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초등생 방화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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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건 전개
2.1. 청테이프로 결박당한 채 죽은 소년
3. 의문점
3.1. 문을 잠그지 않은 아이
4. 범인을 잡을 단서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2006년 9월 6일 울산광역시 남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박 모 군(당시 7세)[1]이 사망한 사건이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히 화재 상황에서 아이가 미처 대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였으나 아이가 발견되었을 때 입과 양손이 청테이프로 결박되어 있어 범인이 박 군을 먼저 공격해 결박시켜 놓은 후 불을 지른 방화 살인 사건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수사에도 불구하고 용의자를 찾지 못했고 현재까지 17년째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2. 사건 전개[편집]



2.1. 청테이프로 결박당한 채 죽은 소년[편집]


2006년 9월 6일 오후 3시 52분 울산남부경찰서 강력4팀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소방대원이었는데 달동의 모 아파트 13층에서 일어난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현장에서 살해당한 것처럼 보이는 소년의 시신 1구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소방대원이 업고 나온 소년은 그 집에 거주하던 7세의 박 군이었는데 입과 양손이 청테이프로 단단이 결박되었기 때문에 구출한 소방대원이 급히 아이의 몸에 붙은 청테이프를 떼어냈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박 군이 발견된 곳은 그 집의 큰 방이었는데 그 옆에는 불에 그을린 야구방망이식칼이 있었다고 한다. 부검 결과 박 군의 사인은 질식사였고 오른쪽 뒷머리에 둔기로 한 차례 얻어맞은 자국과 뇌손상 흔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발견된 야구방망이에 얻어맞은 듯했다. 기도에는 그을음이 약간 남아 있었는데 이로 보아 범인은 박 군의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내려치고 청테이프로 결박한 다음 불을 지르고 도망갔고 박 군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화재 연기를 들이마시고 숨졌다고 추정되었다. 발화 장소는 그 집의 큰 방과 작은 방이었고 범인은 진열대 위에 놓인 열쇠로 문을 잠그고 도주한 것으로 보였다. 도대체 누가 7세밖에 안 된 어린 남자아이를 둔기로 때려 기절시키고 불까지 질러 죽였을까?


3. 의문점[편집]



3.1. 문을 잠그지 않은 아이[편집]


사건 당일 낮 12시 38분 박 군의 어머니는 '노동부 인력개발센터에 교육받으러 가니까 문을 잘 잠그고 있고, 학습지 선생님이 올 때까지 숙제하고 있어라'고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친구와 함께 집에 있던 박 군은 '알았다'고 했지만 정작 문을 잠그지 않았다. 아버지는 차량 탁송기사로 일했는데 새벽 5시에 경기도 화성시로 출근한 뒤였다. 즉 집에 어른이 아무도 없으므로 어머니가 박 군에게 문단속 잘 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박 군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같이 하교하여 박 군의 집에 놀러온 친구는 40분 뒤에 자기 집으로 돌아갔는데 사건 직후 경찰에게 '내가 집을 나올 때 박 군은 TV를 보고 있었고 문은 열려 있었다'고 진술했다. 대각선 방향 옆 동에 살던 이웃도 '오후 1시 45분쯤 박 군의 집을 바라보았을 때는 분명히 문이 열려 있었는데, 50여 분 뒤에 다시 봤을 때는 닫혀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2시 반 쯤에 학습지 교사가 집을 방문했는데 '문이 굳게 잠겨있어서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으므로 포스트잇만 붙여놓고 다른 집으로 갔다'고 한다. 이를 보아 범행이 일어난 시각은 9월 6일 오후 1시 45분에서 2시 반 사이 45분 동안이라고 추정되었다.

도대체 왜 아이는 '문단속을 잘 하라'는 어머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 놓았을까? 박 군의 엄마는 아들의 그런 행동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혹시 면식범의 소행이 아닌지 가정해 보았다. 낯선 이에게 격렬하게 저항했다면 손톱 밑이라든지에 범인의 DNA가 검출되고 그 외에도 상처가 생기기 마련인데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군을 죽인 사람을 면식범이라고 가정했다. 이외에도 경찰은 학교폭력이나 원한, 가정폭력 등의 가능성도 상정했지만 박 군은 비록 내성적인 성격이기는 해도 교우관계가 원만했고 부모도 타인에게 원한을 산 바는 없었다. 또 이날 박 군의 집에 들렀던 사람들은 모두 범행 시각에 알리바이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둔 가능성은 바로 강도였다.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1993년에 준공되었고 복도식 구조였으며 입구는 물론 단지 내부에도 CCTV가 전혀 설치되지 않았다. 유리문은 보안장치 없이 활짝 열려 있어 누구든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들어올 수 있었다. 더군다나 사건 당일 박 군은 집 대문을 열어 놓았으므로 강도가 침입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강도가 문을 열고 침입해 식칼로 위협하는 바람에 박 군이 저항하지 못했고 야구방망이로 한 차례 가격을 당한 뒤 의식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마침 현장에서 화장대 서랍을 뒤진 흔적이 있었고 귀금속 5점이 사라졌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같이 있던 현금과 박 군이 목에 걸고 있던 금목걸이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아 과연 금품이 범행 목적인지 의심이 들었다. 경찰은 인근 전과자나 중고등학생들까지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에 나섰지만 범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4. 범인을 잡을 단서[편집]


범인을 잡을 단서는 현장에서 사라진 당시 기준으로 시가 100만 원의 귀금속 5점[2]뿐이옸다. 현장에서 범행 도구로 보이는 야구방망이식칼, 청테이프 등이 발견되었지만 거기서는 범인의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 족적도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뿌린 소방수에 의해 쓸려내려가 버렸고 목격자도 없었다.[3] 단서는 오직 범인이 가져간 귀금속뿐이다. 경찰은 장물 전단을 발부해 이 물건들의 행방을 쫓았다. 울산 내 금은방은 물론 부산에도 장물품표를 돌렸지만 17년째 소식이 없다.

본래 이 사건은 2021년 9월 6일공소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태완이법 덕분에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다행히 공소시효가 사라지고 재수사에 들어갔다. 훗날 피해자의 부모는 울산에서 부산으로 이사했고 자녀 없이 부부 둘이서만 산다고 한다. 외동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에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에는 울산을 떠들썩하게 했던 큰 사건이지만 이후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사갔고 경비원도 바뀌었기 때문에 사건 현장인 해당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본 사건을 거의 모른다고 한다.

이 사건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제보를 받고 있다. 현장에 남아 있는 유의미한 증거들이 없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이를 봤다는 목격자조차 나타나지 않아 방송이 될지 의문이다. 결국 무산되었지만 제작진 측은 '이 사건에 대한 제보를 계속 받고 있으며, 의미있는 제보가 들어올 경우 방송에 대한 취재를 이어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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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9년[2] 피해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새겨진 18K 아기팔찌, 이름과 주민번호가 새겨진 18K 사각메달, 18K 휴대폰 줄, 18K 체인팔찌 2개.[3] 사실 화재로 인한 범행은 대부분 실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목격자가 없다. 물로 불을 끄는 과정에서 증거가 사라질 가능성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