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지역별 현황/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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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주시[편집]


1916년 설립된 정신유치원이 최초로, 원주시가 아직 원주군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원주시 일산동에서 개원했다. 강원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치원이며[1], 현재는 원주유치원으로 개명했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 학성동, 개운동, 단계동, 원동, 인동, 태장동, 명륜동에서 왔다고 한다. 첫 입학생들은 1910년~1912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은 대부분 사망했거나, 살아 있어도 113~114세가 됐을 정도로 유서가 깊은 유치원이다. 한편 원주에서도 시골인 옛 원성군 지역에는 1980년대에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심지어 원주보다 유치원이 늦게 설립된 광역시도 2곳[2]이나 있고, 제주도도 원주보다 유치원이 8년 늦게 설립되었다. 그야말로 증조할아버지나 증조할머니가 다녔던 유치원에 그 증손자/증손녀가 다니는 경우도 가능한 셈. 과거에는 양평군에 거주하는 아동들이 중앙선 기차를 타고 원주에 있는 유치원에 다니기도 했으나, 워낙 시간이 오래 걸려[3] 그 수는 많지 않았다. 물론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등이 개통된 현재는 횡성군, 여주시에서도 원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하는데, 주로 그 지역에 있는 유치원 추첨에 다 떨어진 경우 차선책으로 쓰는 방법이다. 특히 횡성군의 경우는 군내에 사립유치원이 있지만 그마저도 횡성읍에만 2곳 있어서 서원면, 우천면 등지에 사는 유아들은 사립유치원을 다니고 싶으면 원주까지 가야 할 정도이다. 평창군, 영월군은 원주와의 거리가 멀어서[4] 원주 생활권인 동네들 중 원주로의 유치원 원정 통학 건수가 적은 곳이다.

1980년대까지 원주의 유치원은 주로 학성동, 봉산동 등 시내에 설립됐으나 1990년대 이후 무실동, 단계동 등지로도 확장되었다.[5]

사립유치원은 강원도에서 가장 많은 36곳(시내 34곳, 문막읍 2곳) 있다. 기업도시에 의한 인구 증가로 1960년대 20만 417명이던 인구가 1975년 19만 4,271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계속 늘어 2021년 35만 4,376명으로 늘었으며[6],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향후 강원도 최초로 사립유치원이 40곳 이상인 지역이 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원주는 강원도 영서 남부 지역에서 사립유치원이 가장 많은 곳인데, 강원도 영서 남부 지역에 있는 사립유치원 중 4/5가 원주에 있다. 이는 횡성, 평창, 영월, 정선 4개 군의 인구를 모두 합쳐도 원주를 못 넘기[7] 때문이다.

참고로 원주는 인구 30만 명 이상인 지역 가운데 유치원이 가장 일찍 들어왔다.[8]

과거에는 유치원생들이 원주 사투리를 많이 썼으나, 표준어 보급과 수도권 인구의 유입 등으로 인해 사투리 억양이 섞인 표준어를 거쳐 현재는 거의 대부분의 원생들이 표준어를 사용한다. 다만, 영호남에서 유입된 조부모의 영향으로 서남, 동남 방언 억양이 섞인 원생도 가끔씩 있다.

원주는 전국에서 원씨[9]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이 살아서 원주의 유치원에서는 원씨 성을 가진 원생을 보기 쉽다. 다만 원씨는 원주에서 인구가 14위이고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조, 윤, , 장, 순서이다. 참고로 원주시는 춘천, 강릉과 함께 강원도에서 해외로 이민 등을 간 사람이 주소로 많이 둔 지역이기도 하다.

역도선수 출신 대학교수 장미란1987년~1989년 사이에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10] 레슬링선수 김현우는 1992~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2020년 8월 22일 원주의 한 유치원에서 유치원 교사가 확진된 것을 시작으로 9월 3일 원생 2명이 추가로 확진되는 등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으며 2021년 3월 26일에도 유치원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 횡성군[편집]


1919년 설립된 화성유치원이 최초이다. 횡성군에는 사립유치원이 딱 2개뿐인데, 하나는 화성유치원이고, 다른 하나는 천주교 원주교구 횡성 성당 부설 성모유치원이다. 둘 다 횡성읍 읍상리에 있다. 때문에 나머지 면[11]에 사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니거나 읍내, 혹은 아예 원주로 넘어가서[12]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실제로 횡성읍에 가 보면 원주의 유치원 버스들이 도로를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공근면의 경우는 홍천으로도 많이 넘어간다.[13] 첫 번째 입학생들은 1913년~1915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이 현재 살아 있다면 110~111세일 정도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당시 원생들은 횡성읍 읍상리, 읍하리, 북천리, 마산리, 입석리, 가담리에서 살았다고 한다.

횡성군은 시골치고는 제법 일찍 유치원이 들어왔다. 횡성군에 화성유치원이 설립될 당시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경기도[14], 충청북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특별자치도에는 아직 유치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횡성군은 전국에서 원씨 비율이 가장 높아서[15], 횡성 출신들은 유치원 시절 원씨 성을 가진 친구나 교사를 꼭 한 명은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다만, 원씨는 횡성군 12위로 전씨 바로 아래인데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조, 한, 장, 안, 윤씨 순서이다. 또한 지리적인 특성상 폭설에 의한 휴원이 잦고, 4월까지도 눈놀이가 가능할 정도[16]이다.

1960년대에 10만 3,692명이던 인구가 2007년 4만 3,176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고용 창출 효과로 늘면서 2021년 4만 6,472명까지 회복해[17], 사립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UFC 선수 이예지[18]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 화천군[편집]


1921년 화천제일교회 부설로 설립된 화천유치원[19]이 최초이다. 화천읍 중리 소재. 강원도 최전방 지역 중 최초로 유치원이 들어왔으며[20], 남북분단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현재는 폐원되고 없다. 화천유치원을 기억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80대 중반 이상의 노인일 정도이다. 1915년~1917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들은 살아 있다면 108~109세일 정도로 역사가 길지만, 아쉽게도 38선이 그어질 때 화천군이 이북으로 넘어가면서[21] 교회와 유치원을 모두 빼앗긴 데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원사가 소실되는 바람에 폐원됐다. 마지막 졸업생은 1939년생으로 현재는 84~85세가 됐으니 이 곳이 고향인 젊은이들도 잘 모를 정도이다.

사립유치원은 1997년 설립된 명성유치원 하나뿐이고, 그마저도 화천읍이 아닌 사내면 명월리에 있었다가 2018년 폐원되면서 화천군은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했다. 2011년생(12~13세,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 마지막 졸업생이 됐고 남아 있는 2012, 13년생(10~12세, 2012년생은 초등학교 3학년, 2013년생은 초등학교 2학년)들은 인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분산 배치, 2014년생(9~10세, 2021년 2월 유치원 졸업, 초등학교 1학년) 이후로는 신입생 모집이 정지됐다. 화천읍이 사내면보다 인구가 많은데도[22] 이렇다. 때문에 화천군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화천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춘천시의 사립유치원[23]을 다녀야 할 정도이며, 화천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다른 지역의 대학을 졸업한 뒤[24] 임용고시를 쳐야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춘천 등지로 가야 한다.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춘천시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어 화천군 인구가 3~4만 명을 찍고 화천읍에도 사립유치원이 하나쯤은 들어올 수도 있었다. 1960년대에 5만 5,241명이던 인구가 2008년 2만 2,947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2015년 2만 7,142명으로 회복했으나, 2021년 2만 4,857명으로 줄어드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여,[25] 사립유치원도 폐원됐다. 만약 강원도청이 화천군 간동면으로 이전한다면, 간동면은 사립유치원 없는 도청소재지 제 3호가 될 예정이다.[26]

지리적인 이유로 폭설에 의한 휴원이 잦고[27], 4월에도 눈놀이를 할 수 있으며 최전방답게 원생 대부분이 직업군인(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이다.

참고로 화천군은 고속도로가 없는 도시들 중 유치원이 가장 일찍 들어왔다.[28]

사립유치원 없는 군 가운데 서울에서 가장 가깝다.[29]

참고로 화천군 유일의 단설유치원인 화천유치원은 주로 화천읍에서 원생을 모집하지만 드물게 하남면 위라리, 더 멀리는 간동면 등 화천군의 다른 면이나 양구군에서 오기도 한다. 이는 양구군의 모든 유치원이 병설유치원이라 단설을 보내고 싶으면 화천, 사립은 춘천을 가야 하기 때문.

태권도 선수 이대훈이 화천에서 유치원을 다녔으나, 유치원 시절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으로 이사를 갔다.[30]

길씨 집성촌이 있어 화천에서는 길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를 보기가 쉽지만, 금산군 정도까지는 아니다. 다만 길씨는 화천군 성씨 순위 16위로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장, 송, 조, 윤, 강씨라 화천의 유치원에서 송씨가 강씨보다 많은 셈이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4. 정선군[편집]


1922년 정선읍 봉양리에서 정선감리교회 부설로 정선유치원이 설립됐으나 1935년 1차 폐원됐고, 6.25 전쟁 이후인 1956년 재개원했으나 인구 감소로 현재는 무기한 휴원 상태이다. 이는 제주도보다 2년, 울산보다 8년 빠른 것이며, 경기도의 모든 도시는 정선보다 유치원이 늦게 설립됐다. 공립유치원은 1981년 갈래초등학교, 고한초등학교, 벽탄초등학교, 북평초등학교, 사북초등학교, 예미초등학교, 임계초등학교, 임계초등학교, 화동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개설되었다. 1916년~1918년생이 정선유치원 첫 입학생이었고, 첫 졸업생들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7~108세가 됐을 만큼 유서가 깊다. 당시 원생들은 정선읍 봉양리, 애산리, 신월리, 북실리에 살았다고 한다.

정선군의 지리적 특성상 이 곳에 소재한 유치원들은 겨울에 눈이 왔다 하면 거의 미터 단위로 쌓여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고, 4월10월에도 눈놀이가 가능하며[31], 5월에도 외투를 입고 다녀야 할 정도이며 심지어는 6월과 8~9월에 긴팔을 입고 다니는 원생도 있다. 이러니 4월과 10월에 정선의 유치원을 가면 패딩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90년대 이전에는 탄광이 많이 몰린 사북읍[32], 고한읍 등에 사립유치원이 많았으나[33],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의 영향과 지리적인 문제로 인한 개발의 불리함[34]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줄줄이 폐원된 이후 2007년까지 사립유치원이 없었다.

