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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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고객서비스 관련 문제
2.1. 수수료 (해결)
2.3. 전산시스템 관련 문제
2.3.1. 지저분한 전산통합
2.3.2. 기관 미개시 상태
2.3.3. 인터넷 뱅킹 오류
2.3.4. 2018년 신전산 오작동 사태
3. 경영 관련 문제
3.1. 민영화 지연 (해결)
3.2. 과도한 부실자산 (해결)
3.3. 명칭 논란
3.4. 파벌
3.5. 저임금


1. 개요[편집]


우리은행의 각종 문제점에 대한 문서.


2. 고객서비스 관련 문제[편집]



2.1. 수수료 (해결)[편집]


우리은행은 경쟁 은행들에 비해 수수료 감면 혜택이 빈약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2011년 우리신세대통장을 시작으로 대다수 입출금통장 상품의 수수료 면제 혜택을 월 10회로 축소하면서 고객들의 원성을 샀다. 2010년대 초중반은 은행들이 주거래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수수료 혜택이 큰 통장을 연달아 출시하고 있던 시기인데, 우리은행은 시류에 역행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은행과 비교될만한 수수료 지옥은 하나은행밖에 없었다.

당시 대다수의 은행 ATM 기기들은 밤이 깊어갈수록 600원→700원→1,000원으로 인출 수수료가 뛰었는데, 우리은행 고객들은 수수료 면제 혜택도 거의 없다보니 편의점 CD기와 다를 바 없는 수수료를 내고 돈을 뽑아야 했다. 특히, 우리은행 ATM에서 우리은행 고객은 1,000원을 내고 인출할 동안 산업은행 고객은 수수료를 한 푼도 안 내고 돈을 뽑아가는 염장질[1]이 가능했다.

수수료 혜택이 빈약한 것에 대해 우리은행 상품개발부는 "금리우대 혜택을 제공하다보니 수수료 면제 혜택을 크게 제공할 수 없다"고 항변했는데, 대침체 이후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입출금통장에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해도 연 1%가 고작이었다. 이렇게 되면 한 계좌에만 수천만원씩 박아두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고객 입장에서 금리우대는 수수료 면제에 비하면 메리트가 떨어진다.

2015년 계좌이동제가 실시되면서 그나마 수수료 혜택을 많이 주는 웰리치 주거래통장이 출시되었으나 여전히 다른 은행에 비해 부실했으며 혜택 제공 방식도 까다로워[2] 반응이 시원찮았다.

다행히도 2018년 웰리치 주거래통장이 슈퍼 주거래통장으로 바뀌면서 타행과 동일한 수준의 혜택을 제공하게 되었고, 2019년 말 대망의 오픈뱅킹이 개통되면서 주거래 실적이 없어도 송금 수수료를 무제한 면제받을 수 있게 되었다.

2.2. 개설방어[편집]


2015년부터 금융감독원이 대포통장 근절 지침에 따라 우리은행은 2015년 3월 9일부터 개설방어를 강화하였다. 뚜렷한 목적이나 증명서류(공과금 영수증 등)를 제시하지 않으면 입출금통장은 무조건 개설 거절이다. 또한 주민등록상의 주소 외 지점에서 신청시에도 거절. 게다가 입출금상품 개설시 적금 가입을 강요하고 있어서, 목적확인을 빌미로 꼼수 영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게다가 전술했듯이 위비뱅크 모바일 통장은 신규개설시 한때 비대면개설이 안 되었다가 2017년부터 원터치뱅킹 및 위비뱅크 앱에서 지원 중이다. 2017년부터 수도권 지역 일부 지점에 설치된 위비 스마트 KIOSK에서 우리 SUPER 주거래 통장, 우리꿀청춘통장, 우리직장인재테크통장을 비대면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키오스크에서도 주소지를 따져서 개설방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완전신규하는 고객은 키오스크 초기 화면 상단의 "전체 메뉴"로 들어간 후 "사용자 등록"을 해야 개설할 수 있는데, 이 때 기계 우측 하단의 신분증 스캔용 카드 슬롯에 신분증을 넣고 스캔한다. 그러면 키오스크 전담 직원과 영상통화로 연결하는데, 이 때 스캔한 신분증을 본 직원이 원거리다 싶으면 아예 대놓고 자체적으로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대놓고 개설방어한다. 그런데 웃긴 건 우리은행 콜센터에서는 키오스크에서 개설하는 것은 주소지를 따지지 않는다고 안내하는 데 비해, 키오스크 전담 직원은 주소지를 따진다고 안내하고 있어서 어딘가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있지 않다는 문제까지 함께 노출하고 있다.[3][4]

