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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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독교의 성사
1.1. 성경 속 세례
1.2. 역사
1.3. 방식
1.3.1. 주수례
1.3.2. 침례
1.3.3. 살수례
1.3.4. 그 외
1.4. 교파별 신학 차이 (유아세례, 재세례)
1.5. 세례를 받는 법
1.6. 교파간 세례 인정
2. 1에서 유래한 말


1. 기독교의 성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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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ptism

영어표현 baptism은 성경이 쓰여진 언어인 헬라어의 βάπτισμα(밥티즈마)에서 기원한 것으로, 물에 잠긴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자어 역시 물로 씻어내는() 예절()을 뜻한다.

세례란 유대교의 후기 선지자 시대로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기독교에 의해 종교적 의미가 부여된 정결 예식을 말한다. 후기 선지자 시대 및 초기 기독교에서는 강 등에서 몸을 담갔다가 나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원시 기독교가 포교되는 과정에서 항상 강에 몸을 완전히 담그는 침례를 행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진흙을 묻히는 세례, 물을 뿌리는 세례 등도 온전한 세례로 인정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며, 현재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들(개신교, 천주교, 정교회 무관)에서 표준 교리로 받아들여진다.[1] 물리적인 형식에서 자유로워진 대신 하느님의 삼위를 호명하는 경문(Trinitarian formula)이 세례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세례는 초기 기독교의 정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세례를 받아야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많은 경우 이전 공동체(가족, 유대교)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했다. 따라서 예수 부활 직후 수십년 간 스스로를 유대교의 일종으로 인식했던 초기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을 유대교와 차별되는 종교의 신자라고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2] 또한, 신약성경의 형성 이전까지 신학이 정교화되는 과정에서도 디다케, 교리문답 등 세례 전 교리교육 과정이 큰 역할을 했다.

2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초기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었기 때문에 세례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부여되었다. 우선적인 의미는 유대교의 후기 선지자 시대의 세례와 마찬가지로 를 씻고 회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추가된 의미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원래 방식인 침례를 생각해보면, 물에 빠져서 사람이 죽고 물 밖에 나온 사람은 새로 살아난 사람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또한 물에 흠뻑 젖으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된다는 점에서, 세례 이후 기독교 공동체가 주는 옷을 입고 원래 입던 옷을 버리는 의식을 겸했다.

주로 기독교의 세례 의식을 말하는데, 가톨릭, 정교회성공회에서는 세례성사라고 칭하기도 하며, 개신교에서도 7성사 중 성서에 나오는 2가지 성찬과 세례에 대해서는 성사로 인정한다. 본 문서에서는 개신교 세례, 그 중에서도 물 세례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3] 가톨릭과 정교회는 세례성사 문서로.

입교식의 의미가 있으므로 교회 내에서 '세례를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가톨릭과 정교회는 세례를 받아야만 각각 미사성찬예배 중에 성체를 모실 수 있으며, 개신교에서도 장로회 등 많은 교파가 세례를 받은 사람만 성찬식에서 주는 빵과 포도주를 먹을 수 있다. 신학교에서도 거의 모든 종파가 세례를 받았다는 증서를 지원시 제출하는 서류에 포함하고 있다.


1.1. 성경 속 세례[편집]


13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강으로 요한을 찾아 오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 하며 굳이 사양하였다.

15 예수께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은 예수께서 하자시는 대로 하였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 오시는 것이 보였다.

마태오 복음서 3:13~16(공동번역성서)


41 그들은 베드로의 말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 날에 새로 신도가된 사람은 무려 삼천 명이나 되었다.

사도행전 2:41(공동번역)


33 간수는 한밤 중이었는데도 그 두 사람을 데려다가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사도행전 16:33(공동번역)


3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4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6:3~4(공동번역)


20 그들은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 하느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지만 끝내 순종하지 않던 자들입니다. 그 방주에 들어가 물에 빠지지 않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뿐이었습니다.

