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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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웅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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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퓨처스리그 엠블럼.svg
2005 KBO 퓨처스 북부리그 타점왕

{{{#ffffff [[두산 베어스|두산 베어스]] 등번호 20번}}}
베넷
(2001.6.8.~2001)

유재웅
(2002~2004)


장인규
(2005)
홍병오
(2006)

유재웅
(2007~2011)


김강률
(2012~2015)
{{{#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20번}}}
이승호
(2000~2011)

유재웅
(2012)


이재원
(2013~2023)




파일:유재웅.jpg

유재웅
兪在雄|Yu Jae-Woong

출생
1979년 5월 20일 (44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서울길동초 - 건대부중 - 휘문고 - 건국대
포지션
외야수, 1루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8년 고졸우선지명 (OB)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2~2011)
SK 와이번스 (2012)
해설위원
olleh tv 야구 해설위원 (2013)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4년 11월 18일 ~ 2006년 11월 17일)
등장곡
The Union Underground - Across The Nation[1]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신인 지명과 비하인드 스토리
3. 은퇴 후
4. 연도별 주요 성적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2. 선수 경력[편집]



2.1. 신인 지명과 비하인드 스토리[편집]


1998년 휘문고 3학년이었던 그를 고졸우선지명으로 당시 OB 베어스가 지명, 지명 이후 건국대학교에 진학했다. 이 당시 존재하던 고졸우선지명 제도는 1차지명과 유사하게 연고 지역의 고졸 선수를 우선적으로 최대 3인 지명할 수 있는 제도였다.[2] 재미있는 것은, 유재웅은 당시 LG 트윈스의 연고 학교로 선정된 휘문고등학교 출신인데도 OB 베어스의 고졸우선지명을 받았다는 점이다.

고졸우선지명 당시 서울 지역에서는 LG 트윈스OB 베어스가 각기 고등학교를 갈라먹기 식으로 지정한 채로 고졸우선지명 대상 선수를 골랐는데, 하필 이 해에는 OB 지역의 연고 학교에 유망주라고 할 만한 선수의 씨가 마르다시피 한 것이다. 반면 LG는 그 해 최고의 고졸 타자로 꼽히던 박용택, 안치용, 정현택을 싹쓸이한 상황. OB는 LG에게 걔들 말고 다른 애 안 뽑을 거면 유재웅이라도 우리에게 줘라라고 양해를 구했고, LG가 의외로 순순히 이를 받아들이면서 유재웅은 OB의 손에 일단 들어오게 되었다.

건국대학교에 진학한 유재웅은 4학년 때 야구 월드컵 대표에 선정되는 등 대학 최고 레벨의 타자로 성장했고, 두산 베어스는 이런 유재웅에게 1억 5천만 원에 이르는 거액의 계약금을 안기며 입단시켰다.


2.2.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파일:20100302_doosan_yoojw.jpg
두산 베어스 선수 시절

2002년 프로 무대에 입성하게 된 유재웅은 대타 요원으로 출장하며 나름대로 가능성을 엿보이고 있었다. 비록 고교동창 박용택에 비해 스타트는 늦어도,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만큼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자원이었으나, 2002년 말 교통사고로 인해 중상을 입으며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 대형 사고의 결과로 동승했던 송원국은 사실상 선수생명이 끝났고, 유재웅 역시 사고 후유증과 부상, 그리고 책임 논란에 시달리며 결국 2003시즌을 개점 휴업 상태로 통째로 날려먹었다.

2004년, 유재웅은 다시 1군 무대에 복귀했지만 주전 경쟁자인 최경환, 전상렬, 김창희 등에 밀려났고, 결국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2004년 시즌 종료 이후 상무에 입대하게 된다. 그리고 유재웅은 상무에서 연일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군대가 사람 만든 또 하나의 케이스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런 기대를 바탕으로 전역 후 복귀한 2007년에는 개막과 함께 주전 우익수로 낙점되어 선발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2군에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유재웅은 타격 침체를 겪었고, 결국 외야진 연쇄이동이 발생하며 좌익수 이종욱이 중견수로, 중견수 민병헌이 우익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주전에서 밀려났다. 더구나 이렇게 연쇄이동으로 인해 비게 된 좌익수 자리에 웬 안타를 굽는 기계가 등장하며 주전은 더욱 멀리... 그나마 2008년에는 민병헌도 타격 페이스가 다소 처지고 있었지만 유재웅 역시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트레이드로 합류한 소장수와의 주전 경쟁에 직면하더니 또 다시 주전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이러한 역경의 커리어에도 빛나는 순간이 있었는데, 2008년 9월 19일, 당시 롯데의 방어율 0 마무리였던 코르테스에게 동점 투런홈런을 때려내 두산이 3연전을 스윕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시리즈는 두팀이 2위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PO라고 했을 정도로 엄청나게 중요한 게임이었다. 경기는 연장에서 김동주의 홈런으로 이겼다.

하지만 괄목한 성장을 이뤄내지 못한 유재웅의 역할은 가면 갈수록 제한적으로 변해갔다. 기본적으로 발이 빠르지 않고 수비력도 좋은 편이 아니라 중견수는 고사하고 좌/우익수 수비도 좋은 평을 못 듣는지라 지명타자 자리를 꿰차고 들어야 하는데, 문제는 유재웅은 수싸움에 심히 약점을 보여서 호쾌한 장타력만큼 풍기질도 심하다는거. 걸리면 넘어가지만 엥간치 안 걸리는 공갈포의 전형이었다. 비슷한 유형의 이성열은 2010년 포텐을 터뜨리며 자리를 잡았으나 유재웅은 결국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여기에 두산은 지명타자 자리도 워낙 빡빡했던지라 수비가 다소 아쉬운 최준석이성열이 지명타자 자리를 자주 오가는 것은 물론, 김동주까지 노쇠화가 많이 진행된 2010년부터는 지명타자로 자주 나서게 되면서 유재웅의 자리는 더욱 더 없었다. 그나마 주어진 역할이 좌타 대타 정도.

