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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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국가로, 정식 명칭은 '우루과이 동방 공화국(República Oriental del Uruguay)'이다.
2023년 기준 인구는 341만 명[4] 이며 인구의 절반이 수도인 몬테비데오에 거주한다. 몬테비데오 외에는 푼타델에스테나 파이산두 등의 지방도시들도 있다.
국토 면적은 약 17만 6,200㎢으로, 남한의 1.7배 정도 되는 면적인데 이웃의 두 나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면적이 크고, 남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도 국토 면적이 비교적 넓다 보니 세계지도에서 보면 우루과이가 상대적으로 작아보인다. 남아메리카에서는 프랑스령 기아나[5] 와 수리남 다음으로 국토 면적이 작은 나라이다.
세계적인 축산국으로 질 좋은 소고기와 양고기가 많이 생산되는 국가다.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의 명성에 가려져서 그렇지, 우루과이 역시 세계적인 양모 생산국이다.
수도는 몬테비데오로 라틴어로 ‘나는 산을 본다(Monte Video)’라는 뜻이다.[6] 공용어로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스페인어 외에는 이웃 나라가 브라질이라 포르투갈어도 꽤 쓰인다.
대한민국에는 김영삼 前 대통령 집권 초기에 체결된 우루과이 라운드로 알려진 국가이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중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이며, 단순히 1인당 GDP가 높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으로 부정부패가 낮고 깨끗한 편에[7] 치안과 복지 수준도 괜찮아서 OECD에 가입되어있지 않지만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중 가장 선진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심지어 2023년 기준 민주주의 지수 역시 대한민국, 일본보다 훨씬 높은 8.91점(11위)을 기록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 있지만 전반적인 문화는 아르헨티나에 훨씬 가깝다. 우루과이 인구 자체가 아르헨티나와의 접경 쪽에 몰려 있고 우루과이 수도권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도권과 같은 경제권, 문화권으로 연속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8] 브라질과의 접경 쪽은 사람이 거의 살고 있지 않은 밀림 지대이다. 사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는 딱히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구별되지 않았었다. 국민 정서도 아르헨티나에 우호적인 반면, 브라질에는 적대적이다. 그 이유는 브라질 제국이 스페인에서 막 독립한 시스플라티나(現 우루과이)를 집어먹고 자국의 한 주로 만들어버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웃 아르헨티나와 더불어 백인이 주류인 라틴아메리카 국가이다. 원래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구가 많지 않아서 식민지 개척 이후 격렬한 저항에도 지속적으로 내륙으로 밀려난데다가 1831년 초대 대통령의 조카가 차루아 인디언 부족원들을 초대해 놓고서 이들을 학살한 사건으로 결정타를 맞았다.[9] 그리고 독립국으로 독립한 이후에 옆 나라인 아르헨티나와 아르헨티나 건너 편 나라 칠레처럼 유럽 출신 백인들을 받는 백인 중심의 이민 정책을 펼치기도 했었다. 그나마 20세기 들어서 원주민 인디언들의 문화를 복원하려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현재로써는 늦은 상황이다. 우루과이 총 인구 가운데서 원주민 조상을 가지고 있는 인구는 3% 내외 정도의 수준이다.[10] 그래도 원주민의 혈통은 사람들에게 섞여 있는데 단지 정체성이 백인일 뿐으로 가우초라 부르는 사람들이 이들의 조상이다.
이웃 나라인 브라질은 날씨가 덥고 치안이 위험한 것과 달리, 우루과이는 날씨가 시원하고 치안도 안전하다.[11] 우루과이인들은 브라질 하면 덥고 벌레 많고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동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우루과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대척점으로, 서울특별시에서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까지의 직선 거리[12] 는 무려 19,604km에 이른다. 이는 지구 둘레의 거의 절반으로, 미국 대륙을 세 번 반이나 횡단해야 되는 거리에 해당한다. 또한 북극점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13]
2. 국가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정식 국호는 우루과이 동방 공화국(República Oriental del Uruguay)이다.
우루과이는 이 나라 서부 국경을 이루는 우루과이 강에서 따온 이름인데 스페인인들이 파라과이 일대를 일컫는 말인 과라니(Guarani)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는 과라니어에서 따온 것인데 새의 강, 뱀의 강 등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동방에 별다른 뜻은 없고 우루과이 강 동쪽에 있어서[14] 이런 이름이 붙었다. 요컨대 원래는 '우루과이 동방'이 이름이고 '공화국'이 국체를 나타내는 수식어였는데 어느새인가 '우루과이'가 이름이 되고 '동방 공화국'이 국체를 나타내는 정체불명의 수식어가 된 것.
2.2. 국기[편집]
우루과이의 국기는 1830년에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의 독립에 크게 기여해 준 일이 있어서 우루과이의 국기도 아르헨티나의 국기와 거의 비슷하게 흰색과 하늘색, 5월의 태양[15] 을 사용했다.그리하여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별명은 La Celeste (하늘색)이다. 우루과이 축구팀의 유니폼부터 하늘색이다.
다만 우루과이의 국기는 아르헨티나의 국기와 구분하기 위해 마치 성조기처럼 5월의 태양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은 뒤 흰색 줄과 파란색 줄을 연속으로 넣는 방식을 채택했다. 줄이 총 9개인데 브라질로부터 독립을 선포했을 당시 우루과이를 구성하던 9개 주를 상징한다.
위의 두개의 깃발은 우루과이에서 지정한 정부기관용 깃발들이다. 보통의 경우 정부기관용 깃발은 민간용 깃발에 국장이 추가된 형태이나, 위의 두 깃발은 우루과이의 민간용 깃발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것은 우루과이 정부기관용 깃발의 특수한 기원에 의한 것인데, 첫번째 깃발은 우루과이 독립영웅 호세 아르티가스를 기리기 위해, 두번째 깃발은 33인의 망명정부 요인들을 기리기 위해 각각 정부기관용 깃발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루과이 정부기관은 여건이 될 경우 세개의 국기들을 게양해야 한다.
2.3. 국가[편집]
국가는 Himno Nacional de Uruguay(우루과이의 국가)이며 <동방인들이여,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스페인어: Orientales, la patria o la tumba)로 불리기도 한다. 프란시스코 아쿠냐 데 피게로아[16] (Francisco Acuña de Figueroa)가 작사하고 프란시스코 호세 데발리(Francisco José Debali)와 페르난도 키하노(Fernando Quijano)가 작곡했다. 전주가 이탈리아의 국가 마멜리 찬가보다 더 길며 그 길이가 자그마치 55초이다.[17]
한국어 해석
오리지널 관현악 합창판
월드컵에서 사용되는 버전
TV에서 송출된 버전
한국어 가사는 여기서 볼 수 있다.
