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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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월간조선
유형
시사 월간지
창간일
1980년 4월 1일
발행사
조선일보(1980 ~ 2001)
월간조선사(2001 ~ 2009)
조선뉴스프레스(2010 ~)
본사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
편집장
배진영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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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성향
3. 비판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분신자살 건설노조원 유서대필 오보
5. 여담
6. 역대 편집담당자
6.1. 주간
6.2. 월간조선부장
6.3. 편집장



1. 개요[편집]


月刊朝鮮[1]

조선뉴스프레스의 월간지. 보통 월조 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낙선에 의하여 '세대'라는 제호로 창간·발행되었다가 1980년 4월 1일에 조선일보사가 인수하여 월간조선으로 제호를 바꿔 발행되어 출판국 월간조선부가 업무를 맡았으나, 2001년 1월 2일자부로 독립법인 월간조선사로 분리독립하여 2001년 2월호부터 월간조선사 명의로 발행하였다.[2]

월간조선사의 초대 사장은 당시 편집장이었던 조갑제. 그는 월간조선 분리독립 이후 2004년까지 월간조선 대표이사와 편집장을 겸직하였다.[3] 1980~90년대만 해도 조갑제 기자를 주축으로 한 여러편의 특종을 내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당시로서는 최대한의 자료를 가지고 공정하게 서술한 조갑제 씨의 유고 연작을 비롯하여 지금도 심심하면 터지는 고위공직자 자제의 병역비리 논쟁 등을 싣기도 했다.

월간조선사는 그 후 2010년부터 조선뉴스프레스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였으며 주간조선, 탑클래스, 여성조선, 월간 산 등 조선일보에서 나오던 잡지계열은 모두 조선뉴스프레스에서 발행하고 있다.

과거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월간조선 기자들 중 능력을 인정받는 젊은 기자들이 조선일보로 발탁되어서 일간지 기자로 활발히 활동하는 등의 일이 간혹 있었지만,[4] 세월이 흘러 월간지나 주간지를 막론하고 시사 잡지 시장 자체가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아예 종이신문 자체가 사양산업이 된 지금은 그러한 일은 사실상 없다. 전반적으로 주간지나 월간지들이 본사의 일간지와는 아예 별개의 매체처럼 움직이는 상황이 정착된지 이미 오래인 것. 이 때문에 지금은 월간조선이나 주간조선 등의 자매지들은 사실상 조선일보 그룹 내의 유배지 정도로 인식되는 형편이 되었다.[5]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한문 혼용이었고 2000년대까지도 한자가 꽤 많았으나 2010년대부터는 한자 비중이 확연히 줄었다. 2020년 현재는 본문은 다 한글로 쓰고 한자는 소제목 등에서 보조문자로 쓰이는 정도로 여느 신문과 비슷한 수준이다.

부록의 질이 좋을 때가 많았다. 명연설집을 모아서 MP3 CD와 함께 준다던가. 실제로 12.12 군사반란 당시 녹음 테이프라던지(백업본 1편, 백업본 2편), 김정일 육성 녹음 테이프(방송자료로 활용된 버전) 같은 것은 모두 월간조선이 최초로 부록으로 공개한 것이다. 맥나마라의 회고록 최초 번역소개 등의 문화면 기사도 나름 볼만한 게 많았다.

2. 성향[편집]


정치적 성향은 강경 우파. 자매지인 조선일보가 이른바 조중동 중에서도 가장 강경한 보수 우익 성향이면서도 동시에 어느 정도는 비보수파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과는 달리 월간조선은 조선일보 보다도 훨씬 더 극단적인 논조이다. 예를 들면 조선일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애매모호하게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이나 탄핵 반대론에도 함께 슬쩍 발을 걸쳤던 것과는 달리 월간조선은 그런 것 없이 대놓고 무조건 태블릿 PC 관련 음모론과 박근혜 탄핵 반대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두툼한 시사 월간지를 읽는 사람은 이젠 노인들 밖에 안 남은 터라 월간조선은 노골적으로 보수성향 노인 독자들만을 향한 타케팅을 하면서 갈라파고스 언론화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땐 북한제 물건 정보를 단순히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친북 빨갱이라고 기사를 쓰기도 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탐구나 시베리아 벌목공 문제, 국군포로 문제 등 초기 기사들은 대단한 수준이었고, 5.18 관련 보도는 1980년대 청문회 정국때 야당 의원들의 바이블이 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갑제가 위험에도 불구하고 당시 계엄군에 의해 고립된 광주에 잠입취재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조갑제는 지금까지도 다른 극우인사들과는 달리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을 배척한다.[6]