1960년대 10만 2,573명이었다가 1970년대 13만 8,469명까지 늘어났으나[35], 현재는 3만 6,870명으로 감소한 인구[36] 탓에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이 정선에 추가로 설립하려는 계획을 포기해 현재는 정선읍 봉양리에 있는 반야유치원만이 관내 유일한 사립유치원이다. 불교계 유치원이다.

정선은 전씨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아[37] 원생과 교사들 중 성이 전씨인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고, 정선 출신들 중 자신의 유치원 시절 교사 중 전씨인 사람을 적어도 한 번은 만났다고 할 정도이다. 이는 실제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정선군 성씨 10위까지를 보면 김, 이, 최, 박, , 정, 유, 권, 장, 고씨 순서이며, 정선과 맞닿아 있는 시와 군들 중 강릉과 평창도 마찬가지로 상위 3개 성씨가 '김이박'이 아니고 '김이최'이다.

정선에서 유치원을 다닌 유명인으로는 스노보드 선수 이상호가 있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5. 강릉시[편집]


1923년 설립된 금천유치원이 최초이다. 강릉시 인구의 3배나 되는 제주도보다 1년 일찍 유치원이 들어온 것이며, 강릉보다 유치원이 늦게 들어온 광역시도 광주와 울산 2곳이 있다. 또한 이 곳은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 최초로 개원한 유치원이다. 사실 영동 지역 최초의 유치원은 1922년 울진군에 설립된 동명유치원이었으나, 1963년 울진군이 경상북도로 넘어가면서 금천유치원이 그 타이틀을 가져간 것이다. 금천유치원은 강릉시가 아직 강릉군이었던 시절 지금의 강릉시 금학동에 개원했고, 국내 최초의 불교계 유치원이다. 지역 사찰인 관음사에서 설립했으며, 월정사가 관리를 맡고, 건봉사가 교육을 맡았다고 한다. 1917년~1919년생이 첫 원생이었는데, 첫 번째 졸업생은 사망했거나 살아 있더라도 106~107세의 어르신이 됐고, 1940년대에는 졸업 앨범창씨개명을 한 일본식 이름이 적힌 적도 있었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1934년~1941년생으로, 현재는 82~90세의 어르신이 됐다. 게다가 그 시절이면 설날추석은 물론 크리스마스까지 모조리 평일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강릉시 금학동, 성남동, 임당동, 옥천동, 성내동, 교동[38]에 살았다고 한다.

강릉시의 지리적인 특성상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은 편이다.[39] 강릉 시민들이나 외지에 거주하는 강릉 출신자들은 어린 시절 겨울에 눈이 오면 유치원이 휴원에 들어가고,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을 관리하는 아저씨들이 유치원에 쌓인 눈을 치우는 모습과 유치원 앞에 제설차들이 여러 대 지나가는 것을 봤다고 할 정도. 또한 강릉에 사는 사람은 군부대가 많은 여건상 서울 사람보다 상근예비역에 뽑히기 쉬워 상근예비역 2명이 같은 유치원 출신인 경우도 심심찮게 있을 정도이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동해시, 양양군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평창군[40], 정선군[41]에서의 원정 통학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한편 강릉에서도 시골인 옛 명주군 지역에는 1980년대에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됐다.


사립유치원은 13곳(시내 12곳, 주문진읍 1곳) 있다. 1960년대 21만 9,065명[42]이던 인구가 1975년 23만 3,878명까지 늘었다가 2021년 21만 3,321명으로 줄어드는 등 증감을 반복하는데도[43] 거의 그대로다. 이름만 보면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청송유치원[44]이 강릉에도 있다.

강릉시의 지리적 특성상 외부로 향하는 교통이 불편해서[45] 21세기까지도 강릉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사람들은 강릉 사투리를 쓰거나, 사투리 억양이 섞인 표준어를 썼으나, 영동고속도로의 확장 개통으로 사투리 억양이 많이 희석되면서 2010년대 들어서는 유치원생들이 사투리보다 표준어를 더 많이 쓰고 있다. 또한 강릉시의 유치원들은 오죽헌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많다.

강릉은 전국에서 함씨 인구가 가장 많아서[46] 강릉 출신들은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에 함씨 성을 가진 원생이 한 반에 몇 명은 꼭 있거나, 유치원 다닐 동안 만난 교사들 중 모두 함씨인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또한 최씨가 박씨보다 더 많아[47] 원생과 교사의 성씨 중 박씨보다 최씨가 더 많은 곳은 물론 심지어 박씨가 없고 최씨는 있는 곳이 있다. 실제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강릉에서는 김, 이, 최, 박, 정, 권, 전, 홍, 장, 강씨가 상위 10개 성씨이며 강릉 인근의 평창군, 정선군도 마찬가지로 상위 3개 성씨가 '김이박'이 아닌 '김이최'이다.

트랜스젠더 모델인 최한빛이 강릉에서 유치원을 다녔다.[48]

2021년 8월 24일 유치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6. 춘천시[편집]


1923년 춘천유치원이 설립됐으나 현재는 폐원됐고[49], 현재까지 영업하고 있는 곳 중에서는 1930년 천주교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 성당 부설로 설립된 소화(小花)[50]유치원이 가장 오래됐다. 춘천중앙교회 부설유치원도 오래되었으나, 언제 부설되었는지는 불명. 1917년~1919년생이 첫 원생이었고, 첫 졸업생들은 현재 사망했거나, 생존해 있을 경우 106~107세가 됐다. 참고로 춘천은 38선이 지나가는 지역들 중 유치원이 가장 일찍 들어왔다. 원생들은 현재의 춘천시 소양동, 조운동, 근화동, 약사동 일대에 주로 살았다고 한다.

과거에는 가평군에 거주하는 아동이 경춘선 기차를 타고 춘천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하기도 했으나, 당시 경춘선은 단선이고 운행 편수가 적어서 그 수는 많지 않았다.[51], 반면, 교통이 발달한 현재는 홍천군, 양구군, 화천군, 인제군에서의 원정 통학 건수도 늘어났다.[52] 한편 동내면과 동면 정도를 제외하면 지금도 시골로 남아 있는 옛 춘성군 지역에는 1970년대가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53]

  • 춘성군 지역: 1979년 상천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신북읍 천전리[54] 소재로, 강원도 최초의 공립유치원이었다. 첫 입학생은 1973년~197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0~51세이다.

1980년대까지 춘천의 유치원은 주로 시가지가 형성된 근화동, 소양동 일대에 주로 설립됐으나, 춘천 시가지의 확장으로 퇴계동석사동후평동효자동과 동면, 동내면에도 사립유치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는 과거 춘천시 중심가에 캠프 페이지가 있어 근화동 일대의 발전이 저해되어[55] 춘천역보다 남춘천역의 이용객이 많아지고, 신규 주택도 퇴계동, 석사동, 후평동 등지에 우선 공급되어 유치원들이 퇴계동, 석사동, 후평동 등지에 더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만, 화천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이 세 동이 아닌 신동에 있는 미래숲유치원이다.

사립유치원은 22곳 있는데 시내, 동내면, 동면에만 있다. 동면의 것은 장학리, 동내면의 것은 학곡리 소재. 신북읍[56]은 물론, 교육기관이 없는 남면[57]과 사립유치원이 있는 동면[58], 동내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59]에는 공립 병설유치원만 있다. 춘천에 사립유치원이 많은 이유는 춘천이 강원도에서는 대중교통 인프라가 매우 뛰어나[60] 이를 등에 업고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립유치원이 아예 없는 화천군[61], 양구군[62], 인제군[63] 등지에서 자동차를 타고 춘천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한다.

춘천은 군부대가 많은 지역 여건상 상근예비역에 선발될 확률이 서울보다 높아 춘천에서는 같은 유치원 출신이 같은 부대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주로 신북읍 등 북부 지역에서 이러는 편이다.

1960년대 19만 1,576명이던 인구가 28만 2,765명으로 늘어나[64] 사립유치원이 추가로 들어섰고, 인구 증가 추세가 계속될 경우 퇴계동, 석사동, 후평동을 중심으로 사립유치원이 추가로 들어설 수도 있다.

여담으로 춘천은 강원도 영서 북부[65]에서 사립유치원이 가장 많은 곳이자 강원도 영서 북부 지역에 있는 사립유치원 32곳 (춘천 22곳, 철원 4곳, 홍천 4곳, 인제 2곳, 화천 0곳, 양구 0곳) 중 2/3를 차지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철원, 화천, 양구, 인제, 홍천군의 인구를 모두 합쳐도 춘천을 못 넘기 때문이다.[66]

2021년까지는 춘천의 유치원에서 소풍을 간다고 하면 거의 김유정문학촌, 봉의산성, 구봉산 등으로 가지만 2022년 이후 춘천의 유치원에서는 춘천 레고랜드로 소풍을 가기 시작할 예정이며 멀리는 화천, 양구, 인제, 홍천의 유치원에서도 그 곳으로 올 것이다.

춘천은 전국에서 남궁씨[67] 인구가 많아서 춘천의 유치원에서는 서울보다 남궁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를 보기 쉬운 편이다. 다만, 그 남궁씨마저 춘천시 성씨 순위로는 56위에 불과하며, 춘천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조-윤-장-- 순서라 강씨보다 홍, 신씨가 더 많다.