3. 지리[편집]
동북쪽의 브라질, 서남쪽의 아르헨티나 사이에 위치해 있다. 남쪽으로는 남대서양에 접해 있고, 남대서양을 건너면 아프리카 대륙이 나온다. 직접 국경을 접하지는 않았지만 파라과이도 주변국이라고 볼 수 있다. '우루과이 동방 공화국'이라는 정식 명칭의 '동방'이 가리키듯 이 국가는 우루과이 강 동쪽에 위치해 있다.
뉴질랜드, 레소토, 에스와티니와 더불어 국토 전체가 남회귀선보다 남쪽에 있는 단 4개의 국가 중 하나이다.
또한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루과이는 대한민국의 대척점으로, 지구상의 모든 지역을 통틀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나라이다. 이론상으로 대한민국에서 수직으로 계속 땅을 파고 내려가면 지구에서 대한민국의 정확히 반대편 지점에 위치한 우루과이 쯤에서 나오게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한민국 영토에서 우루과이 육지와 대척점을 이루는 곳은 전라남도 진도군, 신안군 서쪽 지역과 제주도로 우루과이 동남부 지방과 대척점을 이루는데, 진도군과 신안군은 우루과이 동남부 해안 지방과 대척점이고 제주도는 그보다 북쪽인 브라질과의 국경 지대인 미림 호 일대와 대척점이다. 그 밖의 지역은 남부 지방이라도 우루과이 영토 안이 아닌, 우루과이 동쪽 앞바다가 대척점이다. 사실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육지와 육지가 서로 대척점을 이루는 곳은 많지 않다. 또한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의 대척점은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의 동남쪽 해상 400km 지점이자 아르헨티나의 동쪽 해안 도시인 마르델플라타의 동북쪽 해상 400km 지점인데, 이곳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안데스 산맥 등 산악 지대가 있는 인근 스페인어권 남아메리카 백인 국가인 아르헨티나, 칠레와 달리 우루과이는 평지만 있고 산이 없다. 국토의 대부분이 평야와 비옥한 해안 저지대, 낮은 구릉 지대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이 514m로 사실상 다른 나라로 따지면 언덕 수준의 산이다. 하천으로는 라플라타 강, 우루과이 강, 라구나 메린 강, 네그로 강등이 주요 하천이며 국토 내부에 흐르는 주요 하천은 네그로 강이다. 남서쪽으로는 우루과이의 서쪽 국경을 이루는 우루과이 강 하구의 라플라타 강이 있다.
우루과이의 해안선은 660km로 국토의 남부가 대부분 해안에 접해있다. 대서양 연안을 따라 여러 석호가 발견된다.
3.1. 기후[편집]
남반구이므로 대한민국과 계절이 반대라서, 6~8월이 겨울이고 12~2월이 여름이다.
기후는 온난 습윤 기후이며, 더운 온난 습윤 기후(Cfa)로 아열대기후를 띈다. 대서양 연안의 일부 지역과 일부 고지대에서만 서안 해양성 기후(Cfb)를 보인다. 기온은 대체로 제주도보다 따뜻하고, 중국 화남 지방이나 일본 규슈와 비슷하다.
사계절이 있고 겨울은 온화하고 여름은 더운 편이다.[18] 여름은 12월부터 3월까지, 겨울은 6월부터 9월까지이다. 계절적 변화는 뚜렷하지만 극단적인 온도 변화는 드물다. 여름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수그러지며, 겨울 역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따듯한 편, 겨울 평균 기온은 13℃ 정도로 대한민국의 10월 하순 정도이며, 대체로 삼한사온을 보여 최저 기온이 0℃까지 떨어졌다 낮에는 최고 기온이 25℃까지 치솟는 등 대한민국보다 온난하다. 여름 평균 기온은 24℃ 정도로 대한민국에 비하면 극단적으로 덥지 않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간혹 40℃ 이상으로 치솟기도 한다.
여름에 열대야는 거의 없고, 대신 건조하지도 않아서 비도 자주 내린다. 강수량이 풍부하여 높은 습도와 안개는 일반적이다. 매년 겨울에는 서리가 내리고, 진눈깨비와 우박과 같은 기상현상은 자주 발생하나, 눈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수십 년에 한 번 꼴로 이상 기후 시 눈이 내리는 정도이다. 주위의 남대서양 바다가 뜨겁지 않아서 태풍은 없다. 전국적으로 기온과 강수량이 모두 상당히 균일하지만 남부로 갈수록 좀 더 평균 기온이 낮고 강수량이 조금 더 많아진다.
4. 역사[편집]
스페인의 아메리카 라플라타 강 유역 식민지화 이전 투피-과라니계의 차루아족과 차니족 등의 아메리카 원주민 종족들이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면서 살던 지역이었다. 그러다가 스페인이 이 지역을 식민지로 삼았고, 차루아족들은 스페인군에 거세게 저항하며 맞섰지만 쪽수부터 후달려서 내륙지방으로 계속해서 밀려나갔다.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나 포르투갈의 식민지인 브라질과 접경 지역이라 포르투갈이 많이 집적거리며 시비를 걸어오기도 했던 지역이다. 스페인의 7년 전쟁으로 잠깐 포르투갈이 점령했었지만 그 후 스페인이 되찾아 계속 스페인의 식민지로 유지되었다.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스페인의 지배가 무너지면서 우루과이 역시 지금의 아르헨티나인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의 일원으로 독립하였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연합주 정부와 갈등을 빚던 와중 1816년 포르투갈의 침공으로 강제 합병되었다. 이후 1822년 브라질이 독립하면서 브라질 제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브라질의 시스플라티나[19] 주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언어와 역사, 문화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과는 판이하게 달랐는지라 브라질의 지배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이 줄기차게 일어났으며 이 일대는 독립을 요구하는 우루과이 지역의 스페인계 백인 반란군과 이를 억누르려는 브라질군과의 충돌이 일어나면서 사실상 내전 상태로 이어졌다.
1825년 우루과이의 수복을 노리는 아르헨티나로부터 지원을 받은 우루과이 독립운동가들이 시스플라티나의 아르헨티나 재편입을 선포했고, 이에 분노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에게 선전포고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결국 1828년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이 사실상 브라질의 패전으로 끝나면서 우루과이는 브라질로부터 독립을 이뤄냈다. 그래서인지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를 자국의 은인으로 여기며 양국은 영구혈맹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 양 도시 모두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계 이민자들이 주류였기에 비슷한 문화가 형성되었다.[20] Rioplatense 지방에 속하는 유일한 두 나라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이기때문에 사용하는 방언 역시 리오플라텐세 스페인어[21] 로 동일하다.