일례로 지난 2013년에는 극우들이 5.18 기념일을 즈음해 다수 종편매체와 일베저장소를 통하여 5.18 왜곡 논리를 대대적으로 살포한 바 있다. 이때 조갑제는 여전히 "5.18에 북한군이 개입되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5.18은 반공 민주화운동이다."라고 잘라 말하며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는데, 이 때문에 일부 극우사이트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조갑제가 "종북 인사"로 몰리기도 했다.

유명한 기고자로는 조갑제, 김용삼 기자 등이 있었다가 세월이 흘러 어느정도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 과거에는 허문도·허화평[7]이 기고하기도 했다. 또한 보수적 성향을 보이면서도 가끔은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비난을 위해서 자기들이 종북주의자라 부르는 자들의 주장[8]끌어온다는 점.

더불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해선 노골적인 편 들어주기도 보인다. 객관적인 부분에 있어서 편을 들어주는거면 모르겠는데, 문젠 예를 들어 이스라엘 항목에도 나온 팔레스타인 학살 관련 건도 팔레스타인이 벌인 미디어 조작이라고 신나게 보도한 바 있었다. 허나 사실은 정반대.(...) 2003년 미국이라크 침공 당시에도 사담 후세인이 막장 독재자라는 것만 신나게 보도하고 럼즈펠드가 과거 후세인을 만나 손잡고 두둔한 것이라든지 미국이 봐준 이야긴 쏙 빼버렸다. 덕분에 당시 사람들에게 한국 언론인지 미국 네오콘 기관지인지 헷갈릴 정도라는 비아냥도 많이 당했다.

2018년 10월호에서는 매우 특이하게 문재인 대통령이 야권 시절 봉사활동을 한 네팔의 학교를 직접 찾아가서 현황을 취재하고, 당시 문 대통령을 안내한 현지 트레킹 가이드인 벅터 람 라미차네(Bhakta Ram Lamichhane)와 단독 인터뷰를 한 기사를 올렸다. 벅터 람 라미차네는 2016년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한 글을 한국어로 올려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학교 취재 기사, 인터뷰 기사. 인터뷰 및 기사 내용들은 대부분 문재인 대통령을 칭찬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논조로 나와 있다.


3. 비판[편집]


잡지의 내용이 1994년 이래 북한의 참혹한 실태 취재를 가장한 한국 좌파 비난, 이승만 국부론, 박정희 신격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민주당계 정당진보 계열 정치인 까기, 대기업 찬양, 친미와 친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관련 왜곡[9]이 대부분이다. 당연하지만 이중엔 근거도 희박해 황색언론에서나 떠돌아다닐 가짜뉴스 뺨치는 음모론들도 있다. 당연히 그런 음모론을 매달 창조해낼 순 없으니 같은 내용을 순서만 바꿔서 몇달 주기로 반복 재생산하는건 덤.

심지어 전혀 무관한 기사에도 으레 북한 정치범수용소국민의 정부의 대북관 비판이 들어있다. 신상옥 감독 인터뷰때도 항상 국민의 정부의 퍼주기 비판이나 박정희 정권 찬양이 있고 로마인 이야기 흥행 후에는 무슨 이유인지 신라 ☞ 로마 ☞ 베네치아 ☞ 박정희로 이어지는(...) 기승전결 논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한때는 몽골 관련 이야기도 박 대통령과 연결했다. 신라의 군사력을 높이는건 좋았는데, 로마군과 전력을 비교해서 로마군은 신라의 기마군단에 패배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발표.

더 웃기는 것은 복거일 등을 앞세워 국한문혼용과 영어공용화를 대차게 주장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동시에 영어 공용과 국한문 혼용을 할수 있는지. 국영한문체를 쓰자는 건지도 모른다.