축구선수 손흥민은 1995년~1998년 사이[68]에, 사격선수 진종오는 1983~1985년 사이에[69] 춘천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2021년 4월 22일 춘천에서 유치원 교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7. 양구군[편집]


1924년 설립된 양구감리교회 부설유치원이 최초이다. 시골 치고는 상당히 일찍 유치원이 들어온 지역 중 하나이다. 심지어 경기도의 어지간한 도시들보다 최소 20년 이상 일찍 들어왔으며, 춘천보다는 1년 늦지만 바로 옆 동네인 인제군보다 57년, 속초보다 15년 빨리 들어왔다. 양구읍 중리 소재였으며. 현재는 폐원되어서 80대 중반 이상인 어르신들만 겨우 기억할 정도이다. 첫 입학생은 1918년~1920년생으로, 현재 이 곳의 첫 졸업생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거나 살아 있더라도 105~106세 어르신이 되었을 정도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참고로 양구는 휴전선과 가까운 지역들 중 유치원이 가장 일찍 들어왔다. 가장 늦은 곳은 옆 동네 인제군. 당시 원생들은 양구읍 상리, 중리, 하리, 고대리, 정림리, 안대리에 살았다고 한다.

남북분단 이후 양구군 전역이 북한 치하에 들어가면서[70], 양구감리교회는 인민재판소로 용도가 변경됐고, 양구감리교회 부설유치원은 유치원 기능을 상실했다. 이는 북한 체제 특성상 기독교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고, 평양급 대도시에도 사립유치원을 설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953년에 남한이 양구군을 수복하기는 했지만[71], 수복 이후에도 유치원은 회복되지 못했다. 또한 1956년 양구장로교회에서 유치원을 설립했으나, 1996년 군내 마지막 사립유치원인 이 곳이 인구 감소를 이기지 못하고 폐원됐다. 당시 양구군의 인구는 2만 4,047명이었다. 1950년~1952년생이 첫 원생이었고, 첫 졸업생은 현재 73~74세고, 현재 33~34세인 1990년생들이 마지막 졸업생이 됐으며 1991년, 1992년, 1993년[72]들은 인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분산 배치됐다. 그래서 현재 양구군에는 사립은 물론 공립 단설유치원도 없다.

지리적 특성상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은 편이다. 군필자들이 흔히 말하는 '화이트 어린이날', '화이트 어버이날'을 볼 수 있는 지역 중 하나이며, 4월에도 눈놀이가 가능할 정도이다.[73] 심지어 어린이날 행사를 눈 맞아 가면서 할 정도이다. 또한 지역적 특성상 양구군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상근예비역에 뽑히기 쉬워서 양구에서는 유치원 동창, 혹은 유치원 선후배가 같은 부대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하는 경우가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여기에 더해 지형상의 이유로 춘천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하고 소양강댐 건설로 외부로 향하는 교통이 불편해지면서[74] 사립유치원이 들어올 정도의 인구 유입이 이루어지지 않아 1960년대에 4만 1,623명이던 인구가 2005년 2만 1,270명으로 최저점을 찍고 2016년 2만 4,096명까지 늘었다가 2021년 2만 2,278명으로 줄어드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고 있고[75], 따라서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이 경영 악화를 우려해 양구에 사립유치원을 설립하려는 계획을 포기해 지금까지 사립유치원이 설립되지 못했다. 그래도 이런 시골에 유치원 버스는 있다는 것이 위안거리.

현재 양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이 양구읍에 있는 양구초등학교 병설유치원과 국토정중앙면에 있는 용하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인데, 1981년 전국적인 공립유치원 붐과 함께 설립되었을 정도이다. 바로 옆 동네인 인제군[76], 화천군[77]과 아랫동네인 춘천시에도 사립유치원이 있는데, 양구군에는 없다.[78] 그래서 양구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거나 아예 춘천 등지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닐 수밖에 없다.[79] 양구가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상황은 비슷해서 고향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80]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고, 사립유치원이나 공립 단설유치원에서 근무하고 싶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춘천이나 인제 등지로 가야 하는데, 이들은 주로 주변에서 그나마 큰 도시인 춘천으로 간다.

또한 군부대가 산재한 최전방 지역답게 원생의 대부분이 직업군인(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들이다.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양구군 인구가 최소 3~4만 명을 찍고 양구읍[81]에 사립유치원 한 곳쯤은 들어와서, 양구가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으로 전락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양구읍의 사립유치원은 양구읍 대부분 지역에서 원생을 충원하고, 국토정중앙면 죽리, 구암리 지역에서도 원생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죽리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국토 정중앙[82]에서 가장 가까운 유치원이다. 또한 양구군은 화천군에 사립유치원이 있었던 2017년까지만 해도 사립유치원 없는 군 가운데 서울에서 가장 가까웠다.[83]

양구군은 외국어고등학교과학고등학교국제고등학교예술고등학교체육고등학교 소재지들 중 유일하게 사립유치원이 없는 동네인데, 양구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반도섬 방면으로 갈 때 보이는 강원외국어고등학교가 있다.

양구에는 파주 염씨 집성촌이 있어[84] 원생과 교사 중 염씨의 비중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다만 그 염씨조차도 30위 밖에 머물러 있는데 양구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조, 윤, 장, , 씨이다.

축구선수 이재관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10월 19일 양구에서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가 2명 발생했다.

8. 평창군[편집]


1924년 평창읍에 평창유치원이 사립으로 설립됐으나 현재 상태는 불명이고, 현재까지 영업하는 곳 중 오래된 곳은 1964년 설립된 불교연화유치원이며 그마저도 2021년 휴원하였다. 극락사에서 운영하며, 탄허스님[85]의 원력으로 개원했으며 자용 스님이 원장을 맡기도 했다. 평창에 단 셋뿐이자 평창읍에 하나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다.[86] 다른 2곳은 대관령면[87]에 있다. 평창읍보다 진부면의 인구가 많은데도[88] 진부면에는 사립유치원이 없고 공립 병설유치원만 있다. 1918년~1920년생이 최초의 원생이었고, 첫 졸업생들은 현재 살아 있을 경우 105~106세가 됐다. 연화유치원의 경우는 1958년~1960년생이 첫 입학생이었고, 첫 졸업생들은 현재 65~66세가 됐다.

평창군의 지리적, 기후적 특성상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고, 4월에도 눈놀이를 할 수 있으며[89], 5월까지도 외투를 입어야 할 정도이다. 실제로 평창군이 고향인 사람들은 자신이 유치원 다닐 적에는 개천절 무렵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겨울만 되면 눈이 엄청나게 와서 며칠 동안 유치원에 못 갔거나, 유치원을 관리하는 아저씨들이 눈을 치우고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 앞에 제설차들이 여러 대 다녔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 동네 유치원생들은 6월이나 8월[90]~9월에 긴팔을, 10월이나 4~5월에 패딩을 입기도 한다.[91]

지형상의 이유로[92] 강릉시, 원주시 시가지가 확장되지 못한 탓에 인구 유입이 적어서 1960년대 10만 3,528명이던 인구가 4만 1,681명으로 줄었고[93], 따라서 설립자들이 힘들여 설립한 유치원이 경영 악화로 폐원하는 악재를 겪고 싶지 않다는 심리 때문에 평창군을 기피해 사립유치원이 더 이상 못 들어온 듯하다. 이렇게 되면 늦어도 2040년대에는 평창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되고, 평창군에 거주하는 유아들 중 일부는 강릉시, 원주시 등 주변 도시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한다. 원주로 가는 경우는 주로 평창읍, 미탄면, 방림면, 대화면, 봉평면, 용평면 거주 유아들이고 강릉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진부면과 대관령면 거주 유아들이다. 2021년 연화유치원의 휴원으로 평창군이 강원도에서 4번째로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이 되어 유아들이 사립유치원에 다니려면 강릉이나 원주로 가야 한다. 게다가 단양군과 함께 KTX-이음이 다니는 지역 중 사립유치원이 없는 단 둘뿐인 군으로 전락했다.[94] 평창군의 지리적 특성상 평창읍, 미탄면, 방림면, 대화면, 봉평면, 용평면 거주 유아들은 원주로, 진부면과 대관령면 거주 유아들은 강릉으로 많이 갈 것이며 드물게 평창읍에서 영월, 제천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유치원 분포로 인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평창군 관내의 유치원들은 거의 방학에 들어갔다.[95]

성씨 분포 특성상 최씨박씨보다 더 많아서[96] 평창의 유치원에서는 최씨가 박씨보다 더 많은 곳이 많을 정도이다. 실제 통계를 보면 평창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최, 박, 정, 전, 장, 강, 조, 권씨인데 이들이 강릉과 정선으로도 넘어가 강릉과 정선의 유치원들도 최씨가 박씨보다 많은 곳이 있을 정도이다.

스노보드 선수 김호준과 미스터트롯 참가자 홍잠언[97]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9. 영월군[편집]


1925년 설립된 금성유치원이 최초이다. 월정사 산하 영월포교당에 설립된 불교계 유치원이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56년 개원한 영월유치원이며, 이 역시 경기도에 있는 어지간한 도시보다 10~20년은 빠른 수준이다. 1919년~1921년생들을 원생으로 모집했는데, 첫 졸업생들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4~105세가 됐다. 영월유치원은 1950년~1952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들이 73~74세가 됐다. 영월유치원은 영월읍 하송리 소재로, 석정여자고등학교 근처에 있다.

관내 사립유치원은 3곳밖에 없으며, 그마저도 영월읍 한 곳에만 있다. 이는 1960년대에 12만 4,659명었으나 2000년 4만 8,393명까지 줄고 2001년 5만 2,101명으로 잠깐 5만 명대를 회복했다가 2021년 3만 8,662명까지 줄어든 인구[98]와 그에 비례해서 높아진 읍내 집중도[99]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광업이 흥했던 덕에 상동읍의 인구가 많아서[100] 상동읍에도 사립유치원이 있었다. 당연히 원생의 대부분이 광부의 자녀였다. 그러나 1990년대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에 따라 인구가 줄어들면서 영월군에 있던 많은 사립유치원들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폐원되었다. 이런 이유로 상동읍과 나머지 면에 사는 아이들은 병설유치원에 다니거나 제천[101], 원주[102], 영월읍[103]의 사립유치원으로 가야 한다.

영월은 전국에서 엄씨 비중이 가장 높아서[104], 영월 출신들은 자신의 유치원 시절에 엄씨 성을 가진 원생이 여러 명 있거나, 유치원 다닐 동안 만난 담임교사가 모두 엄씨인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실제 통계에서도 영월군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엄, 정(鄭), 신, 정(丁), 유, 고씨로 나타나 있으며 한글로만 적으면 김이박최엄정신유고안이 된다.