1849년에는 우루과이 최초의 대학인 공화국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알고 보면 포르투갈의 식민지의 식민지였던 해괴한 이력을 가진 나라가 우루과이다. 그런즉 우루과이는 포르투갈의 2차 식민지였고 포르투갈과 우루과이 사이에는 브라질이 있었다. 정확히는 포르투갈 왕실이 피신한 포르투갈령 브라질 제국의 땅이었던 것.[22] 그래서 리오플라텐세 스페인어 외에도 Portuñol (포르투뇰)이라는 포르투갈어-스페인어 크레올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1843년부터 1851년까지는 초대 대통령 프룩투오소 리베라와 2대 대통령 마누엘 오리베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 리베라를 따르는 파는 콜로라도당(적색당), 오리베를 따르는 파는 블랑코당(백색당: 국민당의 전신)이 되었으며, 콜로라도당이 승리해 오리베는 한동안 망명해야 했다. 콜로라도당은 이후 1세기 가까이 우루과이 정치를 지배하였으며, 이 두 당은 지금까지도 우루과이의 원내정당으로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하튼 20세기 초반에 농업과 축산업 등 1차 산업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해 옆나라인 아르헨티나와 함께 남미에서 경제적으로 잘 사는 국가로 분류되기도 했었고, 제1차 세계 대전때는 중립을 지켰다. 그러나 1930년대에 세계 대공황으로 한바탕 휘청거렸으며[23] 제2차 세계 대전에는 초기엔 중립을 고수했다가[24] 전세가 완전히 기운 1945년 2월에야 연합군에 참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1940년 독일 해군의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인 그라프 쉬페가 남대서양에서 영국 해군과 교전을 벌인 후 몬테비데오 항에 피항한 적이 있다. 이 때 그라프 쉬페를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독일, 그라프 쉬페를 몬테비데오에 묶어두어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영국, 그리고 중립 노선을 고수하는 우루과이 간의 치열한 외교전이 진행되었다. 결국 그라프 쉬페는 자침, 함장인 랑스도르프는 자살했고 승조원들은 우루과이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억류되었다.
1954년부터 1967년까지는 대통령제를 없애고 스위스의 연방평의회[25] 를 본떠 9명으로 '정부 국가평의회' 제도를 실시해 직접 민주제와 근접한 정치 체제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결속력 약화와 여러가지 단점들이 초래되면서[26] 1967년에 다시 도로 대통령제로 개헌하고 말았다.
1973년~1985년의 친미 군부 독재나 그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민주 투쟁, 독립을 하기 위해 망명정부를 세운 요인의 숫자까지 33명인 등 대한민국과 공통점이 많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도 5년 단임제다.[27] 게다가 한국의 맨 반대편에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여수시에서 직선으로 파고들어가면 몬데비데오의 앞바다가 나온다. 심지어 컬러 텔레비전 방송 시작한 시기도 1980년 12월로 한국이랑 동갑이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차이가 많이 나게 되었는데 1990년대 후반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경제가 막장화되면서 같이 막장테크를 탔고 거기에다가 2001년에 구제역까지 돌면서 우루과이산 축산물의 수출이 크게 격감하는 바람에 우루과이의 경제도 개판이 되었다. 그로 인해서 2004년 대선에서 바스케스가 당선되면서 우루과이 역사상 최초로 좌파가 집권했고 그 동안 소흘히 했었던 복지를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이후 2000년대 세계 경제 호황으로 우루과이도 경제도 호황세를 누렸다.
2009년에는 호세 무히카가 당선되었다. 당선 후인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대통령인 호세 무히카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대통령 재임기간이던 2012년 겨울에 추위가 오자 대통령 관저를 개방해 노숙자들을 관저에서 묵게 하는 파격적인 면모를 보였다. 대통령궁은 인민의 재산이라면서. 2013년 들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뿐만 아니라 마약류의 일종인 대마초도 합법화하여 전세계 많은 나라들이 우루과이의 대마초관련 정책에 관심을 가져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많다.
한편 2014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광역전선의 유리함이 예측되었으나 선거 중반 들어서 예상외로 국민당 후보가 치고올라오면서 접전이 에측되고 있는 중. 10월 26일 선거에서 광역전선(좌파)의 바스케스가 49.5%, 국민당의 라카예가 32%를 득표하여 11월 30일 결선투표를 진행하였고 타바레 바스케스가 당선되어 홀리오 산기네티 이후 민주화 시대의 2번째로 두 번 임기를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며, 현재 전 대통령인 호세 무히카는 5년의 정권을 유지하여 퇴임 직후 같은 당인 타바레 바스케스에게 이양하여 지금도 광역전선이 여당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아서 지지율이 30%대로 크게 떨어져서 집권 1기때에 비해서 인기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허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우파로 정권이 교체된 후에도 경제나 정치상황이 영 메롱인지라 2019년 대선에서도 광역전선의 정권재창출이 예상되고 있었는데, 야권의 결집으로 1차 대선에서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2차 결선에서 야권의 결집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 들어맞아 1% 차이로 루이스 라카예 포우 국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다만 1차 투표에서는 마르티네스 후보가 40.4%, 세 야권 후보가 54.0%를 득표해 10%p차 이상으로 앞섰기 때문에 라카예 포우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긴 했으나, 실제 결선에서는 여권 쪽 역시 결집하면서 라카예 포우 50% 대 마르티네스 49%라는 근소한 차이의 결과가 나왔다.
5. 정치와 군사[편집]
정치적으로는 인접대국이면서 같은 백인이 주류에 같은 언어권 국가인 아르헨티나의 영향이 크다. 그렇다고 브라질의 영향이 적은 것도 아니기는 하다.
정확히 얘기하면 옆의 아르헨티나와 똑같은 느낌으로 아르헨티나의 미니 버젼 느낌이 나며 브라질은 국경을 넘는 순간 확 달라지는 정도의 큰 차이를 보인다. 표지판의 언어도 포르투갈어에서 스페인어로 바뀔 정도. 물론 남부 브라질의 경우는 우루과이처럼 백인이 대부분인데다가 아열대 팜파스라 그렇게 크게 차이는 안나지만 좀더 북쪽은 진짜 다르다. 정확히는 브라질 쪽이 상대적으로 너저분하고 시끄러운 느낌이고 우루과이는 브라질에 비하면 깔끔하고 조용하다.
