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폰 보이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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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친위대 대장이다.
2. 초기 행적[편집]
독일 제국 프로이센령이던 슐레지엔의 슈바노비츠[1] 에서 보이르슈는 군인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친척중, 레무스 폰 보이르슈는 독일제국군의 원수였다. 사립학교를 졸업한 뒤 베를린의 리히터페르데 사관학교에 입학해 제1차 세계 대전때 소위로서 종군해 병참부대와 기관총 부대, 기병부대 등에서 근무하여 패전 당시 중위계급으로 1,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독일의 패전 후 실레지아의 국경부대에 배속했던 보이르슈는 1920년 10월에 제대하여 부동산을 경영했다.
3. 나치당 입당과 슈츠슈타펠 가입[편집]
1923년에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가문의 토지를 상속받아 관리하게 되었는데 1929년 10월 1일에 나치당에 입당한 후 1930년 6월 10일엔 나치 친위대에 가입했다. 1934년의 장검의 밤 사건당시 라이벌이던 친위대 상급대령 에밀 젬바흐를 처형하였는데 1935년 1월 1일부터 친위대 대장으로 승진했다.
4. 제2차 세계 대전[편집]
1935년 1월부터 1940년 4월에 걸쳐 하인리히 힘러의 개인참모로 일했던 보이르슈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후인 1939년 9월부터 10월에 걸쳐 폴란드령이었던 서 프로이센에서 아인자츠그루펜을 지휘해 유대계 주민과 반독주의자를 총살했다. 1940년 4월부터 1944년 2월까지 엘베의 친위대 및 경찰고급지도자를 역임한 보이르슈는 패전까지 힘러의 참모로 일했다.
5. 전후 재판과 행적[편집]
1945년에 영국군에 체포되어 1948년 재판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은 보이르슈는 1952년에 석방되었다가 1957년에 장검의 밤 사건 관련 혐의로 다시 재판에 세워졌지만 1960년에 석방되어 1984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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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의 폴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