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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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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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原州 元氏
원주 원씨
}}}
관향
강원도 원주시
시조
원경(元鏡)
중시조
원천석(元天錫)
원극유(元克猷)
원익겸(元益謙)
집성촌
강원도 원주시
강원도 횡성군
경기도 여주시
경기도 평택시
인구
126,677명(2015년)
링크
원주원씨종친회
원주원씨대종회

1. 개요
2. 분파
3. 항렬
3.1. 운곡공파
3.2. 원성백파
3.3. 시중공파
4. 인물
4.1. 과거
4.1.1. 독립운동가
4.2. 현재
5. 기타



1. 개요[편집]


강원도 원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당 태종이 고구려에 파견한 8학사(學士) 중 한명인 원경(元鏡)이다. 그는 당나라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평장사(平章事)를 지냈으며, 고구려에 와서 두 나라의 국교 회복과 고구려 보장왕(寶藏王)의 책봉에 힘썼으므로 보장왕이 그를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봉하였다.

원씨의 본관은 문헌에 의하면 40여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원주 단일 본으로 전한다.

운곡공계(耘谷公系: 원경), 원성백계(原城伯系: 원극유), 시중공계(侍中公系: 원익겸) 세 계통으로 계대하고 있다.

또한 원주 원씨는 고려 조선 대대로 병법과 무술에 모두 밝은 무골이었는데, 조선 때만 문과 급제 60명, 무과 136명으로 문무 겸전의 명문이었다. 훗날 원인철합동참모의장이 돼 전통을 이었다.

2. 분파[편집]


운곡파(耘谷派)의 원경은 당나라 태종 때 고구려에 파견된 8학사 중의 한사람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한국 원씨의 시조가 되었다.

원성백파(原城伯派)의 원극유는 고려를 개국할 때 공을 세워 통합 삼한벽상 개국익찬일등공신으로 정의대부 병부령을 지냈으며 원성백에 봉해졌다.

시중공파(侍中公派)의 원익겸은 고려 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우시랑을 역임하여 원주를 본관을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이 외에 상호군을 지낸 원충갑을 시조로 하는 충숙공계가 있었으나, 원충갑이 원성백계의 원극유의 11세손임이 밝혀져 원성백계와 합보되었다.

각 계통의 의견이 달라 합보간행은 못하고 있지만 원경을 시조로 하는 단일본임은 일치를 보았다.

3. 항렬[편집]



3.1. 운곡공파[편집]


35세
태(泰)○
36세
현(顯)○
37세
○규(圭)
38세
○호(鎬)
39세
영(永)○
승(承)○
40세
○식(植)
○직(稙)
41세
○묵(默)
○훈(勳)
42세
치(致)○
교(敎)○
43세
종(鍾)○
용(鏞)○
44세
○구(求)
○수(洙)
45세
동(東)○
상(相)○
46세
○우(禹)
○노(魯)
47세
혁(赫)○
철(喆)○
48세
○회(會)
○선(善)
49세
태(泰)○
제(濟)○
50세
○수(秀)
○목(穆)
51세
병(炳)○
형(炯)○
52세
○균(均)
○기(基)
53세
상(商)○
정(正)○
54세
○준(浚)
○택(澤)
55세
인(寅)○
진(震)○
56세
○열(烈)
○섭(燮)

3.2. 원성백파[편집]


29세
후(厚)○
30세
○의(義)
31세
제(濟)○
32세
○식(植)
33세
유(裕)○
34세
○재(載)
35세
종(鍾)○
36세
○호(浩)
37세
영(榮)○
38세
○성(性)
39세
규(圭)○
40세
○석(錫)
41세
윤(潤)○
42세
○동(東)
43세
현(顯)○
44세
○배(培)
45세
진(鎭)○
46세
○수(洙)
47세
상(相)○
48세
○용(容)
49세
중(重)○
50세
○호(鎬)

3.3. 시중공파[편집]


23세
○석(錫)
24세
세(世)○
25세
○상(常)
26세
용(容)○
27세
○희(憙)
28세
종(鍾)○
29세
○연(淵)
30세
동(東)○
31세
○섭(燮)
32세
치(致)○
33세
○선(善)
34세
태(泰)○
35세
○모(模)
36세
병(丙)○
37세
○기(基)
38세
현(鉉)○
39세
○영(泳)
40세
주(柱)○
41세
○열(烈)
42세
재(載)○
43세
○용(鎔)
44세
홍(洪)○
45세
○근(根)
46세
희(熙)○


4. 인물[편집]




4.1. 과거[편집]



  • 원충갑 : 원성백파. 고려후기 추성분용정란광국공신에 책록된 공신. 카다안의 침입 당시 치악성을 지킨 용장.
  • 원천석 : 운곡파. 고려말 초야에 은거하여 절의를 지켰으며, 고려의 대문장가로 학문과 문장이 당세에 유명하여 이방원(조선 태종)을 가르친 스승이었으나 고려의 충신이었다..
  • 성비 원씨 : 원성백파. 원상의 딸. 원송수의 손녀. 조선 태조의 후궁
  • 숙의 원씨 : 광해군의 후궁이다.
  • 원호(元昊) : 시중공파. 조선 문종 때 집현전 직제학. 조선의 생육신 중 한 사람
  • 원균 : 원성백파. 임진왜란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칠천량 해전에서 패배 이후 전사.
  • 원연 : 원성백파. 위에 언급된 원균의 동생이다. 형과 달리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전사하였다.
  • 원전 : 원성백파. 원균원연의 동생으로, 원균의 부관. 칠천량 해전 당시 형과는 다르게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 원사웅 : 원성백파. 원균의 아들이자 부관.
  • 원호 : 시중공파. 임진왜란 때 아들 원유남과 함께 무명을 떨쳤고 구미포(龜尾浦),마탄(馬灘), 운무(雲霧) 등지의 작전에서 전공을 올려 적을 여주에서 완전히 봉쇄했다.
  • 원두표(元斗杓) : 시중공파. 인조반정 때 세운 공으로 정사공신 2등에 책록, 원평부원군이 되었고 형조참판, 호조판서, 좌참찬, 병조판서 등을 지내고, 1656년 우의정을 거쳐 1662년 좌의정에 올랐다.
  • 원경하(元景夏) : 시중공파. 조선 영조 때 이조 및 병조의 판서를 역임했다.
  • 원인손 : 시중공파. 조선 영조 때 우의정을 지냈다.

무관이 많은 편이다. 다만, 인물 중에서 원균이 네임드로 이미지가 좋지 않을 뿐[1], 그 외의 인물들은 공신이거나 나라가 위험할 때 목숨걸고 지킨 명장과 충신이 대단히 많다.[2]

4.1.1. 독립운동가[편집]



  •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자
    • 원광덕
    • 원기풍
    • 원기형
    • 원사현
    • 원승보
    • 원용팔
    • 원인석
    • 원일상
    • 원해룡
    • 원행섭


4.2. 현재[편집]




5.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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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외에도 원균의 아버지인 원준량도 중종~명종대의 탐관오리로 악명높았다.[2] 문제는 원균과 동시기에 활약한 같은 원씨 가족이자 원균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인 원연, 원전, 원사웅에 대한 후손들의 대접과 원균의 대접이 너무나도 다르다. 후자는 어떻게라도 띄우려고 기를 쓰는데 비해 전자는 무관심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