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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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파일:William_James_b1842c.jpg

이름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출생
1842년 1월 11일
뉴욕시
사망
1910년 8월 26일 (향년 68세)
뉴햄프셔주 탬워스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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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모교
하버드 대학
경력
하버드 대학 교수
직업
철학자, 심리학자

1. 개요
2. 생애
3. 사상
3.1. 실용주의
4. 어록
5. 주요 저서
6. 관련 강의 영상
7. 여담



1. 개요[편집]


미국실용주의 철학자. 심리학자.[1] 미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서, 그가 쓴 많은 용어들과 그가 주장한 실천적 신념들이, 19세기 후반 '미국의 생각'을 나타낸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2. 생애[편집]


제임스는 1842년 뉴욕시에서 헨리 제임스와 메리 제임스 사이의 다섯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여러 곳에서 교육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결국 하버드에 이르렀는데, 여기서 그는 퍼스와 홈스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1869년에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했으나 그 후 3년간 우울증에 시달렸다. 1872년에 하버드에서 교수직을 얻었고 이후 거기서 그는 생리학, 심리학, 그리고 결국에는 철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심리학의 원리』라는 책으로 심리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실용주의 철학의 보급에 힘을 썼다. 1889년에 심장의 약화로 고통받기 시작했고 1910년에 죽었다.

3. 사상[편집]



3.1. 실용주의[편집]


제임스는 실용주의 체계를 만들고 보급에 힘썼다. 그의 실용주의에서 특징적인 면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와 신념에 바탕을 둔 행위가 세계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자신과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데 적합한 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의 지식은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해 보이는 지식이라도 그것이 실제로 우리 생활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것이다.

제임스는 어떤 아이디어든 현금가치(cash value)를 갖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현금가치란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치를 말한다.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현금가치란 실생활에서 언제든지 사용(교환)가능한 가치를 의미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현금가치는 직접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우리의 생활을 좀더 편리하게 해주거나, 궁금하게 여겨왔던 것에 대한 답을 해줌으로써, 철학적 지식이 마치 현금처럼 실생활에서 언제든지 사용되어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실생활에서 바로 쓸 수 '없는' 철학적 지식은 윌리엄 제임스에게 있어서 단지 쓸모가 없는 사변적인 지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소위 돈이 안되는 학문인 문학이나 철학 같은 순수학문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내면적인 물음에 대해 답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보람있는 인생을 살게 하여 실생활에서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학문은 현금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제임스는, 신을 믿음으로써 선하게 살 수 있고 영원한 세계에 희망을 가질 수 있으므로, 신을 믿는 것이 현금가치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신을 믿는 것이 신을 믿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제임스의 실용주의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특징은 그가 언제나 변화, 생성, 과정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제임스는 이 우주가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 일정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매우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과학적으로 우주의 참모습을 알려고 해도 제대로 알 수가 없는 것이며, 다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만 그 단면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 제임스는 이렇게 경험으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세계를 우주라고 하며, 이러한 우주는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원적인 우주(pluralistic universe)가 된다. 우리의 경험은 다양하며 그 다양한 경험만큼이나 다양한 우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다원적인 우주를 세계의 참모습이라고 주장한 까닭은 다른 이유도 있다. 어떤 하나의 원리나 신의 섭리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하나의 통일된 우주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무질서와 혼란, 악의 문제 등에 대해서 설명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제임스는 세상이 부분적인 통일성과 부분적인 무질서가 섞여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제임스의 생각은 세상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불완성된 것으로서의 무질서를 가정함으로써, 이 세계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여지를 가지게 해주는 현금가치(유용성)가 있기 때문이다.

4. 어록[편집]


행복해서 웃는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We don't laugh because we're happy, we're happy because we laugh.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어라. 그러면 너의 신념이 그러한 사실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Believe that life is worth living and your belief will help create the fact.


만약 후회하거나 오랫동안 걱정하는 것이 과거나 미래의 사건을 바꿀 것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다른 현실 시스템을 가진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것이다.

If you believe that feeling bad or worrying long enough will change a past or future event, then you are residing on another planet with a different reality system.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류가 자신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우리세대의 삶을 새롭게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당신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The greatest discovery of our generation is that human beings can alter their lives by altering their attitudes of mind. As you think, so shall you be[2]

[3]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편견을 재배치해놓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A great many people think they are thinking when they are merely rearranging their prejudices.


