세리에 A경기에 또 불규칙적으로 출전하였고, 유럽대항전과 국내 컵 대회를 위주로 출전하였다. 그는 2005년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그리스 국가대표팀 동료인 트라이아노스 델라스가 소속된 AS 로마를 꺾고 팀과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2004-05 시즌 종료 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유벤투스 FC가 우승한 가운데 3위로 리그를 마감하였고, UEFA 챔피언스 리그는 8강에서 AC 밀란에게 패하며 탈락했다.


2.3. SL 벤피카[편집]


2005년, 그는 포르투갈로 무대를 옮겨 그가 그리스 대표로 UEFA 유로 2004를 우승했던 이스타디우 다 루스를 연고로 하는 벤피카에 합류하였다. 카라구니스는 “저는 벤피카가 좋습니다. 매우 큰 클럽으로, 저는 서포터들이 저에 대해 큰 믿음이 있는 것으로 보아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리스 국가대표 동료들이 제가 벤피카에 이적한 것에 대해 행복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는 즐라트코 자호비치가 은퇴함에 따라 공석이 된 10번을 받았다. 포르투갈 거함은 그리스 미드필더를 영입하기 위해 7개월간 지속된 긴 협상을 벌였고, 3년 계약의 체결 후 입단식에 등장하였다. 더 나아가서, 카라구니스는 “저는 9월 10일의 스포르팅 리스본과의 경기까지 준비할 것입니다. 저는 제가 빅클럽에 입단한 것을 압니다. 벤피카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험이 있고, 모두의 존경을 받습니다. 저는 여기 우승하러 왔습니다.”라고 덧붙여 UEFA 유로 2004의 우승이라는 최고의 순간을 보낸 이스타디우 다 루스의 복귀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카라구니스는 포르투갈에서 인상적인 득점을 성공했는데, 예를 들어 샤흐타르 도네츠크전 16미터 골이나 아브스와의 홈경기에서의 놀라운 프리킥골이 있다.

카라구니스의 벤피카에서의 첫 시즌은 순탄치 않았는데, 그리스 선수는 자신을 주축으로 발돋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2년차에 들어서 파나티나이코스 이후로 재회한 페르난두 산투스의 체제 하에 카라구니스는 클럽의 선발 라인업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고, 우수한 성과를 보이며 팬들의 가장 사랑받는 선수들 중 하나가 되었다. 벤피카에서 2년동안 우수한 활약을 펼친 카라구니스는 그리스로 돌아가 친정팀 파나티나이코스에 재합류했다.[4]


2.4. 파나티나이코스 FC 2기[편집]


루머에 따르면, 선수의 가족이 리스본의 생활에 적응할 수 없어 포르투갈에서 이주하기를 희망한다고 나왔다. 카라구니스의 포르투갈 클럽 계약은 2008년 7월에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선수와 그의 에이전트는 협상을 통해 즉시 떠나게 되었다. 카라구니스는 2007년에 벤피카에서 방출된 후, 즉시 그리스로 복귀해 친정팀 파나티나이코스의 일원이 되었고, 3년짜리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는 원 소속팀에 즉시 적응해 특히 유럽대항전에서 중요한 경기에서 득점을 성공시키곤 했는데, 베르더 브레멘전의 환상적인 발리슛 골이 그 중 하나였다.

그는 클럽에 적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벤피카에서의 생활이 빨리 끝나버렸고, 고향으로 돌아가 파나티나이코스에 입단했다. 아테네 연고 팀은 그를 확보하면서 클럽의 새 시대를 알렸고, 카라구니스는 클럽에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 국가대표팀에서도 리더쉽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그는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자리잡아 그 전에 그리스 선수단의 주장이었던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의 공백을 메꾸었다. 카라구니스의 파나티나이코스에 헌신적으로 공헌하면서, 질적 영향에 두각을 나타내어 파나티나이코스가 유럽대항전에서 성공케 하였다. 2009년 9월 3일, 카라구니스는 2012년까지 계약을 연장하였고, 클럽에서 은퇴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아테네 연고 클럽의 주장으로써, 그는 두번째 수페르리가 엘라다와 그리스 컵 우승을 차지하였다. 더 나아가서, 그는 팀이 참가한 UEFA 유로파 리그 2009-10에서 득점자 목록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그는 디나모 부쿠레슈티 F조 원정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했다. 카라구니스의 79분 결승골로 파나티나이코스는 클라우디우 니쿨레스쿠가 페널티킥을 경기 종료 2분전에 실축한데 힘입어 유로파 리그 승점을 확보하였다.


