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아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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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아쓰토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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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1리그 엠블럼.svg

2008 · 2009


우치다 아쓰토의 기타 정보




FC 샬케 04 앰버서더
Fußball Club Gelsenkirchen-Schalke 04 e. V.

파일:external/www.uefa.com/2196524_w1.jpg

이름
우치다 아쓰토
内田(うちだ篤人(あつと / Atsuto Uchida

출생
1988년 3월 27일 (35세) /
일본 시즈오카현 타가타군 칸나미초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신체
176cm / 체중 62kg[1]
직업
축구선수 (라이트백 / 은퇴)
소속
선수
가시마 앤틀러스 (2006~2010)
FC 샬케 04 (2010~2017)
1. FC 우니온 베를린 (2017)
가시마 앤틀러스 (2018~2020)
기타
FC 샬케 04 (2021~ / 앰버서더)
등번호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2번
FC 샬케 04 - 22번
1. FC 우니온 베를린 - 2번
가시마 앤틀러스 - 2번
국가대표
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74경기 2골 (일본 / 2008~2015)

1. 개요
2. 유년기
3. 선수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수상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1. 개요[편집]


일본의 전 축구선수. 포지션은 라이트백이다.


2. 유년기[편집]


체육 교사인 아버지와 단거리 육상 경험이 있는 어머니 슬하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고 축구 명문으로 유명한 시즈오카의 시미즈히가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U-16와 U-20 대표를 거쳐 2008년 만 19세의 나이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3. 선수 경력[편집]



3.1. 클럽 경력[편집]



3.1.1. 가시마 앤틀러스[편집]


2006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가시마 앤틀러스에 입단했다. 입단과 동시에 주전 자리를 꿰차며 가시마 앤틀러스의 리그 3연패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이 활약들을 인정받아 2010년 FC 샬케 04로 이적하였다.


3.1.2. FC 샬케 04[편집]


샬케 이적 초기에는 공격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수비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바람에 비판을 받았고 이 때문에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4 시즌과 2015 시즌에 이르러서는 거의 완전체 수비수로 거듭났다. 재계약을 앞두고 무릎 근육 부상으로 인해 팀 경기에 결장이 길어지면서 재계약이냐 이적이냐에 대해 말이 많았으나 샬케와 2018년까지 계약을 연장했고 앞으로 무사히 계약 만료 기간까지 샬케에서 활약할 경우 일본인 선수로서 분데스리가 단일 팀 최장 시즌(8시즌) 을 뛰는 엄청난 기록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2015년 3월에 부상을 당한 이후로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있고 더불어 방출과 은퇴 가능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부상이 조금 호전된 듯 했는데 갑자기 시즌 개막을 앞두고 부상이 악화되어 일본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3.1.3. 1. FC 우니온 베를린[편집]


결국 샬케에서도 장기 부상으로 더 이상의 활용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인지 2017년 8월 2. 분데스리가의 1. FC 우니온 베를린으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 계약 기간은 1년이고 등번호는 2번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니온 베를린에서도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친정 가시마 앤틀러스로의 복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 가시마 측에서도 우치다의 복귀를 염두에 두었는지 그가 사용했던 등번호인 2번을 비워놨다고 한다. #


3.1.4. 가시마 앤틀러스[편집]


그리고 2018년 가시마 앤틀러스로의 복귀가 확정되었다. 등번호는 가시마에서 과거 우치다가 샬케로 이적한 후 계속 결번 처리했던 2번. # 그러나 여전히 부상 여파가 남아 있는 것인지 부동의 주전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자주 출장하지는 못하다가 결국 2020년 8월 20일 은퇴를 선언하고 23일 은퇴 경기와 24일 은퇴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2.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8년 1월 26일 칠레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2008년 6월 22일 바레인과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으로 발탁됐지만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우치다 본인 역시 이 점이 굉장히 아쉬웠는지 브라질 월드컵 16강 탈락 직후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당당히 주전으로 활약했다. 조별리그 코트디부아르전에서 전반 20분 경 드리블 돌파 후 강력한 왼발 슛팅을 날리는 등 답이 나오지 않는 일본 팀에서 그나마 혼다와 함께 고군분투 했으나 자국의 16강 진출 실패 후 대표팀에 회의감을 느끼고 [2]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를 선언 하면서 한 말이 또 걸작인데 '"우리의 세대는 끝났다. 다음 세대가 이끌어가야한다."' 라면서 은퇴했었다. 그러나 11월 친선 경기때 대표팀으로 다시 소집되어 복귀하게 되었다.

