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크라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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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크라머 (Josef Kramer)
1. 개요
2. 초기 행적
3. 강제수용소에서의 행적
4. 전후 재판과 최후


1. 개요[편집]


독일군인.

1907년 11월 10일에 태어나 1945년 12월 13일 숨졌다.

슈츠슈타펠 대위이자 여러 강제수용소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2. 초기 행적[편집]


뮌헨 출신인 크라머는 1931년나치당에 입당하여 1932년에 친위대 대원이 되었다. 1934년에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간수가 된 후 급속히 승진하여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및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의 부소장으로 취임했다.


3. 강제수용소에서의 행적[편집]


1940년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루돌프 회스 소장의 부관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 4월에 나쉬바일러 슈트르호프 강제수용소의 소장으로 취임한 크라머는 1942년에 친위대 대위로 승진하여 1944년 5월부터 1944년 12월까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 관리자로 일했다. 1944년 12월부터는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의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베르겐-벨젠 수용소는 매우 위생상태가 나빴는데 이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대부분이 티푸스 등의 감염 및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안네의 일기로 잘 알려진 안네 프랑크도 그 희생자 중의 하나다. 전후 베르겐-벨젠에서 해방된 수용자들이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나갈 방법은 이 굴뚝 외엔 없다>라고 소각로를 가리킨 말은 매우 유명하다.


4. 전후 재판과 최후[편집]


벨젠의 야수로 칭해졌던 크라머는 종전 후 영국군에 의해 체포되어 다른 44명의 수용소 반원들과 함께 유죄를 인정받아 영국군사법정에서 1945년 11월에 사형선고를 받고 12월 13일, 하멜른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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