21 그것은 오늘날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세례는 몸에서 더러운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약을 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1서 3:21(공동번역)



1.2. 역사[편집]


성경을 기준으로 할 때, 신약에서 세례자 요한예수에게 해준 것이 모티브로 보이며, 초기 교회에서도 시행했던 의식으로 추정된다. 그 이전의 유대교 전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통으로, 세례는 세례자 요한이 만들어낸 것이다.[4]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John the Baptist'[5]라고 부르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온전한 창작은 아닐지라도, 그로 인하여 세례가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전례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서기 50년대 후반~80년대에 시리아 지방 시골 교회에서 작성했다고 추정하는 문서 '디다케'에 세례 관련 규정이 있다. 디다케에 따르면 세례는 원래 흐르는 물에 몸을 완전히 담가 행한다. 날이 춥거나 해서 흐르는 물, 즉 강가나 시냇가에서 할 수 없다면 욕조 등에 물을 담아 거기에 몸을 담그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마저도 할 수 없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마에 물을 3번 부으라고 규정했다. 디다케 규정에 따르면 강이나 시냇가에서 몸을 담금이 정식이고, 나머지는 몽땅 약식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침례회 방식도 약식.[6]

사회 제도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리스도교 문명권에서, 특히 서유럽 일대는 서로마 제국의 몰락 이래로 국가조직의 발달이 미비했으나 호구조사만큼은 잘 되었는데 이는 교회의 세례자 명단 덕택이었다. 카롤루스 대제프랑크 제국도 미비한 행정조직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회와 손잡았다. 그러나 세례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탄압을 받던 초창기 시절부터 현대까지 철칙으로 잘 지켜져온 성사[7] 국가의 필요 때문에 세례가 유지되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물며 호구 조사와 세수 확보를 위해 세례를 했다는 음모론은 선후관계를 완전히 뒤집어놓은 헛소리다. 그래서 한자문화권 국가는 비교적 일찍 이루어진 중앙집권화로 인한 높은 행정통제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호구조사가 철저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후대 학자들이 이 당시의 인구가 어떠한지 아는 데 있어서 추정치를 동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데 반해서,[8] 서양권은 중세와 근세의 인구수가 어떠한지 100%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정확한 인구통계 결과를 아는 것이 가능하다.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정치권력의 공백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민족 왕조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함에도 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은 기존 법과 제도를 지키면서 남은 관습 중의 하나가 세례였으며, 유럽 왕조들이 후대에 거대한 관료국가가 되었어도 출생과 사망, 혼인 등을 관리함은 교회의 몫이었다. [9] 이러한 배경으로 현대에도 교회에 출석하지 않거나 본인을 신자라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관혼상제는 교회에서 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으며, 서구권에서 명목상 기독교인 수(교적 보유 인구)와 실질적 기독교인 수(실제 신앙활동 인구)가 크게 차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1.3. 방식[편집]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복음서 28:19-20(공동번역). 성경 복음에서 예수가 승천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로 기록되어 있으며 지상 대명령이라고 부른다.

교파마다 크고 작은 방식의 차이가 있지만 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받아야 하며 이것을 갖추지 않으면 어떠한 교파든 세례로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삼위일체를 따르지 않는 교파에서도 세례를 주지만, 삼위일체를 따르는 교파에서는 그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3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4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6:3-4(공동번역)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6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4:5-6(공동번역)

세례는 단 한 번만 받는다. 세례에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가 있어서 그렇다.[10] 재세례파의 경우도 엄밀하게는 유아세례를 무효로 보기 때문에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자신들의 논리로는 한 번 세례를 받는 것으로 본다. 물론 유아세례를 인정하는 교파에서는 '세례를 두 번 받는다고?'로밖에 볼 수 없으니 탄압하였다.


1.3.1. 주수례[편집]


관수례라고도 한다. 물을 머리에 붓는(注, 灌) 세례 방식으로, 가톨릭이나 개신교감리회, 루터교회, 성결교회, 성공회, 장로회 등의 교단에서 행하는 세례 방식이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원래는 약식이었던 방식이므로 이들 교파에서도 침례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유효한 세례이며 정석적인 세례로 보지만, 세례수를 머리에 적시는 정도의 세례가 옳지 않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주수례도 올바른 세례 방식이라는 교파에서는 사도 바울로가 간수와 가족들에게 세례를 주는 사도행전 16장의 장면이 침례를 행하기에는 어색했던 상황이라고 지적한다.[11] 설렁 이것도 침례가 맞았다고 치더라도, 교회 초기부터 약식이긴 하나 분명히 주수례로도 세례를 주었다는 것도 근거로 삼는다. 물이 귀한 곳에서는 침례가 가능할 만큼의 물을 소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1.3.2. 침례[편집]


