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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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bgcolor#003F98> 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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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1986)
감독대행
조중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
조중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
김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1990)
차범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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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5~2000)

감독대행
정종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
김정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2008)

김호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9~2013)

조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4)
<rowbgcolor#003F98> 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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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2016)
김도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2020)

홍명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1~)


: K리그1 우승 / : FA컵 우승 / :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 1대 문정식 (1983~1986)
2. 2대 조중연 (1986~1987)
3. 3대 김호 (1988~1990)
4. 4대 차범근 (1991~1994)
5. 5대 고재욱 (1995~2000)
6. 6대 김정남 (2000~2008)
7. 7대 김호곤 (2009~2013)
8. 8대 조민국 (2014[1])
9. 9대 윤정환 (2015~2016)
10. 10대 김도훈 (2017~2020)
11. 11대 홍명보 (2021~)



1. 1대 문정식 (1983~1986)[편집]


파일:external/www.kfa.or.kr/2007113122249.jpg

울산 현대의 초대 감독
그러나 구단 역사 최초 시즌 도중 사퇴한 감독

1930년 6월 23일 출생. 2006년 12월 25일 사망.


2. 2대 조중연 (1986~1987)[편집]


파일:external/img.sbs.co.kr/200611167.jpg

구단 역사 최초 감독대행
첫 리그컵 우승을 안겨준 감독

1946년 1월 18일 출생.

1986년 시즌 도중 문정식 감독이 사퇴하면서, 그 공백을 당시 코치로 있던 조중현 코치가 감독대행 형식으로 채우게 된다. 감독대행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성적이었던 축구대제전 추계리그 준우승 과 창단 이후 첫 우승인 프로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이란 성적표로 지도력을 인정받아 1987년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다. 그러나 프로축구단 감독 생활은 1987년을 마지막으로 그만 두게 된다. 1987 시즌 성적은 4위.

이후 중동고등학교 감독 및 KBS 해설위원을 거쳐 축구 행정가의 길을 걷는다. 비록 평가는 좋지 않았으나 대한축구협회장까지 역임했으니 행정가로서 충분히 성공한 인생인 셈.


3. 3대 김호 (1988~1990)[편집]


파일:external/m.kfa.or.kr/201342692042.jpg

1944년 11월 24일 출생.

구단 최초의 연고지역인 경남권 출신 감독.

조중연 감독의 뒤를 이어 구단의 3대 감독으로 부임한다. 3년 간 재임 중 최고 성적은 88 한국프로축구대회, 1989년, 현 대한축구협회 FA컵의 전신 격인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각각 준우승. 통산 전적 23승 34무 47패.

김호 감독의 화려한 축구 인생에 비해 내용이 좀 비약한 게 사실이다. 근데 이 분은 사실 울산 시절보단 이후에 맡게 되는 국가대표팀과 수원에서 써내려간 역사가 더 커서...


4. 4대 차범근 (1991~1994)[편집]


파일:external/img.kr.news.samsung.com/cha_1.jpg

구단 역사상 최연소 감독
차범근 본인에겐 커리어 최초 감독직

1953년 5월 22일 출생.

1989년 바이엘 04 레버쿠젠에서 은퇴하고 영구 귀국하여 차범근 축구교실을 여는 한편, 1991년 현대 호랑이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흥미로운 것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마찬가지로 차범근 감독의 전임 감독이 김호였다는 것.

그는 전임인 김호 감독의 '기술축구'와는 다른 '템포축구'를 선보여 감독 부임 첫 해, 팀 사상 두 번째 한국프로축구대회 준우승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1993년 아디다스컵에서도 팀 사상 첫 리그컵 준우승을 기록한다. 하지만 그가 감독으로 있던 중 그의 지도 방식과 크게 마찰을 일으킨 최강희가 결국 1993 시즌을 앞두고 갑자기 은퇴하였다. 사실 이 부분은 여러 모로 논란거리가 많은데, 자세한 것은 최강희 문서 참조.