2009~2010년 경에는 장보고급 잠수함을 까면서 정신력 드립을 시전하여 밀덕들이 비난했다.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이 사건이 벌어진지 2년이 지난 2009년까지도 연신 보도하며 참여정부 탓이라고 비난하다가 이명박 집권기간에 예멘에서 한국인 선교사 살해사건이 터지자 이후로는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당시 이명박 정부를 위해 입다문다는 비난을 들었다. 선택적 정의

월간조선을 보면 조선일보에 올렸다가는 뒷감당이 불가능한 강경한 어조나 의혹성 주장의 취재 보도들이 실리기도 한다. 때문에 조선일보에는 없는데 월간조선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한강 의대생 실종 사건이 그 사례.

또 동석자 A씨의 잘못 여부에 대해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은 형평성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A씨에 유리한 입장을 보이는 인물로는 변호인, 교수, 법의학자, 프로파일러, 가족 등이 줄줄이 등장했다. 그러나 정민씨측의 입장을 보여주는 인물은 정민씨의 아버지 손현씨 외엔 한강공원에 모인 목소리 큰 시민 몇 명과 유튜버들이 전부였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그알'이 A씨의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방송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민씨 유족이 왜 의혹을 가졌는지, 무엇을 알고싶어하는지에 대해서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 외에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만취 실족사'라는 답을 정해놓고 방송을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이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데 조선일보에서는 딱히 그런 반응이 없다. [월간조선]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손정민씨 사건에서 알고싶었던 것 (조선일보)드디어 '그알'이 나섰다..한강 의대생 故 손정민 사망사건 방송 결국 해당 사건은 범죄 가능성이 없는 단순 사고사로 결론났으니, 메인 일간지에 올렸다가는 뒷감당 못하고 망신당할 사안이었다.

4.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 사실왜곡으로 사람 잡을 뻔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1993년 한완상 저작 왜곡 사건, 1997년 한국외대 이장희 교수 저작 왜곡 사건, 1998년 고려대 최장집 교수 사건. 먼저 이장희 교수 사건은 이장희 교수가 쓴 '나는야 통일 1세대'라는 책의 일부 구절을 시비삼아 '통일이 되면 수도와 나라꽃이 바뀌나?'라는 기사로 빨갱이라고 주장한 사건으로, 결국 검찰이 이장희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으나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이장희 교수는 조선일보를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해서 승소했다. 문제가 된 구절은 해당 기사 참조. 참고로 조선일보는 1995년 '나는야 통일 1세대'를 어린이 추천 도서로 선정했다. 게다가 당시 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정치거물 이한동 의원은 이 시절부터 파주통일 수도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최장집 교수의 경우는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이라는 책에서 한국전쟁의 원인을 분석한 부분에서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문제삼았다. 그 다음 구절에서 김일성을 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부분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이 사건은 법정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당시 김대중 정부의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최장집의 목을 날렸다. 특히 최장집 교수 사건은 강준만, 진중권, 홍세화 등의 당대 인기 진보논객들이 힘을 합치면서 안티조선 운동의 탄생에 공헌했다. 단 최장집 사건은 이한우 기자에 의해서 조선일보에서 먼저 시작된거니 월간조선과 무관하다고 하지만 월간조선도 우종창 기자가 이한우와 함께 쌍으로 붙어서 적극적으로 저격해대는 등 전위대 행위는 벌였다.

  • 1995년에는 김일성 죽음을 예언한 무속인 드립치면서 큼직하게 무속인을 홍보해주기도 했다. 1994년에 김일성이 죽을 것이라는(이 무속인 심진송이 쓴 책을 보면 정확히는 어느 사람이 와서 사주를 알려주니 곧 죽을 것이라고 했더니만 그게 김일성이라고 말했다고....그 사람은 월간 조선 기자) 예언이니 큼직하게 보도했다. 참고로 이 무속인은 통일교 문선명 교주가 1995년 오래안가 죽을 것이라고 책에서 예언했는데 17년이나 걸려 드디어 갔다.