2.5. 풀럼 FC[편집]


2012년 9월 11일, 카라구니스는 계약이 만료되면서 파나티나이코스에서 방출되어 해외로 이주하였고, 이번에는 잉글랜드의 풀럼으로 자유이적해 시즌 종료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요르기오스 카라구니스는 니코스 다비자스, 스텔리오스 얀나코풀로스, 바실리스 라키스,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 앙겔로스 바시나스, 그리고 코스타스 할키아스의 뒤를 이어 UEFA 유로 2004 우승 주역들 중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8번째 그리스 선수였다. 풀럼의 모트스퍼 파크 훈련장의 인터뷰에서 카라구니스는 “저는 풀럼에 입단한 것에 대해 기쁘며, 잉글랜드와 프리미어리그에서 맞이할 새로운 도전이 기대됩니다. 저는 마틴 욜 감독과 이 클럽의 몇몇 환상적인 동료들과 함께 하루빨리 동행하고 싶습니다.”라고 인터뷰하였다.

2012년 9월 29일, 그는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크레이븐 코티지홈경기에서 프리미어리그 클럽 공식 데뷔전을 가졌는데, 81분에 크리스 베어드와 교체 투입되었다. 리버풀 FC에게 0-4로 패한 경기에서, 카라구니스는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90분 풀타임을 뛰었다. 2013년 1월 5일, 풀럼의 블랙풀 FC와의 FA컵 경기에서 카라구니스는 풀럼 1호골을 득점하였는데, 그는 '22미터 하프볼리슛'을 날렸고, 이것이 크로스바 아래로 내려가 뤼도비크 실베스트르에 당한 실점을 동률로 만들어 경기를 1-1로 종료시켰다. 그로 인해, 두 클럽은 블룸필드 로드에서 열린 재경기에 참가하게 되었다. 2013년 1월 12일, FA컵에서 득점한지 1주일 후, 그는 위건 애슬레틱과의 경기 전반 22분에 첫 프리미어리그 골을 넣었다.

카라구니스는 본래 프리미어 리그 2012-13 시즌의 종료와 함께 풀럼에서 나갈 12명의 선수들 중 한명이었다. 2013년 7월, 그는 그리스의 친정팀 파나티나이코스로 돌아가지 않고 프리미어리그 풀럼과 연장 계약이 임박했다고 보도되었다. 이적 시장에서의 반전으로, 카라구니스는 클럽에 앞서 6월에 나갈 예정이었으나, 풀럼과 1년 연장계약에 임박했다고 언급했다. 결국 풀럼은 마르틴 욜을 클럽의 지휘봉을 계속 잡고, 네덜란드인 전술가가 카라구니스를 잉글랜드 수도 연고의 팀에 1시즌 더 머물게 할 것으로 보였다. 카라구니스는 전년 여름에 풀럼에 입단할 때부터 인기 영웅이었고, 근래 잉글랜드 축구 생활 1년의 끝이 임박하면서 파나티나이코스와 멜버른 빅토리 대표자들과 만나기도 했었다. 한편 그리스에서는 카라구니스와 파나티나이코스 보드진과의 협상에서 그리스 국가대표가 아테네 연고팀에게 그가 해외에 잔류할 의사를 밝히게 되면서 진지하게 진행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결국, 2013년 7월 9일, 카라구니스는 2014년 여름까지 유효한 풀럼과의 1년 연장계약을 체결하였다. 런던팀은 게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가 파나티나이코스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 결단내자마자 공식적으로 새 계약을 발표하였다. "구단은 요르기오스 카라구니스가 풀럼과의 1년 연장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2014년 6월 30일까지 크레이븐 코티지에 남게 된 것에 기쁩니다. 그의 근무 태도와 그라운드에서의 열정은 팬들의 최고 선수로 지위를 굳혔으며, 또한 팬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 및 골에서 모두 2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라고 풀럼의 공식 웹사이트에 보도되었다. 마지막 시즌에, 카라구니스는 레스터 시티에 3-4로 패한 리그컵 경기에서 시즌의 처음이자 마지막 득점에 성공하였는데, 그의 득점으로 종료 3분을 남겨놓고 동점을 기록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여우 군단의 로이드 다이어에게 결승골을 내주어 졌다.이 시즌동안, 카라구니스는 근육통으로 고통을 받았으나, 2014년 4월 19일, 그는 1-3으로 진 토트넘 홋스퍼와의 원정 경기에서 교체 출전으로 자신의 클럽 마지막 경기를 치루고 은퇴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1999년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3.1. UEFA 유로 2004[편집]