2022년 현재 우리WON통장과 모바일 뱅킹의 활성화로 수수료 면제 항목이 대폭 증가됨에 따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


2.3. 전산시스템 관련 문제[편집]


2004년에 기존 한일은행 종합 온라인 기반 전산 시스템을 차세대 전산 시스템으로 교체하였다. 하지만 차세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공동망 미개시, 전산 점검이 매우 잦으며 사고나 장애도 많이 발생하여 욕을 많이 먹는다. 한국씨티은행이나 SC제일은행도 비슷한 문제가 있지만 우리은행이 고객 수가 많은 만큼 이같은 문제점도 더 잘 부각되는 편이다.

2016년 신세대 전산 도입을 위한 공개입찰을 시행, 2017년 SK주식회사 C&C와 유닉스 기반의 금융정보시스템 도입 및 유지보수 계약을 채결하였다. 본래 이 시스템을 이용한 전산 교체는 설날 연휴 기간(2018년 2월 15일~18일)에 진행하려고 했으나, 내부 사정으로 인하여 어린이날 연휴(5월 5일~7일)로 미루어졌다.

신전산 도입 직후에는 거래 알림이 타인에게 가는 등 심각한 오류가 속출하였으나, 이후 안정화되면서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2.3.1. 지저분한 전산통합[편집]


전산통합 과정이 다소 벙찐 수준이었다. 한일과 상업 두 은행 출신들이 통합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논쟁을 벌이다가, 다른 해결 방법으로 시스템 2개를 붙여 버리는 바람에 창구단말이 이원화되어 있었다. 한동안 창구 한 곳에 컴퓨터를 2개나 돌려댔다. 합병 출범 후 8개월 만인 1999년 9월 한일은행 시스템을 기반으로 통합되면서 일단락. 다만 업무처리 시스템인 계정쪽만 한일은행 시스템으로 사용하고, 그 이외에 홈뱅킹 시스템이나 경영정보 시스템 등은 한국상업은행의 시스템으로 통합시켰기에 사실 한일은행 시스템을 기반으로 했다고 하기도 민망하다. 게다가 평화은행을 합병하면서 평화은행의 고유업무 시스템도 더덕더덕 붙여 버리는 바람에 헬게이트 확정.

그리고 계좌번호 체계도 상당히 흥미로운데, 구 한국상업은행은 11자리(000-00-000000)로 간단했지만[5]한일은행의 경우 14자리(000-000000-00-000)로 긴 편이었고 1999년 전산통합 때 14자리 계좌번호 체계로 일원화되면서 구 상업은행 계좌는 기존 11자리에다가 새 14자리 계좌번호가 추가되었다. 이후 합병된 평화은행은 12자리(000-00-0000-000) 계좌번호를 썼는데 마찬가지로 새 14자리 계좌번호가 생성.

그러다가 2004년 차세대 시스템을 개통하면서 13자리(0000-000-000000) 체계를 새로이 쓰게 되었으며, 이번에도 기존 계좌번호는 여전히 사용 가능하다.한국상업은행/평화은행 계좌의 경우에는 총 3개의 계좌번호가 존재하며 전부 사용 가능. 다만 통장에는 상업/평화은행 시절 계좌번호가 대표로 기재되며 14자리 계좌번호의 경우는 따로 아래에 찍힌다. 1997년 상업은행 당시 만들었던 통장에 의하면 아래 페이지에 0000-000-000000로 우리은행 계좌가 조그맣게 찍혀있다. 구 계좌번호는 인터넷뱅킹에서 조회가 가능하며 어느 은행 출신의 계좌번호를 대표번호로 사용할지 까지 지정이 된다.

특히 한빛은행 초창기에는 상업은행용(우측 세로)과 한일은행용(좌측 하단 가로, 가장 일반적인 위치) 그렇게 마그네틱선이 2개 붙은 통장으로 발급되었다. 물론 우리은행의 차세대 전산이 개통된 이후엔 한일은행용 마그네틱선만 남기게 되었다.


