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사지 십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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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2호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서울 圓覺寺址 十層石塔 | Wongaksa Pagoda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99
(종로2가 38-2, 탑골공원)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시설
1기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조선시대, 1467년

파일:external/www.cha.go.kr/1611450.jpg
원각사지 십층석탑


1. 개요
2. 내용
3. 영상
4. 외부 링크
5. 국보 제2호
5.1. 문화재 안내판
6.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조선 세조 13년, 1467년에 세조의 왕명으로 원각사가 지어질 때 함께 건조된 석탑. 현재 탑골공원에 있으며, 1962년 국보 제2호로 지정됐다. 고려시대의 석탑인 경천사 10층 석탑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 내용[편집]


파일:원각사지 십층석탑 옛모습.jpg

원각사는 원래 고려시대에 창건된 흥복사로,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의 요청으로 세조 11년(1465)에 원각사로 고쳐 지은 절이다. 그러나 연산군 10년(1504)에 연방원이라는 기생방이 들어서고 중종 9년(1514)에 절이 헐리면서 없어졌다. 이 탑은 고종 32년(1895)에 총 세무사로 재직하였던 영국인 브라운(J. M. brown)의 건의로 원각사 터에 공원이 들어서 탑골공원으로 바뀐 이후에도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산성비로 인한 손상 방지를 위해 유리 보호각 안에 보관되어 있다.[1]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보물로 지정되어 현재도 한국의 국보가 되었다. 매우 수려하면서도 기교적인 그 면이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탑파사상(塔婆史上) 손에 꼽히는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한말-일제강점기에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들 사이에서도 조선에 왔으면 꼭 봐야 할 명물로 손꼽혔다. 퍼시벌 로웰은 1883~1884년에 걸쳐 몇 개월 조선에 머무르는 동안 원각사지 석탑을 보고 석탑 옆에 있는 민가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 지붕으로 올라가 사진을 찍었을 정도였다.[2]

파일:원각사지 십층석탑 1946년 국립중앙박물관.jpg
1919년 3월 1일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만세운동이 탑골공원에서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복수로 일제에 의하여 원각사탑 상층부 3개 층이 파괴되고 탑의 반출이 시도된 적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퍼시벌 로웰이 촬영한 사진을 보면 이미 1884년경에도 상층부 3개 층은 파괴된 상태였기 때문. 이후 복원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것을 1946년 2월 17일에 미군 공병대가 장비를 동원하여 복원해 주고 갔다. 위키백과에는 새똥으로 인해 부식되어 무너졌다고 되어있다. 새똥은 요산이 함유되어 있어서 대리석을 부식시킨다. 새똥뿐만 아니라 현대에는 산성비와 매연으로 인해 결국 1998년부터는 석탑을 유리로 둘러싸 보존하고 있다.

1894~1897년 동안 4차례 조선을 방문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기행문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는 300년 전 일본의 침략으로 최상층부 3개 층이 떨어져 나와 훼손되지 않은 채로 석탑 옆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땐 어린 아이들이 그 상층부를 쪼개어 기념품으로 팔아먹은 탓에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실제 사진을 보아도 다른 층과 다르게 많이 훼손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흰 돌로 지은 탑이라 하여 백탑(白塔)이라고 불렸으며, 박지원이 이 근처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 그와 교류한 실학자들을 백탑파라고 일컫는다.

기단부의 3개층을 별도의 층으로 해석하여 13층으로 봐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현재 계속 부식이 진행되고 있어 2030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경내로 옮기는 계획이 있다.

3. 영상[편집]





4. 외부 링크[편집]




5. 국보 제2호[편집]



원각사는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던 절로, 조선 세조 11년(1465)에 세웠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 속에서도 중요한 사찰로 보호되어 오다가 1504년 연산군이 이 절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승려들을 내보냄으로써 절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 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높이는 약 12m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탑을 받쳐주는 기단(基壇)은 3단으로 되어있고,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다. 기단의 각 층 옆면에는 여러가지 장식이 화사하게 조각되었는데 용, 사자, 연꽃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탑신부(塔身部)는 10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을 하고 있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각 층마다 목조건축을 모방하여 지붕, 공포(목조건축에서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얹는 부재), 기둥 등을 세부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고, 전체적인 형태나 세부구조 등이 고려시대의 경천사지 10층석탑과 매우 비슷하여 더욱 주의를 끌고 있다. 탑의 윗부분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세조 13년(1467)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형태가 특이하고 표현장식이 풍부하여 훌륭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5.1. 문화재 안내판[편집]


파일:정부상징.svg 문화재 안내판 설명문
국문 설명

원각사지 십층석탑
圓覺寺址十層石塔
지정번호 : 국보/ 시대 : 1467년(세조 13)/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가 38-2번지

이 탑은 세조(世祖)가 세운 원각사(圓覺寺) 터에 남아 있는 높이 12m의 십층 석탑이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 11)에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興福寺) 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인데, 이 탑은 2년 뒤인 1467년(세조 13)에 완성했다. 세조는 사리분신(舍利分身)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공사 도중에도 사리분신하고 서기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지금 견해로는 십층 석탑이지만 사료에는 13층의 탑을 세워 분신사리와 새로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을 모셔 두었다고 한다.
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 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 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三藏法師)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佛法)을 구해오는 과정을 그려 새겼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하였다. 법회 장면을 새긴 탑의 몸체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 같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 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 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 십층석탑(국보)과 여러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영문 설명

Ten-Story Stone Pagoda of Wongaksa Temple Site
Designation : National Treasure/ Period : 1467 (13th year of King Sejo’s reign)
Location : 38-2, Jongro 2-ga, Seoul

This pagoda is a 12m high, ten-story stone Pagoda remaining at the site of Wongaksa (Temple) built by King Sejo. Wongaksa was built in 1465 (11th year of King Sejo’s reign) by expanding the site of Heungboksa (Temple), the head temple of the Jogye Order. This pagoda was completed in 1467 (13th year of King Sejo’s reign), two years following the completion of Wongaksa. King Sejo decided to erect Wongaksa after he experienced the wonder of the sarira incarnation, and it is said that an incarnation of sarira took place and an auspicious sign appeared even during the construction work. Currently, the pagoda is comprised of ten stories.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however, a thirteen-story pagoda was originally erected to keep the sarira and the Wongakgyeong (Sutras of Wongak), which had been newly translated at the time. The 亞-shaped podium comprised of three sections: the lower part is inscribed with patterns of dragons and lotus flowers; the middle part depicts a process in which the party of Monk Sanzang, Sun Wukong, Zhu Bajie and Sha Wujing obtain and bring a Buddhist canon from India; and the upper part is inscribed with the tales of the former lives and the lifetime of Buddha. The body part of the pagoda, inscribed with a scene of a Buddhist mass, includes a tablet, a dragon twined around pillars, a wooden structure and a roof and all of this looks very much like a single building. The pagoda is made with marble which was rarely used at the time.
The unique form of this pagoda and the carving skills it displays mean it is regarded as one of the finest examples of stone pagodas from the Joseon. This pagoda is in many respects very similar to the Ten-story Stone Pagoda of Gyeongcheonsa (Temple) (National Treasure), erected during the Goryeo.

6.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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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때문에 초등학교 과학 5단원 '산과 염기'에 예시로 수록되어 있다. 유리 보호각은 서울시가 1998년 착공해 1999년 말에 완공되었다.[2] 당시까지만 해도 석탑 가까이까지 민가가 있어서 지붕에라도 올라가지 않으면 제대로 사진 찍을 각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