  • 함세웅 신부와 명예훼손 소송이 있었는데 패소했다. 세종대 임시이사로 파견됐던 함세웅 신부 등을 ‘노무현정부의 코드인사’라고 했던 월간조선의 보도가 허위사실인 것으로 확정됐다. #

  • 2014년 3월,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월간조선 인터뷰에 공개된 내용이 일부 사람들에게 독재체제 옹호, 기본권 제한, 성 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논란이 일었다. 이에 함익병은 "강적들" 방송에서 독재에 관한 부분은 원론적인 얘기를 한 것 뿐이고, 여성의 병역의무에 관한 부분은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말한 것이며 말실수가 아니라고 얘기했다. 함익병의 말처럼 노르웨이, 대만(현재는 모병제), 이스라엘 등 병역이 의무제인 주요 국가에서 직접적인 병역부과이든 그걸 대신하는 국방세의 부과든 여성들만 제외시킨 국가는 한국 뿐이며 모병제인 미국조차도 전시상황 강제징집 대상으로 여성들도 포함시키는 법안이 2016년에 통과되었다. 오히려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시키는 현상황이야말로 성차별이라는 비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인터뷰에서의 함익병의 문제제기 자체가 일리 없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일부 과격한 표현이 들어있으니 그런점은 감안할 필요는 있다.


  • 2017년 3월호, 10월호부터 12월호까지는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과 관련된 내용을 실어 논란이 되었다. 역시나 이 설도 우종창기자였다.[10] 특히 11월호에서 검찰의 태블릿PC 분석자료를 왜곡해 해석하는 한편, 2018년 4월호에서는 노승일의 인터뷰 내용을 왜곡한 기사도 올린 바가 있다. 해당 내용은 태블릿 조작설 관련 문서에서 검색 바람.

  • 2022년 3월호에서 루나코인을 만든 권도형과 신현성을 '블록체인을 선도하는 천재'라고 치켜세우면서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간 한국 암호화폐 시장의 성장을 막았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내었다.#, 아카이브 그러나 불과 두 달 뒤, 루나코인이 100% 가까이 대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 기사는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실한 암호화폐를 예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 2021년 한미정상회담오찬 메인 메뉴로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가 등장해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월간조선에서 네티즌발 의혹을 전하며 은어, 속어를 다루는 미국의 서브컬처 사전 사이트 어반 딕셔너리가 크랩 케이크의 뜻풀이로 '같은 패거리도 아닌데 옆에서 알짱거리며 떠나지를 않는 사람[11]'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제시한다며 2021년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이 대접한 크랩 케이크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꼬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하였다.[12] 또한 crab(게)은 발음이 유사한 비속어 crap(쓰레기, 헛소리, 배설물)과 엮여 말장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crab 자체에 '귀찮은 놈[13]'이라는 뜻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2023년 한미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부부가 국빈방문을 하게 되자 미국 측에서 2년 전과 똑같이 크랩 케이크가 포함된 메뉴를 내놓으면서 월간 조선과 극우 커뮤니티에서 주장하던 문재인 홀대론이 무색한 상황이 벌어졌다.#


4.1. 분신자살 건설노조원 유서대필 오보[편집]




월간조선은 2023년 분신자살한 건설노조 조합원 양희동씨의 유서가 필적이 다르므로 대필되거나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기사를 실었다가 이후 필적 감정 결과 동일인의 것으로 밝혀지자 사과문을 게시했다. 월간조선은 "먼저 취재 기자는 필적 감정 같은 기초적인 사실 확인 절차를 생략한 채 기사를 썼고, 이를 걸러내야 할 편집장과 데스크들은 게이트 키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라고 했다. 월간조선 사과문

월간조선 보도 이후 유가족과 변호인단은 전문가 필적 감정을 의뢰해 유서들이 양 지대장 본인에 의해 쓰여졌음을 밝혀냈다. 월간조선은 필적 감정 업체 두 곳에 필적 감정을 의뢰한 결과, 해당 유서들의 필체가 동일인의 것이라는 회신을 받았다고 밝혔다. #

