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회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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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元曉廻顧像
원효의 아들 설총이 원효가 입적한 후 만든 원효의 상.


2. 상세[편집]


686년, 원효가 혈사에서 입적하자 아들 설총이 원효의 시신을 다비하여 유골을 수습한 후 그 유골에 흙을 붙여서 원효의 형상을 만든 뒤에 분황사에 안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설총이 상을 안치한 후에 그 앞에서 절을 하자 원효의 상이 갑자기 뒤를 쑥 돌아다봤다라는 것이다.

물론 조각상이 실제로 뒤를 돌아봤다는건 말이 안되며 설총이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설총이 원효의 상을 뒤를 돌아보는 형태로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원효가 평생 걸어온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려고 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원효는 일평생 낮은 자들, 낙오된 자들을 불쌍히 여겼기에 그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뒤돌아 보았다는 것.

설총이 만든 이 원효회고상은 고려 중기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대각국사 의천이 분황사를 방문했을때 이 상을 보고 시를 한편 지었는데 바로 "제분황사효성문"이다. 이 시에서 의천은 마치 살아있는것 같은 원효의 모습을 뵈었다라고 말했는데 꽤나 생생한 조각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몽골이 고려를 침공했을때 분황사가 불타면서 원효회고상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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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원효회고상의 형태를 추정할 수 있는 불상이 하나 전한다. 교토 선림사(禅林寺)의 영관당 본존불(永観堂 本尊)로 가마쿠라 시대에 만들어진 이 불상은 견반아미타여래(見返阿弥陀如来)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미타여래상이지만 독특하게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불상은 매우 독특한데 원효회고상과의 연관성을 밝힐 사료가 전하지는 않으나 선림사에는 원효의 "양권무량수경종요"라는 저서의 필사본이 전하기도 하고 이 필사본을 만든 승려가 가마쿠라 시대에 활동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원효회고상의 영향이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에선 독특하게 고인의 유골에 흙을 붙여서 조각상을 만드는 방식이 있었는데 설총의 외삼촌이기도 한 문무왕탈해 이사금의 능을 파서 뼈를 추려낸 뒤에 석탈해상을 만든 후 동악에 석탈해전을 지어 그곳에 모셨다는 기록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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