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 닐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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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생애[3][편집]
1.1. 축구 선수[편집]
1.1.1. 클럽[편집]
그의 성에서 알 수 있듯 닐센은 노르웨이 셰엔(Skien) 출신이다. 닐센은 1923년 미국 보스턴에 정착했고 아마추어, 세미 프로에서 뛰었다.
1926년, 닐센은 보스턴 사커 클럽과 계약을 체결했다. 닐센은 초기에 라이트 윙 하프로 뛰었고 조금 지나서 센터 포워드나 인사이드 라이트 포워드로 포지션을 바꿨다. 1927년 첫 컵대회 우승을 차지한 보스턴 사커 클럽은 1927-28 시즌 아메리칸 사커 리그 우승도 차지했고 닐센은 그 다음 시즌에 야노스 네하도마와 리그 공동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이 시즌에 닐센은 바이킹 FC 소속으로 스칸디나비아 대륙 투어를 떠나기도 했다.
1929-30 시즌에 닐센은 보스턴 사커 클럽에서 세 경기만 뛰고 폴 리버 마크스멘으로 이적했다. 폴 리버에서 닐센은 버트 파테노드와 공격진을 구성해 새 시즌을 준비했지만 대공황이 터지면서 축구판은 말 그대로 혼돈의 카오스가 되었다. 이 와중에 폴 리버는 1929-30 시즌에 아메리칸 사커 리그와 내셔널 챌린지 컵을 모두 우승하여 더블을 기록했다.
하지만 폴 리버도 이 소용돌이를 피해가지 못했고 폴 리버는 뉴욕 사커 클럽과 합병하여 뉴욕 양키스가 되었다. 그리고 뉴욕 양키스의 이름으로 1931년 봄에 내셔널 챌린지 컵 우승을 이루긴 했다.
1931년, 뉴욕 양키스는 매사추세츠의 뉴 베드포드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폴 리버 FC와 합병하여 뉴 베드포드 웨일러스가 되었다. 이 혼란 속에서 닐센과 동료들은 1932년에 다시 한 번 더블을 이뤄냈고 닐센은 파테노드와 같은 수의 득점을 올리며 팀의 더블에 큰 기여를 했다.
1932년, 닐센은 보스턴 SC를 거쳐 스틱스, 바에어 앤 풀러로 이적해서 빌리 곤살베스 등과 호흡을 맞춰나갔다. 스틱스에서 닐센은 더블을 3차례나 더 기록해서 5회의 더블을 경험했다. 1937년 그는 스틱스를 떠나 사우스 사이드 라디오로 이적해 선수로서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1.1.2. 국가대표[편집]
닐센은 미국 국가대표로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했고, 호스트 이탈리아를 맞아 분전했지만 미국은 1대7로 무력하게 패했다.
1.2. 이후[편집]
닐센은 1946-47 시즌에 세인트루이스 레이더스를 지휘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 닐센은 기계 기술자와 모델 일을 했다고 한다.
2. 수상[편집]
2.1. 클럽[편집]
- 아메리칸 사커 리그 우승 5회: 1926-27(보스턴 사커 클럽), 1929, 1930(이상 폴 리버 마크스멘), 1931 가을, 1932 봄(이상 뉴 베드포드 웨일러스)
- 내셔널 챌린지 컵 우승 4회: 1930, 1931(이상 폴 리버 마크스멘), 1931 봄(뉴욕 양키스), 1932 봄(뉴 베드포드 웨일러스), 1933, 1934, 1935(이상 스틱스 바에어 앤 풀러]
- 리그 챔피언십 우승 3회: 1933, 1934, 1935(스틱스 바에어 앤 풀러)
- 루이스 컵 우승 1회: 1927(보스턴 사커 클럽)
- 내셔널 챌린지 컵 준우승 3회: 1932, 1936, 1937(스틱스 바에어 앤 풀러)
2.2. 개인[편집]
- 아메리칸 사커 리그 득점왕 1회: 1928-29(보스턴 사커 클럽)
- 미국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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