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코 포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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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코 포위전
Waco Siege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Mountcarmelfire04-19-93-n.jpg

기간
1993년 2월 28일 ~ 4월 19일
장소
미국 텍사스 웨이코, 마운트 카멜 센터
원인
ATF의 수색, 체포영장 집행 시도
FBI의 다윗가지 강제 해산 시도
교전 집단
파일:미국 국장 (원형).svg미합중국 연방정부
- 파일:800px-Seal_of_the_Bureau_of_Alcohol,_Tobacco,_Firearms_and_Explosives.svg.pngATF
- 파일:연방수사국 마크.svgFBI
- 파일:미국 국방부 휘장.svg미군
- 파일:Badge_of_the_Texas_Ranger_Division.png텍사스 레인저
파일:Flag_of_Branch_Davidians.png다윗가지
지휘관
자넷 리노
제프 자마르
리처드 로저스
데이비드 코레시[1]
스티브 슈나이더
웨인 마틴
병력
수백 명
신도 91명
피해
ATF 요원 4명 순직
16명 부상
82명 사망[2]
결과
극단주의 진영의 반정부 정서 확산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의 동기 제공

1. 개요
2. 배경
3. 어긋나버린 작전
4. 결단
5. 진압
6. 이후
6.1.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나?
6.2. 미성년자 강간과 각종 범죄들에 대한 신도들의 두둔
6.3. 여담



1. 개요[편집]



웨이코 포위전(Waco siege) 또는 웨이코 참사(Waco massacre)는 1993년 텍사스 주 웨이코 시에서 미국 연방정부와 사이비 종교 다윗가지[3]가 51일 간 대치한 사건이다.

극단주의자들에게 극단적인 방법을 쓰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사건이다. 이 사건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고 격렬한 총기규제 논쟁이 벌어졌으며 반정부 정서가 만연하게 되었다. 이는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로 이어졌다. 또한 대테러부대 및 여러 경찰기동대에서는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과 함께 실패한 진압 작전의 교본으로 삼는 등 미국은 대내외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2. 배경[편집]


미국 정부는 사이비 종교 다윗가지가 불법 총기를 매매하고 미성년자 강간, 마약 유통[4] 등 각종 범죄를 벌이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본인이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다윗가지의 교주 데이비드 코레시[5]는 이미 다윗가지 내의 분쟁으로 동료 7명과 함께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적이 있었다. 그는 점점 폭주하며 1989년 8월 5일 "새로운 빛"이라는 오디오 테이프를 발표했다. 오디오 테이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계명을 주셨다고 했는데, 그 내용은 신의 아이를 낳기 위해 남자는 금욕하고 아내를 바치는 데 동의할 것, 종말을 준비하기 위해 하나님의 군대를 건설할 것과 같은 전형적인 막장 사이비 종교스러운 선언을 하였다. 나중에는 아예 종교 내의 모든 여성은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적어도 12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발표했으며 다윗가지의 여성들 중에는 12~13세에 출산한 이도 있었다. 코레시는 "하나님을 위해 누군가를 죽이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죽을 수도 없다"며 교단 소유의 건물 주변을 60c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을 두르고 지하에 벙커를 만드는 등 요새화했다.

또한 다윗가지는 불법 무기들을 비축한 혐의[6]도 받았는데, 1992년 5월 UPS 직원이 다윗가지 소유의 건물로 배달 도중 사고로 다량의 화약과 총기, 수류탄이 파손되었고 이는 지역 보안관에도 알려졌다. 1992년 6월 미국우정공사 직원은 같은 지역으로 여러 번 소포를 보내는데 화약과 총, 수류탄만 보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 ATF(주류담배화기및폭발물단속국)에 신고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인근에 사는 농부가[7] 기관총 소리를 들었다고 신고했다.[8]

결국 ATF(주류담배화기및폭발물단속국)는 조사를 시작했고 조사 결과 보통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1993년 2월 25일 다윗가지의 교주인 데이비드 코레시의 체포 및 다윗가지 본거지의 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


3. 어긋나버린 작전[편집]


