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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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우동측
禹東測 | Wu Dong Cheuk


파일:우동측.jpg

출생
1942년 8월 8일
평안남도 평원군
사망
(미상) [1]
학력
김일성종합대학 (철학 / 학사)
최근 계급
대장
소속 정당

파일:조선로동당 한글.png


1. 개요
2. 생애
3. 경력



1. 개요[편집]


북한군인이자 정치인. 계급은 대장이다.


2. 생애[편집]


1942년 8월 8일, 일제강점기에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났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후, 철학전문가 자격을 받았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지도원과 부과장, 국가안전보위부 국장과 부부장을 지냈다. 2003년 8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이 시점에 이미 남한 언론에 보위부 수석 부부장으로 언급되는 등 김정일의 측근 중 한명으로 소개되었다. 2009년 3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12기 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김정은 후계구도가 준비되던 2009년 9월부터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으로 있었다. 2010년 9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월, 박정순 장의위원,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다.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영구차를 호위한 여덟 명 중 한 사람이었지만, 장례식 이후 몇 차례의 공식 행사를 제외하면 언론에 언급되지 않아 숙청설이 나돌았다. 북한의 한 소식통에 의하면 원래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김정일 사후 급증한 공식 행사 일정을 무리하게 소화하려고 하다가 뇌출혈로 전신마비가 와서 사실상 모든 공직에서 사퇴한 상황이라고 했다. 애초에 보위부 제1부부장 임명시에도 심장박동 보조기를 차고 다닐정도로 건강이 안좋았고, 류경 부부장이 실제 업무를 총괄한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3월 25일, 김정일의 사망 100일 기념 금수산태양궁전 참배가 마지막 공개활동이었으며 2012년 4월에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새로 국가안전보위부장으로 김원홍이 임명, 정치국 위원에 선출되면서 아마 이때 위에서 언급된 신병 문제로 교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후속 된 보도에서는 장성택 관련하여 숙청되었으며 자살했다는 보도도 있으나 현재까지 진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켄 고스의 경우에는 남한의 정보소식통을 인용하며, 우동측이 2009년부터 김정일의 지시로 김정은 승계에 방해가 될법한 북한 간부들을 감시, 조사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김정일이 죽은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김경희가 불쾌하게 여겨 우동측을 숙청하고 국가보위부를 장악하기 위해 김원홍을 임명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만약에 단순히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은퇴한 것이라면 사망 후에 북한에서 이를 발표했을 것이며, 만약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어찌어찌 연명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행사에 초대하거나 매체에서 언급은 해줄 법도 한데 일언반구도 없고 매체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서는 뭔가 불미스러운 일로 해임된 것이 맞는 것으로 추정된다.

3. 경력[편집]


임기시작
임기종료
비고
12기 국방위원회 위원
2009년 4월 9일
2012년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12기 1차 회의에서 선출
최고인민회의 12기 5차 회의에서 소환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2009년 9월
2012년 4월 11일?

조선로동당 6기 정치국 후보위원
2010년 9월 28일
2012년 4월 11일
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거
4차 당대표자회에서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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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3년 12월 13일 장성택 숙청 이후 나온 보도에 따르면 이미 숙청당하고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여겨진다.# 숙청 시기는 2012년 4월 즈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