2010년 9월 14일 광주 KIA전에서는 9회초 2사 득점권 상황에서 동점을 만들 수 있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홈으로 쇄도하다 난데없이 다리근육에 쥐가 나면서 홈에서 아웃되는 바람에 두산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이 사건으로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 절름발이라고 까인 유재웅은, 근년의 한미한 경기 출장 수에도 불구하고 타팀 갤러들도 알 만큼 브랜드화되었다. 얼마나 까댔으면, 2012년부터는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으나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도 절름이라 불렸던 듯. 결국 이 이후로 유재웅의 역할은 좌타 대타. 하지만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2.3.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파일:external/www.sksports.net/20120318131331_1.jpg

그리고 2011년 11월 KBO 2차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아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SK측에서는 예상치 못한 대어를 낚았다고 기대하는 모습이다. 관련 기사

시범경기에선 1루수로 출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아와의 시범경기 2차전에선 우측폴대를 맞추는 솔로포를 쏘아올리고 1루측 강습타구를 점핑캐치로 잡아내는 등, 뜬금없는 활약을 하면서 일말의 희망을 보여준 상태. 로또보다 잘하기만 하면 무혈입성이다! 그러나 정작 시즌 중에는 1군에서는 9경기에서 0.154, 1타점에 그쳤고 퓨처스리그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다.

보류선수 명단이 발표되기 직전인 11월 24일 임의탈퇴 처리되었다. 사유는 '개인 사정'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마 야구에 대한 의욕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사실 임의탈퇴가 사고 친 선수 쫓아낼 때 쓰이기도 하지만 그냥 은퇴 처리를 할 때도 임탈을 건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냥 본인이 은퇴를 선택한듯.


3. 은퇴 후[편집]


이후 두산 베어스 투수 오현택 선수의 기사에서 스포츠제국[3]이라는 회사의 팀장이 되었다고 하고 2013년 후반기부터는 olleh tv 두산베어스 편파중계에 해설로 나오기 시작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02
두산
52
.211
12
1
0
1
5
3
0
4
21
.262
.281
2003
1군 기록 없음
2004
76
.222
34
12
1
5
16
20
1
19
45
.308
.412
2005
군 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6
2007
20
.182
6
1
0
0
2
0
0
4
11
.270
.212
2008
104
.276
72
10
0
4
32
24
1
27
49
.339
.360
2009
66
.254
32
11
0
4
14
16
0
18
33
.347
.437
2010
53
.258
25
6
0
7
25
17
0
7
27
.308
.536
2011
12
.154
2
1
0
0
0
3
0
3
5
.313
.23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12
SK
9
.154
2
0
0
0
1
1
0
1
3
.214
.154
KBO 통산
(6시즌)
392
.246
185
42
1
21
95
84
2
83
194
.319
.388


5. 여담[편집]


별명은 유쟁, 유대인[4], 절름발이[5]

파일:attachment/juchansonggu.gif
롯데 김주찬에게 주루 도중 헤딩슛 송구빈볼[6]을 맞았는데 그것도 머리통에 맞았고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그 공이 관중석까지 튀겨서 날라갔었다. 김주찬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화제의 장면에 나오기도 했다.

넓직한 풍채와 외모에 비해서는 성격은 상당히 유순하다. 유대인 별명에 상술했듯이 경기 중 빈볼이 의심되는 공을 맞았지만 두산선수들이 나올려고 하자 괜찮다는 손짓을 하고 쿨하게 걸어나가기도 했다.

또한 팬서비스도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싸인을 받을 곳이 없어서 모자 챙 안쪽에다가 해달라고 부탁을 했을때 ‘원하시면 당연히 해드려야 한다.’ 라고 말하며 싸인을 해줬다는 얘기도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1] 두산 베어스 시절의 등장곡으로, 프로레슬링 RAW의 주제곡이기도 하다.[2] 이 당시만 해도 1차지명으로는 대졸 선수를 뽑고, 연고지역의 고졸 선수는 고졸우선지명으로 뽑는 게 일반적이었다. 박용택, 이현곤, 정성훈, 김수경 등의 선수들도 고졸우선지명으로 연고 구단으로 입단하게 된 것이다.[3] 여담으로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아무리 검색해 봐도 나오질 않아서 대체 어떤 회사길래 절름이가 팀장이 된 거냐며 두산 베어스 갤러리가 한동안 들썩였다.[4] 2008년 4월 19일 SK두산의 경기 중 위협적인 주루 플레이 등으로 인해 양팀의 분위기가 날카로워졌을 때 SK의 김준이 유재웅 머리에 빈볼을 던졌는데 두산에서 벤치 클리어링을 하려는 찰나 그가 팀 동료들에게 괜찮다고 하며 벤치 클리어링을 막았다. 그리고 1박 2일의 민폐공연으로 유명한 2008년 9월 19일 사직구장에서 코르테즈를 상대로 9회 동점 홈런을 친 뒤 묵묵하게 담담한 표정으로 홈을 밟아 대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인배.[5] 2010년 9월 14일 광주 기아전 9회초 한 점차 상황에서 홈쇄도 중에 다리에 쥐가 나서 아웃, 그대로 두산이 동점기회를 날려먹고 지게 되자 뚜껑이 열린 두산팬들이 붙였다.[6] 빈볼이라는 단어가 고의성을 포함한 머리 쪽 사구를 뜻하는데 저 상황은 실수였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빈볼은 아니지만 대부분 재미를 위해 저렇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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