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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尉古眞
남북조시대 북위의 관료.
탁발규가 하란부(賀蘭部)에 있을 때 하란염간이 후인을돌(侯引乙突) 등을 행궁으로 파견하여 탁발규를 도모하려고 했다. 울고진은 이를 사전에 알아채고 몰래 탁발규에게 알려서 후인을돌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하란염간은 울고진이 자신의 계획을 탁발규에게 누설했을 것이라고 판단해서 울고진을 붙잡았다. 하란염간은 두 개의 차축으로 울고진의 머리를 누르고 그의 한쪽 눈을 다치게 했지만 울고진이 자백하지 않아서 울고진을 풀었다.
386년, 탁발규가 대나라의 부흥을 선언한 뒤 국호를 위(魏)로 고쳤다. 울고진은 탁발규가 고막해(庫莫奚)와 질돌린(叱突隣)을 정벌할 때 모두 공을 세웠다. 또한 하란부를 구원할 때 유위진의 아들인 유직력제(劉直力鞮)를 토벌하고 참합피 전투에서 후연의 모용보를 물리칠 때 공을 세웠다.
울고진은 북위가 중원을 평정할 때 종군하여 속주후(束州侯)에 봉해졌고 건절장군(建節將軍)이 더해졌다. 명원제가 즉위한 뒤 홍비장군(鴻飛將軍)이 되었고 5,000명의 군사들을 거느려 대락성(大洛城)에 진수하였다. 명원제가 서쪽을 순시할 때 울고진은 해근(奚斤) 등과 함께 선봉이 되어 월륵부(越勒部)를 정벌하여 말 5만 마리와 소 및 양 20만 마리를 노획하고 부족원 2만 명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418년 정주자사(定州刺史)에 제수되었고 이후로 알려진 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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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尉古眞
남북조시대 북위의 관료.
2. 생애[편집]
탁발규가 하란부(賀蘭部)에 있을 때 하란염간이 후인을돌(侯引乙突) 등을 행궁으로 파견하여 탁발규를 도모하려고 했다. 울고진은 이를 사전에 알아채고 몰래 탁발규에게 알려서 후인을돌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하란염간은 울고진이 자신의 계획을 탁발규에게 누설했을 것이라고 판단해서 울고진을 붙잡았다. 하란염간은 두 개의 차축으로 울고진의 머리를 누르고 그의 한쪽 눈을 다치게 했지만 울고진이 자백하지 않아서 울고진을 풀었다.
386년, 탁발규가 대나라의 부흥을 선언한 뒤 국호를 위(魏)로 고쳤다. 울고진은 탁발규가 고막해(庫莫奚)와 질돌린(叱突隣)을 정벌할 때 모두 공을 세웠다. 또한 하란부를 구원할 때 유위진의 아들인 유직력제(劉直力鞮)를 토벌하고 참합피 전투에서 후연의 모용보를 물리칠 때 공을 세웠다.
울고진은 북위가 중원을 평정할 때 종군하여 속주후(束州侯)에 봉해졌고 건절장군(建節將軍)이 더해졌다. 명원제가 즉위한 뒤 홍비장군(鴻飛將軍)이 되었고 5,000명의 군사들을 거느려 대락성(大洛城)에 진수하였다. 명원제가 서쪽을 순시할 때 울고진은 해근(奚斤) 등과 함께 선봉이 되어 월륵부(越勒部)를 정벌하여 말 5만 마리와 소 및 양 20만 마리를 노획하고 부족원 2만 명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418년 정주자사(定州刺史)에 제수되었고 이후로 알려진 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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