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무거동 인터넷 카페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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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개요
2. 상세 내용
2.1. 최형규의 범행
2.2. 시신 발견
3. 피의자 자수로 인한 사건 종결과 재판
4. 둘러보기


1. 사건개요[편집]


2007년 10월 22일, 울산광역시 남구 무거동 주택가 에 위치한 자신에 집에서 강원도 강릉시[1]에 주소를 둔 61세 남성이 울산광역시에서 인터넷 카페 '60대 클럽' 을 통해 교제하던 61세 여성을 전깃줄[2]로 목을 졸라 살해한 사건이다.

2. 상세 내용[편집]



2.1. 최형규의 범행[편집]


이 사건의 용의자인 최형규(당시 61세)[3]강원도 강릉시 월호평동에 주소를 두고 있었으며,[4] 사건이 발생하기 7개월 전인 2007년 3월 무렵에 카페 채팅[5]을 통해 1946년생 동갑내기인 주부 이모(61, 여)씨[6]를 만났다.

그런데 그 교제도 잠시, 2007년 10월 23일 새벽[7], 최형규가 살고 있었던 울산 무거동에 있는 김모(68)[8]씨의 집 셋방[9]에서, 최형규는 이 씨와 자신의 성 능력 관련[10]으로 다투다 격분해 이씨를 침대 매트리스 위에 밀친 뒤 전기장판에 연결된 전선을 이 씨의 목에 감고 양손으로 쎄게 당겼고, 이 씨는 목이 졸려 호흡곤란으로 질식사했다.

이때 이 씨의 사망을 확인한 최형규는 아무런 구호 조치도 없이 셋방 문에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를 챙겨 도주했다.[11][12]

그로 인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이 씨의 가족은 바로 당일인 23일에 날이 밝자마자 실종신고를 하였지만 두 달가량 깜깜 무소식이었다.

2.2. 시신 발견[편집]


그로부터 56일 후인 2007년 12월 17일 밤 10시, 집주인 김 씨가 한 달이 넘도록 월세가 밀려있어 밀린 월세를 받을 목적으로 최형규를 찾으러 가 봤으나, 문을 수차례 흔들어도 인기척이 없는데다가 최형규의 소행에 의해 문은 자물쇠가 채워진 상태로 잠겨 있으면서 안에 사람은 없는데 텔레비전 소리가 밤낮으로 나고 있었고 문틈 사이로 역한 냄새가 나자, 이에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김 씨는 자물쇠를 부수고 셋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김 씨는 안으로 들어가자 무언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그의 앞에서 목이 전선에 감겨 숨져있는 이 씨의 시체가 침대 위에서 발견되었던 것이다.[13] 이 상황을 최초로 확인한 김 씨가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울산남부경찰서는 같은 달 24일에 최형규를 공개수배했으며 이때 검거나 자수 등의 소식이 없었는지 지명수배 되었으며 2008년 하반기 고유번호 1번 2009년 상반기 2번 2009년 하반기 4번 으로 올라왔다.[14]


3. 피의자 자수로 인한 사건 종결과 재판[편집]


2009년 9월 9일[15] 오후 4시[16], 최형규는 전국을 떠돌며 2년간 도피생활을 해 오다가 결국 제발로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하여 사건은 종결되었다.[17]

2009년 11월 3일, 울산지방법원은 최형규에 징역 12년을 선고했으며, 최형규는 얼마 안 가서 항소하였지만, 부산고등법원이 항소를 기각해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2021년 9월 8일에 만기출소했다.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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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배 전단 상 강릉시 월호평동이나, 주민등록 말소 상태였다.[2] 후술할 내용대로 정확하게는 전기장판에 연결된 플러그선이다.[3] 1946년생.[4]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로 실거주지는 불명인 걸로 드러났다.[5] 당시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상 사건개요에는 운동을 하다가 만나게 된 사람이라 나오는데, 사건 당시 기사에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연결된 사람이라 나왔다.[6] 자수 당시 기사에는 박씨로 나와있으나, 수배 당시 사건 개요 및 사건 기사에는 이씨로 나와있다.[7] 당시 수배전단 상 사건 개요에는 22일 밤 10시로 기록되어 있다.[8] 1939년생.[9] 시신 발견 당시 기사에서는 주택가로 나오는데, 주택 안에서 일부는 주인이, 나머지는 세입자가 사는 구조로 되있는 식일 가능성이 높다. 이와 별개로 당시 기사에 따라 집주인 김 씨가 이 씨로 기재된 기사가 존재한다.[10] 당시 수배전단 상 사건 개요에는 같이 있던 중 순간적인 욕정에 의해 이씨를 강간하려다 저항하자 살해한 걸로 기록되어 있다.[11] 흔히 학교 교실마다 앞문을 잠그기 위해 하나씩 구비되어 있는 아래에 열쇠를 꽂아 돌리는 방식의 무거운 자물쇠를 사용했다.[12] 후술하겠지만, 이때 최형규는 급한 마음에 시청하고 있던 텔레비전을 끄지 않은 상태로 도주했다.[13] 당시 문틈 사이로 난 역한 냄새의 정체는 이씨에게서 난 시취였다.[14] 특징이 있다면 신장 166~167cm, 몸무게 55kg, 왜소한 체격, 갸름한 얼굴, 단정한 복장, 모자착용, 강원도 말씨에 이발사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찰은 밝혔다.[15] 사건이 발생한지 624일 만이다.[16] 최형규가 경찰에 자수했다는 기사는 10일에 쓰였으나, 그 전날에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했다.[17] 자수 당시 기사에는 최형규에 의해 살해당한 이씨가 박씨로 오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