1993년 2월 28일 ATF(주류담배화기및폭발물단속국)는 교주 데이비드 코레시에 대한 체포영장, 다윗가지의 건물에 대한 수색영장 집행을 목표로 한 작전명 "showtime"에 착수했다. 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되었는데, 작전에 대해 제보를 받은 기자 중 한 명이 우연히 우편배달부인 데이비드 코레시의 처남에게 길을 물었고 이로 인해 작전이 노출되어 급습에 대한 이점은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다.[9] 작전이 머지않아 시작되는 것을 간파한 교주 데이비드 코레시는 교단 내 남성들은 무장할 것을, 여자와 아이들은 방에서 엄폐할 것을 명령했다. ATF도 다윗가지에 잠입해 있던 요원에게 작전이 노출된 것을 전달받았으나 무시하고 그냥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ATF는 예정대로 오전 9시 45분경 건물에 도착했고 이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하였다. 누가 먼저 개전을 했는지는 논란이 있는데, 이는 후술할 총격전은 한시간 가량 이어졌으나 ATF 측의 탄약이 바닥났고 다윗가지 측 또한 대화를 원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쌍방은 휴전을 한뒤 시신을 수습하였으며 일단 ATF는 철수하였다. 신도 6명과 ATF 요원 4명이 숨졌다. 다윗가지 교주 데이비드 코레시 역시 손가락에 총상, 옆구리에 총에 의한 관통상을 입었다.

이후 연방요원 사망으로 FBI가 자동개입하여 지휘권을 확보하고 FBI와 다윗가지는 51일에 걸친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FBI는 외부 통신망을 끊고 다윗가지와 협상에 돌입했다. 다윗가지는 데이비드 코레시의 음성 메시지를 국영 라디오에 방송하는 것을 조건으로 건물 밖으로 나올 것이라고 했고 협상은 진전되는 듯했다. FBI는 합의대로 그의 음성을 방영해주었지만 데이비드 코레시가 "하나님이 건물에 남아 있으라고 명령했다"며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특히 FBI 협상단은 끈질긴 설득으로 이미 석방됐던 세살배기 아들에 대한 모성애를 자극해 주요 광신도 중 하나였던 캐시 슈로더를 밖으로 불러내는 데 성공하였다. 아들과의 상봉을 주선한 뒤 불법적인 총기 소유, 총기 난사, 미성년자 강간 모의죄로 슈로더를 구속하였다. 오렌지색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찬 채 끌려가는 슈로더의 모습은 신도들에게 생중계로 전해졌으며, 이후 코레시와 신도들이 연방정부를 혐오하고 더 굳게 반항하는 기폭제 중 하나가 되었다.

다윗가지는 19명의 아이들을 석방하였지만 건물 안에는 98명의 인원들이 남아 있었다.

계속해서 말을 바꾸는 데이비드 코레시의 행동으로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FBI 사이에서는 협상파와 강경파로 나뉘어 대립했다. 이후 FBI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치라이트들을 시설 내로 비췄으며, 특정한 소음이나 음악[10]을 앰프로 재생하는가 하면 교단 핵심 간부의 무덤을 가로질러 전차를 주행시키는 등 고강도의 심리전을 수행하였다.

연방정부는 이러한 강경대응이 다윗가지 신도들의 항복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미 교주가 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다윗가지의 신도들은 그간의 사건들로 자신들이 연방정부에 언제라도 와해될 수 있다는 피해의식만을 키웠고 무엇보다 이들은 바로 위에 나온 코레시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종말론자들이었다. 그 사이비들은 연방정부에 맞서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는 것이 순교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4. 결단[편집]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FBI는 다윗가지가 인민사원 집단자살 사건처럼 집단자살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건물 내에서 아동 학대가 계속되고 있다는 보고도 있어 연방정부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CSA[11]의 체포 당시와 같이 무제한 봉쇄를 거론했으나, FBI 측은 포위 인원들이 점점 지쳐가고 있고[12] 집단 자살 가능성이 있으며 다윗가지는 CSA와 다르게 더 오래버틸 수 있다고 봤다. 결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작전을 승인했다.

5. 진압[편집]


1993년 4월 19일 오전 6시, CS가스 살포용 장갑차 등을 동원하여 시설의 외벽을 부수고 가스를 내부로 주입했다. FBI의 처음 의도는 가스 주입으로 다윗가지의 신자들을 교전 없이 건물 밖으로 몰아내려고 했기 때문에 다윗가지의 신자들이 총기를 난사해도 응사하지 않고 가스의 양을 늘렸다. 하지만 FBI의 의도와는 다르게 다윗가지는 6시간이 넘도록 건물 밖에서 나오지를 않고 건물 지하로 피신하거나 방독면을 착용했다.

