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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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코리아
Wal-Mar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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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명
정식: 주식회사 월마트코리아
영어: Wal-Mart Korea Co., Ltd.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설립일
1998년 7월 10일
해산일
2006년 5월 22일[1]
주소
서울특별시 송파구 신천동 11-10,
잠실 아이 스페이스 1층

모기업
Walmart
대표이사
산티아고 로세스(Santiago Roces)
전신
한국마크로 (1993. 6. 25.~1998. 7. 10.)
후신
이마트 (2006. 5. 22.~현재)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웹 아카이브)[2]

1. 개요
2. 상세
2.1. 대한민국에서의 실패와 그 원인
3. 역대 대표이사
4. 지점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언제나 낮은가격! 언제나 월마트!

Always Low Prices Always WAL★MART

(주)신세계의 옛 자회사 신세계마트가 미국 월마트의 한국 현지법인이던 시절을 다루는 문서이다.


2. 상세[편집]




파일:external/pds.joinsmsn.com/htm_2006101206264450005010-001.jpg

월마트코리아 1호점인 강남점의 모습.[3]
월마트 간판을 이마트 간판으로 교체하는 모습.[4]

대한민국에는 네덜란드계 기업 한국마크로와 전 직원을 인수하면서 중국에 이어 아시아 시장에서는 두 번째로 진출했었다. 2004년 기준 직원은 총 3,500명이나 있었으며, 당시에는 월마트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직원들을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세계 월마트의 직원 수는 약 150만여 명이었다.[5]

마크로 자체는 1996년 1월에 인천점(지금의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 송림점)을 시작으로 진출하였다.[6] 그러나 상표권 때문에 진출 1년 후에야 법인명을 '월마트코리아'로 변경했고, 이후에도 실적이 나빠서 2006년 5월 22일에 철수했다.[7] #

대한민국에서는 현지화를 간과하고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로 두고두고 인용되고 있는데, 어지간한 경영학 입문, 마케팅 관련 교재를 보면 빠지지 않고 실패한 마케팅 전략 실행 사례로 반드시 나온다. 경영대학 교수들도 마케팅, 경영학 입문 수업에서 반드시 언급하는 케이스 중 하나. 월마트의 한국 실패 요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꼽힌다.


2.1. 대한민국에서의 실패와 그 원인[편집]


  • 당시 대한민국 실정과 맞지 않았던 점포 특징
    • 월마트가 지은 대한민국 점포의 특징으로는 커다란 주차장과 창고 형태로 진열한 물품이 꼽힌다. 이는 미국처럼 차량을 끌고 와서 대량구매하는 소비 형태에 적합한 형식이었는데, 문제는 이게 당시의 대한민국 소비 문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 지금에야 부부가 다같이 차를 끌고와서 장보는 형태도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차를 끌고와서 큰 부담은 없지만 당시엔 장보기는 대부분 주부의 영역이었다. 즉, 주말에 가족이 다같이 차를 끌고 와서 일주일치 쇼핑을 한꺼번에 하는 형태가 아닌, 혼자 와서 그 날 저녁 찬거리를 구매하고 장바구니에 부랴부랴 챙겨가는 모습이 당시 한국의 주된 쇼핑 패턴이었다. 쉽게 말해서, 당시 대한민국의 백화점이나 마트 문화는 재래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번듯한 건물과 위생적이고 깨끗한 환경 정도만 달랐을 뿐, 이용 고객이나 이용 시간, 이용 패턴 등이 거의 재래시장과 유사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할인마트들도 이러한 점, 다시 말해 재래시장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재래시장과 유사한 장보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았다. 그러니 월마트의 크고 아름다운 주차장은 거의 쓸모가 없었다. 별로 싣고 갈 물건도 없는데 괜히 차를 끌고 나와봤자 불편할 뿐이었으며 애초에 당시엔 세컨드카 개념도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주부들이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차 없이 장을 보러 와야 했다.[8]

  • 셔틀버스 서비스의 부재
    •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국내의 백화점과 할인마트들은 2001년 셔틀버스 운행을 금지하는 법안[9]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셔틀버스를 운용했다. 어지간한 부자 동네가 아닌 이상, 버스나 택시에서 내려 바로 들어가 장을 보고 혼자서 운반 가능한 작은 크기의 장바구니나 상자만 달랑 들고 다시 버스나 택시 타는 게 당시의 주된 소비 패턴이었다. 물론 차량 이용객도 있긴 했지만, 당시 대한민국 쇼핑 문화가 대량구매하는 일은 적었고[10], 각 가정마다 차량은 대부분 일하러 나간 남편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주부들이 장 보러 오는 시간대에는 차를 쓸 수 없었다. 그 당시엔 맞벌이세컨드카 개념이 대중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하자.

