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단란주점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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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30분 사이에 벌어진 살인사건
3. 여종업원의 허리띠
4. 유일한 증거인 혈흔
5. 목격자들의 증언
6. 재수사
7. 유사 사건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2001년 7월 4일, 울산광역시 중구 옥교동에 위치한 단란주점에서 여주인 박 씨(당시 41세)와 여종업원 김 씨(당시 41세)가 흉기에 찔려 살해당한 사건이다. 3명의 유력한 용의자가 있었고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혈흔이 있었고 혈액형을 분석한 결과 AB형으로 밝혀졌으나 거기까지였고 결국 범인을 체포하는데 실패해 현재까지 22년 째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2. 30분 사이에 벌어진 살인사건[편집]


이야기는 2001년 7월 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날 저녁 7시 쯤 업주 박 씨는 평소처럼 손님들의 안주거리를 준비해 단란주점으로 출근했다. 그로부터 2시간 정도 혼자 일을 하는 도중에 밤 9시 반 쯤에 여종업원 김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손님이 많으면 일 도우러 가겠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김 씨는 박 씨와 통화하고 30분 정도 지나 단란주점에 왔다. 이후 손님이 점점 늘면서 일이 바빠져 다음 날인 7월 4일 새벽 2시경에야 여유가 생겼다. 박 씨의 단란주점은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상가건물의 지하에 있었고 주점 내부에는 사방의 벽면을 따라 설치된 간이 방이 6개 있었다. 또 중앙홀의 한가운데에 직사각형의 큰 테이블이 1개가 있었고, 홀 안쪽에 소형 원형 테이블이 1개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새벽 2시 50분, 그 단란주점이 있는 건물 2층의 중국집 사장은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단란주점 안으로부터 새어오는 신음소리를 들었다. 그는 곧바로 단란주점으로 내려가 내부를 들여다 보았는데, 그가 보았던 광경은 두 여성이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참혹한 상황이었다. 주인 박씨와 종업원 김씨가 피가 흥건한 주점 중앙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여주인 박 씨는 중앙홀 큰 테이블 옆 바닥에 엎드린 채로 쓰러져있었고, 김 씨는 홀 안쪽 원형 테이블 옆 바닥에 천장을 향해 누워있던 상태였다. 박 씨는 배와 등 그리고 머리 쪽 다섯군데에 칼에 찔렸고 김 씨는 배와 가슴 쪽 네군데에 칼에 찔려 만들어진 상해가 있었다. 업주 박 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지만 종업원 김 씨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는데, 김 씨는 숨을 헐떡이며 살려달라고 중국집 사장에게 말했다. 신고하기 위해 본인의 가게로 향하던 중, 중국집 사장은 방금 전 목격한 세명의 남자를 떠올리고 곧 바깥을 살펴봤지만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곧바로 경찰과 구급대를 불렀다. 곧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아직 숨이 붙어 있었던 김 씨를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안타깝게도 김씨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세상을 등졌다.

경찰은 이 사건이 일어난 시각을 7월 4일 새벽 2시 21분~2시 50분 사이로 보았다. 왜냐하면 사망한 여종업원 김 씨가 새벽 2시 17분에 지인과 통화를 했는데, 통화가 4분 정도 이어졌고 최초 발견자인 중국집 사장이 사건 현장을 목격한 시각이 새벽 2시 50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30분 사이에 살인사건의 모든 과정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중국집 사장이 목격한 바에 따르면 자신은 새벽 2시 10분 쯤부터 40여 분 가량 담배를 피우며 단란주점 주변 상가를 내려다 봤는데, 단란주점 입구에서 3명의 남자들이 수군거리고 있었고 또 다른 남자 1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곧 그들은 떠났고 잠시 뒤 단란주점 내부에서 이상한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을 들은 중국집 사장이 급히 달려가 소리의 진원지를 확인한 것이다.