물에 잠기는(浸) 세례 방식으로, 침수례라고도 한다. 동방정교회나 개신교의 침례회를 위시하여 순복음교단과 같은 오순절파, 천주교 제주교구의 일부 본당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형식을 최대한 따르는 '침례'를 행한다. 이 밖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12], 그리고 한국에서는 생명의말씀선교회에서도 침례를 행한다. [13] 침례를 하는 교파들에서도 가운을 입고 침례를 하는 곳이 있고[14], 평상복 차림으로 침례하는 곳도 있다. 초기의 기록이나 그림을 보면 초기에는 가운이나 평상복 차림이 아닌 나체로(!)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15], 물론 지금은 나체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침례를 하는 교파의 교회 중 대형교회의 경우 자체적인 침례탕을 가지고 있기에 교회 내에서 하고, 중소규모의 교회에서는 탕을 빌린다. 침례탕이 있는 다른 교회에서 하거나, 동네의 수영장이나 목욕탕을 이용하거나, 밖에서 하는 김에 아예 강이나 계곡까지 가서 원형을 재현하는[16] 경우도 있다. 육군훈련소에서 세례를 받을 때도 침례회나 오순절교회에서 세례를 줄 때는 얄짤없이 침례인데, 야외 수영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교파의 진중세례식은 여름에 배당되어 있다.

교파에 따라서는 침례가 원전적 의미에 근접하기는 하지만 타교파에서 받은 세례도 인정하고 타교파의 세례도 이해(이해 또는 양해 또는 인정)하는 교파에서부터 타교파에서 받은 세례는 불인정할뿐더러 세례 자체를 부정하는 교파도 있다. 또한 동방정교회를 제외하면 침례를 주는 대다수의 교파는 유아세례를 부정한다.[17] 이유는 유아기에 과연 부모 등 보호자의 개입 없는 순수한 믿음의 고백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침례 특성상 유아시기에 하기엔 주수례보다 위험하기도 하다. 실제로 동방정교회의 유아세례는 원래 아기를 통째로 담그는 '유아침례'에 가까운데, 안전성을 두고 논란이 종종 일어난다. 러시아를 위시한 많은 국가들에서 서방식 유아세례에 가깝게 바꾸었지만, 조지아 같은 나라들은 아직도 정교회가 '유아침례'를 행하고 있다.

침례는 주수례와 달리 몸 전체를 담그는 것이며 보통 다음의 순서로 진행된다.

침례탕 밖에서 성가대가 축하 찬송을 부르고 침례를 집례하는 목사는 침례 받는 성도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노라"고 선포하며 성도의 목을 받친후 물속에 담근다. 이때 성도는 코 등을 손으로 막으며 물속에 몸 전체가 잠긴체 몇 초 정도 있다가 다시 목사의 일으킴을 받아 올라온다.


이 때 물속에 잠기는 것은 옛 사람을 장사 지내고 물속에서 올라올 때 새 사람으로 부활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즉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부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몸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나오는 것만을 따로 완전침례라고 한다. 완전히 잠기지 않고, 몸이 반쯤 물에 잠긴 채로 물을 따로 머리에 붓는 주수례와 침수례가 섞인 듯한 방식도 있으며, 위에서 언급한 서방식 유아세례에 가깝게 바꾸었다는 것이 이 방식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벽화에도 나오는 꽤 오래된 방식이다. 탕에 들어간다는 점으로 보통 침례로 분류하지만, 침례를 행하는 의미가 죽었다 부활한다는 의미 때문이라는 관점에서 '잠기지 않는' 방식이므로 침례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중세 시대에는 이렇게 물에 잠기는 세례가 보편적이었다. 특히 군주와 같이 높은 직책에 있는 자가 세례를 받을 때는 강가나 호수 등에서 세례를 받았다.

1.3.3. 살수례[편집]


물을 뿌리는(撒) 방식이다. 과거에 영세자가 너무 많거나 하는 등의 상황에서 약식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일부 교회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주기도 한다. 다만 천주교는 현재 교회법에서 살수례 방식을 삭제했다.기사

코로나19 사태로 전세계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세례를 주기 위해 가끔 쓰이고 있다. 미국 성당에서 물총을 쓴다는 말이 있었지만, 장난으로 찍었던 사진이 와전된 것으로 밝혀졌다.기사

1.3.4. 그 외[편집]


