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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慵齋叢話.
1. 개요
2. 내용
3. 번역
4.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조선 중종 20년인 1525년에 성현(成俔, 1439 ~ 1504)[1]이 간행한 잡록집. 필사본 3권 3책, 대동야승본 10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편집]


조선 성종대에 예조판서를 지낸 학자인 용재(慵齋) 성현(成俔)이 연산군 대인 1499∼1504년 사이에 저술한 잡록으로, 고려조 이래 우리나라의 문화(文化), 시화(詩話), 서화(書畫), 인물평(人物評), 사화(史話), 실력담(實歷談) 및 기타 문물제도, 민간풍속, 문화, 역사, 학문, 종교, 풍속, 지리, 제도, 예술, 음악, 소화(笑話) 등을 모두 모아 수록한 것이다. 저자인 성현이 사망한 후 1525년에 경주시에서 간행되었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성현의 필사본은 총 3권 3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 조선조 잡기류 서적들을 모아놓은 대동야승에도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동야승에 수록된 것은 총 10권 2책의 분량이다. 연세대학교에는 중간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연세대본은 5권 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재총화에 수록된 고려 및 조선 전기의 고전 소화문은 총 324편이다. 저자인 성현이 세조에 의해 1459년 발탁된 후 서거정, 강희안, 강희맹, 신숙주, 김수온 등의 여러 유명 예술인들과 함께 한국의 관각 문학을 극한까지 발전시키가며 그 과정에서 보고 들은 모든 총화(叢話)들을 남김 없이 기록한 것[2]이다.[신병주의 ‘조선의 참모로 산다는 것’] (8) 성종의 문화 참모 ‘성현’ 악학궤범·용재총화 쓴 학문·예술 팔방미인 성현은 이 외에도 악학궤범, 풍아록(風雅錄), 상유비람(桑楡備覽), 부휴자담론(浮休子談論), 관광록(觀光錄), 허백당집 등의 책을 남겼다.


3. 번역[편집]


현대 한국에는 성현의 용재총화를 번역한 책이 여러권 나와 있다. 네이버 책 : 용재총화


4.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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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석린의 동생 성석연의 증손자이자 성엄의 손자이며 성염조의 아들이다. 사육신 성삼문의 8촌 동생이다. 성현 본인은 유능한 관료이자 청렴결백한 청백리였으나 죽은 뒤에 수 개월 만에 갑자사화가 일어나서 부관참시를 당했다.[2] 의외로 직접 보고 들은 썰 기반이라서 그런지 신뢰도가 어느 정도는 있다. 예를 들어, 여진족이 가족들끼리도 살해하는 야만인들로 묘사된 것을 과장이라 보았으나 번역된 내국사원당 같은 기록에서는 누르하치, 홍타이지, 도르곤 등이 심지어 중원 정복 전에도 생겨난 자연스러운 인과로 가족들끼리도 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