연예인 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0년 11월 26일 영월군의 병설유치원 교사 1명이 제천 확진자와 접촉하면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10. 철원군[편집]


1925년 설립된 철원유치원이 최초이다. 철원읍 소재였으며, 6.25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어, 현재는 폐원되고 없다. 철원유치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현재 최소 80대 중반 이상의 노인들이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동송읍,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북한 강원도 철원군과 평강군에서 왔고 소수 케이스로 포천시 관인면에서 오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이들에게 과거 유치원 시절 이야기를 물으면 일본어로 답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을 정도이다.[105] 1919년~1921년생들을 원생으로 모집했는데, 첫 졸업생들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4~105세가 됐다. 또한 마지막 졸업생은 1943년생인데, 현재 80~81세이다. 평강군 출생인 실향민 중 일부는 평강군이 아닌 철원의 유치원으로 오기도 했는데, 주로 평강군 남면 정연리에 살던 사람들이 금강산선을 타고 철원읍, 김화읍의 유치원으로 갔거나, 아예 철원읍, 김화읍으로 이사한 후에 유치원에 입학했다. 철원군은 헌혈 제한 지역들 가운데 가장 먼저 유치원이 들어왔다.[106]

남북분단 이후 철원군과 김화군이 북한 치하로 들어가면서[107] 철원유치원과 김화유치원이 사립에서 국립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는데 북한에는 사립 교육기관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철원군이 시로 승격되어 인구가 최소 10만 명을 찍고 더 많은 유치원이 들어오는 것은 물론, 철원유치원이 지금도 건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되었을 경우, 철원군 철원읍[108]과 신서면[109], 동송읍은 물론 철원의 베드타운이 될 평강군 남면[110]에 사는 아이들도 철원유치원 원아모집 대상에 올랐을 수도 있다. 분단만 안 되었으면 철원군이 시로 승격되어서 낮에는 철원 시민, 밤에는 평강 군민 이런 게 가능했다

사립유치원은 4곳 있으며, 그 대부분이 동송읍과 갈말읍에 있고, 철원읍에는 공립 단설유치원인 새들유치원이 있다. 이는 6.25 전쟁으로 철원읍이 완전히 박살나 버려, 철원군의 인구가 동송읍과 갈말읍에 많이 몰려 있기 때문[111]이다. 예전의 김화군 지역에는 1925년 김화읍에 김화유치원이 들어왔으나[112] 6.25 전쟁을 거치며 폐원되었고, 현재 해당 지역에는 공립 병설유치원만 있다. (근북면은 한 술 더 떠서, 교육기관 자체가 없다. 이는 지역 특성상 인구가 매우 적고 (인구가 111명이다. 강원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인 춘천시 퇴계동 (인구 4만 6,914명)은 이 곳 인구의 406배, 2번째로 많은 원주시 단구동 (인구 4만 3,689명)은 이 곳 인구의 394배나 된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근북면 마지막 교육기관은 도창초등학교 유곡분교인데, 그나마도 1994년에 폐교되었다.) 1960년대에 6만 6,083명이던 인구가 4만 4,699명으로 줄었는데도[113] 거의 그대로다. 이는 철원군이 6.25 전쟁의 직격탄을 받고 시가지가 박살이 나 버려, 어쩔 수 없이 군청을 옮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2021년 인제군 인성유치원이 휴원하면서 철원군은 강원도 내륙 전방 라인에서 사립유치원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군이 되었다.

  • 김화군 지역: 1925년 김화유치원. 1950년 6.25 전쟁으로 원사가 소실되면서 폐원. 첫 입학생은 1919년~1921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살아 있다면 104~105세이다.

지역적 특성상 3월 말에서 4월 사이에는 일교차가 10~20도를 넘어 4월만 되면 유치원 한 반에 점퍼를 입은 원생과 입지 않은 원생이 공존하기도 한다. 또한 일교차가 크고 추워서 10월 초와 5월 상순에도 최저기온이 한 자리수를 기록해서 [114] 10월 초에 후리스(!!!), 10월 말에 패딩까지 입고 다니기도 한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가 서울과 다른 면이 있는데, 철원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윤, 조, 장, 안, 신씨라 강씨보다 신씨 성을 가진 원생이 더 많다.

역시 최전방이라는 지역 특성상, 원생의 대부분이 해당 지역 부대에서 근무하는 직업군인(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들이다. 또한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에 사는 아이들도 지리적인 이유로[115] 철원의 유치원을 다니는 경우가 있다. 철원은 지역 특성상 상근예비역 선발 확률이 서울보다 높아 유치원 동창이 같은 부대에서 상근 복무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배우 이예빈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8월 11일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 발생하였다.

11. 삼척시[편집]


1926년 설립된 중앙유치원이 최초이다. 삼척시가 아직 삼척군이었고 현재의 동해시, 태백시까지 관할하던 시절에 개원했다.[116] 삼척시 성내동 소재로, 죽서루와 가까이 있다. 한편 현재도 시골인 옛 삼척군 지역에는 1970년대 이후에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됐다.[117] 1920년~1922년생들이 삼척 중앙유치원에 첫 번째로 입학했고, 첫 졸업생들은 현재 살아 있을 경우 103~104세의 어르신이 됐을 정도이다.


사립유치원은 6곳 있는데 6곳 모두 시내에만 있다. 이는 1960년대 25만 49명이었다가 1970년대 후반 29만 8,468명까지 늘어났으나, 이제는 6만 5,243명으로 줄어든[118] 인구 때문이다.

과거 삼척군의 인구가 30만 명에 육박했던 시절에는 도계읍과 원덕읍의 인구가 많아서[119] 도계읍, 원덕읍[120]에도 사립유치원이 있었으나[121]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의 영향으로 인구가 감소했고, 이렇게 되면서 도계읍, 원덕읍 등에 있던 사립유치원이 줄줄이 폐원되는 바람에[122] 시내에만 사립유치원이 남아 있게 되었다. (심지어 노곡면[123]에는 교육기관이 없다. 이는 노곡면 마지막 교육기관인 근덕초등학교 노곡분교가 2016년에 폐교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읍이나 면 지역에 사는 유아들은 병설유치원에 다니거나 버스, 영동선 기차 등을 타고 시내 혹은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닐 수밖에 없다. 주로 도계읍, 하장면, 가곡면은 태백으로, 원덕읍, 근덕면, 미로면, 노곡면, 신기면은 삼척 시내로 넘어가는 듯.

지리적인 이유로 강릉 못지않게 폭설에 의한 휴원이 잦으며[124], 겨울에는 유치원을 관리하는 아저씨들이 유치원 주변의 눈을 치우거나, 유치원 앞에 제설차들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삼척은 심씨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아 원생과 교사 중 심씨인 경우가 많은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삼척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심, 홍, 장, 윤, 안씨일 정도이다. 그 김씨들 중 강릉 김씨[125]를 상대적으로 많이 볼 수 있다.

축구선수 이정운[126]이 삼척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2. 홍천군[편집]


1927년 설립된 홍천유치원[127]이 최초이다. 홍천읍 신장대리 소재이며, 첫 번째 졸업생이 현재 90대 후반일 정도로 전통이 깊은 유치원으로, 심지어 지금은 광역시가 된 울산보다 3년, 수원보다 2년이 빠른 것은 물론, 바로 아랫동네인 양평[128]보다 45년이나 빨리 유치원이 생겨났다. 첫 입학생들이 1921년~1923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은 현재 살아 있을 경우 102~103세로 거의 100세에 가까울 만큼 유서가 깊은 유치원이다. 그야말로 과거 해당 유치원을 다닌 어르신들 중 자신의 유치원 시절 경험을 일본어로 답하는 경우도 있고[129], 한 유치원에 3, 4대가 다니는 것이 가능한 셈. 지리적인 특성상 홍천에 있는 유치원에서는 4월10월에도 눈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130]이다. 실제로 홍천종합운동장에서 1934년에 열린 홍천유치원 제7회 졸업식 사진이 공개됐는데, 당시 졸업생들은 1927년생으로, 현재 살아 있다면 96~97세의 어르신이 됐을 정도이다. 이 곳이 100년 가까이 건재한 덕에 홍천군은 강원도의 군 중 유일하게 사립유치원이 3곳 이상인 곳이 되었다.[131]

사립유치원은 4곳 있으며, 남한 기초자치단체 중 면적으로 1위를 차지할 정도의 넓은 면적[132]에도 불구하고 4곳 모두 홍천읍에만 있다. (연봉리 1곳, 희망리 2곳, 신장대리 1곳) 이는 1960년대 13만 2,065명에서 6만 9,242명으로 줄어든[133] 인구와 동시에, 홍천군 전체 인구(6만 8,715명)의 절반이 넘는 3만 4,932명이 홍천읍에 거주하고 있고, 나머지 면의 인구가 1만 명 미만[134]이기 때문이다. 다만 홍천군은 강원도에 있는 군 지역 중에서는 인구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면 지역[135]에 사는 아이들은 병설유치원을 다니지 않는 이상 원거리 통학을 감수해야 하고, 특히 서면[136], 북방면, 두촌면[137], 화촌면은 춘천으로의, 내면은 인제[138], 남면은 경기도 양평으로의 원정 통학 건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제군홍천군은 국회의원 선거구가 다르다[139] 참고로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에는 횡성군 공근면에서, 서울양양고속도로 전 구간 개통 이후에는 인제군 기린면, 상남면에서 유치원 추첨에 떨어진 아이들도 사립유치원을 찾아 홍천으로 오기도 한다. 이 추세라면 늦어도 2050년에는 홍천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하여[140] 이 때 유치원을 다니게 될 2040년대~2050년대 출생 유아들[141]은 사립유치원을 다니려면 아예 춘천 등으로 원정 통학을 해야 할 수도 있다.[142] 다만, 공립유치원은 20개나 있다.

