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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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어원
3. 실제 사례
4. 기타



1. 개요[편집]


倭奴

왜나라 왜, 종 노. 중국어 발음으로는 워누(Wōnú).

본래 어원은 나쁜 뜻이 아니었다고 보는 한편, 단순히 음차한 단어였다. 그러나, 다만 중국이 타민족을 음차할 때 부정적인 한자를 넣었던 걸 생각하면 멸시하는 뜻이 아예 없었다고 보긴 힘든 단어다

지금은 역사학에서 학술적으로 쓸 때를 제외하고서는 일본인들이 모욕적으로 생각하는 호칭이자 상당히 비하하는 단어이다.

단어의 뜻풀이를 하면, "일본(인) 노예" 혹은 "일본(산) 노비"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중국에선 굳이 노예를 칭하지 않더라도 비하적 의미로 노비 노를 쓴다, 대표적으로 흉노가 있다.


2. 어원[편집]


어원은 중국에서 일본의 국명을 처음으로 음역한 데서 나온 호칭이다.

후쿠오카시 인근의 섬에서 출토되어 현재 후쿠오카시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일본의 국보 한위노국왕(漢委奴国王) 금도장은 일본 고대 국제교류사에서 중요한 지표 유물인데, 이것이 중국 한나라에서 일본열도에 있던 노국왕에게 하사한 도장이다.

'왜노국'이라는 표현보다는 왜국, 노국이 더 많이 등장하는데, 이때에는 '나국'이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한자의 훈이 아니라 음으로 새겨야 하는 말이다. 둘 다 한자 자체는 의미가 나쁘거나 나쁘게 해석할 수 있는 글자가 쓰였지만, 여기에는 딱히 비하의 의미가 없었다. 당시 일본중국의 천하에 있었기에 책봉하는 마당에 일부러 멸칭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대체로 고대 중국에서 다른 나라나 민족의 이름을 음차하면서 썩 좋은 뜻을 가진 한자를 써주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중화사상으로 미개국이라고 얕잡아보는 게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 다른 예로 송나라 이후에 몽고(蒙古)의 경우도 '어리석고 낡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몽골 제국 항목에서 보듯이 원나라 시절에도 대외문서 등에 몽골인들도 몽고라고 그냥 썼다.(…) 그 외 흉노(匈奴)의 경우도 오랑캐 흉, 종 노 같은 부정적인 한자로 음차했다.

한국사의 왕조들은 예외로 의미가 나쁜 한자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처럼 모든 나라들이 한자로 국호를 스스로 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뿌리는 아사달, 바라 등 모두 순우리말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중국과 한반도에서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한자를 잘 아는 계층이 점차 늘어났다. 그래서 점차 자기나라 이름에 사용된 한자가 하필 멸칭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글자임을 거북히 여겨 야마토(大和)니 하는 호칭을 쓰다 최종적으로 일본이라는 한자 국호를 채택한다. 이후 중국일본외교문서에서는 일본이라는 국호를 채택하지만, 중국 측에서 일본을 괘씸하다고 느꼈을 때는 왜국이니 왜노니 하는 호칭을 사용하는 식으로 사용법이 분화되었다.

역사학자들이야 왜노를 욕으로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시대나 지금이나 단어의 뜻이 뜻이니 만큼, 현실에서 왜노라는 단어는 멸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상당히 모욕적인 단어로 받아들인다.

이 말을 멸칭으로 사용할 때 활용형태로 일본인왜노인(倭奴人), 일본국은 왜노국(倭奴國), 일본의 군주인 천황왜노왕(倭奴王)으로 쓰인다. 이처럼 단순히 왜노라는 원형으로 쓰이기보다는 주로 '왜노인', '왜노국'처럼 활용형태로 변형하는 쪽이 주로 쓰인다.

한편 구당서에서는 '왜국은 옛 왜노국이다. (중략) 일본국은 왜국의 별종이다.'이라 기록하여 왜노국에서 왜국이 나오고 왜국에서 일본국이 나온 것으로 왜노와 왜가 별개인 것으로 구분하였다.