매우 드물지만, 그 외의 세례 방식도 쓰이기도 했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손을 물에 넣은 후 세수하는 방식으로 세례를 주고, 과거에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잠겼다 나오면서 죽었다 살아난다'는 의미로 젖은 흙으로 몸을 덮거나 구덩이에 넣은 다음 꺼내는 방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1.4. 교파별 신학 차이 (유아세례, 재세례)[편집]


세례에 따른 견해는 교파마다 다르다. 보통 세례를 받으면 인간이 받은 원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보편교회성공회, 감리회, 루터회 등의 견해지만 한국에서 제일 많은 장로회의 경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보면 구약의 할례를 대행한 언약의 표식이지만 원죄사함으로 보진 않는다. 장로회는 유아세례는 인정해도 구원과는 결부짓지 않는다. 침례교회는 관례 정도로 본다.

일단 가톨릭정교회에서는 세례성사라는 형식 자체에 하느님의 은총이 임재한다고 여기며 그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세례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고 구원의 길이 열린다.),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들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고 오직 은혜로만 구원 받는다고 보며, 정식으로 세례를 받기 전에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증언도 많다.[18] 다만 현실적으로 한국의 개신교 교단들이나 가톨릭 모두 세례자를 교인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군대 등 단체 세례는 인원수가 워낙 많은데다가, 자의로 받는 경우가 아닌 사례도 많아서 개신교회의 경우 대체로 교인으로 직접 교회 명부에 등록하거나, 1년이상 출석한 사람을 교인의 기준으로 삼는 등 교단마다 차이는 있으나 '세례자 수 = 교인 수'로 세지는 않는다.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서 원죄를 용서받고[19] 신앙이 온전해진다고 가르치는 가톨릭과 달리,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과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 주장하며 세례는 부수적인 형식일 뿐이라고 본다. 개신교 신학자들의 입장에서 세례라는 형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이후 그것을 확인하는 차원의 예식이다. 가톨릭의 중세 전통에는 세례를 받으면 그 이전의 모든 죄가 사해진다는 믿음이 있었는데[20](이는 현대 가톨릭도 마찬가지다.) 개신교에서는 세례 자체로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한다.

유아세례의 경우는 예로부터 유서깊은 떡밥이었는데, 4세기 교부시대에도 '배교자는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배교자에게 성사를 받은 것은 유효한가?'가 중요한 논쟁이었고, 종교개혁시기 루터주의와 칼뱅주의(츠빙글리)에 영향을 받아 새롭게 등장한 독자 개혁노선 재세례파들은 [21]들은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성인이라도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고백한 자만이 다시 (가톨릭에서 벗어나) 재세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는데 루터주의, 칼뱅주의보다 더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루터나 칼뱅은 가톨릭 교리 중에 성경에 명백하게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아니면 기존 해석과 제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22]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재세례파는 현대 비종교인의 논리와 비슷한데 "아이가 자유의지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 때 세례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신앙이 뭔지도 모르는 애한테 무슨짓이냐?"고 비판한다. 또한 가톨릭교회를 거짓된 교회로 여겼고 나중에 자신들을 탄압하는 루터주의와 칼뱅주의도 가톨릭에 오염(?)된 산물로 보았기 때문에 재세례파 입교자는 기존의 잘못된 신앙을 청산하고 올바른 신앙 안에서 다시 태어났음을 증명하기 위해 성인도 재세례를 받아야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재세례파와 루터파, 칼뱅주의 개혁교단의 교회론의 차이 때문이다. 재세례파는 '자유의지에 따라 하나님을 영접한 자들만이 교회에 출석할 자격이 있다'고 보았는데, 재세례파의 주장에 반대한 루터와 칼뱅은 '교회 구성원들 모두 죄인이며, 악인도 상당수고 진정한 신앙인은 매우 드물다. 따라서 그렇지 못한 이들을 구제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라고 보았기 때문이다.[23] 따라서 교회 입교에 자격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 루터는 재세례파들의 재세례 논리를 케케묵은 자격주의 공로주의로 여겨 교부시기 아우구스티누스와 맞선 초기 펠라기우스주의가 되살아난 것으로 보았는데[24] 루터와 칼뱅 모두 성인은 앞서 성서상 해석을 두고 비판했고 유아세례 또한 기존 성서해석을 인정하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자녀를 신앙 안에서 올바르게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재세례파의 논리에 반대했다.

한편 유아세례를 지지하는 다른 기독교 종파인 가톨릭의 경우, "유아세례는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다. 자녀가 지성이 발달한 후 성당에 오기 싫어한다면 안 나오면 그만이다"는 입장.