때문에 당시 마트나 백화점의 셔틀버스 운용 전략은 고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더 먼 곳의 손님까지 끌어모은다는 마케팅의 일환이기도 했다. 셔틀버스가 없었다면 차량이 없는 주부들은 근처 시장이나 동네 슈퍼와 정육점, 식료품점 등을 돌면서 장을 봤을테지만 셔틀버스가 있으니 이걸 타고 멀리 있는 마트까지 장을 보고 오는 것이 가능했다. 다시 말해 셔틀버스가 마트나 백화점의 고객층 범위를 크게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월마트는 주차장은 큰 주제에 이런 셔틀버스 서비스 조차도 없었다. 1999년 10월 26일 신문기사에 의하면, 월마트나 까르푸 등 외국계 마트는 이러한 한국 소비 패턴을 파악하지 못하고, 셔틀버스 서비스를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주차장은 넓었지만 차를 가지고 쇼핑을 올 수 있는 고객이 많지 않았고, 주부들은 셔틀버스도 없는 마트를 가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이는 월마트가 매장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장사하는, 매우 얇은 고객층을 가지게 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 잘못된 상품 판매 전략
    • 월마트가 도매업으로 시작했기에 발생한, 신선한 채소류/식자재보다 공산품 위주의 상품 판매 전략도 대한민국의 실정과 맞지 않았다. 까르푸/대한민국 문서에도 적혀져 있지만 한국인들의 채소 섭취량은 2000년을 기준으로 1위였고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들만 보더라도 채소가 많이 들어가서 채소를 적게 판매하면 장사가 힘들다 거기다 상품 진열을 지게차 사용 편의와 미국인의 체형 기준으로 맞췄기 때문에(약 2m 내외) 한국인에게 너무 높았다. 그런데 사실은 미국인들에게도 필요 이상으로 큰 매대라는 것이다. 미국은 매대 기준을 덩치가 큰 사람들이 편하게 고를 수 있도록 하고 물건을 진열할 때 지게차의 도움을 받는 탓에, 매대가 필요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편의점에서 일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원래 매대 높이는 그 나라 여성의 평균 키에서 30cm를 뺀 값 아래여야 한다. 그러나 월마트는 한국이라면 매대가 120cm 미만이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했다. 쇼핑은 주로 주부들이 하는 점을 고려하면 접근성이 상당히 저조했다. 게다가 월마트가 인수했던 마크로도 처음부터 창고형 매장으로 시작했기도 했고. 이 부분은 유럽계 할인점인 까르푸에서도 똑같이 지적받았다.[11]