# 이코노미스트 선정 2013년 최고의 국가로 선정됐다. 민주주의 지수 17위(2013), 언론자유지수 23위(2015), 부패인식지수 21위(2014)로 소득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선진국에 준하는 안정도를 갖추고 있다. 평균적으로 프랑스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편 우루과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나라 중 하나로 여겨진다. LGBT 커뮤니티 수용을 포함하여 개인의 권리, 관용 및 포용 문제에 대한 글로벌 척도에서 상위를 차지한다. 또한 대마초, 동성결혼, 매춘, 낙태를 합법화했다. 국제 노동조합 연맹에 따르면 우루과이는 "기본적인 노동권, 특히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 파업권"을 존중하는 면에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선진적인 국가라고 한다. 이 높은 수준의 노조화 덕분에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도 가져왔다.[28]
군사력은 약하다. 총 병력은 2만 5천명인데 병역이 모병제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징병제 국가보다도 전 국민 중에서 군인의 비율이 높다. 그러나 2차대전기에 개발된 M24 채피 전차를 2019년까지 운용하는 등 병기의 노후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 옛날에 브라질과 싸운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딱히 쳐들어올 나라도 없어서 신경쓰는 건 아니다.[29]
경제적으로는 남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국가들 중에선 매우 안정된 축에 속하는 나라이다. 실제로 소득 지니계수의 경우 0.45로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0.51인 칠레[30] 보다는 양호한 편이다. 환경도 좋고 안정적인 경제상황에 복지도 잘 되어 있어서[31] 많은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국가 중 하나다.# 다만 예전에는 정말로 치안이 좋은 편이었는데 2010년대 들어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 등 타 라틴아메리카 국가나 서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점차적으로 나빠지고 있다. 그래도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칠레와 함께 가장 좋은 편인데, 중남미 전체에 퍼져있는 마약 카르텔이 이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치안이 좋을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다소 순탄치 않은 편인데 1980년대 초중반에 경제난을 겪었고, 1990년대 중/후반 들어 아르헨티나가 경제위기의 여파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면서 우루과이 경제도 한동안 타격을 입었다. 원래 우루과이는 오랜기간[32] 콜로라도당-국민당의 양당제였는데 좌파가 장기집권하게 되는 체제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도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국가들보다는 상태가 월등히 나은 상황이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중에서 미국이 사주한 쿠데타를 당하지 않은 국가는 이 나라 외엔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멕시코 정도 밖에 없다. 이 중 베네수엘라가 정치 불안으로 주저앉은 지금 멕시코, 우루과이, 칠레, 코스타리카 정도만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정권이 안정된 나라들이다.
동화에서 온 것 같은 인상을 줬던 전직 대통령 호세 무히카가 집권했던 나라로 굉장히 진보적인 정책[33] 을 추진하였다. 이때 선진국에서조차 하기 힘든 진보적인 연설을 하여 전세계에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전문
참고로 2019년 한창 한국에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논의가 활발했을때 대통령 중심제국가에는 맞지 않는 제도라는 비판이
1922년에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고 1994년 대통령 선거때까지는 독특한 선거제도를 지니고 있었다. 각 정당에서 따로 경선을 치르지 않은 채로 후보를 내고, 유권자들은 후보자에게 투표를 하지만 가장 표를 가장 많이 얻은 정당에서 1위를 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1위 후보와 가장 많은표를 얻은 정당간의 불일치가 여러번 일어나고 파벌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자, 1999년 대통령 선거때부터는 각 정당별로 하나의 후보씩만 내는 방식의 결선투표제로 변경되었다.
5.1. 정당[편집]
- 광역전선(Frente Amplio)
- 국민당(Partido Nacional)
- 콜로라도당(Partido Colorado)
- 열린의회당(Cabildo Abierto)[34]
- 민중당(Partido de la Gente)[35]
- 독립당(Partido Independiente)
5.2. 역대 대통령[편집]
5.3. 군대[편집]
자세한 내용은 우루과이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경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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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교육[편집]
우루과이 최고의 대학은 공화국 대학이다. 학년은 3월에 시작해서 11월이나 12월에 끝나는데, 이는 남반구 특성상 크리스마스가 여름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국립대학교 2개, 사립대학교 4개로 고작 6개밖에 없다. 대학 적다는 뉴질랜드보다도 2개 더 적은 셈.
우루과이의 교육과정은 4세부터 14년간 세속적, 자유적, 의무적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이 제도는 유아(3~5세), 초등(6~11세), 기초 중등(12~14세), 상위 중등(15~17세), 고등교육(18세 이상)의 6단계로 나뉜다. 공교육은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문화부, 조기 중등교육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국가공교육청,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공화국 대학 등 3개 기관이 담당한다.
8. 문화[편집]
매년 2월[64] 한 달 이상 지속된 카니발(Carnival)이 열리는데 브라질은 형형색색 인것과는 달리 노예로 온 흑인들의 문화를 백인 우루과이인들이 받아들여 칸돔베(Candombe)라는 아프리카식 드럼을 여러 명의 남자들이 치면서 퍼레이드를 형성한다. 카니발 문화 중의 하나는 무르가(Murga)라는 아주 독특한 문화다. 전세계의 이와 비슷한 문화는 스페인 카디스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다. 정치,사회, 문화에 관련된 사항을 풍자/희화화하는 예술장르라는 데 있어서 우리나라의 봉산탈춤 등의 문화와 흡사하다. 마치 삐에로처럼 분장한 사람들이 등장하여 테마를 정하여 사회 풍자하는 시적가사를 아주 밝고 경쾌한 멜로디로 부르는 것. 한 팀당 1시간 정도씩 부르는데, 그 가사와 분장/테마등의 무대 완성도로 경합을 벌인다.
우루과이의 목동인 가우초도[65] 특이한 문화중의 하나다. 당연히 가우초들의 예술활동도 활발한데 스페인 이민자들 특히 바스크 이민자들의 영향도 많이 받아서 특유 검정색 베레모를 쓰는 사람도 많다. 가우초들이 즉흥적으로 시적가사를 만들어 상황묘사를 하는 식의 노래가 유명하기도 하다.
2013년 12월 10일 우루과이 의회에서는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이 세계 최초로 통과되었다. 2013년 12월 11일 기준 호세 무히카 대통령이 서명하면 공식 발효된다고 한다.
우루과이의 제헌절은 한국보다 하루 늦은 7월 18일로 공휴일이다. 공화국의 날은 한국의 개천절보다 이틀 늦은 10월 5일. 게다가 12월 25일을 쉬기는 하지만 성탄절이 아니라 가족의 날이라서 쉰다.
우루과이에는 9월에 공휴일이 아예 없고 2월과 3월은 해에 따라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우루과이에는 도시철도(지하철)와 대학교 등록금이 없다.
8.1. 언어[편집]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다. 스페인어 외에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포르투갈어가 널리 쓰인다.
우루과이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아르헨티나와 관련이 많은 편이라서 발음, 어휘에서 아르헨티나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어, 독일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66] . 게다가 어휘에서 아르헨티나 쪽 표현과 비슷해 알아듣기 힘든 방언으로 악명높다.