2014년 8월 2일 嵐にしやがれ (아라시니시야가레)에 출연해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꺼냈는데 코트디부아르전에서는 터치 라인 옆에 뭔가 커다란게 서 있어서 봤더니 그게 바로 드록신이었다고 한다.

또한 월드컵이 끝난 후 해산식에서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과의 작별 일화도 이야기 했는데 여기서 자케로니 감독이 "이기지 못해서 안타깝다" "만약에 다시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더라도 이 선수들과 이 스태프들과 다시 함께 하고 싶다" 라는 작별 인사를 끝내고 눈물을 보이자 통역사를 비롯한 선수들도 함께 울었다고 한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전진성이 좋은 선수이며 킥력이 상당히 좋아 전방으로 길게 찌르는 연결과 올리기가 날카롭다. 또한 속도도 굉장히 빠른 편이다.

이외에도 던지기를 매우 잘 하는데 원래 던지기는 풀백이 전담하지만 우치다는 특히 던지는 능력이 좋아서 전담하는 쪽이다. 이른바 길게 던지는 것도 가능하며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언제나 정확히 던져 연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공격력이 출중하지만 수비력은 비교적 뛰어나지 않았는데 샬케에 입단한 이후에는 성장을 거듭했는지 나름 준수한 수비력을 겸비하게 되었다.

우치다와 나가토모 유토가 양 측면을 썰어버린 게 실제로 한 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일본에게 밀렸던 큰 원인이기도 할 정도로 클럽과 대표를 가리지 않고 수준 높은 풀백으로 활약했으나 치명적인 부상을 겪은 뒤로는 신체 능력이 많이 하락한 편이다.


5. 수상[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 J1리그 베스트 일레븐: 2008, 2009

6.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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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우 수려한 용모의 소유자로 브라질 월드컵 당시 일본 경기 불판에서도 '저 선수 되게 잘 생겼네요' 같은 댓글이 자주 보일 정도였다. 사실 일본에서 외모로 주목을 많이 받아 실력이 상당 부분 저평가 된 선수이기도 하다. 분데스리가 명문구단 샬케 04의 주전 풀백이라면 리그 탑급 안에 드는 풀백이었다는 소리다. 당장 K리그나 J리그의 탑급 선수도 유럽리그에 가면 즉전감 정도는 되는데 소위 4대 리그의 최상위 클럽에서 주전이라면 꽤 높은 위상이다.

파일:우치다(였던사람).jpg
  • 하지만 잘생긴 얼굴과는 달리 스스로 패션을 가꾸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서 "ジャージで いっか."[3] 라는 명언을 남기는 등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부분 소속 팀 트레이닝 복 + 소속 팀 가방으로 무장한 패션을 자랑해 같은 일본 팀 수비수 요시다 마야에게 "너처럼 사복으로 소속 팀 가방 메고 다니는 녀석은 처음 본다." 라는 이야기도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결혼한 뒤 말끔히 차려 입은 사진들을 찾아볼 수 있어 그 패션 센스가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팬들 사이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 개인적으로 친한 선수는 삼프도리아 소속의 요시다 마야이다. 요시다가 에레디비시에서 뛰던 시절에는 국경을 넘어서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났다고 한다. 한 방송에서 "자동차에도 옷에도 돈을 쓰지 않고 오직 요시다 마야에게만 쓴다."고 말하기도 했다. 샬케 04 팀 내에서는 2015년 팀을 떠난 파리 생제르맹 FC율리안 드락슬러, 지금은 NK 로코모티바 자그레브로 가 있는 키리아코스 파파도풀로스바이에른 뮌헨의 수문장이자 주장인 마누엘 노이어와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4]