그러다 정오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하였다. 총 3군데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 중 두곳은 가스가 방출된 곳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후 신도들이 방화에 쓸 연료를 찾는 등 녹음 파일들이 발견되었으며 스스로 방화를 저질렀다는 게 정설로 자리잡았다.[13] 이 과정은 TV로도 생중계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총 76명이 사망했다. 스스로 자멸한 셈. 이 불이 건물을 휩쓸어 가는 도중에도 광신도들은 FBI 요원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거나 저격소총을 이용해 한 명이라도 더 죽이려 들었다. 이 난리속에서 빠져나온 한 여성에게 FBI 요원들은 아이들이라도 살리기 위하여 그들의 위치를 물었지만 그는 침묵으로 답변하였다.

대부분 건물이 전소되는 과정에서 건물 안에서 사망했고 건물 외부 충격으로 사망하거나 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인원들도 일부 있었다. 전문가들은 화재가 발생된 이후에 탈출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자의적 혹은 명령으로 인해 건물 밖에 나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사망 내지는 사실상 집단자살했다고 보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교주인 데이비드 코레시는 심복인 스티브 슈나이더가 쏜 권총에 사망하였으며 곧 스티브 슈나이더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작전 종료 후에는 오직 12명만이 FBI에 의해 체포되었다.

6. 이후[편집]


사건 이후 빌 클린턴 행정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영유아들이 너무 많이 죽었기 때문에 ATF, FBI는 '영아 살해자(baby killer)'라고 욕을 들어먹었고 웨이코의 복수를 하겠다는 극단적 비연방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렸다.

교주인 데이비드 코레시가 이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FBI가 죽은 아이들과 함께 이 상황의 피해자라는 주장 또한 적지 않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잡혀 있었던 인질은 신도들이 아닌 FBI였고 데이비드 코레시의 요구에 응해야 했기에 그의 극본에 선 배우였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코레시의 극본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FBI가 이를 바꾸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주장이다. FBI가 어떤 노력을 해도 이미 세뇌된 상태에서 데이비드 코레시에게 지배당하고 있던 광신도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연방 정부의 부적절한 대처로 인해 많은 보고서가 나왔다. 대표적으론 FBI가 작전 초기 대원들의 사망에 분노하여 매우 격앙된 상태였다는 것. FBI 내부 분석가들은 비일관적인 협상시도와 심리전을 작전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FBI 협상팀, ATF 진압부대를 동시배치한 현장지휘체계와 강경 진압, 온건 협상을 오락가락하는 비일관적인 행보 자체가 이미 성공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는 것.

일개 종교 집단을 체포하는 작전에 왜 군대가 동원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좀 있었는데, 일단 미국 내 법 집행에서는 간접적인 군사 지원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걸로 인정해 준다. 실제로 전차와 헬리콥터가 동원되었지만 직접적인 사격은 없었고, 제한적인 정찰 및 심리 작전 등 간접적인 지원만을 수행했기에 미국 법원은 문제가 없는 걸로 결론지었다. 더군다나 이 상황에선 일개 종교 집단이 아닌 저격총과 수류탄과 여러 자동화기 및 방독면으로 중무장한 광신도 집단이였다.

이 사건 이후 ATF는 진입 작전 지침을 아예 싸그리 갈아엎었다.

사건 이후 체포된 다윗가지 신자 12명 중 9명이 최대 40년형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1급 살인죄는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고, 2급 살인죄는 일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또한 다윗가지 신자들의 유족들은 과잉진압에 국가에 대한 소송을 걸었는데, 법원은 최루가스 사용이 과실이 아니라고 판단해 소송을 기각하였다.

이 사건 이후 1996년에 비슷한 기독교 반정부단체인 Montana Freemen과의 공성전이 또 벌어져 제2의 웨이코 참사가 나는 거 아니냐며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FBI는 웨이코 참사에 대한 뼈아픈 경험으로 노심초사했고 극도로 조심스럽게 협상을 벌였다. 결국 81일 만에 인명피해 없이 공성전은 종료되었고 Montana Freemen은 항복했다.[14]

6.1.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나?[편집]


이 사건의 가장 큰 논쟁점으로, 과연 누군가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냐는 것이다. 과장을 약간 보태서 이 논점에 따라 연방정부의 합법적 공무집행인가, 아니면 불법진압인가 하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 ATF 측은 영장을 집행하려는 목적으로 이미 중무장한 사이비 단체에 맞서기 위해서 총을 소지한 요원들이 접근했는데 갑자기 내부에서부터 총을 난사하여 그에 응사했다는 입장이며, 다윗가지 측은 내부로부터 어떤 총격도 없었는데 갑자기 밖에서부터 총격이 시작되어 신도들에게 상해를 입혔고 ATF로부터 총격이 가해지자 이에 응사했다는 입장이다. 법원은 다윗가지 신도들이 먼저 발포했다고 결론내렸다.

