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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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윤수
元胤洙

출생
1887년
경성부 길야정 2-54[1]
사망
1940년 1월 5일
직업
사업가
자녀
배우자 최씨
손자 원승욱[2]
비고
친일인명사전 등재

1. 개요
2. 생애
3. 사망 이후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에 비행기 대금을 헌납하는 등 친일 행위를 한 기업인이다. 지금의 성남중학교성남고등학교인 성남고등보통학교와 학교법인 원석학원의 설립자이다. 대통령직속기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규정한 1005명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나무위키 문서 분류 상으로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하지 않으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지역유력자로 등재되어있다.


2. 생애[편집]


지금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도동 지역인 경성부 길야정에서 1887년 출생하였다. 어릴 때 한학을 공부하였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인 경성부 어성정(3정목)으로 거주지를 이전하여 1907년부터 경성부 남대문시장에서 잡화상을 운영하고 1913년에 큰 점포를 내게 되었다. 1914년~1915년에 들어서는 과일 위탁 판매업을 시작하면서 기업인으로 성장하였다.

황해도 곡산군에 위치한 백년산에서 텅스텐을 발견하여 1932년경에 백년광산을 개발하고 일화광업상회를 설립하였다. 광업 기업인으로 크게 성공하고 함경남도 안변군, 강원도 횡성군, 경상북도 김천군 등에 100광구 이상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때 합자회사 대창상회를 조직[3]하여 해산물 도매상을 운영하고 동양모피상회를 설립해 모피 무역상 운영을 함께 하였다.

조선총독부1935년에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로 기재되었다. 여기에 기재된 조선인 공로자는 총 353명이다.

1937년에는 백년광산을 매각하고 금융신탁, 요식업, 제조공업, 상업 등 각종 분야에 투자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군량미와 비행기 대금을 일본군에 헌납[4]하였고, 최창학, 방응모와 함께 일제강점기 3대 광산재벌로 통했다. 국방열을 보급한다는 취지로 창립된 조선국방협회의 발기인을 지내기도 했다.

교육에 큰 관심을 보여오다가 1937년에 조양학원을 전신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원석학원을 설립하였고, 1938년에 용산고등보통학교의 교명을 성남고등보통학교로 개칭 신청 후 설립 인가받아 지금의 성남중학교성남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성남고등보통학교로 개칭한 지 2년 뒤인 1940년 1월 5일에 사망하였다.


3. 사망 이후[편집]


사망 이후 원석학원을 같이 설립한 김석원과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성남중·고등학교 부지에 세워졌으나 성남중고의 전교조 소속 교사들과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로 인해 2003년 철거되어 창고에 방치 중이다.

2008년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등록되어 친일인명사전 지역유력자 부문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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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도동 지역[2] 학교법인 원석학원 제13대 이사장이다.[3] 1935년[4] 경성 제2호기 구입비로 1만 원을 헌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