  • 특히 노이어와의 훈훈한 일화가 있는데 2010-11 시즌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경기에서 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많은 고통을 받은 자국을 위해 격려의 말을 쓴 티셔츠를 준비했는데 그걸 입을 것이냐는 노이어의 물음에 경기에서 승리할 시 입고 패배하면 입지 않겠다고 답하자 노이어는 꼭 이기겠다고 약속했고 전반종료전 프랑크푸르트의 골키퍼 랄프 페어만[5] 뒤에있던 라울을 눈치 못채고 캐칭한 볼을 내렸다가 공을 빼았겨서 당황한 나머지 반칙을 가해 페널티킥을 내주고 호세 마누엘 후라도가 침착하게 성공을 시켜 1대0으로 앞서 갔지만 후반 70분 노이어의 잘못된 판단으로 상대의 롱패스를 그대로 골로 허용하면서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장거리 골을 먹은 허용 키퍼가 되고 말았다. 당시 골의 비거리는 무려 73미터. 하지만 실점 후 경기 종료 직전 70m짜리 어시스트를 카리스테아스에게 날리며 2대1 결승골을 이끌어내며 곧바로 만회,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결과 약속대로 경기에서 승리하자 자국이 걱정되어 함께 기뻐하기를 망설였던 우치다를 노이어가 서포터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 티셔츠를 본 서포터들에게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에 대한 후원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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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선수들인 손흥민, 김진수, 구자철박주호 와도 경기 후 친근하게 다가가서 인사하고 악수하는 편이라 한국 팬들도 대부분 호감있게 보는 선수이다.[7][8] 구자철은 유니폼 교환으로 이 선수의 유니폼이 무려 두 벌이나 있다고 한다.

  • 일본 대표 축구 선수 중 일부는 개인 블로그에 게시할 소재가 떨어지면 우치다의 사진을 올리거나 우치다와 관련된 글을 쓴다.

  • 러브라이브!에서 토죠 노조미역을 맡고 있는 성우 쿠스다 아이나와 잠이 많기로 유명한 여성 성우 사쿠라 아야네가 이 선수의 팬이다. 특히 사쿠라 아야네는 한 때 우치다의 사진을 모아 놓은 폴더가 컴퓨터에 있었다고 하며 그의 결혼 소식이 알려지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 2015년 5월 25일에 소학교 시절 동창생과 결혼을 하였다고 밝혔는데 우연히도 우치다와 결혼 상대자인 동창생은 소학교 시절에도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첫 사랑이 이루어진 셈이다.

  • 시력이 0.02라고 한다. 실제로 사복 차림의 우치다를 보면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과거 비가 오는 날 경기를 할 때 선수가 잘 구분이 되지 않아서 패스를 잘못 준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었다.

  • 은퇴 이후에는 방송계로 진출한 모양. 2020년 10월부터 자신의 이름을 건 "우치다 아츠토의 풋볼타임(内田篤人のフットボールタイム)의 메인 MC를 맡게 되었다.#

  • 방송 진행 중 같은 국적의 선수인 미나미노 타쿠미를 만나러 영국의 리버풀로 향했고, 그 과정에서 과거 같은 팀에서 활약했던 현 리버풀 FC조엘 마티프,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같이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토트넘 홋스퍼 FC손흥민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9] 정황상 리버풀과 토트넘의 2차전에서 만난듯 하다.

[1] 일본 축구 협회 공식 프로필[2] 후술하겠지만 축구를 그냥 단순하게 직업으로만 보는 선수라 대표팀에 대한 열정이 없어서 은퇴했다고 비판한 일본 팬들도 꽤 있었다.[3] 해석하자면 "저지면 되겠지."[4] 아시아인으로서 독일에서의 적응이 힘들까봐 노이어가 우치다를 상당히 많이 챙겨주었다고 한다.[5] 샬케에서 노이어에게 밀려서 이적한 선수였다. 노이어가 뮌헨으로 이적한 뒤 다시 샬케로 복귀 [6] 또한 이 경기 당시 우치다가 1대1 찬스에서 날린 슈팅이 골포스트를 맞고 나오기도 했다.[7] 여담으로 저 경기는 2011년 삿포로 한일전이다.[6][8] 해외파 일본인 선수들의 경우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한국 선수들과의 친분 표시가 잦은 편이다. 박주호가 도르트문트에서 뛰던 시절 주전 선수 어느 누구도 박주호와의 SNS 사진이 없는 등 팀 내에서 소외되어 있었는데 오직 카가와 신지만이 박주호 선수를 잘 챙겨준 적이 있다.[9] 손흥민에게 독일어로 "독일어 아직 까먹지 않았지?"라며 농담을 건네고, 손흥민도 독일어로 "물론이지!" 라고 답하며 서로 독일어로 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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