허나 코스트코는 미국에서 사용하는 전략을 그대로 대한민국에 밀어붙인 뒤 성공했다. 다만 이 경우에는 곳곳에 매장이 있는 것이 아닌, 교외에 소수의 매장을 지어 '올 사람만 오세요' 식의 운영을 한 결과로 보인다. 미국의 도시들은 대체로 교외 지역이 주거 중심지로 발달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코스트코는 생활 권역 근처에 매장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는 두 회사의 본부가 있는 장소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코스트코와 피합병사 프라이스 클럽[12]은 본거지가 미국 서부의 워싱턴주 시애틀권에 위치한 관계로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들의 취향을 어느 정도 이해하며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반면, 중남부 지역인 아칸소 주에서 시작한 월마트는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을 고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코스트코는 양질의 수입상품을 대량으로 싸게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월마트는 딱히 관련 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월마트의 대한민국 진출을 막기 위해 미리 상표권을 선점하는 등[13]의 일들이 다 뻘짓이 되었다. 당시에는 그걸 애국적인 행동으로 떠받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허나 이런 짓은 미국이 앞서 더 많이 저지르므로 비판요소까진 아니다. 다만 월마트가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대한민국 대형마트의 발전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다르게 말하면 월마트가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일 수도 있기는 하다. 국민소득이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자차 보유와 세컨드카 보유가 1990년대보다는 상당수 보편화되며 헌법재판소의 관련 법률 합헌 판결으로 셔틀버스 운행이 금지되고, 과거보다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쪽으로의 문화의 변화 등으로 인해 위의 문제점 문단에서 상술했듯 요즘은 차량을 끌고 와서 1~2주치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가는 경우가 더 보편적인 장보기 문화가 되었고 극단적인 도매 및 대량구매 역시 코스트코와 이를 위시한 각종 창고형 매장(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 롯데마트 맥스 등)으로 어느정도 정착되고 인프라가 마련된 현재 시점에서 월마트가 들어왔다면 우려하는 것마냥 독점이나 메이저 3사(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수준의 초대박 수준은 아니더래도 하나로마트(농어촌 특화)나 코스트코(자차 위주 생활+대량구매 특화)처럼 그들만의 틈새시장에 정착해서 소소하게 흑자를 내면서 그럭저럭 연명하는 정도는 가능했을 수 있다.

정확히는 하필이면 대한민국이 아직 자동차 대중화가 막 완료된 1990년대 말에 들어왔기 때문에 자차 중심의 북미식 문화를 날것 그대로 가져온 게 치명적이었던 탓이 크다. 월마트가 진출하기 직전인 1997년에는 자동차 등록대수가 1000만대를 막 돌파했는데, 이것은 가구당으로 따지면 한가구당 1대에 못치는 수준이었다. 즉, 이 당시에는 4인가족 기준으로 차를 1대씩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차를 2대씩 가져서 부부가 따로 쓰는 것은 중상류층 이상의 일로 아직 대중적이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2021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1인당 0.55대이므로 3~4인가구 기준으로 세대당 1.65대가 있다는 것이다. 2021년에는 한 집당 한대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무조건 기본으로 깔고 가고 65%의 확률로 세컨드카를 보유하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보면 어차피 셔틀버스나 재래시장 장보기 문화는 애시당초 한국에서 사라져버린지 20년이 다 되었고, 그 당시부터 입점해서 잘 나갔던 메이저 3사 대형마트 매장들이 2020년대 현재에는 1990년대 과거 당시에 자차 이용객과 대중교통 이용객 비중을 반반 정도로 분산 수용할 것으로 전제하여 매장 규모 대비 상당히 타이트하게 설계된 주차장 문제로 주말마다 주차 전쟁이 벌어지는 헬게이트로 변모한 걸 감안하면 셔틀버스 서비스를 하지 않는 댓가로 매장 규모 대비 주차장 규모를 미친듯이 넓게 잡아둔 월마트의 전략이 2020년대에는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월마트 출신 이마트 점포들과 2010년대 이후 지어진 이마트 점포들 또는 코스트코 점포의 경우 주차난이 거의 없는 편이다. 즉, 1970년대 당시 세금 낭비라고 욕을 바가지로 먹어 가면서까지 강남대로영동대로, 테헤란로를 왕복 8~12차로로 닦아놓은 건설교통부 실무진들처럼 월마트도 이러한 장보기 문화와 이동 문화의 변화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미래를 예견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당시 월마트가 생각했던 것만큼 적응과 변화가 빠르지 않았을 뿐.[14]

이 외에도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한 국산품 장려운동 및 2002년 동계올림픽 편파판정 및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 때문에 생긴 반미 감정도 한국에서의 월마트 성장의 방해요인이 되기도 했다.

월마트의 낮은 점포 수도 나쁜 영향을 끼쳤다. 2006년 3월 기준으로 16개의 점포가 전부였는데 경쟁 라이벌이었던 프랑스계 유통회사인 까르푸의 32개 점포의 절반이었다. 그래서 당시 그래프를 보면 월마트만 유독 바닥을 기는 모습을 보인다.[15] 한국의 이마트는 2006년 당시 79개의 점포였고 롯데마트는 45개였으며 홈플러스는 42개였다. 다른 마트에 비하면 점포가 터무니 없이 적었다.