월간조선의 사과문에서 “취재 기자가 민노총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 반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설명하는 구절이 있는데, 객관적인 물증 없이 취재 검증을 빈약하게 한 책임을 취재 상대방에게 떠넘길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5월 19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성명에서“조선일보 집단은 기사 작성자의 의심 외에 아무런 객관적 근거나 물증 없이 혐오를 조장했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왜곡 보도를 주도하고도 또다시 같은 방식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김준태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월간조선 사과에 대해 “오보 인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오보가 일파만파 번진 뒤에 사과문을 냈다 한들 양회동 열사와 유가족, 그리고 노동조합은 이미 막대한 오명을 썼다”며 “월간조선은 이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고 반응했다. #

양희동씨의 유족은 유서 대필 의혹을 보도한 기자와 이를 승인한 책임자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

5. 여담[편집]


  • 2000년 이전까지도 잡지로는 드물게 세로쓰기를 고수해왔던 적도 있었다가 이후 가로쓰기로 변경한 적도 있다. 특히 당시 조갑제 편집장은 월간조선 권두에 있는 편집장의 편지를 통해서 월간조선이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변경하게 되었을 때 세로쓰기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 원래 지난 기사를 보려면 유료였지만 신동아와 마찬가지로 무료로 전환되었다. 반면 전자책은 유료이나 1980년 창간호부터 볼 수 있다.

  • 정치색을 떠나서 보면, 칼럼 자체는 굉장히 흥미거리 위주를 많이 쓰는 편이다. 일간 신문의 인터뷰와 기자가 보고 느낀점을 그대로 묘사하는 내용이 좋아서 특정 기사를 볼때마다 시시콜콜한 TMI부터, 당사자의 인터뷰까지 종합해서 독자들이 이해할만한 스토리텔링을 잘 만든다. 프로 스포츠팀의 2군 구장에 대한 월간 취재나, 특정 직업군에 대한 24시간 업무 등의 이야기등을 보면 인간극장을 글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6. 역대 편집담당자[편집]



6.1. 주간[편집]


  • 이흥우 (1981~1984)


6.2. 월간조선부장[편집]


  • 허술 (1983~1986)
  • 유정현 (1987~1991)
  • 조갑제 (1991~1996/1996~2000)
  • 서희건 (1996~1998)


6.3. 편집장[편집]


  • 조갑제 (2001~2004)
  • 김연광 (2004~2008)
  • 김용삼 (2008~2010)
  • 최병묵 (2010~2016)
  • 문갑식 (2016~2018)
  • 김성동[14] (2018~2022.09)
  • 배진영 (2022.10~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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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간조선 잡지 로고도 한자로 쓰는 편이다.[2] 2001년 분리독립 이후에도 조선일보와 같은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사옥을 함께 쓰고 있다.[3] 조갑제는 1983년 조선일보사 월간조선부 기자로 입사하였으며 1996년~1997년 해외연수로 잠시 물러났다가 1998년에 월간조선으로 복귀하였다.[4] 윤석열 정부의 초대 대변인을 지낸 강인선이 바로 월간조선 기자로 입사해서 조선일보 본사로 발탁되었던 경우였다.[5] 이러한 상황은 신동아, 월간중앙 등의 타사 자매지들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본사의 주류 라인에서 밀려나 승진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편집국 간부들의 한직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젊은 주니어급 기자들의 충원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편.[6] 1995년쯤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월간 조선에서 이 무렵 조갑제가 찍은 1980년 광주 시민들 시체 사진까지 모자이크 없이 올렸다.[7] 허문도와 허화평은 5공허삼수와 함께 전두환의 정권실세인 '쓰리허'를 구성하기도 했다.[8] 이를테면 북한 핵실험 발표 수 년 전에 수십 개의 핵무기를 이미 실험을 마쳤다던가 미국도 겁날 정도의 핵강국이라든가..[9] 이쪽은 제2차 가자 전쟁이 한창이던 2010년대 초중반 한정이며 양국의 분쟁이 잠잠해진 2010년해 중후반부터는 잠잠해지긴 했다.[10] 엄밀히 말하면 조작설을 제시했을시기의 우종창은 퇴사한지 오래라 조선일보맨 신분이 아니다.[11] Someone outside of your clique who hangs around idly and won't leave[12] #[13] An irritable person[14] 신천지 교주 이만희를 우호적으로 다루는 기사를 작성했다. 현재 기사는 비공개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