현재 가톨릭 및 개신교의 대부분 경우는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주라고 하나, 개신교 중 대표적으로 침례회 처럼 유아세례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에 소수만 남은 재세례파는 앞서 종교개혁시기 다른 개신교와 가톨릭 양쪽에게 공격을 받았는데[25], 이 교파의 주장은 인간이 짓는 이런저런 죄 중에서도 순결에 관련된 죄가 가장 크기 때문에, 결혼하기 직전에 정식 세례를 받아 인생에서 가장 큰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골자이다. 현재 캐나다 지역에는 재세례파중 후터파[26]가 많이 이주했고, 메노나이트 교도들도 유럽에서 박해를 피해 신대륙에 정착한 케이스. 재세례파 중에 아미시들도 있는데 과거 유럽에서 박해받던 전통을 이어나가 다른 교파와 교류를 차단하고 종교적 이유로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18~19세기 식의 삶을 고집한다.


1.5. 세례를 받는 법[편집]


가톨릭개신교에서 세례를 주는 기준은 약간 다르지만, 일단, 일정 기간이나 횟수만큼 예비신자 교리새신자교육을 받아야 세례를 주는 점은 원칙상 같다. 교육기간은 가톨릭은 보통 6개월[27], 개신교는 보통 1개월이다.[28]

가톨릭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연령대까지의 아동이 받는 세례는 유아세례로 본다. 별도의 예비신자 교리 교육은 안 받아도 되지만 부모 중 한쪽이라도 가톨릭 신자여야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연령대 이상의 청소년, 성인이 받는 세례는 성인세례로 본다. 이 경우는 6개월 이상의 예비신자 교리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연령의 예비신자는 유아세례를 받은 또래들과 함께 첫 영성체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는다.

다만 가톨릭에서 교육받은 신자에게만 세례를 주는 건 아니다. 원칙적으로 세례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줄 수 있고 또한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유아 세례가 가능하고, 군대 훈련소에서 초고속 세례가 가능한 것. 또한 앞의 사례와는 조금 다르지만, 2014년에 세월호 희생자의 학부모 이호진 씨가 성당에서 교리교육 기간을 모두 채우지 않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를 받은 바가 있다. 역사상 그 이전까지 보통 교황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그 나라 평신도에게 세례를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파격적인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가톨릭에서 가장 권장하는 세례는, 사제 및 평신도 교리교사에게 교리 교육을 충분히 받은 후의 세례 혹은 유아세례 2가지이다.

대부분의 교단에서는 세례에 연령제한을 둔다.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유아세례를 인정하더라도 유아세례를 제외한 세례에 연령제한을 두기도 한다. 이 경우, 대체적으로 중학생 연령대 이상 (기감 교단의 경우 만 15세 이상).


1.6. 교파간 세례 인정[편집]


그리스도교 내 타 종파 출신 입교자의 세례 인정 문제는 종파마다 다르다. 개신교는 역사적으로도 개신교가 아닌 타 교파의 세례를 인정했는데, 이는 개신교가 가톨릭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도 당연히 가톨릭 세례성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루터, 칼뱅 모두 가톨릭에서 받은 영세를 인정하고 재세례를 부정했다. 자유의지에 따라 세례 받아야 된다는 재세례파의 주장을 배격하기 위한 뜻도 있다.

따라서 개신교의 경우 세례에 대해서 가장 열린 교파이다. 재세례파 빼고. 정교회, 가톨릭, 재세례파는 타교파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거나 엄격하게 통제하는데 비하여 개신교는 타 종파에 대한 세례에 대해서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특히 같은 개신교 내에서는 (성공회 포함) 서로 이단시 하지 않고 무형적 교회라는 큰 틀에서, 또 교리상의 유사점에서 서로 하나로 보기에 타교단의 세례에 대한 장벽은 더 낮다.