당시 월마트는 한국 철수 계획이 없었으나 신세계 측에서 인수를 제안해 한국 월마트 점포들은 신세계가 인수 후 이마트 브랜드로 통일하여 "신세계마트"라는 별도의 법인으로 되었다가, 2008년 신세계와 완전히 합병되었다. 월마트 출신의 일부 점포들은 나중에 이마트에서 런칭한 창고형 매장인 이마트 트레이더스로 전환되었다. 마크로와 월마트가 각 점포의 규모를 크게 지어 놔서 창고형 매장으로 만드는 개조가 쉬웠다고 한다.[16]

3. 역대 대표이사[편집]


  • 마틴 J. F. 버트램스 (1993~1996)
  • 야곱 C. A. 데 용에 (1996~1998)
  • 레니 망 (1998~2005)
  • 산티아고 로세스 (200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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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점[편집]


  • 주소는 모두 월마트 운영 당시에 사용했던 주소로 기입하였다.
  • 현재는 모두 이마트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 매장이 되었다.[17]
지점 목록
점포
주소
비고
서울특별시
강남점
[18]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755
구 월마트. 월마트코리아 1호점.[19]
역삼동 한솔필리아 상가 지하에 입점. 서울에서는 이곳이 유일한 월마트 매장이었다.
부산광역시
부산 서면점
[20]
부산시 부산진구 부암동 93
마크로[21]-월마트-이마트.
부산진구청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대구광역시
대구 비산점
[22]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1612-3
마크로[23]-월마트-이마트.
상신삼거리, 서대구초교 근처.
대구 성서점
[24]
대구광역시 달서구 감삼동 521
구 월마트.
우방드림시티 아파트 상가 지하 입점. 소규모 점포란 점과 접근성이 좋지않자 영업부진으로 2021년 7월 7일에 폐점되었다.
대구 시지점
[25]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566-3
구 월마트[26]-이마트.
이마트로 넘어간 뒤 경산점과의 상권 중복으로 2018년 5월 16일 폐점 후 시지 하늘채 스카이뷰가 들어섰다.
인천광역시
인천점
[27]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 296-2
마크로-월마트-이마트. 한국마크로 1호점.

인천 계양점
[28]
인천광역시 계양구 작전동 911-1
구 월마트.

대전광역시
대전점
[29]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 510
마크로-월마트-이마트.

울산광역시
울산 중앙점
[30]
울산광역시 중구 학성동 349-15
구 월마트-이마트.
2017년 11월 29일 폐점 후 이마트같은 계열사신세계건설이 건물을 사들여 빌리브 울산이 들어섰다.
경기도
안양 평촌점
[31]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1608
구 월마트.

구성점
[32]
경기도 용인군 구성읍 보정리 1019-237[33][34]
마크로-월마트-이마트.

고양 화정점
[35]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976
킴스클럽-월마트.

일산점
[36]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덕이동 203-1
마크로-월마트-이마트.

부천 중동점
[37]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동 1157
구 월마트.

경상남도
마산점
[38]
경남 마산시 중앙동 3가 4-1[39]
구 월마트.

경상북도
포항점
[40]
경북 포항시 북구 득량동 305
구 월마트.
공교롭게도 이마트로 넘어간 뒤 이마트 매장 100호점이 되었다.
광주광역시,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제주특별자치도
광주광역시와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 전 지역에는 점포가 없었다.


5. 여담[편집]


  • 입사하면 무조건 영문명을 지어야하는 규정이 존재했다.[41] 심지어 부서명도 모두 영문명이었다.

  • 이마트,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 점포 중 간판이 건물 정 중앙 상단에 걸려있다면 높은 확률로 월마트였던 점포일 수 있다.[42] 건물 구조 상 예외인 점포도 있다.[43] 상가 건물에 입점된 점포를 제외한 월마트 전 점포는 매장이 지하층과 1층에 있고 지상 2층부터는 주차장만 있다. 무빙워크는 4층까지만 설치되어있고 엘리베이터는 2, 3층 건너뛰고 4층부터 운행하는 곳이 보통 월마트로 지어진 점포다. 다만 마크로로 지어진 점포는 당연히 이러한 구조로 되어있지 않다.