우루과이는 브라질과 접해 있어서 포르투갈어가 주요 외국어이다. 포르투갈어는 브라질 국경 근처의 북부 지역에서 우루과이 인구의 3%에서 15% 사이가 모국어로 사용한다. 국경지역에서는 포르투뇰이라는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가 섞인 혼합언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그 외 독일인, 이탈리아인 혈통 이민자들이 상당수라 독일어와 이탈리아어가 가정에서 말해지기도 하고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도 많다. 우루과이에서 쓰이는 포르투갈어의 경우에는 브라질과 포르투갈과는 다른 경우가 있다.
남미국가들이 그러듯이 미국이 영향력이 있는곳이라 그런지 영어도 주요외국어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TOEFL에서 라틴아메리카 2위를 차지했다. 영어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1세기 들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영어 구사자들이 크게 증가했다.
8.2. 종교[편집]
[67]
종교는 40%가 가톨릭을 믿지만 무교가 40%를 차지하며 남미에서 보기 드물게 무신론이 꽤 있다. 사회주의 사상이 제일 많이 퍼진 곳이 이 곳이며 스페인 내전에서 패배한 스페인의 공산당원들이 대거 이민 온것을 시작으로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 당시에는 피노체트의 핍박을 피해 칠레 공산당원들도 많이 망명왔고 이웃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도 공산주의를 탄압해 공산당원들이 대거 이웃나라인 이 곳으로 망명 왔다. 이러한 사회주의 영향으로 30%나 되는 무신론이 절반 이상의 가톨릭을 압도하고 세속화된 것. 실제로 1990년대까진 무려 공산주의 반군 단체인 투파마로스까지 활동하기도 했다.
개신교 신자 비율은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상당히 적은 편이고,[68] 목회자 수가 절대부족해 이웃 아르헨티나의 목회자들을 빌려온다.
8.3. 인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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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유럽계 우루과이인들은 19세기와 20세기에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의 후손들이다. 초기 정착민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이주해왔다. 전체적으로 민족 구성은 브라질 남부(히우그란지두술주, 산타카타리나, 파라나주)뿐만 아니라 이웃한 아르헨티나의 주(부에노스 아이레스, 엔트레리오스)들과 유사하다. 또한 신규 합법 이민자들의 50%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출신이다. 2008년에 통과된 이민법은 이민자들에게 매달 650달러의 수입을 증명하는 조건으로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권리와 기회를 제공한다.
우루과이의 인구 증가율은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보다 훨씬 낮다. 중위연령은 35.3세로 낮은 출산율, 높은 기대수명, 젊은 층의 상대적으로 높은 이민률로 인해 세계 평균보다 높다. 인구의 4분의 1은 15세 미만이고 6분의 1은 60세 이상이다. 2017년 우루과이의 평균 합계출산율(TFR)은 여성 1인당 1.70명으로 대체율 2.1명을 밑돌았으며, 1882년 여성 1인당 5.76명의 최고 출산율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8.4. 이민[편집]
우루과이는 인구가 증가해도 속도가 매우 느리다.[69] 다만 아르헨티나인 중산층 가운데서 우루과이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많기 때문에 휴가철만 되면 체감 인구밀도가 이보다 늘어나는 경향은 있다.
그래서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우루과이에 살 의지만 보이면 영주권을 준다. 즉 전세든 월세든 살 집이 있는 상태라면 1년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1년 영주권을 받고 6개월 이상만 우루과이에 머물면 장기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5년 동안 매년 6개월 이상만 우루과이에 거주하면 시민권 신청자격을 준다. 물론 갖추어야 할 서류는 많다. 아포스티유(apostille)를 받아 서류를 가지고 가는 게 좋다. 이민 신청은 우루과이에서만 가능하다는 점도 참고할 것.
또 참고해야 할 점은 우루과이는 대학교까지 무상 교육이다. 공립은 초, 중등 교육에서 대학까지 모두 무료이나 사립은 매년 학비가 수천만원 하는 미국 학교, 영국 학교가 있고. 프랑스 학교, 독일 학교가 있는데 그나마 프랑스 학교, 독일 학교가 초중등의 경우 미국 학교, 영국 학교의 절반정도 학비가 든다.
이민오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지에서 온다. 남미에서 평가는 치안이나 교육, 복지 등 여러 제반사항이 다른 남미 국가들과 비교가 안될만큼 뛰어나고[70] 봉급수준도 그럭저럭 좋은 편이지만[71] 몬테비데오를 제외하면 인구가 적어서 사람들이 잘 돌아다니지 않는데다 몬테비데오와 주요 관광지를 제외하면 밤문화도 별로 발달하지 않아서 평화롭기는 한데 오래 머물러 살기에는 정말 정말 심심하다고 다들 말한다. 이 정도면 거의 북유럽에 버금갈 정도.[72] 뭐 그래도 카라카스나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 시우다드후아레스, 몬테레이, 산 페드로 술라처럼 총과 마약이 대놓고 돌아다니는 스릴을 매일같이 느끼는 것보다는 정말 훨씬 낫긴 하다.
한국 교민은 2015년 기준 수십명 정도 거주하고 있고, 최근에는 선박 통행이 많아진데다 통상 관계로 한국인을 좀 더 많이 접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인의 경우 원양어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점령 문제로 영국과 얽힌 면이 있어 한국 원양어선이 포클랜드로 입항하는 경우 아르헨티나 입항에 문제가 생기는데다 아르헨티나 특유의 무지막지한 경제수역 설정이나 기타 관련 사항으로 대다수의 한국 원양어선은 조업해역에서 가까운 아르헨티나가 아닌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를 모항으로 두는 경우들이 많다고 한다. 근처의 남서대서양 공해상은 아직 수산기구가 들어서지 않아 어업에 있어 각종 제약에서 타 해역보다 자유로운 관계로 한국, 중국 어선들의 조업이 많다.
어기가 끝나거나 어획물을 하역하기 위해 입항하는 시즌이 되면 몬테비데오가 한국과 중국인 선원들로 북적인다.[73] 카지노 주변에 한국 식당이 4곳 있으며 우루과이의 물가가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편이라 아무 생각없이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어마어마한 가격이 나온다.
최근 들어 우루과이도 시민권 취득을 제한하고 있어 시민권 취득은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8.5. 관광[편집]
관광 목적의 입국인 경우, 한국인은 무비자로 90일간 체류 가능하다. 따뜻한 날씨에 해수욕장이 오픈하고, 크리스마스와 카니발이 있는 11~2월이 성수기이다. 다만 관광 면에서도 물가가 싸지 않고[74] 볼거리나 유명관광지들도 거의 없어[75]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의 연결거점 정도로 잠시 스쳐지나가는 신세이며 언어 역시 스페인어를 모르면 상당히 힘들다.