  • 한국의 에큐메니컬 진영 중 보수적 개신교에 해당하는 대한감리회천주교 세례성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교단 측에 전화 문의해본 바로는, 개신교와 천주교는 아예 다른 종교라서 세례를 서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 이와 마찬가지로, 에큐메니컬에 부정적인 보수교단(예장합동)에서도 1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14년부터 가톨릭에서 받은 세례성사는 인정치 않기로 결의했다. 교단의 결정일 뿐 반발하는 목소리도 결코 적지 않았는데 "장 칼뱅도 가톨릭 세례 인정했는데 한국 장로회에서 왜 유독 난리질이냐" "재세례파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며 교단 내 목소리 큰 강경파의 횡포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한국 천주교도 개신교 세례를 사실상 2012년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예장통합은 2017년 연구보고서를 통해 천주교의 영세를 인정한다. http://new.pck.or.kr/bbs/board.php?bo_table=SM04_06&wr_id=133

  • 보통 기침, 성서침례교회 등 한국개신교계가 정통교단으로 인정하는 침례회 계열 교단에서는 머리만 적시는 수준의 세례를 비록 침례교회의 전통과 성경적 근거를 따질때는 배치되는 면이 있지만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행한것이므로 적법한 예식을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 반면 정통침례교단 소속의 일부 교회나 성경침례교회,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 기쁜소식선교회, 대한예수교침례회) 등에서는 무효한 것으로 보고 침례받도록 하고 있다.[29]

  • 천주교: 성공회, 정교회에서 받은 세례를 인정한다. 개신교에서 개종한 사람이 세례를 받을 경우 일단 검증이 필요하다. 2012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규정을 바꿔 세례/침례 증명서나 세례 사진을 제출하면 사실상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가톨릭 신앙상담 사이트 댓글이나, 일선 성당 주임신부들의 의견이나 웬만하면 정식으로 천주교 세례성사를 다시 받을 것을 권면하는 분위기이다.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면 재세례는 불가하다는 입장은 천주교나 개신교는 같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개신교 세례교인 출신의 천주교 재세례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에선 성공회에 비하면 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영미권 가톨릭에서는 웬만하면 개신교 세례를 인정하며, 재세례(정식 영세)는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참고로 오컬트에 따르면, 세례는 입문식과 동일하다고 한다. 황금여명회계열 하이매직의 경우, 가톨릭 세례와의 차이점은, 기본 교리 교육 전에 입문식을 한다. 실제로 보면, 세례식이나 미사에 사용되는 도구와 문구가 모두 상징적인 것이다.


2. 1에서 유래한 말[편집]


세례 의식에서 유래한 말. 다만 원 의미와는 좀 다르고 무언가를 많이 받음을 의미하는데, 주로 벼락을 맞거나 타격을 당하는 등 부정적인 맥락에서 쓰이는 경우가 잦다. 융단폭격 같은 의미로 쓰인다고 보면 된다.



3. 우메즈 카즈오일본 만화[편집]


일본 호러 만화의 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메즈 카즈오의 문제작. 표류교실과 더불어 우메즈 카즈오의 대표작이다. 소학관에서 연재되었으며 문고판 기준 전4권 완결. (위키피디아)

참고로 이거 소녀만화 잡지에서 연재되었다. 사실 연재잡지인 소녀 코믹은 꽤나 막장만화가 많이 연재되기로 유명하다.

아름다움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유명한 여배우인 와카쿠사 이즈미(본명 : 우에하라 마츠코)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사생아 여자아이를 낳아서 자신의 의 몸에 자신의 뇌를 이식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 후, 그녀의 딸인 '우에하라 사쿠라'가 자라게 되자, 마침내 뇌이식수술을 실행하고, 그녀는 딸의 몸을 빌어서 아름다운 미녀로 다시 살아난다. 급기야 딸의 담임선생이었던 타니가와와 동거하고, 타니가와의 아내를 잔인하게 괴롭히고, 비밀을 밝히려는 반친구 나카지마[30]와 기자[31]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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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말 마지막에 반전이 일어나는데 사실 뇌 이식 수술은 없었고, 이 사건은 전부 이즈미와 사쿠라의 망상이 혼재된 결과였다. 그동안 이즈미를 상담해주고 뇌수술을 집행해줬다고 믿고 있었던 무라카미 의사는 사실 그녀가 한참 젊었던 시절에 이미 죽었고, 그 이후의 등장은 전부 상상 속의 존재였다. 외모에 광적으로 집착했던 이즈미는 자신의 노화를 두려워했고, 그 때부터 방어 기제로 자신을 구원해줄 가상의 무라카미 의사를 창조하였다. 그 때부터 이즈미는 무라카미 의사가 진짜 존재하는 것마냥 행동하다보니 딸인 사쿠라도 그 영향을 받아 그 의사가 실존하는 인물로 착각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광기가 심해진 이즈미가 (애초에 불가능했던) 뇌이식 수술을 시도하다가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사쿠라에게 머리를 가격 당하여 기절하였는데,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쿠라가 이 시점에서부터 '뇌이식 수술은 성공했고, 나는 이즈미다.'라는 망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엄마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구와 동시에 생긴 그녀에 대한 증오, 성숙해지고 싶었던 욕망,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한 꿈 등의 수많은 감정들이 합쳐진 결과였다. 애초에 뇌이식 수술은 없었으니 당연히 이즈미는 살아있었고, 이 때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던 사쿠라는 그녀를 산 채로 매장하였던 것이다.