2.3.2. 기관 미개시 상태[편집]


체크카드의 전산 정지시간이 있다. 일단 평일엔 자정부터 10분간이지만, 불타는 금요일엔 자정부터 30분간, 매월 두번째 일요일엔 아예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전부 정지된다. 우리카드 체크만 그런 게 아니고, 카드사에 상관 없이 우리은행 계좌에 연결된 체크카드라면 전부 해당된다. 금요일에 술 마시러 나갈 땐 반드시 다른 은행 체크카드나 현금을 준비하자. 참고로 여기랑 전산이 도찐개찐으로 취급되는 한국씨티은행은 매일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 15분간, 여기보다도 못하다고 까이는 SC는 자정 전후로 20분씩만 정지된다.[6]. 그나마 최근에는 다른 은행처럼 자사 체크카드가 점검시간에 구애받지 않게 전산을 조정한 모양. 물론 일요일 점검은 우리카드도 얄짤없다.


2.3.3. 인터넷 뱅킹 오류[편집]


  • 여전히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려면 모든 창을 껐다 켜야 한다.
  • 우리은행 홈페이지에서 모질라 파이어폭스로 이용시 보안 프로그램 설치 후 브라우저 재접속시 계속해서 『설치가 필요합니다 → 설치가 다 되었으니 이전페이지로 → 설치가 필요합니다 → 무한루프』 현상이 일어났다. IE 기반 이용시에도 설치 실패가 뜨며 무한 오류가 일어났다.
    • 해결법은 구글 크롬을 이용하는 것. 크롬으로 이용 후 다른 브라우저도 원활히 돌아간다. 크롬도 한 번은 위의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뜬다. 게다가 크롬도 42 이후 44 이전 버전으로 업데이트했다면, flags에 들어가서 NPAPI 사용을 세팅하고 크롬을 재실행해야 한다. 이걸 세팅하지 않으면 플러그인 자체가 안 돌아간다.
  • 파이어폭스로 인터넷뱅킹 이용 시 마지막 이체 버튼이 제대로 눌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 IE, 크롬, 엣지 등에서는 정상적으로 눌러진다.


2.3.4. 2018년 신전산 오작동 사태[편집]


2018년 5월초에 새로운 전산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이후 각종 문제가 드러났다. 신규 전산 도입 직후 앱, 인터넷 뱅킹이 먹통이 된다던가, 분명 이체를 했는데 상대방이 제대로 못 받았다던가, 본인 거래 내역이 타인에게 전송되기까지 하는 심각한 수준의 오류도 발견되고 있다.


3. 경영 관련 문제[편집]



3.1. 민영화 지연 (해결)[편집]


1999년 한국상업은행한일은행한빛은행으로 통합하면서 정부로부터 6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1년도 되지 않아 불법대출 사태에 연루되는가 하면, 대우그룹 해체의 직격탄을 맞아 다시 부실은행이 되고 말았다. 결국 2000년 제2차 구조조정을 피하지 못해 주식이 모두 소각되며 예금보험공사의 완전자회사가 되었고, 같은 처지였던 평화은행, 광주은행, 경남은행, 하나로종합금융과 함께 우리금융지주 산하로 편입되었다. 2002년 평화은행[7]과 하나로종금을 합병하고 우리은행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로 인해 우리은행은 2021년까지 무려 23년 동안이나 예금보험공사를 최대주주로 두고 정부의 경영 간섭을 받는 '국영은행'[8]이었다.

정부 관리체제는 우리은행의 영업에도 큰 장애요소가 되었는데, 경쟁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그룹을 외치며 프라이빗 뱅킹과 해외 진출에 나서는 동안 우리은행은 '우리나라 토종은행'(...)을 외치며 회생중인 부실 대기업들과의 거래를 전담하면서 부실 자산만 늘려왔다. 또한 정부에 의해 지출을 통제당했기 때문에 점포 운영비와 홍보 예산도 제한적인 수밖에 없었는데, 브랜드 가치가 그대로 실적이 되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엄청난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2016년 1차 민영화와 건전화 노력, 2019년 우리금융지주 재출범을 거치며 상당한 경영 정상화를 이루었고, 2021년 말 예금보험공사 보유 지분을 5.8%만 남기고 모두 매각하면서 완전 민영화[9]를 달성하였다. 그동안 중구난방이던 브랜딩과 마케팅도 대규모 개편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3.2. 과도한 부실자산 (해결)[편집]


우리은행은 부실자산이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의 분할매각이 결정되기 이전 여러 국내외 금융기관이 우리은행을 매입하고자 정부와 접촉하였으나, 직접 자산을 실사해본 뒤 인수를 포기했을 정도다.

