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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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idol[편집]


보통 다신교의 모습을 만들어 놓은 것을 말한다. 뜻이 같은 관용어로 금송아지(golden calf)란 표현도 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쓰이는 표현인데 구약성경에서 나온 금송아지 모양의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에서 유래한다. 기독교에서는 금송아지 같은 것만 우상이 아니라, 하느님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 또한 우상이 된다고 본다.

주로 유일신교에서 극렬하게 배척하는 악의 상징.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이 우상숭배 금지 교리는 공통 사항이다.

종교별로 보자면 기독교 중에서는 교파에 따라 성상에 대한 입장이 갈라져 왔다. 8세기 전까지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기독교회에서는 성상을 사용해왔으나, 동로마제국 황제가 성상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정교회 내의 성상파괴파를 등용했고 이로써 성상 논쟁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정교회와 천주교(가톨릭)은 명시적으로 분리되지는 않은 상태였으므로, 로마 교황까지도 성상 논쟁에 관여해서 투닥거리게 되었다. [1] 그러나 성상 파괴파가 정교회에서 최종적으로 이단으로 확정된 이후, 동서 양 교회는 모두 성상을 종교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확정적으로 공인하게 된다. 다만 문화적인 이유와 역사적인 이유로 말미암아, 정교회에서는 그림 이콘을 주로 사용했고 가톨릭 교회에서는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입체 조상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차이는 있었다.

가톨릭의 공식 교리에서 성화와 성상의 존재 의의는 그것이 표상하는 존재, 곧 예수나 여러 성인들과 천사들에 대해 존경의 마음으로 예를 표하는 것이다. 사진이나 인물의 초상화, 동상을 보면서 그들의 삶과 업적에 대해 기억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성화나나 성상을 공경하는 것은 곧 이들이 묘사하고 있는 하느님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와 같이 믿음의 삶을 살아간 여러 성인들, 천사들의 굳건한 믿음을 기억하고 본받으려 하는 존경의 표시이다.

정교회는 초기에는 여러 종류의 성상을 사용했으나, 여러 차례 성상 문제로 투닥거리는 가운데 차츰 그림 이콘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입체 형상은 십자가 목걸이나 십자고상 정도[2]로 한정되어 있고, 그리스 신화 같은 다른 신의 형상에 대해서는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예술품'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정교회는 오히려 고대의 신전을 개조해서 교회를 만드는 데 열중했다.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도 성당으로 개조되었다가 아테네오스만 제국에 넘어가자 100년 남짓 이슬람 사원으로 쓰인 역사가 있으며, 파르테논 신전 근처의 헤파이스토스 신전은 상태가 아주 양호해서 1860년대까지 성당으로 쓰였다.

이슬람은 어떤 종교도 못 따라올 만큼 가장 반우상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슬람에서 제일가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얼굴마저 묘사하지도 않고, 모스크 내부로 들어가면 '미흐라브'라 해서 메카 방향으로 들어간 작은 공간이 상징 역할을 한다. 이렇듯 자기 종교 내의 성상은 물론 상징조차도 거의 안 만들어 두는 만큼, 자신들이 정복한 타 지역의 우상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배제한다. 하지만 지역이나 종파마다 용인수준도 크게 달랐는데, 가령 13세기 이후 몽골투르크인의 영향을 받은 이후로 페르시아에서는 중국의 영향이 분명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이는 세밀화(miniature)예술로 계승되었다. 또한 비교적 초기 무슬림 국가인 우마이야 왕조에서도 인물의 형태를 묘사한 무늬를 건축장식에 사용했다. 시아파의 경우 수니파 등 다른 종파에 비해 형상 묘사에 관대하다.

다만 앞서 언급한 '예언자에 대한 묘사 금지' 같은 금기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조각은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으며, 원리주의자들은 얄짤없다. 이슬람 왕국이 중앙아시아의 불교 왕국들과 인도의 힌두교 지역을 정복하면서 이들의 성상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기도 했고, 탈레반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폭파한 사건도 있었다. 실제로 힌두교인과 무슬림 사이 상당히 안 좋은 배경 중의 하나를 차지하기도 한다.

현재의 유대교에서는 주로 기호적 상징을 사용하지만, 성경에 의하면 솔로몬 왕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에는 커룹과 같은 천사의 형상이 새겨졌으며, 다양한 장식이 되어있었다고 전한다. 반면 오늘날의 유대교 시나고그에서는 이러한 형상을 사용하지 않고, 토라의 구절을 새긴 벽면이나 색유리의 다윗의 별, 7개의 가지가 달린 촛대 메노라 같은 기호적 상징들을 사용한다.

개신교의 경우 가톨릭에 반대하여 우상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물론 루터교회처럼 그냥 예술 작품 정도로 인정하고 남겨 두는 경향도 있긴 하지만[3] 칼뱅 계통 교파들은 십자가도 허용치 않는 경우가 많다.[4] 참고로 개신교의 우상에 대한 거부와 검소한 절제는 문화, 예술 분야에도 영향을 끼쳤다. 네덜란드의 17세기 미술이 종교화가 아닌 정물화나 풍경화, 초상화 위주로 발전한 것도 칼빈주의의 영향이란 해석이 있다.

불교의 경우 싯다르타가 열반에 들기 전 "내 형상을 조성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입멸 후 500년 가까이 불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탑이나, 법륜, 불족적 등에 예배하였다. 왜냐하면 모든 이들이 깨달으면 부처이고, 깨닫지 못하면 중생인 까닭에 위대한 존재로서의 우상이 따로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깨달으면 당신도 부처)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부처님의 모습을 갈망하는 재가 신도들 위주로 불상이 점차 조성되었다.

연예인들 중 아이돌이라 불리는 무리들의 어원도 바로 이 단어. 말 그대로 우상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붙었다. 실제 중국어로도 아이돌을 "우샹"(偶像)이라고 부른다.


2. [편집]


조선시대 의정부(議政府)의 정1품 관직인 우의정(右議政)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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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에선 가톨릭 측에선 야만족들을 교화하기 위해 성상이 필요했고, 이 때문에 이를 반대하는 동방 정교회와 결별한 것처럼 묘사했으나, 실제와는 다르다. 초창기에는 당연히 부유하고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헬레니즘의 전통 하에 있던 동지중해 지역의 교회들이 성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으며, 가톨릭 측은 성상보다는 성유물을 사용하는 빈도가 잦았다. 심지어 성상 교리의 형성 초기에는 정교회의 성상'공경'이라는 용어가 라틴어로 '숭배'로 번역되어 전해지면서, 가톨릭 측에서 이에 반대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을 정도.[2] 십자고상도 입체보다는 십자가 위에 그림으로 그려진 것을 쓰는 경우가 잦다.[3] 그런데 루터회도 원래는 성상을 인정 안 하려 했지만 당대 독일 사회의 내·외부적 이유로 교회 건물 안에 있는 것들은 부수지 못했고, 교회 바깥쪽이나 길거리에 설치된 십자고상이나 성모, 성인상들만 철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4] 대한민국의 경우도 예장합동이 십자가 부착을 교회 헌법으로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