살해당한 두 사람을 부검한 결과에 따르면, 두 사람의 사인은 예리한 칼에 의한 자창으로 실혈사 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범인이 사용한 흉기는 예기이지만 두 사람의 머리에서 둔기로 인한 상처도 발견되었다. 자창을 살펴보면 살해에 사용된 칼은 두 종류인 것으로 여겨진다. 한가지는 끝이 날카롭지 않아 원만한 외날칼이고 다른 한가지는 날카로운 양날칼인 것으로 생각된다. 더 나아가 박 씨의 옆구리 쪽에는 내부 장기가 밖으로 나온 손상이 있는데, 이런 넓은 형태인 할창이 생기려면 보통 형태의 칼 가지고는 어려우므로 톱니가 있는 칼일 가능성이 높다다. 이와 같은 관찰을 종합하면, 여러 개의 무기를 사용하는 범인이 한명인 경우는 드무니 여러 명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처음엔 강도살인이 아니냐는 주장에 있었다. 그러나 여주인 박씨의 지갑과 주점의 현금보관함에는 당일 영업으로 번 돈 136만 4,000원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본래 강도살인의 주목적은 돈인데 돈을 강탈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살인이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돈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니 당연히 강도살인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다만, 카운터를 뒤진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주인이랑 종업원들이 사망했으니 카운터에서 도난당한 정확한 돈의 액수는 알 수 없지만 카운터에 있는 돈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생각하고 그 돈만 가져간 가능성도 있다.


3. 여종업원의 허리띠[편집]


당시 사건 현장을 보면 중앙홀의 사각 테이블 위에 세개의 맥주잔이 있었고 그 옆에 맥주 네 병이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 3개의 술잔이 범인과 여주인 박 씨, 여종업원 김 씨가 사용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김 씨의 헐렁한 청바지에 맨 허리띠가 풀려있었다는 것과 함께 박 씨는 신발을 신은 상태였지만 김 씨는 신발 한 쪽이 벗겨져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범인이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성폭행을 시도하려 한 흔적으로 여겨졌다. 즉, 범인이 여주인과 종업원에게 먼저 성매매를 제안했고 이를 거절한 두 사람과의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져 살인사건으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게 경찰의 추정이었다.

업주와 종업원의 지인들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각각 한 차례 이혼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남자관계가 복잡하지 않았고, 모두 성매매 자체를 금기시할 만큼 정직하게 주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김 씨 시신에 남은 흔적을 토대로 사건 현장을 재현해 보면 범인은 김 씨와 성관계를 맺고 싶어 범인이 김씨를 강제로 추행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업주 박 씨가 거칠게 달려들었고, 이에 당황한 범인이 소지하고 있던 흉기를 꺼내 박 씨를 살해한 다음 입막음을 위해 김 씨까지 살해하고 달아난 것으로 판단되었다. 즉, 이는 계획된 범죄가 아니라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라는 것이 경찰이 추론한 상황이다.

실제로 김 씨의 체내에서 정액 반응이 나왔지만 유전자가 섞인 채로 검출되어서 실제로 성폭행을 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욱 혼란을 가중시켰다. 정액은 여성의 체내에서 3일동안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단지 그 사건이 벌어진 날이 아니더라도 그 전날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졌었을 때 그녀의 체내에 남겨진 다른 남성의 정액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성범죄는 아니라는 점에 무게를 두었는데, 범인의 체액을 남기지 않았고 굳이 성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옷을 입힐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4. 유일한 증거인 혈흔[편집]


수사 초기에 경찰은 용의자를 세명의 남성으로 추정했다. 이는 당일 오전 2시까지 주점 중앙홀 사각 테이블에서 술을 마신 4명의 손님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한 것이다. 사각 테이블에 있었던 손님들은 경찰 조사에서 자신들이 주점을 떠나기 30분 쯤 전에 3명의 남자들이 술집으로 들어왔고 모두 여종업원과 함께 홀 안쪽 룸에서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다. 그래서 경찰은 이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이후 재수사를 하면서 이들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쪽으로 변경했다. 왜냐하면 김 씨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전화 내용 때문이었다.