  • 대구 성서점, 대구 비산점, 울산 중앙점을 제외한 모든 매장은 24시간 운영을 한 바 있다.[44] 당연히 비아냥만 듣고 편의점 업계의 반발만 불러왔다.

  • 한국 매장은 모두 철수했지만 주한미군 부대 내에 미국 월마트가 운영하고 있는 곳이 남아있다. 일단 미국 영토 취급이기 때문에 미국 본사가 직영한다. 당연히 일반 국민은 출입이 불가능하고, 출입이 가능하더라도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다.

  • LG카드랑 함께 제휴카드를 운영하기도 했다.

  • 엘리베이터무빙워크는 모두 LG오티스티센크루프 제품이 설치되어 있었다.[45]

  • 월마트의 상호명을 도용한 업소가 꽤 있다.[46][47]

  • 서울에는 월마트 점포가 1개[48]밖에 없었으나 대구에는 3개[49]나 있었으며 광역시 중에선 대구가 가장 많았다. 이후 2006년 이마트로 바뀌고 2점은 매출 저조로 폐점했다.

  • 매장을 철수한 이후에도 2013년까지 상품 조달을 위한 한국지사를 별도로 남겨놓았으나 철수한 후 미국 본사에서 직접 조달하는 것으로 변경되어 2013년 1월 21일 이후로 이제 한국에서 월마트라는 유통업체는 완전히 사라졌다. #[50]

  • 상단에도 이미 후술되어있지만 월마트코리아는 상표권 소송으로 승리하기 전까지는 한국마크로라는 기업명으로 운영하였는데 신문 광고에서는 한국마크로주식회사 월마트스토아한국법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파일:월마트코리아법인.jpg

  • 본래 미국에서 월마트 슈퍼센터는 월마트의 가장 큰 매장을 일컫는 것이었으나 한국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전 점포가 월마트 슈퍼센터로 운영되어 월마트 슈퍼센터가 일반 월마트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 미국 월마트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History 페이지에서도 월마트 한국 진출 관련 내용은 등장하지 않으며[51] 같은연도에 철수한 독일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2020년에 철수한 일본 진출 관련 내용은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단순히 철수해서 안나오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도 한국 진출을 흑역사로 여기는 듯.

  • 월마트코리아가 신세계마트로 법인명이 변경된 날짜는 9월 27일로 공교롭게 한국까르푸이랜드리테일로 변경된 날짜와 동일하며 2006년 10월 11일에 16개의 월마트 점포가 내부공사를 시작해 10월 13일에 이마트 점포로 일원화 되었다.월마트 13일 이마트로 재탄생[52] 즉, 월마트의 한국 점포들은 5월 22일 이후에도 10월 10일까지는 월마트로 운영했다.

  • 경원엔터프라이즈와의 상표권 싸움에선 1998년 7월 13일에 진출 3일만에 승리하였으나[53] 경원엔터프라이즈의 항소로 1998년 10월 22일까지 늦어져 그때부터 월마트 상표를 사용했다. 한국마크로를 월마트로 바로 바꾸지 않고 1999년 3월 1일에 마크로를 비회원제 마트로 바꾼후에 1999년 7월 27일 인천점을 마크로에서 월마트로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월마트로 매장을 운영했다.[54]

  • 2006년 2월 5일부터 한국형으로 매장 형태를 바꿔서 반격을 시도하려고 했으나 그때는 진출 초기와는 다르게 토종 업체인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가 충분히 거대해져 있던 상태였으며 이미 한국 고객들은 월마트를 꺼렸기 때문에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55]

  • 로고가 변경되기 전에 철수해서 월마트가 진출한 동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현재 로고를 사용한 월마트코리아 로고는 없다. 만약 계속 존속했다면 현재 로고 밑에 'Korea'가 붙어있었을 것이다.[예시]


6. 관련 문서[편집]