오토 레하겔의 중용을 받으며, 그리스 중원의 중심이 된 카라구니스는 UEFA 유로 2004의 개막전 개최팀인 포르투갈을 상대로 선제골을 터트리며 팀에게 승리를 안겨준다. 카라구니스는 다음 경기에서 경고누적으로 인해 3경기에 출장하지 못하였으나, 그 후 팀의 중원의 핵심으로 맹활약하며 프랑스, 체코, 포르투갈을 꺾고 그리스에게 유로 우승이라는 영예를 안기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다.


3.2. UEFA 유로 2008[편집]


유로 2008에서도 카라구니스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팀은 3전 전패를 당하며 조별리그 광탈을 당한다.


3.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편집]


남아공 월드컵에 참전한 카라구니스는 조별리그 2차전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활약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어 팀의 16강행 불씨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16강은 아르헨티나대한민국이 진출하였다.


3.4. UEFA 유로 2012[편집]


카라구니스는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를 상대로 살핀기디스가 보이치에흐 슈쳉스니와 충돌하면서 슈쳉스니가 퇴장당하고 페널티 킥을 얻게된 그리스의 키커로 나섰으나, 페널티 킥을 실축하며, 팀이 승리할 기회를 놓치면서 역적이 될 위기에 처했었다.

허나 조별리그 3차전 러시아를 상대로 전반 종료 직전 결승골을 터트려 팀의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A조를 그야말로 혼돈으로 빠뜨리고 팀의 8강행을 이끌며 역적에서 영웅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카라구니스는 경고누적으로 8강전 독일을 상대로 출장하지 못하였고, 팀은 4:2로 패해 탈락한다.


3.5.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편집]


37세의 나이에 2번째 월드컵이자 마지막 월드컵에 참가하여 콜롬비아에 이어 조 2위로 그리스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한다. 16강 코스타리카전에서 선발 출장해 연장전까지 풀타임을 뛰었지만, 코스타리카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16강에서 탈락한다. 2014년 월드컵이 끝난 뒤, 카라구니스는 그리스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킥 능력이 좋아서 프리킥과 코너킥을 담당하였으며, 매우 적절한 볼배급으로 득점기회를 제공하였다.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투지가 넘치며, 뛰어난 리더쉽을 보유하였다.

드리블 능력과 정확하고 창의적인 패스능력을 보유했고 슈팅 능력도 뛰어나 직접 골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간간히 존재했다.
[1] 공식표기는 Γιώργος이며 국립국어원에서 '요르고스 카라구니스'로 표기 심의한 바 있다. 'Καραγκούνης'라는 인명은 그리스어 고유명사가 아닌 외래어에서 따온 것이므로 카랑구니스가 아닌 카라구니스로 표기한다.[2] 그리스 역대 최다 출장자.[3] UEFA 챔피언스 리그UEFA컵[4] 루머에 따르면 가족들이 포르투갈에서 적응을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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