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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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상세
3. 사례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국가 정권국민들을 우민[1]으로 유도해,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국제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게 해서 쉽게 지배하는 정책을 뜻한다. 우민화 정책이 성공하면 이에 따라 당연히 프로파간다가 따라붙고, 국민들을 전두지휘할 수 있게 된다. 만약 국민들의 수준이 현명하다면 정권은 삐끗하면 태클이 걸려 추진력이 없어지므로, 우민화 정책은 추진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려던 국가들 이곳 저곳에서 사용되어 왔다. 여러 제국주의 국가는 우민화 정책을 적극 이용해 국민들을 국가의 확장을 위한 전사로 이용했다.

대개 독재 또는 부패 정권에서 일어나며, 유흥문화의 육성을 통하여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책, 지식인과 엘리트를 탄압하거나 학살하는 반지성주의, 철저한 언론통제를 통한 정보의 차단, 교육의 의도적인 하향평준화, 국민들 간의 갈등유발, 역사왜곡 등을 통해 이뤄진다.


2. 상세[편집]


우민화 정책의 주된 목적은 엘리트 계급의 부정과 비리를 위해 국민 의식수준을 낮추는 데 있다. 불만이나 비판들을 틀어막기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애초부터 그런 비판 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국민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다. 전근대에는 기초적 교육을 제공하지 않고 지식을 친정부적인 권력층에만 집중시키는 방법을 주로 썼다. 또한, 국민들에게 의무교육은 제공하되, 고등교육은 특권층에 한정하고 정치적 무관심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방법도 있다.

우민화 정책은 대개 삽질로 끝난다. 순전히 정권 유지만을 위해 국가의 장기적인 미래를 희생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평균 지적 수준이 떨어지고 중우정치가 이어지면 필연적으로 국가 경쟁력도 떨어진다. 국제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은 물론이며, 더한 파국으로 치닫을 수도 있다. 단기적으론 정권안정과 통화증발을 통해 일시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라를 장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다수의 고급 인재가 필요하고, 국민평균 교육수준도 높여야 한다. 우민화 정책을 포기하지 않아서는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우민화 정책은 장기적으론 본래 목적인 정권 유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국민들이 정치,경제,사회,외교 등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보니, 나라가 쇠락하는 상황에서도 사태 파악을 못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되려 곤경에 처하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지성적이지 않은 국민은 자극적 선동과 포퓰리즘에 잘 휘둘리고, 심사숙고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행동력까지 좋다. 그래서 우민화 정책을 시행하니 경쟁자가 대중을 선동해 되려 본인들을 공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3. 사례[편집]


인민을 다스리는 방법은,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된다.

아돌프 히틀러


"교육은 누구의 손아귀에 쥐어졌는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에 따라 효과가 결정되는 무기다."

이오시프 스탈린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우민화 정책은 바로 로마 제국빵과 서커스 정책이며 히틀러가 인용함으로써 더 유명해졌다.

캄보디아 사회주의 정권의 폴 포트는 영어를 배운 사람,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 해외유학을 다녀온 사람, 공무원, 교수, 교사 등의 지식인들과 심지어 안경 착용자, 손에 굳은살이 박히지 않은 사람, 피부가 햇볕에 타지 않고 하얀 사람들까지도 집단학살한 킬링필드로 잘 알려져있다.

마오쩌둥문화대혁명대약진운동으로 반지성주의를 보여줬으며, 특히 문화대혁명에서 홍위병을 동원해 자본주의 지식인 계급을 탄압하였다. 그 전 중국에선 진시황의 분서갱유도 있었다.

스탈린이 대숙청 시절 숙청했던 주요 대상은 과학자와 지식인이었다. 대숙청 이후 살아남은 지식인들은 당의 입맛에 맞게 거짓 지식을 가공하곤 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이비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 등이 소련 과학계를 지배했고, 용불용설 등에 기반한 유사 과학이 소련의 생물학과 농학을 지배하게 되었다. 결국 소련의 기근을 야기하며 농업을 황폐화 시켰다. 조지 오웰은 소련을 비판하기 위해 저술한 <1984>에서 우민화 정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비판했다.