[1] 신세계가 월마트코리아 인수를 발표했을 때 기준. 실질적인 해산일은 공정위의 합병 승인일인 9월 27일이다.[2] 신세계그룹에 인수된 후 월마트 홈페이지 접속 시 한시적으로 이마트 홈페이지로 포워딩되었다.[3] 월마트가 한국에 진출하고 처음으로 개점한 점포이자 서울권의 유일한 점포였다. 현재는 새로 리모델링되어 이마트 역삼점으로 운영중이다.[4] 해당 점포는 현재 이마트 화정점으로 운영중이다. 본래는 1997년에 킴스클럽 화정점으로 오픈되었으며, 얼마 안 가 뉴코아그룹이 부도나 한창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을 때 이 매장을 월마트에 팔았다. 그래서 월마트로 재운영을 하였으나 수익이 제대로 나지 않자 화정점을 포함한 전 매장을 이마트에 팔아넘기고 철수했다.[5] 물론 지금은 더 늘어나 현재 월마트의 직원은 약 230만명가량이라고 한다.[6] 참고로 마크로는 지금의 코스트코와 비슷한 회원제 창고형 매장이었다.[7] 8250억원에 월마트코리아 법인과 점포를 팔았다. 하지만 8250억원을 지급한 것은 공정위의 승인 이후다.[8] 사실 위에는 미국이 차를 타고 대량구매를 해서 주차장을 넓게 지었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물론 그것도 맞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미국의 월마트 매장은 대부분 교외에 있는 저렴한 땅에 있고 건물이 타이트하게 붙어있는 곳엔 거의 없으며 차량을 타고 가야지 커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먼 곳에 있는 경우가 태반이라 거기에 오는 차들을 위해 주차장을 넓게 짓는다.[9] 유통업계에선 이 법안에 대한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제소했으나, 2001년 합헌 판결이 났다.[10] 셔틀버스가 성황리에 운용되었다는걸 보면 얼마나 당시 사람들이 물건을 적게 샀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셔틀버스에는 승용차 트렁크처럼 개개인을 위한 짐 놓을 공간이 없다. 즉, 주 이용객들이 각자 자신의 장바구니를 안고 타거나 옆 좌석에 놔두는 정도로도 커버가 됐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이라고 크게 다른 것은 아니라서 미국처럼 트렁크나 트럭 짐 칸이 가득찰 정도로 대량구매하는 일은 지금도 적다. 대량구매할 일이 생기면 보통 택배나 배달을 시키기 때문.[11] 아래에 후술되어 있지만 이점을 월마트는 2006년에서야 문제점을 인식해 대대적으로 리뉴얼하려고 했다. 하필이면 그때 월마트의 한국 철수가 결정되어 리뉴얼이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12] 한국에서도 1994년 신세계백화점과 합작해 서울 양평동1호점을 냈다.[13] 그러다보니 국내 진출 후에도 1년동안 월마트라는 상호를 쓰지 못하고 한국마크로라는 이름으로 영업했다가 소송으로 이어진 끝에 쓸 수 있게 되었다.[14] 다만, 2020년대 들어와서는 장보기 문화가 다시 달라지고 있다. 물론 미국식 교외 문화와 흡사한 형태도 크게 증가했으나, 온라인 주문의 증가로 인한 배송 활성화와 더불어 코로나19 시국의 비대면 확대 덕분에 장 보고 배송 시키는 행태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히 홈플러스를 중심으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여 부동산 가치가 높은 자사 점포를 매각한 후에, 동일한 부지에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을 건설하고 지하층~지상층에 재입주하는 방식의 부동산 개발이 유행하면서 이러한 배송문화가 더 활성화되고 있다. 거주하는 건물이나 옆 건물에 입주한 마트에 가서 장 본 뒤에 그냥 배달 시키거나 온라인에서 주문하고 마트에서 픽업하면 땡이기 때문에 상당히 편리하다.[15] 물론 까르푸의 상태도 월마트에 비하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지 까르푸도 상태가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이 쪽도 현지화가 영 시원찮았던데다가 회사 이미지는 오십보 백보 수준이었다.[16] 비슷한 예시로 까르푸 매장을 인수한 홈플러스의 창고형 브랜드인 홈플러스 스페셜이 있다.[17] 일부 지점은 폐점 후 오피스텔이 들어섰다.[18] 現.이마트 역삼점.[19] 월마트 측에서 처음으로 세운 매장이다. 즉 마크로를 거치지 않은 월마트 순수 매장.[20] 現.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 서면점.