우리의 오류란 결국 그토록 끔찍할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오류를 피할 수 없는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부주의한 경솔함이 과도하게 신경질적인 불안보다 더 건강한 것이다.

Our errors are surely not such awfully solemn things. In a world where we are so certain to incur them in spite of all our caution, a certain lightness of heart seems healthier than this excessive nervousness on their behalf. [4]


5. 주요 저서[편집]


제목
발간 연도
심리학의 원리
The Principles of Psychology [5] [6]
1890년
믿으려는 의지
The Will to Believe
1897년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1902년
실용주의
Pragmatism
1907년
다원론적 우주
A Pluralistic Universe
1909년
진리의 의미
Meaning of Truth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Essays in Radical Empiricism
1912년

6. 관련 강의 영상[편집]





7. 여담[편집]


  • 자기개발서적에 자주 나오는 "긍정적 사고, 끌어당김의 법칙, 힐링, 신성한 생명의 힘, 창조적인 시각화, 개인의 능력" 등을 강조하는 새로운 생각 운동(New Thought Movement)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자 중의 한명으로서, 이 운동의 개념을 미국 전역에 널리 퍼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제임스의 명언 중에는 "성공한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했거나 즐기는 것처럼 행동한다. 곧 그것은 현실이 된다."며 '끌어당김의 법칙'과 거의 똑같은 말을 하기도 했을 정도.

  • 감정이란 것이 단지 신체상태에 대한 뇌의 해석일 뿐이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자세한 것은 제임스-랑게 이론 참조.

  • 1890년 무렵 윌리엄 제임스는 보리스 사이디스와 함께, 당시 미국 최고 영재라고 알려졌던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를 연구하면서, "인간은 지적 잠재력의 극히 일부만을 경험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 주장이 와전되어 "우리는 뇌의 몇 퍼센트만 사용한다"는 오해가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1929년 《세계연감 (the world almanac and book of facts)》이라는 잡지에선 시중에 떠돌던 근거없는 말들을 인용해 "인간의 두뇌엔 한계가 없습니다. 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두뇌 능력의 10%만 사용한다고 말합니다"라는 광고문구를 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근거없는 유언비어는 21세기인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살아남았고,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에서도 인간의 뇌는 10%만 사용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종교적 체험’이라는 말을 대중 용어로 만든 사람이 윌리엄 제임스다. 그가 쓴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1902)》은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가 되었는데 여기서 '종교적 체험'을 언급함으로써 흔히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 문학에서 많이 쓰이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도 제임스가 만들었다. 인간의 의식은 정적인 부분이 순차적인 배열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이미지와 관념이 흘러 늘어선 것이라는 주장이다. 앙리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과도 유사한데, 서로는 서로의 작업을 알고 있었지만 각자는 자신의 개념을 자신이 독자적으로 만든 것으로 생각했다.

  • 모든 체계를 하나로 설명하려는 헤겔주의에 반대하여, '각자는 저마다의 우주가 있다'는 다원주의를 퍼뜨린 사람으로도 유명하다.[7]

  • 상대적으로 유명했던 제임스는 자신의 강의에서 무명이었던 퍼스의 업적을 항상 띄어주었다. 그래서 실용주의를 이야기할 때 항상 퍼스가 먼저 나오지만, 사실상 체계를 만들고 보급시킨 것은 제임스의 역할이 크며, 미국 철학계 내에서도 실용주의를 이야기할 때 퍼스보다는 제임스의 철학이 더 자주 인용되고 강조된다.


  •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쇼펜하우어니체의 비꼼은 대개 죽어가는 쥐 두 마리의 아픈 비명 소리를 생각나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8] 제임스에 따르면, 인간은 '종교적 체험'에서 대상의 신성함에 대한 엄숙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데, 앞선 두 철학자는 이 진지한 감정을 비웃거나 저주하기 때문이다.[9] 또한 제임스는 강한 지도자와 약한 성자를 대비시키면서, 강자 숭배 보다는 '무저항'의 평화를 외치는 이상적인 사람이 가장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10] 단, 이러한 제임스의 주장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어 왔다. 제임스의 주장과는 다르게, 니체는 자신의 핵심 개념인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신성함과 엄숙함을 부여하고 있다.[11] 그리고 '현실적' 삶의 고통을 마주볼 용기를 가짐으로서 그것을 헤쳐갈 긍정을 찾고자 하는 니체에 비해, '이상적'인 것을 믿음으로서 '성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제임스가 더 낫다고는 볼 수 없다.