우리은행의 부실자산이 많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우리은행은 한빛은행으로 출범할 당시부터 부실자산이 엄청나게 많았다. 한빛은행 자체가 부실은행이었던 한국상업은행한일은행을 통합하여 공적자금을 지원받고 대마불사를 노려보자는 목적으로 출범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부실한 고객 포트폴리오다. 우리은행은 그동안 예금보험공사의 자회사로 정부가 경영에 간섭했기 때문에 좋든 싫든 국가 정책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고, 그 중에서도 국가 기반산업을 지탱하는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부실 대기업 위주의 거래선을 유지해왔다. 건전성 지표를 소숫점 아래 두 자리수까지 관리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우량자산 증대 캠페인으로 저축과 PB를 늘려봤자 대기업의 부실채권 한 방이면 부실자산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FY2016 0.98% 였던 연체율과 0.46%였던 NPL(부실자산)비율은 FY2018 기준으로 각각 0.51%, 0.31%로 떨어져 건전성에 있어서 비약적인 개선이 있었다. 당시 은행장이었던 이광구 행장의 소위 ' 뒷문잠그기 영업'을 통해 자산건전성을 개선하고 영업 포트폴리오를 개편한 효과로 보인다.


3.3. 명칭 논란[편집]


현재의 하나은행이 1991년 설립 당시, "순우리말로 된 은행 이름을 짓자"라는 모토로 순우리말로 된 은행 이름을 공모하였는데, 이때 은행 이름으로 '우리은행'이 선정될 뻔하였으나 "보통명사가 특정은행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될 수는 없다"라고 정부가 반대하여 무산되었고, 결국 최종적으로 '하나은행'이 은행 이름으로 선정되었다. 만약, 이때 정부의 반대가 없었으면 현재 우리은행 상호는 하나은행이 사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은행은 어떻게 우리라는 보통명사를 사용할 수 있었을까? 이는 한빛은행평화은행1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름이라도 친근한 이름을 붙여 신속히 공적자금을 상환하라는 의도에서 정부가 이례적으로 허가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10]

여담으로 2002년 5월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던 유지창 유진투자증권 회장은 본인이 우리은행이라는 상호를 허가해주었지만, 막상 은행에 있으면서 보니까 스스로도 불편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이유인즉슨 타 은행원들이 '우리 은행'을 말하면 이게 'wooribank'를 가리키는 말인지 'our bank'를 가리키는 말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11] 그래서 은행권에서는 워리은행, 유리은행 등의 별명을 쓰기도 한다. 다른 은행 공문을 보면 등장하는 '당행', '자행', 'woori은행' 등의 용어가 이 때문에 생긴 것.

이 과정에서 2005년 4월 전국 9개 은행[12]이 우리은행의 상표등록 무효소송을 청구하여 2009년 5월 대법원의 판결로 상표등록이 무효 되었다. # 하지만 '상호'가 아닌 '상표'이기 때문에 우리은행은 그대로 사용한다. 또한, '우리은행'이라는 단어가 무효일 뿐 파란 일출 모양 로고는 상표로 유지된다. 그래서 아래의 사진에서도 일출 모양은 반전되어 있다.

파일:attachment/189461_249963635144407_2107735263_n.jpg
우리은행 패러디 유리은행. 시티레이서에서 정말로 이렇게 해놨다.

심지어 2008년 히어로즈의 스폰서가 우리담배일 적에 사람들이 '우리'라는 단어만 보고 우리은행과 혼동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장원삼 트레이드 파동 당시 이를 혼동한 어느 네티즌이 분노하여 우리은행 계좌를 해지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못미

그럼에도 우리라는 브랜드가 주는 부드러움과 대표성은 은행의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고, 한국이나 대한이 들어간 증권사, 항공사의 경우도 대표성, 안정적 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3.4. 파벌[편집]


한일은행상업은행 간의 파벌이 여전히 있다. 그래서 인사이동 때마다 반드시 지점장과 부지점장의 출신을 일치시키는데, 1999년 한빛은행 출범 후 한 동안 서로 출신이 다른 지점장과 부지점장을 발령냈더니만 허구헌날 싸워대서 지점 분위기가 개판이었다고 한다.[13][14] 그래서 임원 또한 상업/한일 출신을 각각 절반씩 뽑는 상황인데 아마도 1999년 한빛은행 출범 이후 입사한 직원들이 지점장급으로 승진해서 더 이상 출신을 따질 필요가 없어졌을 때까지 계속될 듯하다.