우루과이는 중남미 지역 국가 중 치안이 비교적 안전한 나라 중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중남미 국가 가운데 2022년 12월 기준으로 여행유의 단계인 국가는 우루과이가 유일하다. 그러나 몬테비데오 구시가지 및 일부 외곽지역을 방문할 경우 신변안전을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청소년 및 부랑자들에 의한 소매치기, 노상 강탈, 강도 사건이 증가하고 있으며 구시가지(Ciudad Vieja) 지역에서 한국인 여행객의 지갑 및 카메라 등 소매치기를 당한 사례가 있다. 한국 대사관 측에서도 한인 대상 범죄를 현지 치안기관에 문의하여 협조를 당부하고 있으나 잡히는 경우가 별로 없고 설령 검거하였어도 청소년 범죄가 많아 형식적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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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음식[편집]
음식은 대체적으로 아르헨티나 요리와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미국 바비큐의 원조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쇠고기 숯불구이인 아사도(Asado)를 즐겨먹는데 치미추리(Chimichurri)[76] 소스와 함께 먹는다. 우루과이는 세계 최대 규모를 가진 양질의 고기 생산국 중 하나이기 때문에 육류가 주요 음식이다. 아르헨티나와 비슷하게 카타르 월드컵 당시 선수들한테 먹일 소고기 1.8톤을 카타르로 따로 가져가 아사도를 제공해줬다고 한다. 옆나라 아르헨티나와 함께 소고기 값이 싸기로 유명한지 이 나라에 여행 와서 소고기를 원없이 즐겨 먹었다는 한국 관광객들의 여행담도 꽤 많이 나올 정도다. 고기가 많으니 당연히 소시지, 초리조같은 육가공품도 흘러 넘치고 이걸 구워먹거나 핫도그처럼 빵에 끼워 먹는다. 목축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유제품의 소비량도 많다.
아르헨티나와의 식문화 차이를 서술하자면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 아르헨티나와 달리 우루과이에서는 해산물을 즐겨 먹는 편이다.[77]
미국의 국민 음식 햄버거와 조리법과 모양새가 비슷한 음식인 치비토(Chivito)가 있다. 얇게 구운 쇠고기, 양상추, 토마토, 계란 프라이, 햄, 올리브 등을 포함하고 프렌치 프라이와 함께 제공되는 샌드위치로 햄버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햄버거는 다진 고기를 뭉쳐서 불에 구워서 만드는데 비해 이 음식은 빵에 속에 들어갈 고기를 다져서 모양을 내지 않고 그대로 구워서 만드는 것이 차이점이다. 스페인 요리에서 기원한 남미식 파이 요리인 엠빠나다도 먹으며, 음식 가격도 여타 남미 국가들처럼 저렴하다. 그외 밀라네사, 팜플로나(Pamplona, 고기 속에 야채와 치즈 등을 채운 요리)등의 고기 요리를 자주 먹는다.
우루과이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스프레드 중 하나는 둘세데레체(우유를 캐러멜 상태로 만든 아르헨티나-우루과이의 전통 디저트. 둘세데레체라는 명칭은 '달콤한 우유'라는 뜻이다. 우유에 설탕을 넣고 오랫동안 가열하여 캐러멜 상태로 만든 음식으로서 갈색을 띤다.)이다. 이를 이용한 대표적인 과자는 알파호르(Alfajor)라고 불리는 과자인데 마카롱이랑 비슷한 과자이다. 둘세데레체로 채워지고 초콜릿이나 머랭으로 덮여있는 작은 케이크이다. 또 다른 디저트로는 파스타프롤라(Pastafrola, 버터로 만든 페이스트리, 모과 치즈, 구아바, 고구마 잼등으로 채워진 파이의 한 종류), 차하(Chajá, 머랭, 스펀지 케이크, 휘핑 크림, 복숭아와 딸기가 첨가된 케이크)를 먹는다.
소고기 구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이탈리아 요리가 주류이다. 피자와 파스타는 본토 정통식으로 만든 것들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다. 이탈리아인 혈통 우루과이인들이 워낙 많아 이들은 피자헛을 천박한 양키 음식으로 취급하고 눈길도 안 준다.
마테차를 정말 많이 마신다. 마테차 원료인 마테 산지가 이 나라와 가까운 이과수 일대이기 때문. 또한 우루과이 와인도 아르헨티나 말벡이나 칠레 쇼비뇽 같은 남미의 명품 와인 브랜드들 못지 않게 맛이나 품질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8.7. 문학[편집]
유명한 작가로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있다. 이 사람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사회 문제를 다뤄 라틴 아메리카 전체에 유명하다. 갈레아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수탈된 대지'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8.8. 음악[편집]
대중적으로는 락 계열의 음악을 많이 들으며 아르헨티나의 락 음악과 묶어서 Nacional Rock이라 하고 쿰비아(Cumbia)라는 남미 특유의 노래를 즐겨듣기도 한다. 이탈리아계 우루과이인들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의 음악이 유명하기도 하다.
가사 Ya tuve que ir obligado a misa, ya toqué en el piano "Para Elisa"
미사에 의무적으로 참석했었지. 엘리제를 위하여를 피아노로 연주한 적도 있어
ya aprendí a falsear mi sonrisa, ya caminé por la cornisa.
거짓 웃음을 짓는 법을 배웠고 아슬아슬한 절벽을 타기도 했지.
Ya cambié de lugar mi cama, ya hice comedia ya hice drama
잠자리를 옮겨본 적도 있고, 이런저런 희극도 비극도 겪어왔네.
fui concreto y me fui por las ramas, ya me hice el bueno y tuve mala fama.
대놓고 말한 적도 완곡하게 표현한 적도 있고 좋은 놈인 척도 해보고 나쁜 평판도 들어봤지
Ya fui ético, y fui errático, ya fui escéptico y fui fanático
도덕적으로, 변덕스럽게, 회의적으로, 열광적으로
ya fui abúlico, fui metódico, ya fui impúdico y fui caótico.
무관심하게 강박적으로 파렴치하게 무질서하게 행동해본 적도 있지
Ya leí Arthur Conan Doyle, ya me pasé de nafta a gas oil.
아서 코난 도일을 읽어본 적도 있고 가솔린에서 디젤로 갈아탔어
Ya leí a Bretón y a Moliere, ya dormí en colchon y en somier.
브르통[1]
과 몰리에르[2] 도 읽어봤고 매트리스에서도 스프링 침대에서도 자봤지.Ya me cambié el pelo de color, ya estuve en contra y estuve a favor
머리색을 바꿔본 일도 있고 찬성 편에도 반대 편에도 있어봤어.
lo que me daba placer ahora me da dolor, ya estuve al otro lado del mostrador.
한때 내게 쾌락이었던 것이 지금은 나에게 고통을 주네, 어제는 주인, 오늘은 손님이라는 입장으로 바꿔도 봤지.