6.2. 미성년자 강간과 각종 범죄들에 대한 신도들의 두둔[편집]


웨이코 포위전에 대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중 당시 사건에 휘말렸던 사아비 신도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아직도 교주가[15] 사이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했다는 극악한 범죄도 하나님의 뜻이라며 두둔하고 나섰다.

그녀는 교단 내 여성들이 교주와 성관계를 맺는 것은 교주의 개인적인 욕심이나 욕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자 성경 공부의 일부일 뿐이며, 미성년자 신분에서 강간당한 어린 아이들은 12살이 넘었으므로 성인이라고 주장하였다. 12살은 사이비 종교 다윗가지에서 정한 성년이다. 그들이 든 근거는 12살이 되면 월경이 시작되기 때문이라는 것. 고로 데이비드 교주가 그들과 성관계를 맺는 것은 적법한 행동이라 판단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데이비드 교주는 12-13살 경의 여아에게 성관계를 "하나님의 뜻으로" 행했으며 그 중에는 임신한 아이들도 있었다.

이후 신도들이 모두 그 불길 속에서 죽어간 상황에 대해 생존자 교인은 고통스럽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고 그들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자신들의 영광과 숭배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였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아직까지도 그들이 고귀롭게 순교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사이비 광신도들은 불에 휩싸여 죽는 그 순간까지 FBI 요원들에게 총을 난사하거나 저격총으로 그들의 목숨을 앗으려 하고 있었다.

6.3. 여담[편집]


ATF는 조사를 시작했을 때 과정에서 프락치도 심었으나 골때리는 점은 ATF 요원을 대학생으로 신분을 속였는데 위장소속된 학교도 없었고 요원이 30대였다. (...) 당연히 교주는 이를 눈치채었으나 그 요원은 사건 발생 전 핑계를 대고 무사히 건물에서 빠져나왔다고 한다.

사건 이후 건물은 불도저로 거의 다 무너졌고 몇 년 후 지어진 작은 예배당과 추모비만이 남아 있다.

극보수 반연방주의 진영은 이 사건에 분노했고, 연방정부에 맞설 때를 대비해 무기를 사모으고 군사훈련을 하는 민병대의 증가에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16] 극보수 반연방주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연방정부의 폭력성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여기며 연방정부의 폭정에 대비하여 개인의 헌법적 권리를 지키려면 총기 등으로 중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였다. 얼마 후에 벌어진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17]의 동기도 웨이코 사건을 부당한 강경 진압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주의 세력의 강렬한 반감 때문이었다. 오클라호마 테러의 주범 티모시 맥베이가 웨이코 포위전 진압 현장에 항의 시위를 하러 나갔다가 뉴스 카메라에 잡힌 영상이 나중에 발견되었다.

반면 ATF, FBI 측은 연방정부 요원들이 적법한 영장집행을 하러갔다가 사이비 교단에 빠진 사람들이 자동화기를 난사하여 여러 명의 요원이 숨졌다는 인식이 강하다. 사다리를 통해 1층 지붕으로 올라가 2층 창문으로 진입한 ATF대원들이 총격을 당해 숨졌으며, 창문을 통해 마지막으로 들어가려던 대원은 조준사격을 당해 어깨에 총을 맞고 사다리를 타고 다시 내려오는 장면이 카메라에 담겼다.[18] 사이비 교단에서 난사한 자동화기 때문에 죽거나 다친 요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내부적으로 매우 격앙된 분위기였고, 때문에 FBI의 협상팀도 FBI 측에서 일방적으로 시설에 대한 단수 단전을 감행한다거나 신도들이 나오는 족족 쏴죽이라던가 하는 식의 명령에 무척 애를 먹었다. 협상을 제대로 못 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의 개신교 근본주의, 극단적인 반연방주의, 보수적 자유지상주의 진영에게는 연방정부의 폭정이라는 엄청난 피해의식을 심어줬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사이비 교도들의[19] 인질극[20]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인질극 생중계가 벌어지면 이걸 웨이코라고 관용어처럼 부르기도 한다.