3. 실제 사례[편집]


실제로 조선에서는 일본에서 구입한 일본인 노예들을 '왜노(倭奴)'라고 불렀다. 이는 실록의 기록들에서도 꾸준히 확인이 된다. # 왜인 노비를 사는 것을 금하다 도망갈 것을 우려하여 왜노(倭奴)를 궁벽한 곳에 옮겨 두게 하다 전주판관 유서종이 왜인을 끌어들여서 말썽을 일으키다

또한 조선 시대 제주도 태생 선비인 장한철(張漢喆 1744~?)이 1771년에 쓴 기행문인 표해록(漂海錄)에서는 임진왜란을 두고 "왜노(倭奴)는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이다. 선릉(조선의 9번째 임금인 성종의 무덤)과 정릉(조선의 11번째 임금인 중종의 무덤)이 (일본군한테) 도굴을 당한 일(을 떠올리면) 간이 소리를 치고 피가 끓으며 운다. 사람들이 천 번으로 칼로 왜노를 찌를 만하다. 하늘이 내린 생물은 모두 사람에게 이롭지만, 오직 왜노란 종자는 사람한테 터럭만한 이로움도 주지 못하고 그 해로움이 호랑이나 뱀보다 더 심하다. 하늘이 어찌하여 왜노란 종자를 만들었는가."라고 기록했다. 중국 뿐 아니라 조선에서도 일본인에 대한 멸칭으로 왜노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다#.

4. 기타[편집]


가끔 반일 감정이 심한 중국인들이 왜노의 중국식 독음인 "워누"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비하하는 것이 보인다.

중국의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요우쿠에서 일본의 포털 사이트를 해킹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중국 해커들이 이 호칭을 사용해서 일본인들이 크게 분노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디시인사이드5ch 사이의 사이버 전쟁 때에 쓰인 적이 있는데, 당시 이 말을 들은 5ch 유저들이 집단적으로 욕을 퍼부었을 정도.

어쨌든, 일본인들이 최악의 모욕으로 생각하는 단어이니 일본인들 앞에서는 최대한 해당 단어 사용을 아예 안 하는 편이 좋다.

한국어 '놈'으로 번역되는 일본어 'やつ'의 한자가 '奴'이기 때문에 '왜놈'을 일본어로 쓸 때 '倭奴(ウェノム)'라고 쓰기도 한다.

북한에서도 북일관계가 험악할 때에는 언론에서 쓰이기도 한다.

"귀국의 문집을 보다보면 우리 일본국에 대하여 반드시 왜적이라거나 야만이라고 하는데 참을 수 없다. 토쿠가와 (이에노부) 장군도 가끔 조선의 문헌을 보고 군신들에게 조선은 이 정도로 우리를 미워하는가 하고 항상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공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가? 어떤가!"

라고 호슈는 심히 불만스런 표정으로 노기를 띠면서 말했다.

"그 뜻은 쉽게 알 수 있으나 바라건대 귀국이야말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당신이 본 우리나라의 문헌이란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간행된 글일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의 철천지원수이고 종묘사직의 훼손, 영혼의 원한, 실로 만세까지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신민은 그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위로는 지존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욕하고 적으로 말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문장에 반영되어도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임금은 백성을 사랑하여 부산에 왜관을 개설하여 교역하고 더구나 일본의 산하에는 히데요시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로 사절을 파견하여 화목을 도모하고 국서를 교환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지나간 원한을 다시 불러일으키는가?"

그리고 그의 반응을 보는 동안에 오사카에 도착하였다.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을 목격하고 머리가 쭈뼛해짐을 느꼈다.

호슈 왈,

"그것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지금도 일행의 종자들조차 일본 사람을 부를 때 왜인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지금부터는 일본사람으로 불러주기를 바란다."

"그럼 귀국의 사람은 우리를 부를 때 당인(唐人)으로 말하지 않는가! 그럼,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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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유한의 <해유록> 중에서


참고로 조선시대에 이 왜(倭)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21세기에 이른 지금도 왜놈이란 말은 엄연히 멸칭으로 사용돼서 논란이 많았듯이 조선통신사들이 왕래하던 18세기에도 조선인이 일본인을 보고는 '왜인'으로 부르는 것에 일본인들 스스로도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당대 일본열도최고의 유학자로 평가받던 아메노모리 호슈가 불만을 제기하자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이었던 신유한은 왜 일본인은 조선인들을 보고는 '당나라 사람'이라고 부르느냐?! 라고 맞수를 놓았다. (이에 호슈는 "귀국인 조선이 중국에 못지 않게 문화가 뛰어나서 그러하다" 라고 대답해줬다.) 물론 이건 왜인과는 격이 다르게 멸시의 의미로 사용되는 건 아니고 그냥 무식, 무지(...) 내지 자기들 편의에 따른 것이라 정당한 반박은 아니지만 18세기에도 이러한 호칭의 사용을 통해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서로의 인식에 대해 많은 간극이 있었던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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