전방 지역답게 원생의 대부분이 해당 지역의 부대에서 근무하는 장교부사관의 자녀들이다.[143]

홍천은 전국에서 용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라, 홍천 출신들은 유치원 시절 원생이나 교사 중 용씨인 사람을 꼭 몇 명은 봤다고 할 정도이다. 어느 정도냐면, 서울에서는 유치원 10곳이 있으면 용씨 성을 가진 원생이 1명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인데, 홍천에는 용씨 인구가 많아[144] 한 반에 한 명은 꼭 용씨일 정도이다. 이는 용씨가 홍천 용씨 단본이기 때문이다. 남궁씨 역시 상대적으로 많다고 한다. 다만, 이 두 성씨 모두 상위권에는 못 드는데 홍천의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허, 장, 안, 조, 윤씨라 5위까지는 전국 순위와 같으나 6위부터 차이가 생긴다.

역도 선수 사재혁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145]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3. 고성군[편집]


1929년 고성읍에 고성유치원이 설립됐으나, 해방 후 북한으로 넘어간 뒤 수복하지 못했고[146], 현재 남한 치하에서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81년 간성초등학교, 거성초등학교, 거진초등학교, 대진초등학교[147], 오호초등학교, 천진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개설되었다. 첫 입학생들이 1923년~1925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0~101세의 어르신이 됐을 정도이다. 남북분단 이전에는 동해북부선 열차를 타고 고성유치원으로 오는 원아들이 있었는데, 대체로 현재의 현내면, 거진읍 거주자가 이러는 경우가 많았으며, 고성유치원 1회 졸업생 중에는 실향민이나 한때 실향민이었던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지리적 특성상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다. 겨울에 이 동네를 가면 유치원 앞에 제설차들이 엄청나게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

물론 일제강점기에 고성유치원 외에 장전읍에도 유치원이 설립되기는 했으나 해방 후 이 곳 역시 북한 치하로 넘어간 데다 아직도 수복하지 못했다. 거진읍의 것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며, 남한 치하에 있는 고성군 관내에 설립된 사립유치원은 토성면 용촌리 소재의 푸른하늘유치원 하나밖에 없다.[148] 이는 간성읍보다 토성면의 인구가 더 많은[149] 도시 구조 때문이며, 이런 탓에 간성읍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심한 경우는 속초로의 원정 통학도 감수할 정도이다. 지역 특성상 원생의 대부분이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들이다. 또한 지리적 이유로 이 동네 출신들은 상근예비역에 뽑히기 쉬워 상근예비역 2명이 같은 유치원 출신인 경우도 볼 수 있다.

이는 고성군의 최전방 지역이라 개발이 더뎌, 1960년대 6만 3,256명이던 인구가[150] 1970년대 6만 3,781명으로 미량이나마 늘었으나, 이후 계속 감소하여 현재는 2만 6,757명으로 줄어든 탓이 크다. 때문에 인구 1만 명 이상인 읍면도 없어서[151] 사립유치원이 들어와도 원아 모집이 어려워 설립되지 않은 것이다.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고성읍, 장전읍 등이 도시화를 진행하면서 시로 승격되어 장전읍, 고성읍, 거진읍, 간성읍 등에 사립유치원이 더 들어올 수도 있었다.

고성군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함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강원도 고성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윤, 전, 황, 장, 함씨이기 때문이다.

스키선수 정동현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4. 속초시[편집]


1939년 설립된 속초유치원이 최초이다. 현재의 속초시 동명동 소재로, 속초시가 아직 양양군 속초읍이던 시절에 개원했다. 1933년~1935년생이 첫 입학생이며, 첫 졸업생은 벌써 90~91세의 어르신이 됐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성희 목사가 원장을 맡기도 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79년 개원한 새싹유치원이다. 외지인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지역인데도 사립유치원 수는 적은 곳이다. 어느 정도냐면, 사립유치원 개수가 리조트보다 적다[152]고 말할 수 있는 동네가 바로 속초이다. 사실상 속초의 유일한 사립유치원인 새싹유치원은 속초관광수산시장 근처에 있다.

지리적 특성상 겨울에는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은 편이다.[153] 속초 시민들과 타 지역으로 이주한 속초 출신자들은 어린 시절 눈이 오면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 앞에 제설차가 여러 대 지나가는 것을 봤다는 말을 할 정도이다.

사립유치원은 3곳만 있다. 1960년대에 6만 3,078명이었던 인구가 2001년 9만 231명까지 늘었다가 2021년 8만 2,665명으로 줄었는데도 이 모양이다. 여기보다 사립유치원이 많은 들이 널리고 널렸을 정도이며 세종특별자치시도 여기와 사립유치원 개수가 같다.[154]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고성읍 시가지가 간성을 넘어 여기까지 확장되어 사립유치원이 더 들어올 수도 있었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양양군 강현면, 고성군 토성면에서 원정 오는 원아들이 있었고, 교통이 발달한 현재는 그 범위가 넓어져서 양양군과 고성군은 물론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까지 올 정도이다.[155] 향후 강원북부교도소가 개업하면 교도관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 1곳이 추가로 설립될 수도 있다.

지역적 특성상 속초의 유치원에는 함경도 실향민 후손인 원생이나 교사가 꼭 몇 명은 있을 정도이다. 주로 아바이마을 인근의 유치원에서 실향민 후손을 볼 수 있는 듯. 심지어 1970년대까지는 동북 방언(함경도 사투리)의 억양이 섞인 표준어나 아예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경우도 있을 정도.

속초에서는 원생의 성씨가 전씨인 경우를 강씨보다도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속초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장, 윤, 전, 조, 강씨이기 때문이다.

야구선수 권민석[156]양훈양현 형제[157]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5. 양양군[편집]


1953년 양양읍 성내리에 설립된 양양유치원이 최초이다. 현재는 하디어린이집으로 바뀌었는데, 1960년대 5만 390명이던 인구가 2017년 2만 7,208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2021년 2만 7,946명으로 회복해서[158] 경영이 악화된 탓이다. 사립유치원은 양양읍 서문리의 낙산유치원 하나밖에 없다. 낙산사가 관리하며, 1980년대에는 비구니희문 스님이 원장을 맡기도 했다. 면에 사는 아이들은 병설유치원을 다니거나 읍내, 혹은 아예 속초[159]강릉[160]으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1947년~1949년생들이 첫 원생이었는데, 첫 졸업생들은 현재 76~77세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다.

지리적 특성상 폭설에 의한 휴원이 잦고, 겨울에 눈이 오면 유치원을 관리하는 아저씨들[161]제설차들이 유치원 앞의 눈을 치우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양양군 최초의 유치원이었던 속초유치원은 1963년 양양군 속초읍의 속초시 승격과 함께 양양군 관할에서 제외되었다. 역시 남북분단과 6.25 전쟁만 아니었다면 고성읍 시가지가 거진, 간성, 속초를 넘어 여기까지 확장되어 사립유치원이 더 들어올 수도 있었다. 만약 속초시와 양양군이 통합됐다면 (가칭) 양양시의 인구는 11만 611명이 되고 관내 사립유치원 수는 4곳으로 늘어날 것이다. 현재 양양군에는 원생이 1명밖에 없는 유치원이 2곳이나 되는데 인구초등학교 임호분교장 병설유치원과 현성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이들이다.

원생의 대부분이 직업군인의 자녀인 양구군 정도는 아니지만, 전방 지역답게 원생들 중 장교부사관의 자녀들이 많은 편이다.

양양에서는 원생의 성이 강씨인 경우보다 전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양양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전, 윤, 장, 조, 강씨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탁씨 성을 가진 원생은 상대적으로 보기 쉬운 편.

사이클선수 김청수[162]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6. 동해시[편집]


1954년 설립된 성호유치원이 최초이다. 천곡동 소재였으며, 동해시가 아직 강릉군 묵호읍삼척군 북평읍이던 시절에 개원했다. 1948년~1950년생들이 첫 원생이었는데, 첫 졸업생은 현재 75~76세의 어르신이 됐고, 그 전에는 동해역 등에서 삼척선 기차를 타고 삼척 시내의 유치원으로 다니기도 했다.[163]

지리적 이유로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고[164], 이 지역 출신들은 어린 시절 겨울만 되면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 앞에 제설차가 여러 대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사립유치원은 9곳 있다. 1960년대 7만 8,498명이었던 동해시의 인구는 1980년대 10만 4,291명까지 늘어났으나[165], 폐광으로 인해 2021년에는 9만 593명[166]으로 줄었다. 따라서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 비율도 낮아진 것이다. 이 추세라면 10~20년 뒤 경영난으로 인해 동해시도 사립유치원 없는 시가 되어 동해에서 강릉의 사립유치원으로 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동해시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하는 [167]들 중 같은 유치원 출신인 경우가 종종 보이는 것이다.

동해시에서는 원생의 성이 강씨인 경우보다 전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동해시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홍, 장, 전, 권, 윤씨이기 때문이다.

개그우먼 김지민[168]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7. 태백시[편집]


1960년 설립된 황지교회 부설유치원이 최초로, 태백시가 삼척군 장성읍[169]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태백시 황지동에서 설립되었다. 1954년~1956년생이 첫 원생이었는데, 첫 졸업생들은 현재 69~70세가 됐다.

과거에는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과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에서 기차로 원정 통학하기도 했고[170], 광업이 매우 흥해 인구가 10만 명을 넘던 시절에는 사립유치원이 10곳을 넘었던 적도 있었다. 당연히 원생의 대부분이 광부의 자녀들이었다.[171] 그러나 1990년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인구가 감소했고, 그 영향으로 사립유치원들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폐원되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태백시가 전국 최초로 사립유치원 없는 시가 될 위험이 커지게 된다. 결국 2022년 태백시의 마지막 사립유치원이 폐원되고 나머지 사립유치원도 폐원이나 무기한 휴원에 들어가면서 태백시는 사립유치원 없는 시로 전락했고 태백시에 사는 유아들은 저 멀리 동해시로 나가야 사립유치원을 다닐 수 있게 된다.

지리적인 특성상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고[172], 4월에도 눈놀이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173] 6월9월[174]에도 긴팔을, 10월에도 패딩을 입을 정도이다. 다른 동네들이 어린이날 행사를 봄 날씨 속에서[175] 진행할 때, 태백시에서는 어린이날 행사를 눈 맞아 가면서 할 정도인데, 태백시는 어린이날에도 눈이 올 정도[176]로 해발 고도가 높기 때문. 이는 인근 정선군도 마찬가지.

