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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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예
3. 여담



1. 개요[편집]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리처드 파인만


주로 양자 역학, 카오스 이론, 우주론 등의 20세기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물리학 분야에서 언급되는 내용.

문명의 발달로 인지의 경계가 확대되면서 인류는 기존 이론의 허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이론과 방법들을 정립했지만, 그 중 몇은 현재로선 증명이 어렵다.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라는 것은 지금의 증명 불가능한 이론이나 방법의 부족함을 보완하거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등 지적진보를 위해 자연스레 나오게 된 진테제 중 하나이다.

결과적으로 '답을 모른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학습이 부족해 진짜 모르는 것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현재 인류가 보유한 지식을 총동원해도 완전한 이해나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에 쓸 수 있는 표현으로, 모른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오히려 최첨단의 지식이 필요하다. 비전문가가 '아무도 모른다는데 내 말도 맞을 수 있지 않냐'는 식의 말을 할 때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오용이다.

문장이 이중구조인 것은 이것이 메타인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메타인지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인지심리학의 메타인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인지에 대한 한단계 높은 인지를 이런 문장으로 표현한다.

2. 역사적 예[편집]


전근대의 선각자들 역시, 일관되게 형이상학적 개념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했다.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명제에 대해서는 참이라고 해도 맞고 거짓이라고 해도 맞는다.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요약


세계는 존재하는가 아닌가, 세상이 끝이 있는가 아닌가, 죽은 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닌가, 육체와 영혼은 하나인가 다른가 등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완강히 대답해주시지 않으셨다.

붓다가 형이상학적 탐구를 금한 14무기(十四無記)에 관한 내용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전도서 3:11》


(季路)敢問死 曰未知生焉知死[1]

자로(子路)[2]

가 묻기를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삶을 알지 못하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 하였다.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


형이상학적 내용, 즉 반증가능성 없는 내용에 대한 확정 금지 외에 '앎 자체에 관한 확신[3]'을 경계하는 예도 많다.

Ἓν οἶδα ὅτι οὐδὲν οἶδα

나는 오직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격언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유명한 델파이 신탁의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델파이 신전에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 자리에서 (장황한 수사적 표현이 전부 생략된) '아니'라는 간결한 아폴론의 신탁이 나왔다. 이를 전해 들은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당대의 유명한 소피스트들의 현명함을 시험해보고 다닌다. 이에 소크라테스가 내린 결론은 "난 내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저들은 저들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모른다. 내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가장 현명한 것이다."라는 것.[4] 이는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도 자주 인용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앎이라.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논어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공자의 제자 중 자로는 건달 생활을 하던 중 공자에 감화되어 평생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맹세한 사람이었다. 자로는 비록 공자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면서 많이 유순해졌지만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성격과 특유의 고집이 남아 있었고,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았다보니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에 대해 자존심을 상하는 것으로 여겼었다. 어느 날 공자는 그 부분을 확실하게 지적했다. 자로(由[5])야, 네게 앎을 알려 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앎이니라."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이와 더불어 불치하문(不恥下問)[6], 공자천주(孔子穿珠)[7]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8] 등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애써 배우려는 자세를 강조한 고사가 공자와 관련해 많이 남아 있다.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철학의 성인들이 모두 지적한 부분인 만큼, 과연 동서고금의 진리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부분. 막말로 과학으로 대표되는 인류문명은 계속해서 발전해 왔지만 그러고도 중간중간에 대규모의 의도적-비의도적 비극을 막을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히 철학가 입장에서는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설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3. 여담[편집]


비단 학문에서만 말고, 삶에서도 명심하면 꽤 좋은 태도다. 이 평범한 진리만으로도 좆문가가 되는 걸 상당수 막을 수 있다.

악용(?)의 예로는 "저희는 일반인이라 굳이 그 논문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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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은 계로가 귀신에 제사 지냄을 묻기에 공자가 사람을 섬길 수 없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는가 답하였고, 감히 죽음에 대해 묻자 삶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답하였다는 내용이다. 季路 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未知生 焉知死.[2] 계로(季路)는 자로의 다른 이름이다.[3] 내가 알고 있다는 착각[4] 흔히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신전 벽에 새겨진 문구일 뿐,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5] 자로의 본명은 중유(仲由)로, 계로라고 불리기도 했다.[6]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음[7] 공자가 실에 구슬을 꿰는 법을 아낙네에게 물어 큰 지혜를 배웠다는 내용의 고사[8] 세 사람이 길을 지나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