[1] 미국에 심리학과를 제일 처음 도입하여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2] The greatest discovery of our generation is that human beings can alter their lives by altering their attitudes of mind. As you think, so shall you be.: William James https://www.amazon.com/greatest-discovery-generation-altering-attitudes/dp/B085KJS6GP[3] WILLIAM JAMES https://www.uky.edu/~eushe2/quotations/james.html[4] 윌리엄 제임스 『믿으려는 의지』[5] (gutenberg free books)The Principles of Psychology, Volume 1 (of 2) by William James 2권1책 1918년판 https://www.gutenberg.org/files/57628/57628-h/57628-h.htm [6] (gutenberg free books)The Principles of Psychology, Volume 2 (of 2) by William James 2권1책 1918년판https://www.gutenberg.org/files/57634/57634-h/57634-h.htm [7] 그가 다원주의를 최초로 말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가 아니었으면 다원주의 개념이 이토록 영미권에 널리 퍼지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평가한다.[8] The mood of a Schopenhauer or a Nietsche,—and in a less degree one may sometimes say the same of our own sad Carlyle,—though often an ennobling sadness, is almost as often only peevishness running away with the bit between its teeth. The sallies of the two German authors remind one, half the time, of the sick shriekings of two dying rats. They lack the purgatorial note which religious sadness gives forth. #[9] There must be something solemn, serious, and tender about any attitude which we denominate religious. If glad, it must not grin or snicker; if sad, it must not scream or curse. It is precisely as being solemn experiences that I wish to interest you in religious experiences. So I propose—arbitrarily again, if you please—to narrow our definition once more by saying that the word 'divine,' as employed therein, shall mean for us not merely the primal and enveloping and real, for that meaning if taken without restriction might well prove too broad. The divine shall mean for us only such a primal reality as the individual feels impelled to respond to solemnly and gravely, and neither by a curse nor a jest. #[10] Poor Nietzsche's antipathy is itself sickly enough, but we all know what he means, and he expresses well the clash between the two Ideals. The carnivorous-minded "strong man," the adult male and cannibal, can see nothing but mouldiness and morbidness in the saint's gentleness and self-severity, and regards him with pure loathing. The whole feud revolves essentially upon two pivots: Shall the seen world or the unseen world be our chief sphere of adaptation? and must our means of adaptation in this seen world be aggressiveness or non-resistance? The debate is serious. In some sense and to some degree both worlds must be acknowledged and taken account of; and in the seen world both aggressiveness and non-resistance are needful. It is a question of emphasis, of more or less. Is the saint's type or the strong-man's type the more ideal? #[11] 그리스인은 이런 비밀제의에 의해 무엇을 보장했는가? 영원한 삶, 삶의 영원회귀였다. 과거 속에서 약속되고 신성시된 미래였다. 죽음과 변화를 넘어서 있는 삶에 대한 의기양양한 긍정이었다. 그리고 생식과 성의 신비를 통한 총제적 생명의 존속으로서의 진정한 삶이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인에게 성적 상징은 경외할 만한 상징 자체였고, 모든 고대적 경건성에 내재한 심오한 의미였다. 생식ㆍ수태ㆍ출산의 행위에 속하는 세부적인 하나하나의 일이 최고의 엄숙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비밀제의의 가르침에서는 고통이 신성한 것으로 선포되고 있다. '산모의 통증'은 고통 일반을 신성한 것으로 만든다. ㅡ 모든 생성과 성장, 미래를 보증하는 모든 것이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창조의 기쁨이 존재하려면, 삶에의 의지가 자신을 영원히 긍정할 수 있으려면, '산모의 고통'도 영원히 존재해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을 디오니소스라는 말이 의미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p.17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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