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얼카이시 둬라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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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우얼카이시 둬라이티(吾尔开希 多莱特)는 중국민주화 운동가이다. 사진의 모습은 베이징사범대학 재학 시절에 발생한 천안문 6.4 항쟁 당시의 모습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중국인 이름과 차이가 있는데 위구르족이라서 그렇다. 위구르어식 이름은 외르케시 될레트(ئۆركەش دۆلەت / Örkesh Dölet / Өркәш Дөләт)이다.


2. 생애[편집]


1968년 2월 17일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1989년 천안문 6.4 항쟁이 일어나자 참여하여 학생운동을 주도하였다. 그와 함께 왕단이나 차이링 같은 인물도 유명하다.

시위를 이끌 당시에는 제법 잘생긴 대학생이었던지라 연설을 하는 자리마다 여자들이 눈을 부릅뜨는 수준으로 집중했다고 한다.

천안문에서의 학생운동을 주도한 주요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비한족, 즉 위구르족이었다는 점에서 본의 아니게 주목받는데, 위구르족이면서도 다른 한족들과 함께 중국이라는 나라의 미래를 향해 의견을 개진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정부가 그토록 프로파간다로 삼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구호에 걸맞는 인물인 셈이다.[1]

리펑 총리와의 회담 당시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학생 대표로 인민작주(人民作主)[2]를 요구하고, 천안문의 인민영웅기념비를 참배하고 단식 시위 등을 이어갔다. 이후 인민해방군이 강경 진압에 나서자 베이징을 탈출해서 프랑스로 갔다.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탈출을 도왔다. 이후 미국으로 가서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했으나 졸업은 하지 못했다. 대만인 여성과 결혼한 뒤 대만으로 이주하였고 대만으로 귀화하였다.

지인들에 의하면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우얼카이시 본인은 자신의 종교나 신앙 생활 관련해서(이슬람을 믿는지 기독교를 믿는지 관련해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편이다. 잘 알려져 있지만 이슬람은 원칙적으로 개종이 금지된다.



2014년 미국의 소리와 인터뷰 당시 영상이다. 젊은 시절에 비해 살이 붙었다.

2016년에 제9대 대만 입법위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했으며 2019년 3월 31일에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었다. #

2022년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 당시 펠로시 측과 만남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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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조선족(재중동포) 가운데에도 천안문 6.4항쟁에 가담했고 천안문의 진실을 알리려다 고초를 겪은 인물들이 좀 있다. 영화감독 장률도 그 가운데 한 명으로 천안문 6.4항쟁 당시 민주화에 관한 기고를 했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교수직도 짤리고 창작활동도 금지당했다. ## 또한 6월 항쟁 때의 아침이슬처럼 천안문 광장에서 학생들이 불렀던 노래 중에는 중국조선족(재중동포) 출신의 록가수 최건이 부른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一無所有)라는 노래도 있었고, 최건 본인도 광장에 와서 학생들을 만났다가 가수 활동이 정지당하는 불이익을 겪기도 했다.# 이들 역시도 외르케시와 마찬가지로 민주화된 국가로써의 중국이 지향하게 될 '하나의 중국'이라는 구호에 걸맞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2] 인민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