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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腰斬刑
1. 소개
2. 요참형 당한 인물
2.1. 실제 인물
2.2. 가상 인물
3. 여담


1. 소개[편집]


사형의 하나.

참수형이 목을 자른다면 요참형은 허리댕강 날려 버리는 형벌이다. 판관 포청천에 나오는 작두 시리즈가 목을 자르는 것 치고는 크고 아름다운데, 그 이유도 포증이 내리는 형벌이 허리를 자르는 요참형이다.

신체가 분리되고 죽음에 이르므로 참수랑 비슷한 수위의 사형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요참형 쪽이 더 높은 수위의 사형법인데, 일단 요참형은 참수형과 달리 즉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참수의 경우 양쪽 경동맥(Carotid Artery)의 절단으로 출혈 속도가 빠르고, 이에 따라 로 가야할 혈액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의식 소실 및 사망에 이르는 시간이 매우 짧다. 반면 허리는 절단됐을 때 복부 대동맥(Abdominal Aorta)이 절단되는데 물론 이것도 사망에 이르는 중상임은 맞지만 경동맥에 비해 혈압이 낮아[1] 출혈 속도가 느리고 결정적으로 뇌혈류량의 감소 속도가 빠르지 않기 때문에 실혈로 인한 쇼크를 일으키는 시간이 참수보다 오래 걸리고 당연히 의식도 상대적으로 더 오래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행되어도 참수보다는 생존 시간이 훨씬 길다. 지뢰 폭발로 허리 아래가 모두 날아간 군인이 꽤 오랜 시간 의식을 유지한 채 생존해 있었다는 실화[2]도 있고, 가끔 LiveLeak과 같은 쇼크 사이트에 허리가 잘린 채 살아서 꿈틀대는 교통사고 희생자들의 사진이나 영상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기도 하며, 실제 사례로 청나라 옹정제 시절 정 1품 과거시험관 유홍도의 사례도 있다.[3] 당연하지만 형을 받은 사람은 참수보다도 훨씬 더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천천히 피를 흘리다가 죽게 된다.[4]

물론 요참형 정도의 신체적 충격은 즉사할 가능성도 높은 수준이라 뇌혈류가 참수 대비 더 오래 잔류하는건 맞더라도, 무조건적으로 길게 생존하거나 의식이 유지되는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참수보다 몸이 분리되고도 오래 고통스럽게 숨이 붙어있을 상황의 확률이 더 높게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런 사례도 꽤 있기에, 그 자체가 매우 공포스러운 일이다.

그나마도 즉사 가능성을 노리는 것도 한번에 잘 끊겼을 때에 가능성이 있지 외국의 모 방송사에서 의사가 나와 인체와 흡사하게 만든 모형을 가지고 실험한 결과, 깔끔하게 한 번에 잘리지도 않았다. 처형이 진행되는 동안 의식이 남아 있다면... 참고로 참수도 목도 경추 및 구조물에 의해 한번에 자르기가 생각보다 어려워 단칼에 참수가 실패하여 대상자의 고통을 가중시킨 경우가 꽤 있던 판국에 더 두툼하고 내장도 많으며 경추보다도 더 두꺼운 요추가 있는 허리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다행히도(?) 그런 상황을 파악한 이후에는 절삭력을 높이기 위해 참수와는 다르게 작두형태로 시행한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베트남의 한 축제에선 전통적으로 돼지를 요참으로 도살한다. 몇 번을 내리친 끝에야 두 토막이 나고 잠시 몸부림치며 살아있기까지 하는데, 요참형을 당할 정도라면 보통 고문에 상한 사람이라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5]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반드시 사서를 써야 했어서 사형이나 거금 내기 대신 궁형을 고르고 살아남은 뒤에《사기》를 마저 저술했던 한나라의 역사학자 사마천이 받기로 되어 있던 사형법 역시 요참형이었다.

서양에서는 교수형과 비슷하게 죽을 때까지 허리를 매달아 놓는 형벌이 있었다고 한다. 복부 대동맥에 압박을 가해 박리를 유도하여 내부출혈로 목숨을 잃게 하는 원리이다.


2. 요참형 당한 인물[편집]



2.1. 실제 인물[편집]


  • 두영 - 한무제 때의 승상으로 무제의 할머니인 효문황후 두씨의 조카다. 무제의 어머니 효경황후 왕씨의 배다른 동생인 전분과 친하여 유학을 국시로 삼으려 했으나 도교를 숭상한 효문황후에게 질책을 받고 물러났다. 효문황후 사후 효경황후의 동생인 전분은 복직하여 승상이 되었으나 두영은 복직하지 못했다. 이후 비슷한 처지의 관부와 동병상련의 처지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관부가 전분과 다투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구명을 요청했다가 전분에게 미움을 사 탄핵을 당했는데 벗어나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 무제에게 요참형에 쳐해진다.
  • 유굴리 - 한무제의 형인 중산정왕 유승[6]의 아들로 무제 말년에 승상이 되었는데, 사돈인 이광리흉노정벌을 가기전 이광리에게 외조카가 되는 창읍왕 유하를 차기 황제로 밀기로 밀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를 알게된 내자령 곽양에게 참소를 받아 조리돌림 당한후 요참형에 쳐해진다.
  • 유침
  • 이사
  • 필현보 - 서경 출신의 고려 역적으로, 홍복원과 함께 봉기했다가 최우의 사병 3천명에게 진압당하자 홍복원은 몽골 제국으로 재빨리 달아났지만 본인은 붙잡힌 뒤 요참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홍복원이 갖다 바친 귀주성을 비롯한 40여 성은 몽골의 심양로에 편입되었다.
  • 하후현

2.2. 가상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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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담[편집]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작품이 이유없이 연중되거나 용두사미로 끝났을 때 이 형벌에 빗대어 요참작이라 부른다.

[1] 경동맥은 좌심실이 짜내는 혈류가 직통으로 올라올 뿐더러, 복부 대동맥에 비해 혈관 직경이 매우 가늘다.[2] 모가디슈 전투에서 RPG-7공격 탓에 허리 아래가 날아간 병사도 꽤 오래 살아남았지만, 결국 야전병원에서 사망했다.[3] 그의 이 몰래 과거 답안지를 유출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 유홍도가 유출죄로 요참형을 선고받은 것. 당시 옹정제유교적인 군주로, 과거시험의 정답이 유출된 죄를 엄히 물었다. 결국 첩을 잘못 둬 요참형에 처해진 그는 허리가 잘려도 죽지 못한 채 자신의 피를 적셔 慘(참혹할 참)을 7번 쓰고서야 죽는데, 후에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반역자도 아닌데 요참형으로 사형시키는 것을 잔혹하다고 생각한 옹정제는 요참형을 폐지한다. 아버지인 강희제 역시 요참형을 당한 이가 한동안 죽지도 못하고 꿈틀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죄인들을 가능하면 사형하지 않고 사면하려 노력했다고 한다.[4] 사실 참수형은 한번에 정확히 목을 잘라낸다는 전제하에서는 고통을 최소화하는데 있어 인도적인 편이다. 단두대도 그냥 보면 흉악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도적인 사형의 의도로 발명된 것이다. 물론 단도로 썰거나 한번에 자르는데 실패해 여러번 쳐야 한다면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는건 매한가지.[5] 아주 당연하게도 동물학대라며 전세계에서 엄청난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다.[6] 바로 그 유비의 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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