태백에서는 정선군의 영향으로 원생의 성이 전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태백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권, 장, 윤, 임, 전씨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8만 6,724명이었다가 1980년대 12만 208명까지 늘어났으나, 이후 계속 줄어 2021년 4만 2,719명까지 줄어든 인구의 영향으로 현재 사립유치원은 4곳밖에 없고, 그마저도 태백시 남부의 장성동에 있는 천사유치원을 빼고는 모두 도심인 황지동 일대에 몰려 있다.

축구선수 한상운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8. 인제군[편집]


1966년 인제감리교회 부설로 에덴유치원이 설립됐으나, 현재는 폐원되고 없다. 소재지는 인제읍 상동리이며, 전성기에는 무려 북면 원통리, 용대리에서도 왔다고 한다.. 현존하는 곳으로는 1981년 부평초등학교, 상남초등학교, 서화초등학교, 용대초등학교, 원통초등학교, 월학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설립되었다. 특이하게 인제읍보다 면 지역에 먼저 설립되었다. 인제읍 최초의 유치원은 1984년에 개원한 귀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인제에서 유치원을 다닐 수 있었던 최초의 세대는 1960년~1962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이 현재 63~64세가 됐다.

사립유치원은 인제읍 상동리 (인성유치원[177])와 북면 원통리 (꿈나무유치원)에 각 1곳씩 총 2곳 있었으나 모두 휴원해서 인제군은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했다. 이는 인제군이 최전방 지역이라 개발이 더뎌, 1960년대 6만 3,715명이던 인구가 3만 1,694명까지 줄어든 것이 원인이며, 인제군의 인구 밀집 지역이 인제읍과 북면 원통리에 걸쳐 있어 이 두 면에 군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살기 때문[178]이다.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인제가 춘천, 속초 등지의 베드타운이 되면서 인구가 5만 명은 찍고 인제읍에 사립유치원 하나쯤은 더 들어올 수도 있었다. 인제군에 사립유치원이 있던 시절에는 인제군 옆 동네인 양구에는 사립유치원이 없어서 양구에 사는 유아들이 광치령을 넘어 인제읍 인성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주로 양구읍[179], 국토정중앙면[180], 동면[181]에서 이런다고 한다. 이는 현재 양구군에서 단설유치원을 가기 위해 원정 통학을 하는 유아들에게도 유효하다. 반대로 신남, 현리 등지에서는 춘천 등지로, 원통, 용대리에서는 속초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한다. 현재 인제군에 사는 유아들이 사립유치원을 다니려면 다른 지역으로 원정을 가야 하는데 기린면[182]상남면홍천군, 남면[183]춘천시, 인제읍, 북면[184], 서화면속초시로 많이 간다. 인제가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사정이 마찬가지라, 다른 지역의 대학[185]을 나와 임용고시를 치러야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고향과 인근 지역을 매일 왕복해야 할 정도이다. 이것 때문에 2021년부터 제3군단 위수지역에서 사립유치원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나, 그나마 인제군에는 하늘내린유치원이라는 단설유치원이 있다. 서화초등학교 서성분교장 병설유치원은 원생을 모두 합쳐도 1명밖에 없다.

지리적 이유로 폭설에 의한 휴원이 잦고, 인제 출신들은 자신이 유치원 다닐 적에는 겨울만 되면 제설차들이 자신의 유치원 주변의 눈을 치우고 가는 것을 보기도 했을 정도이다.[186]

지역 특성상 원생의 대부분이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들이다. 때문에 주기적으로 이사를 가서 유치원을 2곳 다니는 원생들도 있을 정도이다.

인제에서는 원생의 성이 전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인제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장, 조, 전, 윤, 강씨이기 때문이다.

