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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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氏, 月支
타림 분지에서 동•서 무역을 독점하던 종족. 고대 인도유럽어족인 토하라인의 일파로 추정된다. 흉노에게 멸망한 후 서쪽으로 간 세력을 대월지(大月氏)라 하고, 남아 있던 부족을 소월지(小月氏)라 불렀다. 실제 발음은 *arki~yarki로 추정된다.
월지의 이동과정. 지도의 연도는 오류가 극심하니 이동방향만 참고하자. 닝샤 후이족 자치구를 중심으로 광활한 하서지역에서 유목하며 흉노와 내몽골의 패권을 두고 다투던 월지는 기원전 176년 흉노족에게 패배하여 간쑤성으로 밀려났다. 흉노 노상선우 대(기원전 174년~161년)에 왕이 사로잡혀 죽임을 당할 정도의 대패를 당하고 간쑤성 하서회랑인 금성->무위->장액->주천->돈황->하미까지 이동했다. 이 지역에 남은 월지를 소월지라 부르고, 천산북로를 통해 더욱 서진한 주력 세력은 일리강 유역의 스키타이계 사카족을 밀어내고 정착했으나 기원전 130년대에 오손에게 밀려났다. 기원전 126년 장건이 대월지인 소그디아나에 도착했을 때 대월지는 다시 한번 샤카족을 밀어내고, 이미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까지 정복한 상태였다.
하서지역에 남은 소월지는 한무제 유철의 흉노 정복 후 무위, 장액, 주천, 돈황의 하서 4군이 설치되면서 전한 제국의 치하에 들어갔다. 하미 등 신강 지역에 남은 소월지는 도시국가를 이루며 살아갔다. 중앙아시아 연구자인 르네 그루쎄는 타림 분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국가였던 쿠차(龜玆國, 구자국)[1] 가 소월지와 연관이 있다고 했다. 이들은 당나라에 정복될 때까지 실크로드 지역 최동부의 인도유럽어족 국가로 남아 있었다.
간쑤성에 남은 소월지족은 한족과 동화되는 대신 주로 강족이나 흉노와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 <위서> -유사마량장온가전-에는 같은 지역에서 강족에 동화된 소월지계인 노수호라는 이질적인 집단이 등장한다. 이들은 한나라에 흡수되지 않고 한수와 마등이 반란을 일으킬 때 합류하는 등, 한족과의 동화를 거부했다. 4세기 오호십육국시대에도 노수호는 한족에 완벽하게 동화되지 않고 북량(北涼)의 저거씨 흉노 아래서 활동했다. 이들은 투루판에 고창국을 건설했다. 티베트로 이주한 소월지족도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로 활약했다. 티베트의 가르 가문[2] 이 소월지족 조상을 두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130년경에 대월지는 소그디아나로 건너가 그리스-박트리아 왕국를 정복한 후 그 땅을 5명의 흡후[3] 에게 맡기고 다스리게 했다. 이후 장건이 흉노에 대한 원한을 내세우며 동맹을 맺으러 왔지만 실패했다. 세월이 흘러 귀상흡후(貴霜翕侯) 구취각이 5명의 흡후를 통합하고, 북서 인도로 진출하여 쿠샨 왕조를 건설하는 등 매우 강력한 국가가 되었지만 3세기경 그 세력이 쇠약해져서 멸망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월지족들이 쓰던 언어가 인도유럽어족 계통에 속한다고 보고 있고, 고문헌의 토하라인(Tocharians)과 같거나 긴밀히 연결된 종족으로 믿고 있다. 르네 그루쎄는 당시 중국 문헌과 서방 측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월지는 토하라인과 함께 스키타이의 일종이었다고 주장했다. 한 예로 당시 그리스의 사가 프톨레미는 월지의 영역을 '토가라'(Thogara)로 기록해 두었다. 또한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그리스-박트리아를 침략한 민족을 '토하로이'(Tokharoi)라고 불렀다. 이때는 월지가 대하(박트리아)를 정복하고 대월지를 세운 때와 일치한다.
2021년 《네이처》의 발표에 의하면 토하라인과 관련이 있어보이는 타림 분지 미라들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봤을 때, 마지막 빙하기 말엽 널리 퍼졌던 플라이스토세 인구[4] 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이 확인됐으며, 다른 지역 주민들과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한다. 월지 역시 토하라인이라면 이란계인 스키타이와는 유전적으로 무관한 선주민이 된다.
1. 개요[편집]
月氏, 月支
타림 분지에서 동•서 무역을 독점하던 종족. 고대 인도유럽어족인 토하라인의 일파로 추정된다. 흉노에게 멸망한 후 서쪽으로 간 세력을 대월지(大月氏)라 하고, 남아 있던 부족을 소월지(小月氏)라 불렀다. 실제 발음은 *arki~yarki로 추정된다.