김 씨는 사건 당일 새벽 2시 17분에 지인과 전화를 했는데 그 때 김 씨는 현재 손님이 아무도 없으며 여주인 박 씨와 단 둘이 있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로 볼 때 당초에 지목한 3명의 용의자들도 모두 새벽 2시 17분 이전에 단란주점을 떠났으므로 사건이 일어난 새벽 2시 21분~2시 50분 사이엔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위에 통화내역에서 빠진 내용이 있는데, "손님 한 테이블을 받고 주인하고 둘이 조용히 있다" 여기에서 손님 한 테이블이 어떤 의미인 것인지 중요한데 아무래도 한 테이블을 제외하면 단 둘밖에 없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 테이블이라고 말할때 손님이 한명보다 여러명일 가능성이 있다. 보통 손님이 한명 뿐이라면 한명 밖에 없다고 말하고 여러명의 손님이 테이블 한개를 차지하고 있으면 손님 한 테이블있다 라고 말한다.

현장 조사에서 기가 막혔던 점은 범인의 지문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술을 마실 때 장갑을 끼고 술을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문에 당연히 범인도 맨손으로 술을 마셨을 것이므로 술잔이나 술병에 범인의 지문이 묻어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현장에 남아 있던 술병과 술잔에서는 범인의 지문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범인이 지문을 지웠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단란주점의 술병과 술잔 관리방식 때문에 지워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박 씨는 본래 시원한 맥주를 원하는 손님들을 위해 맥주와 잔을 냉장고에 보관했고 손님이 올 때마다 냉장고에서 꺼내 내놨다고 한다.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되어 있던 맥주병과 술잔은 상온으로 나오면 겉에 이슬이 맺히게 되는데, 이 이슬 때문에 기름 성분이 대부분인 지문이 남겨지지 못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범인이 직접 지문이나 증거들을 없애려고 시도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증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범인은 딱 한 가지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그것은 바로 핏자국이다. 지하 1층 단란주점에서 건물 1층으로 통하는 계단과 그 벽면에 약 10방울의 핏자국이 있었다. 피해자들의 시신은 모두 지하 1층의 단란주점 내부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이 혈흔은 자연스럽게 범인의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그곳에서 발견된 피의 혈액형은 AB형이었는데, 피해자 박 씨의 혈액형은 B형이었고 김 씨의 혈액형은 A형이다. 그러므로 이 AB형 혈액형 핏자국의 주인이 바로 범인일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 특히 주변 상인들의 말로는 그 날 단란주점에서 이 살인사건을 제외하고 별 달리 소란스러운 일이 없었다고 했으므로 더욱 가능성이 높다.

당시 단란주점 주변에는 CCTV가 단 한 군데도 없었고 일부 상가에 CCTV가 있긴 했지만 단란주점 쪽으로는 향하지 않았다. 단란주점을 향하고 있던 CCTV의 영상도 화질이 좋지 못하여 구체적인 범인의 모습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게다가 AB형 혈액형을 가진 남성이 한 둘이 아닌만큼 이 혈흔도 완벽한 물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이 사건은 22년 째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5. 목격자들의 증언[편집]


범행 직후라고 추정되는 2시 50분 이후에 옥교동 사거리 근처에서 3명의 남자를 봤다는 목격자들이 있었다.

첫번째 목격자는 앞서 언급되었던 중국집 사장이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계단 입구가 어두운 관계로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자세히 보지 못했다. 1명의 뒷모습은 머리가 길었고 다른 1명은 스포츠형 머리인데, 그들이 입은 옷의 색깔이나 모양은 정확하지 않았다. 뒷모습을 볼 때 1명은 얼굴이 좀 클 것 같다고 증언하였다.