Y oigo una voz que dice sin razón
근거도 없이 내게 말하는 목소리가 있네
Vos siempre cambiando, ya no cambiás más
넌 항상 변화해왔는데 이제 더이상 변하지 않는군
y yo estoy cada vez más igual
그리고 난 매일매일 그저 똑같은 사람이고.
Ya no se que hacer conmigo.
내 인생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Ya me ahogué en un vaso de agua , ya planté café en Nicaragua
한 컵의 물로도 질식도 해봤고, 니카라과에 커피를 재배하기도 했어.
ya me fui a probar suerte a USA, ya jugué a la ruleta rusa.
미국에서 내 운을 시험해보기도 했고, 러시안 룰렛도 해봤어.
Ya creí en los marcianos, ya fui ovo lacto vegetariano.
화성인도 믿어봤고 우유와 계란만 먹는 채식을 한 적도 있지
Sano, fui quieto y fui gitano, ya estuve tranqui y estuve hasta las manos.
제정신으로, 정착도 해봤고 방랑도 해보았네, 평온한 시간도, 정신없는 시간도 보내면서
Hice el curso de mitoligía pero de mi los dioses se reían.
신화 강의를 들었지만 신들은 날 비웃을 뿐이었네.
orfebrería lo salvé raspando y ritmología aqui la estoy aplicando.
금을 가공하며 입에 풀칠했고, 여기에선 리듬의 법칙을 제련하지
Ya probé, ya fumé, ya tomé, ya dejé, ya firmé, ya viajé, ya pegé.
나는 맛보고, 피우고, 취하고, 포기하고, 서명하고, 여행하고, 치고
Ya sufrí, ya eludí, ya huí, ya asumí, ya me fuí, ya volví, ya fingí, ya mentí.
번민하고, 회피하고, 도망치고, 단정하고, 떠났다가는, 돌아오고, 진실을 가장하고, 거짓도 말해봤지.
Y entre tantas falsedades muchas de mis mentiras ya son verdades
무수한 허위와 오류 속에서 내 거짓말의 대부분은 이윽고 진실이 되었네
hice fácil adversidades, y me compliqué en las nimiedades.
난 곧잘 적을 만들었고 사소한 것들을 복잡하게 만들어 왔어.
Y oigo una voz que dice con razón
마땅한 이유로 내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Vos siempre cambiando, ya no cambiás más
넌 항상 변화해왔는 데 더 이상 변하지 못하는군
y yo estoy cada vez más igual
그리고 난 갈수록 더 똑같아지고 있어.
Ya no se que hacer conmigo.
더 이상 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Ya me hice un lifting me puse un piercing, fui a ver al Dream Team y no hubo feeling
남의 차에 리프팅도 해보고, 피어싱도 해보고, 드림팀[4]
을 보러갔고, 아무런 느낌(feeling)도 없었어me tatué al Che en una nalga, arriba de mami para que no se salga.
체 게바라의 이름을 한 쪽 엉덩이에 새겼지, 지워지지 않도록 '엄마' 문신 위쪽에
Ya me reí y me importó un bledo de cosas y gente que ahora me dan miedo.
나는 웃었지, 그리고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이나 사람들에게 요만큼도 개의치 않아
Ayuné por causas al pedo, ya me empaché con pollo al spiedo.
별 이유없이 단식을 해보기도 하고, 전기 구이 닭을 먹고 체한 적도 있어.
Ya fui al psicólogo, fui al teólogo, fui al astrólogo, fui al enólogo
나는 심리학자, 신학자, 천문학자, 양조학자를 만나봤고
ya fui alcoholico y fui lambeta, ya fui anonimo y ya hice dieta.
알콜중독자도 되어보았고 아첨꾼도 되어보았지; 익명이었던 적도 있고 다이어트를 한 적도 있지
Ya lancé piedras y escupitajos, al lugar donde ahora trabajo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곳에 침을 밷고 돌을 던지곤 했다네
y mi legajo cuenta a destajo, que me porté bien y que armé relajo.
나에 대한 서류에는 내가 어떻게 선행을 했고 말썽을 피웠는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지
Y oigo una voz que dice sin razón
이유도 없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오네
Vos siempre cambiando, ya no cambiás más
넌 항상 변화해왔는데 이제 더 이상 변하지 않는군
y yo estoy cada vez más igual
그리고 난 매일매일 그저 똑같은 사람이고
Ya no se que hacer conmigo.
내 인생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없네.
Y oigo una voz que dice con razón
마땅한 사실을 알려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Vos siempre cambiando, ya no cambiás más
넌 언제나 변화하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정체된 인간이군
y yo estoy cada vez más igual
난 하루하루 조금씩 더 획일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Ya no se que hacer conmigo.
나 자신을 어찌 해야 할 지 알 수 없네.
El Cuarteto de Nos(우리들의 사중주)[78] 라는 락밴드가 유명하다. 이들은 2012년에 라틴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이들의 노래 Ya no se qué hacer conmigo의 뮤직비디오는 신묘한 타이포그래피로 인해 많은 디자인과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음악이 저 국기에 있는 태양에 비교된다. 여담으로 뮤비 맨 처음에 나오는 Ricardo "Riki" Musso(Riki)는 2007년에 앨범 "Bipolar(조울증)" 작업 중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충돌로 인해 탈퇴해 이후 작곡가 겸 개인 음악가로 활동중이다.
No te va gustar (넌 좋아하지 않을 거야)이라는 밴드의 음악도 들어볼만 하다. Chau, Tan lejos, Paranoia 등도 마찬가지다.
8.9. 축구[편집]
월드컵 첫 개최국이자 우승국으로,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무려 개최국 브라질을 꺾고 우승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마라카낭의 비극 참고. 이렇게 월드컵 통산 2회 우승국이다.