2. 분화[편집]
월지의 이동과정. 지도의 연도는 오류가 극심하니 이동방향만 참고하자. 닝샤 후이족 자치구를 중심으로 광활한 하서지역에서 유목하며 흉노와 내몽골의 패권을 두고 다투던 월지는 기원전 176년 흉노족에게 패배하여 간쑤성으로 밀려났다. 흉노 노상선우 대(기원전 174년~161년)에 왕이 사로잡혀 죽임을 당할 정도의 대패를 당하고 간쑤성 하서회랑인 금성->무위->장액->주천->돈황->하미까지 이동했다. 이 지역에 남은 월지를 소월지라 부르고, 천산북로를 통해 더욱 서진한 주력 세력은 일리강 유역의 스키타이계 사카족을 밀어내고 정착했으나 기원전 130년대에 오손에게 밀려났다. 기원전 126년 장건이 대월지인 소그디아나에 도착했을 때 대월지는 다시 한번 샤카족을 밀어내고, 이미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까지 정복한 상태였다.
2.1. 소월지[편집]
하서지역에 남은 소월지는 한무제 유철의 흉노 정복 후 무위, 장액, 주천, 돈황의 하서 4군이 설치되면서 전한 제국의 치하에 들어갔다. 하미 등 신강 지역에 남은 소월지는 도시국가를 이루며 살아갔다. 중앙아시아 연구자인 르네 그루쎄는 타림 분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국가였던 쿠차(龜玆國, 구자국)[1] 가 소월지와 연관이 있다고 했다. 이들은 당나라에 정복될 때까지 실크로드 지역 최동부의 인도유럽어족 국가로 남아 있었다.
간쑤성에 남은 소월지족은 한족과 동화되는 대신 주로 강족이나 흉노와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 <위서> -유사마량장온가전-에는 같은 지역에서 강족에 동화된 소월지계인 노수호라는 이질적인 집단이 등장한다. 이들은 한나라에 흡수되지 않고 한수와 마등이 반란을 일으킬 때 합류하는 등, 한족과의 동화를 거부했다. 4세기 오호십육국시대에도 노수호는 한족에 완벽하게 동화되지 않고 북량(北涼)의 저거씨 흉노 아래서 활동했다. 이들은 투루판에 고창국을 건설했다. 티베트로 이주한 소월지족도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로 활약했다. 티베트의 가르 가문[2] 이 소월지족 조상을 두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2.2. 대월지[편집]
기원전 130년경에 대월지는 소그디아나로 건너가 그리스-박트리아 왕국를 정복한 후 그 땅을 5명의 흡후[3] 에게 맡기고 다스리게 했다. 이후 장건이 흉노에 대한 원한을 내세우며 동맹을 맺으러 왔지만 실패했다. 세월이 흘러 귀상흡후(貴霜翕侯) 구취각이 5명의 흡후를 통합하고, 북서 인도로 진출하여 쿠샨 왕조를 건설하는 등 매우 강력한 국가가 되었지만 3세기경 그 세력이 쇠약해져서 멸망했다.
3. 민족[편집]
대부분의 학자들은 월지족들이 쓰던 언어가 인도유럽어족 계통에 속한다고 보고 있고, 고문헌의 토하라인(Tocharians)과 같거나 긴밀히 연결된 종족으로 믿고 있다. 르네 그루쎄는 당시 중국 문헌과 서방 측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월지는 토하라인과 함께 스키타이의 일종이었다고 주장했다. 한 예로 당시 그리스의 사가 프톨레미는 월지의 영역을 '토가라'(Thogara)로 기록해 두었다. 또한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그리스-박트리아를 침략한 민족을 '토하로이'(Tokharoi)라고 불렀다. 이때는 월지가 대하(박트리아)를 정복하고 대월지를 세운 때와 일치한다.
2021년 《네이처》의 발표에 의하면 토하라인과 관련이 있어보이는 타림 분지 미라들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봤을 때, 마지막 빙하기 말엽 널리 퍼졌던 플라이스토세 인구[4] 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이 확인됐으며, 다른 지역 주민들과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한다. 월지 역시 토하라인이라면 이란계인 스키타이와는 유전적으로 무관한 선주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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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시대의 승려 백연이 이 나라의 왕자다.[2] 토번의 명장 가르친링의 그 가르 가문이 맞다.[3] 조신 문서 참고[4] 이들은 현재 시베리아의 침엽수림 지역인 타이가 지대에서 살았던 고대 북유라시아인(ANE)으로 매머드 초원이라 불린 이곳에서 대형동물을 사냥했던 사람들이다. 당시 타이가 지역은 오늘날엔 건조하고 추운 지역이지만, 그 당시에는 세렝게티같은 초원지대로, 매머드나 털코뿔소 등이 돌아다니던 곳이었다. 시베리아 원주민 및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약 40%에게서 해당 유전자가 발견된다고 한다. 유럽인에게도 이 성분이 있는데, 지중해권 등의 남유럽인에게는 매우 낮게 나오지만 스칸디나비아 등지의 북유럽인에게는 15%~25%까지 나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