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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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儒林
2. 인명
2.1. 실존인물
2.2. 가상인물
3. 지명
3.1. 대한민국의 지명
3.2. 중국의 지명 (榆林)
4. 아파트 브랜드
4.1. 유림노르웨이숲


1. 儒林[편집]


유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를 말한다. 주로 조선시대의 사대부층을 일컫는다. 조선 초중기의 기득권 선비인 훈구파와 비 기득권 사림파 모두를 지칭하는데에도 쓰이며 이후의 영남, 기호학파 혹은 사색 당파 상관없이 '선비들' 이라는 뜻을 가진다. 조선시대에는 기득권층이었던 '양반' 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계승발전 시키기 위하여 과거시험을 치렀으며 과거시험은 당연히 유교적인 항목을 기준으로 출제되었던 만큼 유림이라는 단어는 양반, 사대부를 다른 말로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이후 양반이라 하더라도 관직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졌고[1] 이에 엄밀히 구분하기 위하여 관직을 가진 사대부들과는 대비되어 관직을 가지지 않은 선비들을 포괄하는 단어로도 쓰였다.

구한말에는 유림의 일부가 의병을 조직해서 항일운동에 나섰으며, 일제강점기에도 김창숙 등이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나 과거에 비해서 세가 크게 위축되었고, 상당수 지방 유림들은 일제식민통치에 침묵하거나 오히려 친일행각을 보였다.[2] 해방 이후에 김창숙의 주도로 전국에서 1000여명이 결집한 전국유림대회를 개최하고 성균관을 4년제 종합대학으로 재건하지만, 사실상 사회적 영향력은 상실했고 성균관대학교도 결국 재정난 때문에 운영권을 넘겨야 했다.[3] 이후 유림의 마지막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김창숙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나마 있던 존재감마저 거의 사라졌다. 이 때문에 현대의 '유림'은 단순히 유교 관련 인사나 단체를 모두 뜻하는 매우 포괄적이고 모호한 개념으로 남게 되었다.

대한유림학회 등의 명칭에도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 한국인들이 사는 현대 대도시에선 볼 일도, 느낄 일도 없는 집단이지만 안동, 영주, 진주, 전주, 함양 같이 여전히 전통적인 분위기가 강한 영호남의 지역 사회에서 유림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무슨 공식적인 단체나 정당이야 당연히 없지만, 이런 지역에선 특정 사회적인 이슈나 특별한 시국이 생기면 평소엔 동네 서원[4], 향교 같은 곳에서 책보고 장기 두시고 지역사회 경조사 얘기하면서 한문으로 된 명패 막힘 없이 술술 읽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서 시위도 나가고 목소리도 내시는게 바로 유림이다. 단순한 그냥 지역사회 이권집단으로 치고 넘어가기엔 해당 지방의 지역 유지 사회는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문중 문화와 성리학 계승 의식과 도저히 때내어 볼수 없다.

유림을 다룬 유명한 소설로 유림외사가 있고, 최인호도 '유림'이라는 소설을 쓴 바 있다.


2. 인명[편집]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이름. 주로 여성용 인명이다.

2.1. 실존인물[편집]




2.2. 가상인물[편집]




3. 지명[편집]



3.1. 대한민국의 지명[편집]



3.1.1.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행정동 유림동[편집]




3.1.2.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편집]




3.2. 중국의 지명 (榆林)[편집]


위린 문서로.


4. 아파트 브랜드[편집]



4.1. 유림노르웨이숲[편집]


자세한 내용은 유림노르웨이숲 문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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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렇게 된 이유는 고려말 권문세족에 학을 뗀 정도전과 사대부의 영향이 큰데 능력 없는 자가 귀족, 양반이라는 이유로 관직에 오르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조선 건국 당시 유교학적 이념으로 관직은 오로지 과거를 통해서만 뽑았기 때문이다.[2] 조선총독부 또한 일부 유림이 농민들에게 저지르는 행패를 옹호하기도 했다고 한다. 1925년 당시 도산서원에서 유림들이 농민에게 불법적인 태형을 행사했고 이 때문에 도산서원 철폐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때 총독부는 유림의 편을 들었다는 것. # 해당 논문의 183쪽 참조[3] 성균관대학교 재단은 1960년대부터 삼성 - 봉명그룹 - 무재단 상태 등으로 오락가락하다가 1996년 다시 삼성이 인수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4] 그렇다. 위에 나온 동네들만 봐도 전부다 유네스코 등록된 서원이 여전히 존재하는 동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