1994년까지 감독을 맡으면서 통산 55승 50무 46패를 기록했으나, 1994년 시즌 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 고재욱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5. 5대 고재욱 (1995~2000)[편집]


파일:external/www.kfa.or.kr/201043233114.jpg

첫 리그 우승과 두 번째, 세 번째 리그컵 우승을 이끈 감독
울산 현대의 첫 번째 전성기

1951년 11월 20일 출생.

구단 연고 지역인 경남권 출신 감독.

지금은 야인으로 분류되지만 현역 시절 국가대표팀 경기를 51번이나 뛰었을 만큼 꽤 괜찮은 선수 시절을 보냈다.

1990년 럭키금성 황소한국프로축구대회 우승으로 이끌었고, 그 지도력을 인정받아 울산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구단 수뇌부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그는 부임 첫 해 1995년 팀의 두 번째 리그컵인 아디다스컵 우승을 안겨줬고, 2년차에는 그토록 바라던 구단 역사상 첫 리그 우승인 96 라피도컵 프로축구대회 우승, 3년차에 1996-1997 아시안 컵 위너스컵 3위, 4년차에는 98 현대컵 K-리그 & 제3회 삼보체인지업 FA CUP 축구대회 준우승, 그리고 아디다스코리아컵 우승 등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1997-98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2라운드 탈락을 1999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준우승으로 만회하나 싶었지만, 99 K-리그 6위에 이어 삼성 디지털 K리그 2000에서도 하위권을 맴돌다 결국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다. 최종 성적은 10위. 이는 울산의 리그 성적 중 역대 최하위 성적이다. 통산 전적 87승 52무 66패.


6. 6대 김정남 (2000~2008)[편집]


파일:external/www.kfa.or.kr/2008112301418.jpg

부정할 수 없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명장, 최장 기간 재임 감독[2]
급이 다른 수비 축구로 구단의 축구 철학을 확립시킨 감독

1943년 1월 28일 출생.

이미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거쳐 유공 코끼리에서 8시즌 동안 팀을 성공적으로 이끈 명장이었으며, 1989 시즌엔 유공의 창단 첫 리그 우승을 안겨준다. 이후 올림픽대표팀 감독직을 거쳐 중국 리그를 돌아다니다 2000년 8월 감독을 필요로 하던 울산의 러브콜을 수락하여 울산의 6번째 감독으로 부임한다.

그가 전면적으로 내세운 전술은 오늘날 울산 현대와 떼레야 뗄 수 없게 된 수비였다. 즉 좋든 싫든 오늘날 울산 현대의 정체성은 김정남 감독이 확립시킨 것. 아니나다를까 정말 매 경기 수비 위주의 전술로 들고 나왔다. 이에 반발한 일부 팬들은 "재미없는 축구"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물론 이 전술이 분명 팬들 입장에선 재미없는 전술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차라리 성적이라도 못 나왔으면 경질이라도 할 텐데 웬걸, 이상하게도 성적은 잘 나오는 것이었다. 이는 기록이 증명하는데, 김정남 감독의 재임 기간동안 울산은 단 한 번도 6강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다만 성적과는 별개로 재미 없는 축구에 질린 울산 시민들이 경기장에 찾아오는 빈도가 줄어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 관중 감소는 팀 컬러가 조금이나마 이어지는 지금도 마찬가지(...).

울산은 마냥 잠그기만 하고 버티는 축구는 아니었다. 강력한 수비를 토대로 역습 시 확실하게 마무리를 해주기 위해 공격진도 실속있는 선수들로 장착시켰다. 가장 대표적으로 김정남이 키웠다고 평가받는 풍운아 이천수. 김정남의 '선 수비 후 역습' 철학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선수였다. 이 당시 이천수는 본인 축구 경력 중 최전성기였고, 정말 혼자서 공 몰고 들어가도 어지간하면 상대 수비를 다 제치고 득점할 정도의 능력과 패기가 있었다. 그렇게 이천수는 김정남 감독의 지도 아래 재미 없는 울산 축구의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아시아의 깡패"란 소리를 듣게 되었던 것도 바로 김정남 시절의 일이다.