2018년 파라마운트 네트워크에서 웨이코 참사를 다룬 6부작 미니시리즈 Waco를 방영했다. 대한민국에서는 OTT 웨이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Waco: American Apocalypse라는 이름으로 3부작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는데 방영 일자는 2023년 3월 22일이다.[21]


2023년에 Showtime(미국 방송)에서도 Waco: The Aftermath(웨이코: 여파)라는 이름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프리미엄 러쉬에서 악당이자 경찰로 나온 마이클 섀넌 주연이며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해서 꽤 기대해 볼 만한 드라마로 볼 수 있다. 참고로 놀랍게도 완전히 다른 방송사임에도 파라마운트 네크워크의 Waco의 정식 후속작이다. 그리고 2023년은 웨이코 포위전이 발생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레인보우 식스 시즈에 나오는 오리건맵이 이 사건에서 따 왔다.

IDM 뮤지션 밴드인 보즈 오브 캐나다가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In A Beautiful Place Out in a Country를 제작했다. 후에 정규 앨범 2집에서도 수록곡에서 간간히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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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미성년자 강간범이자 사이비 교주[2] 2월 28일 6명, 4월 19일 76명[3]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한 교파이다. 물론 정통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는 이단으로 간주하고 있으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자체도 이단 논쟁이 팽배하다.[4] 미성년자 강간과 불법 총기 소유는 사실로 드러났다. 교단 건물 지하에 메스암페타민 공장이 있다는 의심을 했으나 이는 훗날 반박되었다.[5] 본명은 버논 하웰으로 1990년 정식으로 개명하였다.[6] 나중에 밝혀진 사실로는 300개가 넘는 총기를 소유했고 190만발이 넘는 탄약, 300개 이상의 연습용 수류탄, 사실상 자동사격을 가능하게 해주는 부품 39개, 야간 투시경, 소음기, 방탄 조끼가 발견되었다. 어떻게 봐도 일개 군소 사이비 종교 집단이 보유할 만한 무장 수준은 아니다.[7] 전직 군인이었다고 한다.[8] 미국은 자동소총 소유가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는 있으나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로우며 이는 데이비드에게 해당되지 않는다.[9] 다만 다윗가지도 언젠간 연방정부가 쳐들어올 것은 대충 알고 있었다. 문제는 작전이 시작되는 시점을 정확히 알아 버렸다는 점이다.[10] 이렇게 비디오 게임의 효과음이나 동물들을 살처분하면서 나는 비명소리 등.[11] The Covenant, Sword, and the Arm of the Lord, 1970년대와 80년대에 활동했던 침례교 계열 사이비 종교이며 다윗가지와 유사하게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며 정부와 전쟁을 선포하고 무기를 비축했다. 신도들은 암살을 연습했으며 훈련소와 비스무리한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었다. 1985년 4월 협상 끝에 유혈 사태 없이 교단의 간부들을 체포했고 곧 조직의 해산으로 이어졌다.[12] 대치 비용이 일주일에 백만 달러 넘게 들었다고 한다.[13] 정작 생존자들은 FBI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불이 붙었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자신들의 종교를 두둔하기 위한 신빙성 없는 헛소리다.[14] 참고로 이 집단도 무기를 비축하기 위해 위조수표를 발행하고 공무원들에게 자체적으로 사형 집행 영장을 발부하는 등 다윗가지 못지않게 정신나간 집단이었다.[15]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함[16] 미국은 역사적으로 민병대의 활약 덕에 독립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장한 민병대 및 자경단의 결성이 합법이다. 다만 이는 자신들을 보호하는 권리에만 해당하며, 헌법에 어긋나는 행동 및 이미 상호합의가 완료되어 단단히 뭉쳐 있는 연방에 대한 공격은 반역으로 간주한다.[17] 168명 사망 680여 명 부상[18] 창문을 통해 진입하려던 팀이 창문을 부순 후 암막커튼을 때내고 진입하고자 커튼을 있는 힘껏 잡아내렸으나 커튼은 뜯어지지 않았고 이 커튼을 살짝 옆으로 재끼고 ATF요원들이 돌입했는데 이들이 전사했던 것이다.[19] 교주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였다.[20] 다윗가지 측 생존자들은 누구든 원한다면 항복을 할 수 있었으며, 인질극을 벌인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21] 예고편 15초에 파라마운트의 Waco의 초반부에 등장한 잠복수사를 하는 형사와 데이비드 코레시가 대화를 나누는 실제 모습이 담긴 영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