결국 생매장되었다가 탈출한 이즈미를 마주하면서 사쿠라의 망상은 끝났고, 이 과정에서 그녀의 망상으로 존재했던 무라카미 의사, 머리의 수술 자국, 그리고 얼굴의 반점도 사라졌다. 나중에는 사쿠라와 이즈미가 함께 병원에 입원하였고, 타니가와 선생과 친구 료코가 병문안을 가면서 작품이 끝난다.

영화화까지 되었지만 평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이와이 시마코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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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 종교개혁 과정에서의 재침례파나 이 세력의 전통을 이어받은 침례회 계열 그리고 한국의 순복음 유관 교파들에서는, 가능하면 사도시대의 방식대로 물에 몸 전체를 담그는 게 낫다고 본다.[2] 세례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의 강조에 대한 반발로, 고대의 정통 유대교에서는 세례를 금지하였다.[3] 성경 속 세례는 물 세례와 성령 세례가 있다.[4] 단, 세례라는 예식 자체는 바빌론 유수 이전에도 정결례라는 이름으로 있었다. 이것을 유대교 입교 예식으로 쓴 것은 바빌론 유수 이후 에세네파로부터였다. 세례자 요한은 이것을 더 확장해서 다시 제정한 것이다.[5] NRSV와 같은 일부 영어 성경에서는 John the Baptizer라고도 한다.[6] 침례회에서도 강이나 시냇가에서 침례를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 예배당 안에 비치된 침례조나 목욕탕 형태로 된 별도의 침례실에서 침례를 준다. 사실상 현대의 교회들은 (특히 도시 교회들은) 강이나 시냇가를 찾는 것도 일이고 그 물이 깨끗하다는 보장이 없기에 사실상 원칙대로 하는 것은 어렵다. 심지어 침례탕을 따로 구비하기 힘들 정도로 열악한 개척 침례교회라든지, 혹은 군대에서 진중 침례식을 행할 때에는 침례탕이 갖춰진 다른 교회에 신세를 지거나 대중목욕탕, 영내 목욕탕을 활용하는 경우까지 있다.[7] 사제조차도 양성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탄압을 받은 카쿠레키리시탄이나, 가성직 제도로 겨우 명맥을 유지했던 한국의 초기 천주교도들도 세례는 줬다.[8] 예를 들어 조선은 평민들이 세금과 군역을 피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받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호구조사에서 양반과 천민의 비중이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었고, 중국도 마찬가지로 지정은제 시행이전에는 인구조사가 철저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장거정이 행정력을 동원해서 세금징수를 대대적으로 해놓아서 재정을 확충해놓았지만 이 때문에 욕을 먹는 일도 있었을 정도.[9] 유럽의 역사적 인물의 경우 생일은 정확하게 찾을 수 없어도 보통 세례일자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생년과 태어난 시기를 추정하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일본도 종교만 다를 뿐이지 신사가 호구 조사를 담당했다.[10] 침례교 쪽에서 침례만을 행해야 한다는 이유로 드는 구절이지만, 주수례를 행하는 교파에서도 세례에 이러한 의미가 있는 것은 인정한다.[11] 한밤중에 온 가족이 세례를 받는데, 지금처럼 욕조가 집집마다 딸린 상황이 아니었으니 침례가 그 상황에서 가능했겠냐는 주장[12] 특별히 제작된 하얀색 침례복을 입는다.[13] 다만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생명의말씀선교회의 침례는 타 교단에서 유효한 세례로 인정받지 않음에 유의하자.[14] 이것도 평상복 위에 가운을 덧입는 경우나, 평상복은 속옷만 남기고 벗고 가운을 덧입고 하거나, 속옷까지 침례 전용 속옷으로 갈아입고 하는 경우로 나뉜다.[15] 사실 '洗'禮라는 말 자체가 '씻는(洗)' 의식(禮)이라는 뜻이므로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16] 위에서 언급했듯 흐르는 물에서 침례받는 형태가 정식이었고, 탕에서 하는 것조차 약식이므로[17] 성인세례를 인정하는 교파도 유아세례는 인정하지 않는다.[18] 가톨릭에서는 인간의 구원의 길에 7성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가르치는데 개신교 측에서는 이 7성사와 구원의 관계에 대한 가톨릭의 교리를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7성사에서 세례와 성찬은 인정한다지만 성사 자체가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이라고 보는 가톨릭의 입장과 달리, 성찬과 세례는 일종의 '기념' 같은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대다수이다. 