[21] 본래는 이곳이 마크로 부지였으나 1998년 한국마크로가 월마트코리아에 매각되어 동시에 부산 서면점 부지도 월마트에 넘어가 건물 착공과 개점은 월마트로 하였다.[22] 現.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 비산점.[23] 본래는 이곳이 마크로 부지였으나 1998년 한국마크로가 월마트코리아에 매각되어 동시에 대구 비산점 부지도 월마트에 넘어가 건물 착공과 개점은 월마트로 하였다.[24] 現.이마트 감삼점. 기존 이마트 성서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감삼점으로 변경.[25] 現.이마트 시지점.[26] 본래는 대구백화점 측에서 창고형 매장으로 개장할 계획이었으나, 당시 사정이 좋지 않은 관계로 월마트로 넘어갔다.[27] 現.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 송림점. 기존 이마트 인천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송림점으로 변경.[28] 現.이마트 계양점.[29] 現.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 월평점.[30] 現.이마트 학성점.[31] 現.이마트 평촌점.[32] 現.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 구성점.[33] 現.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용구대로 2457[34] 어째서인지 용인시는 1996년에 군에서 시로 승격되었지만 월마트에서는 한국시장 철수 전까지 구 명칭의 주소를 사용했다.[35] 現.이마트 화정점.[36] 現.이마트 덕이점. 기존 이마트 일산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덕이점으로 변경.[37] 現.이마트 중동점.[38] 現.이마트 마산점.[39] 마산시는 2010년 창원시로 통합되었다.[40] 現.이마트 포항이동점. 기존 이마트 포항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포항이동점으로 변경.[41] 내부 직원만이 아닌 알바생도 영문명을 꼭 지어야했으며 이 영문명이 서로간의 호칭이었다.[42] 파일:월마트 점포 특징 예시 사진.png
이런 식으로. 해당 점포는 이마트 계양점이다.
[43] 예를 들면 마크로로 시작한 점포들. 마크로로 시작한 점포들은 건물 모양이 전체적으로 월마트로 시작한 점포와 많이 다르다.[44] 잠시동안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이마트로 바뀔 때 현수막에 월마트 영업시간인 24시간에서 이마트 운영시간으로 바뀐다고 나와있었기 때문이다. 이마트 30년 연대기[45] 비율로 따지면 LG오티스 제품이 가장 많으며, 티센크루프가 가장 적었다.[46] 파일:1498287712219-1156648615.jpg[47] 해당 업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다. 카카오맵 로드뷰[48] 강남점.[49] 대구 비산점, 성서점, 대구 시지점.[50] 당시 월마트가 한국에 재진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으나 당시 월마트 측에서 사실무근이라고 이번 폐쇄와 매장 재진출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51] 한국에 관련된 내용이 아예없는건 아니다. 한국 진출 내용은 아니지만 월마트 창립자 샘 월튼이 1975년 한국 테니스 볼 공장에 방문했었는데 직원들이 구호체조로 힘차게 시작하는 걸 보고 괜찮게 생각해서 그 구호를 월마트에도 들여왔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 내용은 당시 월마트코리아 홈페이지에도 적혀있던 내용이다. 월마트코리아 회사소개 페이지[52] 2006년 5월 22일은 신세계가 월마트코리아 인수를 선언한 날짜이고 9월 27일은 공정위가 인수합병을 승인하며 신세계마트로 법인명이 변경된 날짜이다.[53] 정확히는 3년이 걸렸다. 월마트는 1995년부터 한국 진출을 준비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5년에 월마트 본사측에서 경원엔터프라이즈의 회장인 김희정씨를 만나기도 했다.[54] 사실 월마트와 경원엔터프라이즈의 상표권 분쟁은 1995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월마트는 이때부터 상표권으로 싸웠다. #[55] 토종 vs 외국계 할인점 승부 <하> 외국계 할인점의 반격[예시]
파일:월마트재팬 로고.png(일본)
파일:월마트중국.png(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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