포르투갈제2공화국 시기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독재정권 당시 시행된 3F 정책이 있었다. 이 3요소는 Futebol(축구)[2], Fatima(파티마-가톨릭)[3], Fado(파두-음악)[4]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살라자르 정권에 가장 가열차게 대항한 이들 중 하나가 바로 파두 가수들이었다. 결국 살라자르는 1968년 심장마비로 물러났고, 그가 세운 체제 역시 마르셀루 카에타누 등 후임자들에 의해 계승되어오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붕괴되었다. 이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암호곡이 바로 살라자르가 방송 금지를 먹였던 파두 가수 제카 아폰수(Zeca Afonso)의 "그란둘라, 타버린 마을(Grândola, Vila Morena)"이다. 물론 과거에 식민제국이었고 브라질,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앙골라 같은 해외 식민지들에서 착취한 것을 통해 쌓은 부가 남아 있어서 불가리아,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 같은 남동유럽 국가들보다는 1인당 GDP가 높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제가 조선인에게 조선교육령으로 우민화 정책을 시행했다. 일제는 경성제국대학만을 고등교육 기관으로 두어 사실상 조선인들에게 고등교육을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1910년대 헌병경찰통치기와 1920년 이후의 문화통치기, 1930년대 이후와 전 식민통치 기간에 걸쳐 조선인들을 향한 일제의 우민화 정책은 교육 분야에서 극심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후기에는 병참기지화 정책의 일환으로 안 그래도 학력이 떨어지는 조선인 학생들에게 군사교육을 시키고 징병으로 학생들을 중국 전선과 태평양 방면으로 끌고 가 총알받이로 삼았다. 정부수립 이후, 전두환 정부 시절에 자유화 정책에 대해 3S정책(Sex, Sport, Screen)이라 비판하며 이를 우민화 정책의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당시 국풍81, 프로야구, 프로축구, 올림픽 유치[5], 컬러TV 방송, 성인 영화 극장 상영[6]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는 것. 또 교복 자율화 등의 조치도 있었다. 실제로 올림픽 유치 등의 3S 정책을 통해 전두환 정권은 독재정치를 시민들로부터 눈 돌릴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운동권 계층에서는 ‘우민화 정책을 통한 서구 퇴폐 문화의 유입’을 우려하면서 좌익 내셔널리즘 사상이 싹트는데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스포츠, 대중 문화의 육성은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를 우민화 정책이라 격하하는 것은 그저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오히려 문화 산업 및 스포츠 산업이 육성되면서 소득수준 향상에 걸맞게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 정책이라는 것.

북한에서는 출신성분에 따라 백두혈통,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으로 나누이며, 출신성분이 나쁘면 아무리 똑똑해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다. 김일성은 도서정리사업을 통하여 그들의 체제에 위협적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정보를 검열삭제했으며, 반대자와 회의자들의 아우성을 전면 무시하고 있다. 북한에서선 외부정보의 유입을 철저히 차단해서 인터넷 사용도 거의 불가능하다.

멕시코는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서 우민화 정책을 간접 수행해왔다. 멕시코 시티 등 대도시 지역은 교육열이 높은 지역인데다 교통, 통신의 발달로 인해 잘 넘어가지 않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제한되어있고, 교육 수준이 낮은 중소 도시에서는 어느 정도 먹힌다. 그래서 제도혁명당 등에 대도시 사람들은 잘 안 넘어가나, 외곽 지역과 농촌 지역의 금권선거 등의 영향으로 제도혁명당 후보가 당선되기도 한다.

우민화 정책은 빵과 서커스, 문화탄압같은 방식만 있는게 아니다. 대표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우민화 정책은 중화사상과 중화민족 이론, 혐한을 활용했으며 일본 정부의 우민화 정책은 혐한과 일본 극우사관을 활용했다.

범중동권에서는 주로 이슬람을 활용하는데 대표적으로 탈레반의 기원이 된 자마아티 이슬라미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우민화 정책을 꼽을 수 있다.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국가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인 탈레반에 의하여 여성의 교육이 금지당하였다. 굳이 아프가니스탄 뿐만이 아니라 근현대 이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문맹 퇴치 운동, 초등교육 보급 및 여성 복식의 자유를 적극 반대해왔다. 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자 호메이니가 20세기 중반 이란의 시골 지방의 율법학자들이 문맹 퇴치 반대 운동을 하는 것을 직접 막아야 할 정도였다. 주로 쿠란을 제외한 다른 종교, 학문들은 서구의 타락한 학문이라며 탄압하였다. 그 결과 무슬림 국가 주민 중 중앙아시아와 튀르키예를 제외하면 대개 20~30% 가까이가 문맹이거나 기초상식도 모르는 상태이다보니 무능,타락,부패한 독재자와 이슬람 성직자가 나쁜 것은 알아도 이를 대체할 정권을 효율적으로 수립하는 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 면이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소련 시절 스탈린이 어린이들을 강제교육시켜서 문맹을 사실상 완치하였다. 스탈린 통치 시기 거의 없는 긍정적인 유산이다. 튀르키예의 경우는 케말 아타튀르크가 아랍 문자 대신에 로마자를 도입한 영향이 컸다.

그와 반대로 사우디 아라비아무함마드 빈 살만이 2017년 집권한 이후 영화관을 허용하고 방탄소년단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콘서트를 열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견제하고 내수를 진작시키고자 하는 정책이지만, 국민들 특히 젊은층이 경기 침체와 인권 탄압에 관심을 끊게 만드는 목적도 무시할 수 없다.


4. 여담[편집]


"분노증오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전의 가장 큰 적은 '지식인 주의'이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


고지능자는 정보와 지식이 해박하여 웬만한 선동과 선전에도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이 정책을 하는 정치인들의 입장에서 기득권층이 이들을 특히나 혐오한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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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민들을 우매하게 하려는 목적이다.[2] 거기에 덧붙여 스포츠 도박의 활성화.[3] 다빈치 코드 등 갖가지 떡밥의 기본재료로 많이 쓰이는 파티마 사건이 바로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벌어진 일이다.[4] 한국의 트로트에 해당하는 통속적이고 구슬픈 노래.[5] 본래 서울 올림픽 유치는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에 계획이 있었다.[6] 흔히 에로 영화라고 불리는 성인물이 해당되며, 서구권의 포르노 영화의 도입은 여전히 금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