사실 두 은행이 합병을 발표한 1998년 7월 당시는 정부가 공적자금 지원 조건으로 합병을 내걸고 여러 은행에 합병을 적극 독려한 상황이긴 했지만, 이렇게 상성이 안 맞는 두 은행이 덜컥 합병에 이르렀던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 배찬병 한국상업은행장과 이관우 한일은행장이 연세대학교 동문에다가 서로 호형호제할 정도로 사이가 막역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15] 정부의 합병 독려 과정에서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두 은행의 합병을 제의하자 배찬병, 이관우 두 행장이 사석에서 만나 얘기하다가 합병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 하지만 한빛은행 출범 후에도 삐걱거리다가 또 부실은행으로 지정되는 등의 행보를 놓고 경제 전문가들은 불행한 결혼이라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16]

2017년 민영화 시대를 이끌 은행장을 선임하는 과정에도 두 은행 출신간의 파벌 싸움이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다. 이미 현재의 은행장을 포함해 2명이나 상업은행 출신이 맡았으니 차기 행장은 한일은행 출신을 뽑아야 한다는 한일 쪽 파벌의 목소리가 거센 상황.[17] 결과는 현직인 이광구 행장이 연임에 성공했으며, 언론 인터뷰에서 출신보다는 성과 위주로 인사 발령을 내겠다는 발언을 했다. 따라서 얼마나 합리적인 기준을 세우고 철저히 적용하느냐에 따라 기존의 파벌 싸움이 없어지느냐 지속되느냐가 결정될 듯.

현재는 우리은행 내부적으로 직원 성과평가 시스템이 점차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파벌에 대한 갈등도 줄어드는 분위기다. 2017년 민영화 시대를 이끌 은행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도 이전 해에 민영화를 달성한 이광구 행장이 연임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우리은행 측은 출신보다는 성과위주의 인사 발령이었다고 한다.

또한 이광구 행장의 뒤를 이은 손태승 행장 역시 2017년 선임 과정에서 그간의 영업력과 실적이 높이 평가돼 행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손태승 행장은 '행내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 간 계파 갈등에 대해서는 임원 선임의 문제가 거론되나 능력과 성과 평가 위주의 시스템으로 균형 잡을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은행의 지난 파벌 갈등을 없애려는 의지를 보였다.

평화은행 출신들은 상업은행이랑 한일은행 출신들한테 치여서 상당수가 회사를 떠났다. 게다가 평화은행은 합병 당시에도 역사가 짧은 은행이라 통합 이후 파워를 가질만한 행원이 거의 없었다. 2020년 지금은 평화은행 출신 중 살아남은 일부 인원들이 차장급에서 일부 지점장까지 승진한 케이스도 나오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업은행이랑 한일은행 출신에 비하면 매우 적다. 2001년 우리은행 출범 이후 입사한 행원들은 아직 연공이 차지 않아서 중역 레벨에는 별로 없다.


3.5. 저임금[편집]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대한민국 기업 대다수가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던 시절, 노사협의 과정에서 임금동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물가 상승에 따라서 연봉 또한 오르긴 했지만 당시의 여파로 인해 타 은행의 동일 직급과의 차이는 아직도 다소 있는 편.

2014년에는 4대 은행 행장급 임원들의 연봉이 깎여 나가는데 혼자서만 면제되었다. 특별히 잘 해서 그런건 아니고 이미 너무 적게 받고 있어서 우리은행 지주회장의 기본 급여가 비슷한 직급의 다른은행 임원의 1/2에서 심하게는 1/4 가까이 됐다.