연예인 김청[187]과 골프선수 이보미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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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시에 영서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유치원이다.[2]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광주광역시는 1924년, 울산광역시는 1930년에야 처음으로 유치원이 설립됐다. 인천광역시,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는 한국인 유치원만 늦게 설립되었을 뿐, 유치원 자체는 원주시보다 일찍 설립되었다.[3] 중앙선이 복선화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서울 청량리역에서 원주역으로 갈 때 3시간은 기본으로 걸렸고, 연착이라도 되면 무려 6시간이나 걸렸으나, 복선화가 된 현재는 2시간 이내로 줄었다.[4] 평창군, 영월군은 오히려 충청북도 제천이 더 가깝다.[5] 이는 도시의 확장과 관련이 깊다. 서울은 초창기에 중구 등 도심에만 있던 유치원이 강남 등지로 확대되고, 춘천도 비슷한데 춘천의 유치원은 초창기에 근화동 등지에만 설립되다가 퇴계동석사동 등지로 확대됐다.[6] 옛 원주시 인구는 10만 3,810명에서 27만 2,328명으로 늘었으나 옛 원성군 인구는 9만 6,607명에서 8만 2,048명으로 줄었다. 즉, 시내 비중은 51.8%에서 78.6%로 높아졌다. 특히 강원도 내 인구 순위 3위 이내인 읍면동 중 원주에 2곳 (2위 반곡관설동 4만 3,988명, 3위 단구동 4만 3,935명)이 있다. 나머지 1곳은 춘천시 퇴계동 (인구 4만 8,972명). 원주시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27만 2,328명, 지정면 2만 7,927명, 문막읍 1만 7,735명, 흥업면 8,678명, 소초면 8,672명, 판부면 7,243명, 호저면 3,754명, 신림면 3,599명, 부론면 2,258명, 귀래면 2,182명으로 지정면과 문막읍을 제외한 나머지 읍면 지역의 상태가 열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7] 횡성+평창+영월+정선 16만 3,685명 < 원주 35만 4,376명. 게다가 여기에 홍천군을 더해도 원주시 인구에 10만 명 넘게 모자라며, 심지어 원주는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선거구가 자체적으로 갑/을로 나뉘는 지역이다.[8] 수원보다도 무려 12년이나 빠르다. 대부분의 인구 30만 이상인 시들이 과거 한적한 농촌이었다가 급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원주가 가장 빠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이북으로 넘어가 버린 개성과 같은 시기에 유치원이 설립됐다.[9] 원씨 자체는 수도권에 많이 살지만 (인구 12만 9,522명 중 7만 6,748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가면 원주가 가장 많은데, 전국의 원씨 인구 12만 9,522명 중 4,942명이 원주에 살고 있다. 아마 원씨의 대종이 원주 원씨이고, 횡성 등지에 살던 원씨들이 원주로 오거나 서울에서 원주로 이사 오는 원씨 인구가 많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10] 장미란은 1983년 10월 9일생(40세)이므로 1987년에 유치원 입학 대상이 됐다. 장미란의 또래인 1983년생은 1987~1989년 (단, 1•2월생은 1986~1988년)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차종기호가 1자리 수이고 용도기호가 70개 (자가용: 가~마, 거~퍼, 고~호, 구~후, 그~흐 60종, 영업용: 바~하 9종, 렌터카: 허 1종)나 되는 자동차들과 1988 서울 올림픽을 유치원생 시기에 봤던 셈. 레슬링선수 김현우는 역도선수 장미란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 태어난 것이며, 장미란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은 한국의 올림픽 메달 대부분이 권투나 레슬링 등 격투기에서 나오고 춘천에 고속도로가 다니지 않던 시절이었다. 장미란의 동생 장미령, 장유성이 그녀와 같은 유치원을 다녔는지는 불명.[11] 서원면, 공근면, 우천면, 갑천면, 청일면, 둔내면, 안흥면, 강림면.[12] 횡성군은 원주를 주 생활권으로 하고 있고, 한때 원성군·횡성군 선거구 (원성군은 현재의 원주시 읍면 지역)가 획정되기도 했다.[13] 과거 홍천군 남면이었던 상창봉리가 공근면으로 넘어갔다. 공근면 초원리는 오히려 횡성읍과 더 가까워 화성유치원이나 성모유치원으로 많이 간다.[14] 당시에는 서울인천경기도에 속했다.[15] 무려 12위이다.[16] 어느 정도냐면, 옛날에는 개천절에 첫눈이 내리고, 어린이날에도 눈이 와서 어린이날 행사를 눈 맞아 가면서 했을 정도이다. 그 덕에 웰리힐리파크가 횡성에 개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17] 그만큼 횡성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의 상태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횡성군의 읍면별 인구는 횡성읍 2만 755명, 둔내면 5,889명, 우천면 4,517명, 공근면 3,509명, 안흥면 3,077명, 청일면 2,429명, 갑천면 2,408명, 서원면 2,140명, 강림면 1,748명으로 횡성읍에 전체 인구의 45%가 몰려 있다. 심지어 둔내면은 KTX 둔내역이 있는데도 인구가 1만 명을 못 넘고 있으며, 안흥면은 민족사관고등학교 덕분에 인구 대비 청소년 인구 비율이 높다. 다만, 1966년에는 안흥면이 2만 1,231명을 기록하며 횡성읍보다 인구가 많았으나 안흥읍으로 승격하지 못하면서 그대로 몰락했다.[18] 이예지는 1999년 7월 3일생(24세)이라 2002~200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99년생들은 유치원에 입학하자마자 2002 한일 월드컵을 겪고, 2004년에는 놀토도 겪었다고 한다. 1999년생들이 유치원을 다닐 적에는 1920년대 초반 출생자들이 더 많이 살아 있었고 횡성군에는 아직 철도가 없었다. 그야말로 대전에 지하철이 없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닌 셈. 그 시절이면 전한길이 수능 강사로 이름을 떨치던 시절이었다.[19] 현존하는 화천유치원 (공립 단설)과는 다른 곳이다. 이 쪽은 화천읍 아리 소재.[20] 동시에 영서 북부 최초의 유치원이기도 하다.[21] 이 때 철원군, 양구군, 속초시 등이 같이 넘어갔다가 수복됐다. 그야말로 한때 설악산이 북한에 있는 산이었던 셈. 이런 이유로 화천이 고향인 1920년대~1930년대 출생인 어르신들은 어린 시절에 화천이 북한 치하인 바람에 크리스마스에도 쉬지 못하고 학교를 다녔다는 증언을 남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철원, 양구, 속초 등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간 다른 지역 출신도 마찬가지)[22] 화천읍 8,427명, 사내면 6,503명. 3위 상서면은 4,314명, 4위 하남면은 2,901명, 꼴찌 간동면은 2,712명이다. 한마디로 사내면이 아직 춘천 관할이었다면 화천군은 인구 1만 8,354명으로 영양군과 비슷해진다.[23] 양구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고 (1995년까지는 있었으나 1996년 폐원), 가평군 방면으로 가려면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철원군의 경우는 사립유치원이 없는 옛 김화군 권역이 화천에 접하고 있으며, 때문에 화천에서 사립유치원 원정 통학을 하는 유아들은 거의 춘천으로 간다. 현재 화천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춘천시 신동의 미래숲유치원으로 화천읍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24] 화천군에는 대학이 없다. 그래서 화천군에서 대학을 진학하려면 고향을 떠나야 하고,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면 방통대나 사이버대학을 진학해야 한다.[25] 그만큼 화천군이 지역 경제를 군인들에게 많이 의존하고, 생활 환경이 많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특히 다목리, 사창리, 산양리 등지에서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면 군인들로만 좌석을 채울 정도.) 화천군의 읍면별 인구는 화천읍 8,427명, 사내면 6,503명, 상서면 4,314명, 하남면 2,901명, 간동면 2,712명으로 전체 군 인구의 34.3%가 화천읍에 거주하고 있다.[26] 1호는 홍성군 홍북읍, 2호는 안동시 풍천면.[27] 과거에는 무려 10월 초중순에 눈이 내리기도 했다.[28] 덤으로 철도와 고속도로가 모두 지나지 않는 동네들 중에서도 빨리 들어왔다. 다만, 화천군은 철도가 들어올 계획이 있어 춘천속초선 개통 이후로는 이 타이틀이 제주시로 넘어간다. 자치구 단위로 범위를 넓히면 부산광역시 중구 (이 쪽은 1897년 첫 유치원 설립)이지만, 시와 군 단위로 한정하면 화천군이 가장 먼저다. 참고로 이들 지역 중 유치원이 가장 먼저 들어온 시는 전라남도 목포시, 인구 30만 명 이상인 지역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29] 서울시청에서 화천 사창리까지 약 67km, 화천군청까지는 약 88km. 화천 기준으로는 서울 강일동까지 75km, 잠실까지는 85km, 온수동까지는 104km이다. 참고로 서울에서 화천까지는 자가용으로 약 2시간 정도, 시외버스를 타면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30] 이대훈은 1992년 2월 5일생(32세)이므로 유치원은 1994~1997년 사이에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에 입학하자마자 1994년 폭염을 겪고, 유치원 시기에 Windows 95 발매와 캐리비안베이 개장, IMF 금융위기를 겪은 셈.[31] 이 동네는 보통 개천절 전후에 첫눈이 내리고, 빠르면 9월 중하순에도 눈이 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겨울이라고 인식하는 12~2월에는 눈이 많이 올 때 성인의 무릎~허리 높이까지 눈이 쌓이기도 하고, 늦게는 어린이날에도 눈이 와서 어린이날 행사를 눈 맞아 가면서 할 정도이다.[32] 사북읍의 경우는 한때 인구가 5만 명을 넘어 사북시 승격을 고려할 정도였다.[33] 당연히 원생의 대부분이 광부의 자녀였다.[34] 정선군에는 고속도로가 없고, 그나마 태백선, 정선선 철도가 있기는 하지만 단선이라 교행으로 시간을 다 잡아먹는다. 게다가 주변이 모두 산지라 시가지 연담화가 다소 곤란한 측면도 있다.[35] 이 때 정선읍은 2만 986명, 신동읍은 2만 4,191명, 사북읍은 4만 6,903명으로 사북읍이 1위, 신동읍이 2위, 정선읍이 3위였다.[36] 2001년 처음으로 군 인구가 5만 명 아래로 떨어진 뒤 2002년 5만 1,000명대까지 회복했으나, 2003년 재차 인구 5만 명 선이 붕괴됐다. 그만큼 면 지역들의 상태가 열악하다. 정선군의 읍면별 인구는 정선읍 1만 735명, 사북읍 4,822명, 고한읍 4,724명, 신동읍 3,532명, 임계면 3,530명, 남면 3,282명, 북평면 2,540명, 여량면 2,029명, 화암면 1,676명으로 정선읍만 1만 명을 넘고, 사북읍은 전성기의 10분의 1 수준으로 인구가 줄어들었다.[37] 아마 정선 전씨의 영향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냐면 정선에서 가장 많은 성씨가 ‘김이박최정’이 아니라 ‘김이최박전’일 정도.[38] 강릉역이 있는 동네.[39] 강릉은 눈이 많이 오면 30cm는 쌓이는데, 저 정도면 성인의 무릎 높이까지 쌓인 셈이다.[40] 주로 대관령면.[41] 주로 임계면.[42] 묵호읍 제외 시 16만 9,111명. 1970년부터 1980년까지 묵호읍을 뺀 나머지 명주군 인구는 9만 8,973명, 9만 3,886명, 8만 6,545명까지 줄어 실질적으로 현재의 강릉시 영역만으로 계산하면 인구가 5만 명 정도 늘어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43] 특히 옛 명주군 지역은 인구가 15만 3,623명 (묵호읍 제외 시 10만 3,669명)에서 4만 4,370명까지 줄었다.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6만 5,442명에서 16만 8,951명으로 늘어나서, 시내 집중도가 29.9%에서 79%로 높아졌다. 강릉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16만 8,951명 (옛 강릉읍 9만 6,450명, 옛 성덕면 (강남동, 내곡동, 성덕동) 6만 3,580명, 옛 경포면 (경포동) 8,921명), 주문진읍 1만 6,208명, 연곡면 6,596명, 사천면 4,547명, 강동면 4,310명, 구정면 4,130명, 옥계면 3,553명, 성산면 3,436명, 왕산면 1,590명으로 면 지역이 인구 1만 명을 못 넘고 있다. 만약 묵호읍이 분리되지 않았다면 강릉시의 인구는 23만 4,067명이 됐을 것이다.[44] 청송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 이유는 당연히 적은 인구+인구 감소. 청송유치원은 인천에도 2곳 있다.[45] 비교적 최근까지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는 교통편은 버스의 압도적 우세였으나 (버스 2시간 30분, 기차 6시간) 강릉선 KTX 개통으로 청량리~강릉 소요 시간이 6시간에서 1시간 44분으로 줄면서 철도가 버스와 필적할 정도가 되었다. 초창기에는 KTX-산천을 굴렸으나 현재는 KTX-이음을 굴린다.