두번째 목격자는 근처 다른 주점 여종업원이다. 그녀는 경찰차가 오기 10분 전에 두 사람이 한 명을 10m 간격으로 따라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들은 동사무소 쪽으로 갔다. 1명은 20대의 키가 크지 않은 165cm 정도의 키와 곤색 가로 줄무늬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스포츠형 머리를 했다고 한다.

세번째 목격자는 새벽 3시경에 남자 3명을 태웠다는 택시 기사이다. 그는 24시 편의점 앞에서 그들을 태웠고 울산역(현 태화강역)을 향해 300m쯤 갔을 때 그들은 속이 안 좋다며 중간에서 내렸다고 한다. 택시기사는 중국집 사장과 다른 주점 여종업원에 비해서 그 세명의 인상착의를 보다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명은 20대 후반에 몸집이 큰 편에 얼굴이 넓고 둥근 얼굴이 험상궂었고 머리가 약간 긴 스포츠형 머리였다. 그는 울산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 다혈질 성격으로 판단되었다고 한다. 다른 1명은 20대 후반에 호리호리한 체격이었고 보통의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의 구체적인 얼굴형과 인상착의는 모르겠으나 그는 울산 사투리를 썼다고 한다. 또 다른 1명에 대해서는 20대 후반에 체격은 호리호리한 편이라는 점만 택시기사는 기억했다.

이 외에도 2시 반경에 다른 동네의 중국집 배달원이 집에 가던 중에 술을 더 마시고 싶어서 사건이 난 주점에 들렀는데, 그가 목격한 바를 증언한 내용에 따르면, 그가 계단을 다 내려가지 않았는데도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곳에서 남자들과 여주인의 싸움을 목격했고 말다툼 중에 "네가 이럴 수가 있냐"면서 여자가 따지자 한 남자가 카운터에 있는 칼을 가지고 여주인을 찔렀다고 진술했다. 이 증언을 가지고 면식범이 아닌가 수사해봤지만 연관이 될 만한 부분은 없었다.[1] 특히 이 증인은 어렸을 때부터 자폐증세가 있었고 그가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그대로 진술하기 보다는 다른 기억들과 섞어서 그 상황에 대해 증언했을 거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게다가 증언한 날짜가 7월 27일이라서 사건 당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때였다.


6. 재수사[편집]


본래 이 사건은 2016년 7월 4일공소시효가 만료될 사건이었으나 태완이법이 통과되면서 2000년 8월 1일 이후에 일어난 살인사건들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범인이 살아있기만 하면 체포해서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울산경찰청에서는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을 발족하여 이 사건을 다시 꼼꼼히 살피고 있다고 한다. 이 전담수사팀의 팀장 장갑병 경위는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 보며 수사 초기에 누락된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있다."고 하며 이 사건은 계획된 범죄가 아닌 면식범의 우발적인 범행이며 돈을 노린 범죄도 원한 관계에 의한 범죄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7. 유사 사건[편집]


1998년에 일어난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과 유사점이 있다는 의견이 많다. 범인이 3명이라는 점, 장소가 유흥업소라는 점, 범행도구와 살해수법이 비슷하다는 점, 범행 시각이 새벽 2시경으로 비슷하다는 점 등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먼저 벌어진 사건은 공소시효 폐지 적용을 받지 못해 영구 미제 사건이 된 반면, 나중에 벌어진 사건은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범인이 잡히기만 하면 얼마든지 죗값을 물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2층이 중국집인것도 공통점이다.


8.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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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식범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던 사람이 여주인과 동거하던 남자였는데, 유족들이 가장 의심스러워했던 사람이다. 다만, 이 사람은 알리바이가 확실하였는데, 중국집 사장이 처음 신고하고 나서 걸려온 전화가 이 사람의 전화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통화 이후에도 현장으로 급히 달려온 사람이고 혈흔과의 DNA 대조 결과도 불일치이었기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