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스 마테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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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 덴하흐
ADO Den Haag

파일:Mathijsen_2021.jpg

이름
요리스 마테이선
Joris Mathijsen

출생
1980년 4월 5일 (43세)
노르트브라반트주 호르레
국적
[[네덜란드|

네덜란드
display: none; display: 네덜란드"
행정구
]]

신체
183cm
직업
축구선수 (수비수[1] / 은퇴)
축구경영인
소속
선수
VOAB (1986~1989 / 유스)
빌럼 II (1989~1998 / 유스)
빌럼 II (1998~2004)
AZ 알크마르 (2004~2006)
함부르크 SV (2006~2011)
말라가 CF (2011~2012)
페예노르트 (2012~2015)
경영
빌럼 II (2016~2022 / 단장)
ADO 덴하흐 (2023~ / 단장)
국가대표
파일: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84경기 3골 (네덜란드 / 2004~2012)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클럽 경력
4. 국가대표 경력
5. 은퇴 후



1. 개요[편집]


네덜란드의 前 축구선수로, 200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 오량예의 핵심 센터백으로 활약했다.


2. 플레이 스타일[편집]


183cm의 키로 센터백으로서는 작은 키였으나 뛰어난 수비 지능을 토대로 프로 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한 왼발 센터백이었다.

그의 스타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대표팀의 오랜 파트너였던 욘 헤이팅아가 발군의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수비를 하는 파이터형 센터백이었다면 이쪽은 대한민국의 홍명보와 같이 타고난 리더십을 활용한 수비조율 능력과 예측을 통한 수비로 상대를 저지하는 커멘더형 스타일이었던 것.

빌드업 또한 모험적인 패스를 시도하는 선수는 아니었으나 종종 후방에서 롱패스를 적지 않게 시도했다.

주력은 헤이팅아와 같이 빠른 편은 아니고 오히려 단점이었으며 대신 슬라이딩 태클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선수였다.

주 포지션은 센터백이었으나 레프트백은 몰론이고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 가능하며 범용성까지 훌륭한 선수였다.

3. 클럽 경력[편집]


어린시절 그는 친구와 함께 SV VOAB팀의 트레이닝 세션을 방문한 후 본격적으로 축구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9살에 팀을 떠나 빌럼 II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게 된다.

1998-99 시즌을 앞두고 그는 퍼스트 팀으로 승격했고, 1999년 2월 27일 FC 위트레흐트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프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6시즌 간 빌럼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한 이후 당시 AZ 알크마르 감독이었던 코 아드리안세의 눈에 띄며 AZ로 이적하게 된다.

새 팀에서도 그는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팀의 UEFA 컵 준결승 진출에 크게 일조했다.


3.1. 함부르크 SV[편집]



파일:Mathijsen_hamburg.jpg


2006년 여름, 마테이선은 600만 파운드[2]의 이적료로 분데스리가함부르크 SV로 이적한다.

당시 팀에는 자국 대표팀 동료인 라파엘 판데르파르트나이젤 더 용이 있었기 때문에 적응에도 수월했다.

새로운 리그에서 도전을 선택한 마테이선은 데뷔시즌부터 32경기에 출장하여 바스티안 라인하르트 등과 함께 좋은 호흡을 선보였고, 2007년 10월 20일에는 슈투트가르트와의 리그경기에서 득점을 성공시키며 함부르크 이적 후 첫 골이자 팀의 500번째 분데스리가 골을 달성했다. 그리고 시즌 내내 리그 34경기동안 단 26실점만을 허용하며 짠물수비진의 선봉장이 되었다.[3]

함부르크에서의 훌륭한 활약은 소속팀과 새 계약을 이끌기에 충분했으며, 2008년 11월 팀과의 계약을 2012년 여름까지 연장한다.

2010-11시즌부터는 출전 기회가 많이 줄어들면서 리그 19경기를 나서는데 그쳤고 팀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3.2. 말라가 CF[편집]


2011-12 시즌 개막을 앞두고 그는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이름있는 선수들을 끌어다모으며 단숨에 강화된 전력을 보여주던 '말락티코'의 말라가 CF로 이적했다.

말라가가 보여준 비전과 행보는 그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으며 팀은 그에게 많은 출전시간을 보장했다. 그리고 기존에 있던 베테랑 마르틴 데미첼리스, 세르히오 산체스와 함께 인상적인 수비력을 보이며 전 시즌 대비 실점이 대폭 줄었고, 팀 순위 또한 11위에서 4위로 끌어올리며 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행에 크게 일조했다.

그러나 구단주의 변심으로 재정악화에 빠진 팀은 마테이선을 처분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자국 리그로 돌아가게 된다.


3.3. 페예노르트 로테르담[편집]



2012년 8월 10일, 페예노르트 로테르담AFC 아약스가 관심을 보인 가운데 그의 선택은 페예노르트로 향한다.

세 시즌간 활약하며 준수한 말년을 보낸 뒤 2014-15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한다.


4.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4년 11월 17일, 성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그는 2006 FIFA 월드컵에 참가하였지만, 조국은 16강에 그쳤다.

UEFA 유로 2008에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러시아에게 일격을 맞으며 8강에서 무릎을 꿇었다.

2010 FIFA 월드컵에서는 욘 헤이팅아와 함께 합을 맞춰 전 경기에 출전하며 팀을 결승전으로 이끌었으나, 스페인에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2년 6월에 개최된 UEFA 유로 2012에서는 만 32세의 나이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분전했지만, 팀은 졸전끝에 최하위로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고, 마테이선은 대회를 마친 뒤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5. 은퇴 후[편집]


은퇴 이후 자신이 처음으로 프로 무대에서 활약했던 빌럼 II의 단장직에 부임했다.

2022년 3월 8일, 빌럼 II와 결별했다.

이후 2023년 7월, ADO 덴하흐의 단장직에 부임하면서 1년 반만에 일선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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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센터백, 풀백[2] 당시 72.5억원[3] 참고로 당시 바이에른 뮌헨의 실점은 21실점이었다. 뮌헨이 분데스리가의 강팀인 것을 생각해보면 함부르크의 수비진도 그에 못지 않게 뛰어난 활약을 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