즉 '세례 받으면 신앙에 도움이 된다'는 정도이다.[19] 세례성사로써 모든 죄가 씻겨진다고 보기에 세례 전에 고해성사를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20] 그래서 기독교 초창기 개종자들은 죽기 직전에 세례받는 풍습이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세례받지 않은 몸으로 니케아 공의회를 주도했고, 죽기 직전에 세례받았다.[21] 과격혁명론자들도 예외없이 재세례를 주장했으나 재세례파 중에 온건 노선도 있었고, 현재 남은 재세례파들은 후자다. 일부는 침례회에 흡수되었다.[22] 물론 개혁주의가 루터주의에 비하여 가톨릭 전통주의에 더 비판적이다. 루터파는 성서의 권위를 가장 높이 보는 점은 개혁주의와 같지만 성서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한다면 성서와 충돌하지 않는 이상 전통을 일부 인정하고 명백하게 나와있지 않는 기존 전통은 중요치 않은 점으로 여긴다면, 개혁주의는 성서에 없는 전통을 필요 없는 것으로 보거나 충돌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없앨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23] 루터와 칼뱅이 이어받은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교회는 환자들이 모인 병원 같은 존재라고 보았다.[24] 펠라기우스는 원죄 자유의지 구원론 등 논제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논쟁 끝에 이단으로 선언되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펠라기우스는 기독교인이긴 했으나 "기독교가 없어도 인간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온전히 선행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논리를 떠나 성경해석에서는 중대한 결함이 드러났기 때문에 이단처리된 것.[25] 초창기에는 이단 제거란 명목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에게 공격받았다. 가톨릭 지역에선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사형이고 개신교 지역에선 영국의 경우 한번은 경고 2번째는 추방 3번째는 수장... 그러나 루터는 재세례파들이 가톨릭 교황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비슷한 오류에 빠졌다고 봤기 때문에 비난은 했지만 복음으로 돌아와야 할 대상으로 즉 재교육 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았고, 츠빙글리는 재세례파 스위스 형제단이 분리되는 것을 끝까지 막아보려 노력했으며, 칼뱅의 경우 재세례파 과부와 결혼했다. 어쨌든 이단에 물들어 교화대상으로 본 것.[26]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비폭력 무저항주의 재세례파 상공인이 많았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율을 중요시 여겨 저울을 속이지 않고 물건을 이윤을 추구하지 않기에 물건을 싸게 팔아서 다른 종파에도 평가가 좋았고 막시밀리안 2세 시절까지는 보호받았으나 종교전쟁 발발 이후 합스부르크가 영지인 오스트리아와 보헤미아에서 박멸 수준으로 탄압받았고 뿔뿔이 흩어져 후에 신대륙에 정착[27] 6개월 간의 긴 교육기간을 수료하고 찰고(신부와의 구두 면담)를 통과하면 그 다음에 바로 세례를 받는다.[28] 개신교의 경우 1개월 간의 새신자교육을 받고 바로 세례를 받는 식이 아니라, 6개월~1년 기간의 예비기간을 거친 후에 세례를 받는다.[29] 침례회파는 재세례파 일부가 합류하여 역사로 삼고 있고 전통을 받아들였다.[30] 불도저로 철거될 예정이었던 폐건물로 유인한 다음에 가두었다. 간신히 구조되었으나 당시의 충격으로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되버렸고 말을 못하는 폐인이 되버렸다.[31] 사쿠라가 기자의 목 뒷멀미에 침 같은 물체를 찔러 마비시키고, 구타한 다음 술을 먹여서 철로 위로 던져버린다. 음주 후 자살한 것으로 위장하려고 했던 것이다. 간신히 살아남은 기자가 사쿠라를 쫓아오지만 지나가던 차에 치여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