결론적으로 김정남은 성적으로 모든 걸 증명하고 2008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2002년 마지막 아디다스컵에 이어 삼성 파브 K-리그 2002, 삼성 하우젠 K-리그 2003까지 연이어 준우승을 기록하며 상위권 팀으로서 면모를 공고히 했다. 이후 삼성 하우젠컵 2005 준우승에 이어 두 번째 리그 제패인 삼성 하우젠 K-리그 2005 우승, 2006년 삼성 하우젠 수퍼컵 & A3 챔피언스컵 더블AFC 챔피언스 리그 4강, 2007년 세 번째 리그컵으로 들어올린 삼성 하우젠컵은 그가 울산에 일으킨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증명하는 성적이 될 듯.

최종 전적은 143승 94무 84패.


7. 7대 김호곤 (2009~2013)[편집]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3120102250001300_P2.jpg

노장은 녹슬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닳아 없어지는 것이다.

- 2013 시즌 K리그 우승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며 남긴 말.

부정할 수 없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명장 2
구단 역사상 첫 ACL 무패우승을 안겨준 지략가

1951년 3월 26일 출생.

2009 시즌, 김정남 감독의 뒤를 이어 울산 현대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5년간 팀을 이끌며 거둔 전적은 89승 45무 57패.
요약하자면, 피스컵 코리아 2009, 2011 하나은행 FA CUP, 2012 하나은행 FA CUP 4강,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1 &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3 준우승,
러시앤캐시컵 2011 & 2012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012 일본 FIFA 클럽 월드컵 6위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8. 8대 조민국 (2014[3])[편집]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4031103230001300_P2.jpg

구단 역사상 최악의 감독
전성기를 맞이하던 울산에게 몰락을 선사한 졸장

1963년 7월 5일 출생. 통산 전적 13승 11무 15패.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9. 9대 윤정환 (2015~2016)[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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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미약하리라
많은 기대를 걸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난 울산의 명가 재건


1973년 2월 16일 출생. 통산 전적 27승 26무 23패.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10. 10대 김도훈 (2017~2020)[편집]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6112407580005700_P2.jpg

다시 한 번 젊은 감독에게 주어진 명가 재건 계획
현재 K리그 팬덤에서 가장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감독
그러나 마지막에는 ACL 두번째 무패 우승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다.

1970년 7월 20일 출생. 성적 부진으로 울산이 윤정환 감독과 이별을 선언하면서 데려온 감독.

감독 계약기간 - 4년 (2016년 11월 21 ~ 2020년 12월 20일)

2017년 FA컵 우승, 2020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시간이 갈수록 부정적인 평가가 늘어간다. 선수단은 국가대표에 버금가는 수준이나 17년도에 FA컵 우승을 한 것 빼고는 성과가 없었으며, 심지어 19년도와 20년도에는 2시즌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코 앞에 두고 전북에게 역전 우승을 당하더니, 20년도 FA컵에서 또다시 전북에게 우승 트로피를 헌납한다. 이 과정에서 선수단 혹사와 김도훈 본인의 행실 문제로 잡음을 일으킨 것은 덤.

하지만 20시즌 ACL에서는 막강한 화력으로 결승에 가더니 기어이 무패로 우승을 기록하며,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서 마지막은 울산 현대를 아시아 최강의 클럽으로 올린 것으로 마무리한다. 구단 측으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으며, 그야말로 박수 받으며 떠났다. 자세한 내용은 김도훈 문서 참조.


11. 11대 홍명보 (2021~)[편집]


4년만에 찾아온 재기의 기회
17년 묵은 한을 풀고 구단 역사상 최초로 리그 연패를 기록하며 전북 왕조를 무너뜨리다

1969년 2월 12일 출생. 김도훈 감독의 유종의 미를 거두며 나간 이후 우승의 한을 풀기 위해 선임한 감독.
2022년 17년만의 리그 우승을 하면서 울산 구단과 팬들의 한을 풀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도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리그 연패를 해냈다.

[1] 말이 2014년이지 임기 1년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었다.[2] 김정남의 수비 축구 철학을 싫어하는 팬들은 "어째서 김정남이 명장이냐"며 반박할 수 있겠지만, 리그에서의 좋은 성적과 그에 따른 8년 간의 집권 기간만 봐도 객관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3] 말이 2014년이지 임기 1년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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