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카 엘레오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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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스웨덴의 국왕으로,[2] 칼 11세의 둘째 딸이자 칼 12세의 여동생이다.
1715년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와 결혼하였으며 자녀는 없었다. 평범한 왕족 여성으로 살 수 있었으나 1718년 11월 30일 오빠 칼 12세가 대북방전쟁에서 노르웨이 침공 중 전사하자 조카인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 카를 프리드리히[3] (1700 ~ 1739)와 사촌 팔츠츠바이브뤼켄 후작(Fürst) 구스타프 자무엘 레오폴트와 왕위를 놓고 분쟁을 벌인 끝에 아르비드 호른이 이끄는 스웨덴 의회의 지지를 받아 1718년 즉위했다. 본래 언니의 아들이기에 카를 프리드리히의 계승권이 더 앞섰으나 카를 프리드리히가 외증조할머니이자 울리케 엘레오노레의 할머니에게 응석받이로 키워져서 워낙 성격이 오만방자한 탓에 스웨덴 정치권이 하도 질린 나머지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손을 들어준 것. 카를 프리드리히는 본인에게 더 가까웠던 스웨덴의 왕위를 이어받지 못한 것은 물론 무능함으로 인해 그나마 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홀슈타인고토르프 영지마저 거의 다 잃어서 그 아들인 표트르 3세는 친척집을 오가며 떠도는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다.
2년뒤 남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며 남편은 1720년에 프레드리크 1세로 즉위했다. 이후 여왕이 아닌 남편 프레드리크 1세의 왕비로 살다가 1741년 11월 24일에 천연두로 사망했다.
1. 개요[편집]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스웨덴의 국왕으로,[2] 칼 11세의 둘째 딸이자 칼 12세의 여동생이다.
2. 생애[편집]
1715년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와 결혼하였으며 자녀는 없었다. 평범한 왕족 여성으로 살 수 있었으나 1718년 11월 30일 오빠 칼 12세가 대북방전쟁에서 노르웨이 침공 중 전사하자 조카인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 카를 프리드리히[3] (1700 ~ 1739)와 사촌 팔츠츠바이브뤼켄 후작(Fürst) 구스타프 자무엘 레오폴트와 왕위를 놓고 분쟁을 벌인 끝에 아르비드 호른이 이끄는 스웨덴 의회의 지지를 받아 1718년 즉위했다. 본래 언니의 아들이기에 카를 프리드리히의 계승권이 더 앞섰으나 카를 프리드리히가 외증조할머니이자 울리케 엘레오노레의 할머니에게 응석받이로 키워져서 워낙 성격이 오만방자한 탓에 스웨덴 정치권이 하도 질린 나머지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손을 들어준 것. 카를 프리드리히는 본인에게 더 가까웠던 스웨덴의 왕위를 이어받지 못한 것은 물론 무능함으로 인해 그나마 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홀슈타인고토르프 영지마저 거의 다 잃어서 그 아들인 표트르 3세는 친척집을 오가며 떠도는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다.
2년뒤 남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며 남편은 1720년에 프레드리크 1세로 즉위했다. 이후 여왕이 아닌 남편 프레드리크 1세의 왕비로 살다가 1741년 11월 24일에 천연두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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