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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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원주시
세부 내역은 다음과 같다.[출처]
세 나라가 차례로 차지하여 다스린 땅이었다. 가장 먼저 차지한 나라는 백제로, 삼한 중 하나였던 마한을 합병하며 마한의 땅이었던 원주를 그대로 차지했다. 이후 469년에 남진정책을 펼친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에 이어 두 번째로 원주를 차지하여 평원(平原)군이라고 개칭하였다. 이후 세 번째로 신라 진흥왕이 점령한다.
678년(신라 문무왕 18) 지금으로 치면 광역시와 같은 행정구역인 5소경 중 하나인 북원소경(北原小京)이 설치되었으며, 약 70여 년 후인 757년 경덕왕 16년 북원경(北原京)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부터 사통팔달의 요충지로 군사상 중요한 곳이었으며, 앞서 등장한 지명에서 보듯이 이름에 넓고 탁 트인 들/벌
9세기 말 호족이었던 양길(梁吉)이 북원을 기반으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궁예에게 패배하여 태봉의 강역에 들어갔고 이후 고려 태조(고려) 왕건의 정변으로 고려의 땅이 된다.
940년(태조(고려) 24년) 처음으로 원주라는 지명이 등장하였으며, 1018년(현종 8) 영월군, 제천군을 속군으로 평창현, 황려현(여주), 단산현(단양), 주천현, 영춘현이 속현이 되어 광활한 면적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신종의 등극 전 봉지였다. 1291년(충렬왕 17년) 원충갑이 카다안의 침입을 막아내어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95년 조선시대 지방 행정구역을 재편하면서 강릉과 원주의 이름을 따 강원도가 생기고 감영이 설치되어 500년 간 도의 중심지가 된다. 그 전에는 양광도에 속했으나, 양광도가 남북으로 경기도, 충청도로 나눠지는 와중에 원주 일대만 딱 양광도 계열 도가 아닌 교주강릉도 계열의 도로 넘어가게 된다.
1989년 원성군을 원주군으로 명칭 환원, 1995년 원주군과 원주시를 합침으로써 도농 복합형 통합시가 되었다. 같은 해 3월 1일 여주군 강천면 대둔리가 문막면에 흡수되고 이튿날인 3월 2일 문막면이 문막읍으로 승격되었다.
1. 개관[편집]
세부 내역은 다음과 같다.[출처]
2. 삼국시대[편집]
세 나라가 차례로 차지하여 다스린 땅이었다. 가장 먼저 차지한 나라는 백제로, 삼한 중 하나였던 마한을 합병하며 마한의 땅이었던 원주를 그대로 차지했다. 이후 469년에 남진정책을 펼친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에 이어 두 번째로 원주를 차지하여 평원(平原)군이라고 개칭하였다. 이후 세 번째로 신라 진흥왕이 점령한다.
3. 남북국시대[편집]
678년(신라 문무왕 18) 지금으로 치면 광역시와 같은 행정구역인 5소경 중 하나인 북원소경(北原小京)이 설치되었으며, 약 70여 년 후인 757년 경덕왕 16년 북원경(北原京)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부터 사통팔달의 요충지로 군사상 중요한 곳이었으며, 앞서 등장한 지명에서 보듯이 이름에 넓고 탁 트인 들/벌
[原]
이라는 뜻이 있었다. 이 뜻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늘날 원주(原州)가 되었다. 또한 평원, 북원 등의 지명도 평원로, 북원로, 북원여자고등학교, 평원초등학교 등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4. 후삼국시대[편집]
9세기 말 호족이었던 양길(梁吉)이 북원을 기반으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궁예에게 패배하여 태봉의 강역에 들어갔고 이후 고려 태조(고려) 왕건의 정변으로 고려의 땅이 된다.
5. 고려[편집]
940년(태조(고려) 24년) 처음으로 원주라는 지명이 등장하였으며, 1018년(현종 8) 영월군, 제천군을 속군으로 평창현, 황려현(여주), 단산현(단양), 주천현, 영춘현이 속현이 되어 광활한 면적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신종의 등극 전 봉지였다. 1291년(충렬왕 17년) 원충갑이 카다안의 침입을 막아내어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되었다.
6. 조선[편집]
1395년 조선시대 지방 행정구역을 재편하면서 강릉과 원주의 이름을 따 강원도가 생기고 감영이 설치되어 500년 간 도의 중심지가 된다. 그 전에는 양광도에 속했으나, 양광도가 남북으로 경기도, 충청도로 나눠지는 와중에 원주 일대만 딱 양광도 계열 도가 아닌 교주강릉도 계열의 도로 넘어가게 된다.
1895년 친일내각이 주도한 2차 갑오개혁으로 인해 8도를 23부제로 개편하면서 충주부 관할의 원주군으로 격하되고 고모곡면이 횡성군에 편입되어 행정 중심지의 기능을 잃었으나[1] , 이듬해인 1896년 다시 8도를 바탕으로 한 13도제가 시행되었다.[2] 한편 1906년 수주면과 양변면이 영월군에, 지내면과 서면이 여주군에 편입되었다.
7. 일제강점기[편집]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해 산하의 몇몇 면이 통폐합되었다. 1937년 원주군 본부면일원과 호저면 사천리를 원주읍, 건등면은 문막면으로 각각 변경하였다. 1938년 조선총독부의 방침에 의거 원주읍 흥양정을 소초면에 넘겼다.
8. 대한민국[편집]
1955년 원주읍이 원주시로 승격되고, 나머지 면 지역은 원성군(原城郡)으로 개칭되었다. 이 때 호저면 우산리와, 판부면 단구리, 행구리가 원주시에 편입되었다. 1973년 호저면 가현리, 흥업면 무실리, 판부면 반곡리, 관설리가 원주시에 편입되고 지정면 무장리가 호저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횡성군 서원면 산현리, 매호리와 압곡리 일부(용곡리)가 호저면에 편입되고 관설동 일부가 판부면 신촌리가 되었다.
1989년 원성군을 원주군으로 명칭 환원, 1995년 원주군과 원주시를 합침으로써 도농 복합형 통합시가 되었다. 같은 해 3월 1일 여주군 강천면 대둔리가 문막면에 흡수되고 이튿날인 3월 2일 문막면이 문막읍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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