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성일동 강제 철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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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개
3. 사건의 여파 및 의의


1. 개요[편집]


회색도시 시리즈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 1980년대 중후반 혹은 1990년대 초반[1] 1월 26일 새벽 1시에 일어난 사건으로, 백석그룹의 원조를 받은 선진개발용역[2]의 철거반 일백여명이 울산 소재의 성일동 재개발지구의 거주민 2백여 가구의 철거를 강행하였다. 여기서 다수의 거주민들이 다치고 경찰의 미온조사로 인해 울산 지역신문과 대중에게 울산경찰서는 시위단의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3]


2. 전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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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사건 이전까지 선진개발용역은 말 그대로 건축 업체의 용역을 맡는 단순한 노동 집단에 불과했다. 다만 우두머리 황도진과 2인자 김성식이 울산에서 알아주는 주먹들이었으며 이들은 폭력의 우위를 앞세워 다소 불법적인 행위로 유리한 일감을 따내었다. 그러나 이들이 폭력을 내세우는 조직이긴 하나 황도진은 '주먹 세계에도 이쪽만의 의리라는 것이 있다'라는 명목하에 타인에게 아주 심각한 피해(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를 주는 행동은 삼가왔다. 이것이 실리를 추구하고 잔혹한 성정의 2인자 김성식에겐 항상 불만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백석그룹 측에서 선진개발용역에게 일감을 의뢰한다. 의뢰 내용은 골칫덩이 울산 성일동 재개발지구[4]의 거주민들을 쫓아내고 주택들을 부숴달라는 것. 백석 그룹 측은 경찰에게도 손을 써주고 의뢰 비용도 두둑히 챙겨주겠다고 제안했으나 황도진은 평소 그의 지론답게 도덕적인 이유로 연이은 백석의 러브콜을 무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성식은 이 백석 그룹의 제안이 선진화파의 성장에 결정적인 기회가 될 것이라고 직감, 황도진 몰래 자신의 부하들을 이용해 장비를 끌고 1월 25일 저녁 7시경에 급습을 감행했다. 처음엔 거주민들에 의해 저지 당했으나 6시간 후, 26일 새벽 1시경 철거반원 백여명을 동원해 자고 있던 거주민들을 내쫓고 가재도구를 부대자루에 담은 뒤 포크레인과 탑차 등을 동원해 가옥들을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정은창의 여동생 정은서가 죽었고[5] 철거반원들은 야간 항의 시위를 전개하는 주민 대표 5명과 대학생 등 세입자들 24명을 파이프와 각목으로 폭행, 중경상을 입혔다.

분명 상해죄 및 사유재산 침해이나 울산 성일동 재개발지구의 관할 경찰서인 울산경찰서는 백석그룹이 예전부터 키워온 장학생[6]들 때문에 미온 수사로 일관, 사건 발생 후 2시간이 지난 새벽 3시경에 1개 중대의 전경을 파견했으나 실질적인 현장 통제 작업은 하지 않고 시늉만 하다가 귀환한다. 이후에도 늑장 대응에 사과와 재조사를 요구하는 언론과 거주민들에게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식의 입장 표명으로 피해자들과 언론을 열받게 하였다. 심지어 현장에서 다량의 혈흔이 발견되어 주거민 측이 심층 조사를 의뢰했으나 경찰은 "아 님들 그거 님들 주먹 싸움 하느라 피 난거 ㅎㅎ"라는 식의 입장으로 조사를 거부, 분노한 시위대의 밤샘 시위를 받기도 했다.

결국 사건은 재조사가 진행되지 않고 그 어떠한 경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채 종결. 울산 성일동 철거 사건은 공문서의 기록으로 남지 않아 언론과 당시 사건의 목격자들에 의해서만 기록이 남았다.


3. 사건의 여파 및 의의[편집]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집 안에 있었던 정은서가 건물 파편에 깔려 한쪽 팔이 잘려나간 채 압사당했고 선진화파는 백석 그룹의 지원으로 각종 범법행위로 수익을 창출하는 폭력 조직 선진화파로 조직의 성격이 변화하였다. 그리고 은서의 오빠인 정은창은 여동생의 잘려나간 팔을 보고는 완전히 미쳐버렸고 패닉상태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린후 여동생을 이렇게 만든 선진화파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린 다음 조직의 1인자 황도진을 없애기로 결심했고 성인이 되자마자 깡패의 길로 뛰어들었다.

한편, 경찰은 범죄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너무나 커버린 선진화파를 박멸하기 위한 선진화파 소탕 작전을 벌였는데 이 작전을 전두 지휘하던 박근태는 정은창이 황도진에게 복수하기 위해 벌인 돌발행동 때문에 본의 아니게 도세훈을 오인사살하고 말았고 장희준의 꾀임에 타락하였다. 결국 선진화파 소탕 작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속의 피해자들은 모두 이 철거 사건에 의해 생긴 것이다.

회색도시2의 12년 뒤를 다룬 회색도시는 타락한 박근태에 의해 친딸 유아연이 눈 앞에서 폭사당하고 억울한 누명으로 수년간의 잠입 수사의 공로는 모조리 물거품이 된 뒤 감옥에 수감된 유상일이 출소하며 꾸미는 복수극으로 시작되니 회색도시 시리즈의 출발이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회색도시 시리즈의 트러블메이커였던 선진화파는 사실 2인자 김성식이 주도한 사건들에 의해 조직의 지향점이 바뀐 탓인데, 이 때문에 김성식이 없었거나 황도진이 성일동 사건만이라도 그를 제압할 수 있었다면 작중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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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이럴 마켓팅으로 나온 가상의 신문에서는 신문 인쇄일자가 19xx년이라고 나와있었으나 회색도시2 내에서의 컨텐츠를 기준으로 하면 사건 발생일자는 1980년대 중후반~1991, 92년즘이 된다. 97년도에 광역시로 승격된 울산을 경상도 울산이라고 부르는 점도 근거 중 하나.[2] 이 사건 이후 선진개발용역은 백석을 등에 업고 대폭 성장, 선진화파로 이름을 고치고 울산에서 서울로 본거지를 옮긴다.[3] 회색도시는 실제 서울을 배경으로 한 게임인지라 울산의 성일동도 실존하는 행정구역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울산광역시에는 성일동이라는 구역이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했던 적도 없다.[4] 실제 울산의 행정동으로 추정되는곳은 울산 중구 성안동이다.[5] 김성식이나 황도진이나 "죽은 사람은 없었다"고 하는 걸 봐서는 은서가 정은창의 지시대로 아무에게도 문을 열어 주지 않은채 조용히 숨어 있자 용역원들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그대로 철거를 하는 과정에 휩쓸려 압사한 것으로 보인다. 정은서의 시체는 정은창이 수습했기 때문에 아마 경찰도 발견하지 못하고 이 사건이 마무리 된 것으로 보인다.[6] 재능은 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인재들에게 백석 장학 재단에서 장학금을 주고 대학에 입학, 졸업 후 경찰로 취업하면 그 대가로 경찰 내의 정보를 빼내오거나 백석의 명령에 따라 경찰 내부의 일들을 조정하는 일을 맡은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