2018 임단협 기준으로 은행연합회 공단협 협상 수준인 2.6%수준으로 인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2020년까지 산업은행과 우리은행의 제휴에 따라 산업은행 고객은 우리은행 창구와 ATM을 자행처럼 이용할 수 있었으며, 이는 2022년 수수료 혜택이 짜기로 이름난 또 다른 시중은행인 하나은행으로 이어진다. 산업은행의 수수료 혜택은 개인금융 시작 당시부터 혜자스럽기로 유명하다.[2] 가입 시 면제횟수 30회 부여+매월 주거래 조건 충족 시 항목당 5회 가산+미사용 면제횟수 무제한 이월. 같은 시기 다른 은행들은 계열사 카드 실적이나 자동이체 실적만 있으면 자행 출금 및 타행 이체 수수료를 무제한 면제해주고 있었다.[3] 그렇지만 다른 은행들보다 계좌 만들기 쉽다. 그냥은 발급해주지는 않지만 입출금 제한을 걸어놓고 만들어준다.[4] 입금한도는 제한이 없지만 출금 및 이체한도는 100만원으로 제한 시킨뒤 1달 뒤에 상향 조정 시킬수 있게 한다.[5] 2017년 현재는 SC제일은행 등의 극소수 은행뿐이지만 과거 수협은행, 농협은행, 조흥은행, 신한은행, 외환은행, 한미은행 등도 11자리 체계였다.[6] 물론, 세상은 넓고 은행은 많은지라, 여기보다 더한 곳도 있기는 한데, 그곳이 다름 아닌 KDB 산업은행. 매일 오후 11시 반부터 새벽 1시까지 무려 90분간 전산점검을 진행한다. 거기다가 일요일은 한 술 더 떠서 오후 11시 반부터 오전 4시까지 270분간 전산점검을 진행한다. 참고로 두번째 일요일이고 세번째 일요일이고 나발이고 그런 거 없다. 270분 점검을 매주 한다.[7] 평화은행 법인 자체는 한빛은행의 신용카드 업무를 넘겨받아 우리신용카드가 되었으나, 2003년 카드사태로 인해 우리은행에 합병되었다.[8]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의 국책은행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들은 처음부터 법률에 의해 설립되어 국가 정책에 따른 금융사업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이고, 우리은행은 일반 기업으로 치면 법정관리와 같은 상태이기에 국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9] 아직 예보 지분이 남아있고 공적자금 회수가 완료된 것은 아니나 지분 매각으로 예보의 이사 추천권이 소멸되면서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지배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사실상 완전 민영화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10] 특허정보검색에 따르면 이미 우리은행이라는 상표는 한빛은행과 같은 시기에 등록되었으며(일련번호도 29~34 연속) 한빛은행이나 우리은행 외에도 에이스은행, 마이은행, 드림은행, 새론은행 등도 후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1] 이것 때문에 시중 8개 은행은 2005년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대법원의 판결은 우리은행이 상표에 대한 독점권이 없다는 의미지 '우리'라는 상호를 쓸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어서 8개 은행의 소송은 실익 없이 끝났다.[12] 소송 초기에는 조흥은행과 신한은행이 합병 이전이라 9개 은행이었으나 2006년 합병되어 기사에서는 8개 은행이다.[13] 두 은행의 조직문화가 상당히 차이가 심해서 그렇다. 한국상업은행은 행원 개인의 퍼포먼스를 중요시 여기는 반면, 한일은행은 조직 융화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 기업 문화가 일종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존재임을 감안할 때 당연히 상업/한일 출신 간에는 제대로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14] 사실 이는 우리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라 합병을 거친 은행이라면 알게 모르게 있는 현상인데, 일례로 KB국민은행의 경우에는 한국주택은행 출신 지점장이 업무 진행 상황을 묻자 한국장기신용은행 출신 부지점장이 진행중인 걸 왜 자꾸 여러 번 재촉하냐면서 객장에서 투닥거리는걸 목격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15] 여기다가 생일이 똑같다고... 나이는 이관우 행장이 1살 위다.[16] 사실 두 은행의 통합 발표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할 정도로 정부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워낙 두 은행의 부실 규모가 컸던데다 다른 부실은행을 처리하는데도 신경쓰는 상황이라서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이 부실 규모에 비해 다소 모자랐고 여기에 한빛은행의 자체적인 부실 정리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서 상황이 악화된 것.[17] 앞서 언급했듯 1992년 설립된 평화은행의 초창기 입사 출신들이 우리은행장에 오르려면 못해도 10년은 더 있어야 한다. 또한 평화은행 출신을 우리은행장으로 뽑는 시나리오가 대안이 될 수도 있는것이 KEB하나은행의 경우 예상대로 구 하나은행 출신 함영주 부행장을 통합은행장으로 선임하긴 했지만 서울은행 출신이었던 덕분에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이 거의 없었던 사례를 참고할만 하다. 물론 우리은행의 경우 사실상 상업/한일 양강 구도 속에 평화 출신은 그저 쩌리에 불과한지라 파워게임에서 밀린다는 차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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