그러나 우루과이는 인구가 350만 정도로 적은 인구수로 인하여 1970년대부터 축구전력이 급격히 쇠락해서 1990년대에는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비실대며 오세아니아급까지 대추락했다. 1994년에는 볼리비아, 1998년에는 페루, 에콰도르에 밀려 본선에 못 갔을 정도. 이 때 2002년 한일월드컵 플레이오프에서 바로 이 호주를 만나 간신히 올라왔으며 이게 우루과이가 오랜만에 월드컵에 진출한 대회였다. 그 전 대회들만 해도 남아메리카 예선에서 광탈해버려 볼 수 없었다. 그리고 2006년 독일 월드컵 플레이오프에서도 역시 호주를 만났으나 이번엔 거스 히딩크라는 걸출한 감독을 만나 깨져버려서 광탈해 우루과이는 이 때 또다시 월드컵에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이 우루과이를 다시 부흥시키면서 과거의 명가는 다시 일어나고 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때 기운 차리고 옛 명성에 도전하며 4위를 기록하며 실력이 크게 올라갔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디에고 포를란, 디에고 루가노, 페르난도 무슬레라, 에딘손 카바니, 루이스 수아레스, 디에고 고딘, 로드리고 벤탄쿠르, 로날드 아라우호, 다르윈 누녜스, 페데리코 발베르데 등의 스타 플레이어들을 배출하며 축구 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확실히 되찾았다. 특히 언어가 통하는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우루과이 선수들이 꽤 많다. 2018년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전승을 찍은 뒤 16강에서 강팀 포르투갈을 무찌르고 8강에서 그 월드컵 우승팀 프랑스를 만나 8강에서 마감함으로서 더이상 약체가 아님을 확실히 인증했다. 역대 월드컵에서 결승문턱을 밟아본 나라중에 헝가리, 스웨덴, 체코 등 몇몇 나라들은 21세기 기준으로 이제는 우승후보 근처에도 못끼는 수준의 전력이고 특히나 헝가리는 월드컵 본선구경도 힘든 나라일 정도로 몰락했지만, 적어도 우루과이는 우승 2회를 찍은게 절대 허투가 아닌 수준높은 클래스라는것만은 확실히 증명하고 있는셈이다. 2022 월드컵에서는 가나의 물귀신 작전이 통했는지 우루과이가 16강 진출도 못 하고 탈락했다.[79]
자세한 내용은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으로.
FIFA 내부에서 우루과이 축구협회의 영향력은 꽤나 막강하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스페인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이들보다는 경제력도 약한편이어서 대부분의 우승국들만 못하지만 적어도 월드컵 우승을 해본 적이 없는 국가보다는 입김이 세다.[80] 또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같은 축구 최강국은 축구 외에도 다른 스포츠도 골고루 잘하는 편이지만 이쪽은 오로지 축구에 올인하는 성향이 강하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부터 4회 연속으로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그 전까진 대륙간 플레이오프는 커녕 남미예선에서 광탈해 볼 수 없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계속 본선에 못 올라왔다가 2001년 빅토르 푸아 감독 취임 후 오랜만에 전력이 회복된 것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 때는 호주를 꺾고 본선에 진출했으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 예선에서는 다시 만난 호주에게 이번엔 역으로 패하며[81] 탈락했다. 한편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는 코스타리카를 꺾고 진출했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82] 예선에서는 요르단을 꺾고 본선에 진출했다.
아무튼 인구 수 대비 실력은 최강급이다. 비슷한 인구수에 세계적인 스타가 계속 나오는 나라는 크로아티아가 있다.[83] 포르투갈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포르투갈과는 인구 수 차이가 꽤 크다.
브라질에게 우루과이 원정은 매우 부담스러운 경기다. 마라카낭의 비극도 그렇지만 몬테비데오 원정, 특히 우루과이의 심장인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에서의 공식전 승리는 2017년에야 처음으로 기록되었을 정도다. 그리고 국제 대회에서도 종종 브라질의 발목을 잡는다. 국민감정도 안 좋아 브라질과 대결은 우루과이판 한일전이 되는데 우루과이인 입장에선 번번히 브라질을 무찌르니 환호할 만하지만 덩치가 더 큰데도 깨져서 돌아오는 브라질 입장에선 속이 터진다. 반면 브라질의 라이벌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 상대로 승점이 쏠쏠하다. 이유인 즉슨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우루과이와 강 하나를 두고 마주볼 정도로 가까운데다 언어도 같은 스페인어를 쓰고 있어서 아르헨티나에게는 우루과이 원정이 사실상 홈경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루과이랑 아르헨티나는 외교관계가 좋은 편이라 브라질과의 경기처럼 응원이 심각할 정도로 과열되지도 않는다. 디에고 마라도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리오넬 메시 같은 아르헨티나의 슈퍼스타급 축구선수들이 우루과이에서 누리는 인기 또한 절대적이다.[8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 팀을 만나기만 하면 깨졌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선전했으나 막판에 결승골을 허락하여 0-1로 석패했으며 1999년 나이지리아 U-20 청소년축구도 전반 초반에 실수로 실점후 침대축구를 당하며 0-1로 패했으며 2003년 홈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의 평가전에서도 졌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선 기껏 리드해놓곤 루이스 수아레즈의 골로 역전당한 후 8강행에 실패했다. 그러나 2018년 파울루 벤투 현 감독 취임 후 평가전에서 마침내 승리해 무승 징크스를 깼으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무승부를 거두는 등 2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고 있다.
우루과이는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6개를 땄는데 그 금메달이 모두 축구에서만 나왔다. 그러나 우루과이가 마지막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해는 1928년이라 현재까지 100년 가까이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있다.
9. 외교[편집]
자세한 내용은 우루과이/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행정구역[편집]
수도 몬테비데오를 포함 19개 Departamento[85] 로 나뉜다.
11. 우루과이 출신 인물[편집]
- 호세 무히카
- 디에고 포를란
- 루이스 수아레스
- 페르난도 무슬레라
- 에딘손 카바니
- 디에고 고딘
- 호세 히메네스
- 막시 페레이라
- 후안 마리아 보르다베리[90]
- 라울 센디크
- 오스카르 타바레스
- 알바로 레코바
- 로드리고 벤탄쿠르
- 크리스티안 로드리게스
- 디에고 락살트
- 페데리코 발베르데
-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하
- 알시데스 기지아
-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 호세 나사치
- 호세 산타마리아
-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 옵둘리오 바렐라
-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 엑토르 스카로네
-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
- 엔소 프란세스콜리
- 로케 마스폴리
- 페드로 로차
- 페드로 페트로네
- 페데 알바레즈
- 이사벨리노 그라딘
- 알렉산데르 마차도
- 호세 피엔디베네
- 앙헬 로마노
- 파올로 몬테로
- 파브리시오 디아스
- 파블로 포를란
- 거스 포옛
- 다니엘 폰세카
- 마르틴 카세레스
- 로날드 아라우호
- 파쿤도 펠리스트리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 다르윈 누녜스
12. 창작물에서의 우루과이[편집]
심슨 가족의 시즌 6 16화 'Bart vs. Australia' 에피소드에서 호머 심슨이 지구본을 돌려보며 호주의 위치를 찾다가 우루과이를 보고는 철자 Uruguay를 You are gay라 읽으며 개드립을 치는 장면이 나왔다.# [91]
영화 계엄령에서는 군사독재 시절 당시 우루과이의 시궁창스런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선전물을 나눠주는 1인 시위자를 정부 요원이 대놓고 저격해서 사살한다.
대항해시대 2에서는 이곳의 서부에 있는 우루과이 강 유역에서 땅늘보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대체역사소설 남미고려의 스타트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