[46] 전국 함씨 인구가 8만 659명인데 그 중 2,092명이 강릉에 살고 있었다. 이는 함씨의 가장 큰 본관이 강릉 함씨이기 때문.[47] 강릉에서 상위 3개 성씨는 '김이최'다.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최박정권전홍장강) 그나마도 그 최씨들 대부분이 강릉 최씨다.[48] 최한빛은 1987년 6월 16일생(36세)이므로 1991~1993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시절에 매우 시원한 여름을 겪고 번호판에 차~파, 처~퍼, 초~포, 추~후, 그~흐가 적혀 있는 차량을 봤던 셈이다. 엄밀히 말하면 최한빛은 성인이 된 이후에 법적으로 여자가 되고 개명까지 완료했으므로 유치원은 남성으로 다녔으며, 그 시절 사용하던 이름은 '최한진'이었다. 게다가 그 시절이면 일본은 월드컵에도 못 나가던 시절이었고 9급 공무원 시험 과목에 행정학, 행정법이 없었고 9급 공무원 시험은 '고졸들이나 치는 시험'이라며 무시받던 시절이었다. 최한빛과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사람은 김현수 (1988년 1월 12일생), 최다은 (1988년 1월 25일생), 손고운 (1987년 8월 14일생), 류현진 (1987년 3월 25일생) 등이 있다.[49] 소재지는 소양동이나 조운동, 근화동 일대로 추정.[50]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小花) 데레사에서 딴 이름이다.[51] 주로 가평읍에서 이렇게 했는데, 가평군의 형태를 보면 답이 나온다. 청평면, 설악면은 남양주시와 가깝고, 상면•조종면•북면은 도로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평군의 천주교 성당들이 서울대교구도, 의정부교구도 아닌 춘천교구 소속이다.[52] 철원군에서는 오히려 경기도 포천시의정부시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많다. 홍천군은 주로 서면, 북방면에 거주하는 유아들이, 인제군은 남면이나 상남면에 거주하는 유아들이, 화천군은 아예 군 자체에 사립유치원이 없어 군 전체, 주로 화천읍, 간동면 거주 유아들이 원정 통학을 하고, 양구군의 경우는 아예 군 자체에 사립유치원이 없어 군 전체, 특히 양구읍, 국토정중앙면 등 비교적 춘천으로 가기 쉬운 지역에서 춘천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유아들이 많은 편이다.[53] 때문에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강촌역, 김유정역 근방에 살던 유아들이 경춘선 기차를 타고 시내에 있는 유치원으로 갔다고 한다. 지금도 시내의 유치원들은 신동면, 동내면, 동면, 서면, 신북읍 등 주변 읍면은 물론 화천군 간동면으로도 통학버스를 운영해 이들 지역에서 사립유치원을 다니는 원생을 태우고 있다.[54] 46번 국도에서 가깝다. 양구군에서 군복무를 한 남자들이나 그들을 면회하려는 면회객, 버스를 타고 양구에 여행을 가는 관광객들이라면 한 번쯤 지나가 봤을 지역이다.[55] 이 때문에 당시에는 근화동에서 명동 닭갈비골목으로 가려면 남춘천역 쪽으로 돌아서 가야 했다.[56] 과거 102보충대대가 있던 곳이고, 동시에 배후령터널의 남쪽 입구가 있다.[57] 2009년 면내 마지막 정규 교육기관인 가정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 그나마 있는 가정중학교도 대안학교이다.[58] 이 동네는 춘천에서 급성장을 이룬 동네인데, 1980년에 5,546명이던 인구가 2019년 1만 9,844명까지 늘어났다.[59] 서면, 북산면, 남산면, 동산면, 신동면, 사북면. 북산면과 사북면을 (이 둘은 오히려 화천이 더 가깝다.) 제외하면 모두 시내에 붙어 있다.[60] 심지어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수도권 전철이 다니고, 일반 철도 공익이 아닌 지하철 공익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춘천이다. 강원도에서 철도가 있는 곳이 춘천, 철원, 횡성, 평창, 영월, 정선, 원주, 강릉, 동해, 삼척, 태백 정도이니(...).[61] 2018년 군내 마지막 사립유치원 폐원.[62] 1996년 군내 마지막 사립유치원 폐원.[63] 2021년 인성유치원 휴원.[64]춘천시 인구는 10만 33명에서 22만 2,059명으로 늘었으나 춘성군 인구는 9만 1,690명에서 5만 5,704명까지 줄었다가 다시 6만 706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52.2%에서 78%로 높아졌다. 춘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22만 2,059명, 동면 1만 9,670명, 동내면 1만 7,313명, 신북읍 7,694명, 서면 3,874명, 남산면 3,506명, 신동면 2,575명, 사북면 2,551명, 동산면 1,478명, 남면 1,086명, 북산면 959명인데, 인구 1만 명 미만인 읍면이 8곳이나 되는 데다 (심지어 ITX-청춘필수 정차역인 강촌역이 있고, 사격선수 진종오의 고향인 남산면도 그렇다.) 북산면은 춘천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1,000명을 넘지 못하며 인구가 가장 많은 퇴계동 (4만 9,431명)의 46분의 1 수준이다. 참고로 강원도에는 춘천 퇴계동보다 인구가 적은 시군이 11곳 (태백, 횡성, 평창, 영월, 정선,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양양)이나 있다.[65] 춘천시, 철원군,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 홍천군.[66] 실제로 철원, 화천, 앙구, 인제, 홍천 5개 군을 모두 합친 인구는 19만 2,519명, 춘천의 인구는 28만 1,759명으로, 춘천이 홍천, 철원, 화천, 양구, 인제를 합친 인구보다 8만 9,240명 더 많다. 즉, 철원+화천+양구+인제+홍천 < 춘천 공식이 성립한다는 뜻이며, 이들 군에서 춘천의 사립유치원으로 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다만, 철원과 인제는 제외한다.[67] 남궁씨 자체도 여타 대부분의 성씨들과 마찬가지로 수도권에 많이 살지만 (전국 남궁씨 인구가 2만 1,308명인데 그 중 1만 4,136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가면 춘천의 남궁씨 인구가 629명으로 1위이다. 아마 홍천에 살던 남궁씨들이 춘천으로 넘어갔거나, 수도권에 살던 남궁씨들이 춘천으로 귀농이나 이사를 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68] 손흥민은 1992년 7월 8일생(31세)이므로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다. 이는 대부분의 1992년생들이 1995년에 3세가 되는데, 유치원 입학 자격은 3세부터 부여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Windows 95, Windows NT 4.0, Windows 98이 발매될 당시 유치원생이었으며, 유치원 때 IMF 금융위기도 겪었다. 손흥민과 함께 대표팀에서 뛰는 축구선수 황인범, 나상호, 이동경은 손흥민이 유치원생이었을 때 태어났다. 형 손흥윤과 같은 유치원을 다녔는지는 불명.[69] 진종오는 1979년 9월 24일생(44세)이므로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다. 이는 1979년생들이 대부분 1983년에 4세가 되는데, 당시 교육법에 따르면 4세부터 유치원에 입학이 가능했기 때문. (현행 교육법은 3세.) 1979년생들은 유치원 시절 국기하강식을 경험했다. 남산면 방곡리 (강촌역이 있는 곳이다.) 출생이고 춘천 시내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정황상 병설유치원을 다녔거나, 춘천 시내로 이사를 가서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70] 다만, 남한으로 넘어간 동네 중 현재는 인제군 남면 관할이 된 상수내리, 하수내리가 당시에는 양구군이었고, 반대로 현재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관할인 두무리가 인제군 관할이었다.[71] 수입면 대부분과 동면 일부분은 제외.[72] 이들의 나이는 30~33세이다.[73] 심지어 양구에서 4월에 10cm가 넘는 눈이 내리기도 했다.[74] 1991년 당시 춘천에서 양구를 가려면 3시간, 서울에서는 5시간이 소요됐으나 오죽하면 옛날 102보충대대에 입대한 사람들은 ‘신교대로 갈 때 배를 안 타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라는 말을 들었을까? 21세기 들어 속속들이 터널이 개통되면서 서울 기준 5시간이던 소요시간이 추곡터널 개통 이후 3~4시간대로 줄고, 수인터널과 웅진터널 개통 이후 2시간대로, 배후령터널 등 여러 터널이 완공된 2021년에는 춘천까지 45분, 서울까지 1시간 50분이 소요된다.[75] 심지어 1읍 4면 중 유일한 읍인 양구읍 혼자만 인구가 1만 명을 넘는다. 양구군의 읍면별 인구는 양구읍 1만 4,214명, 국토정중앙면 3,381명, 동면 2,024명, 방산면 1,346명, 해안면 1,313명으로 양구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 특히 해안면은 과거 양구읍에서 자동차를 타고도 1시간 40분이나 걸릴 정도로 오지였다. 서울에서는 6~7시간, 부산에서는 평소에도 12시간 가까이 걸릴 때도 있었을 정도.[76] 2021년 인성유치원 휴원.[77] 2018년 명성유치원 폐원.[78] 현재 양구군에는 공립유치원만 9곳이 있다. 그나마 인구 순위에서 바로 아래인 장수군, 영양군 덕분에 사립유치원 없는 군 인구 순위에서 최하위를 면하고 있다.[79] 양구에 사는 유아를 둔 부모들은 주로 거주하는 읍•면의 병설유치원을 보내거나, 춘천이나 인제의 사립유치원을 보내는데, 춘천 방면으로는 (양구→춘천 방면으로) 공리터널, 웅진2터널, 웅진1터널, 웅진터널, 수인터널, 추곡터널, 배후령터널 등 총 7개의 터널을 지나야 하고 (이 과정에서 춘천시 북산면 추곡리와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를 경유하게 된다.), 인제 방면은 광치령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원정 통학에 따른 통학 시간이 늘어난다. 또한 양구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옆 동네 인제군 인제읍에 있었으나, 그마저도 휴원하는 바람에 단설유치원은 화천군 화천읍의 화천유치원, 사립유치원은 춘천시 신동의 미래숲유치원으로 넘어갔다.[80] 양구에는 대학이 없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대학도 춘천에 있다. 양구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거의 춘천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나마 있는 수도권 대학 졸업자는 거의 양구가 고향인 경우이다.) 근무지를 양구로 발령받았다.[81] 대체로 상리, 하리, 정림리, 송청리. 중리는 면적이 아주 좁고, 수인리, 웅진리, 공리, 학조리, 안대리, 이리는 인구가 매우 적으며 고대리, 동수리, 월명리 등은 읍내로 불리는 곳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82] 강원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도촌리 산48번지.[83] 서울에서 양구읍 수인리까지 97.9km밖에 안 된다. 시외버스를 타면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2시간이면 닿는다. 물론 현재는 화천군이 더 가깝다.[84] 심지어 양구군 초대 군수의 성씨가 염씨일 정도. 파주 염씨는 양구군 동면 등지에 집성촌이 있다.[85] 현재 봉은사에서 주지스님을 맡고 있는 원명스님이 1977년 탄허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은사스님은 능혜스님, 구족계는 1979년 고암스님을 계사로 수지) 탄허스님은 평창읍 연화유치원이 설립된 후 19년이 지난 1983년에 입적했다.[86] 그래서 평창군은 스키장 개수와 사립유치원 개수가 서로 같은 유일한 지방자치단체가 되었다.[87] 알펜시아 리조트용평리조트가 있는 동네이다.[88] 평창읍 8,618명, 진부면 8,953명. 3위 대관령면은 5,964명이다. 사실 이건 옛날에도 그랬는데, 1970년 당시 평창읍의 인구가 1만 8,771명일 때 진부면은 2만 471명을 찍었다. 그래 놓고 진부면은 진부읍으로 승격도 못 했다 물론 사립유치원은 진부면 송정리에 있다가 2010년대 폐원된 연꽃유치원이 마지막.[89] 이 동네는 보통 추석 즈음 첫 얼음이 얼고, 개천절 즈음 첫눈이 내린다. 이런 이유로 빼빼로 데이 근방에 휘닉스 평창용평리조트 스키장이 개장하고, 가끔씩 어린이날에도 눈이 내려 어린이날 행사를 눈 맞아 가면서 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겨울로 인식되는 12~2월에는 눈이 미터 단위로 쌓이는 건 일상일 정도. 이런 기후조건 덕분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90] 평창군 대관령에서는 8월 말부터 긴팔을 입는 경우가 많다.[91] 2010년 6월 1일 평창군 대관령에서 영하권의 기온이 관측되었다.[92] 평창군과 강릉시 사이에는 대관령이 있고, 평창군과 원주시 사이에는 횡성군이 있다.[93] 현재 평창군의 읍면별 인구는 진부면 8,772명, 평창읍 8,572명, 대관령면 6,003명, 봉평면 5,731명, 대화면 5,316명, 용평면 3,098명, 방림면 2,528명, 미탄면 1,661명으로 전부 인구 1만 명 미만이다. 그나마 미탄면, 용평면, 방림면 3곳을 빼면 인구가 5,000명을 넘어가기는 한다.[94] 다만, 사립유치원 없는 군들 중 KTX가 가장 먼저 다닌 곳은 평창군이다. 함평군은 KTX가 지나기는 하지만 정차역은 없다.[95] 반대로 1988 서울 올림픽 당시에는 서울의 유치원이 올림픽 기간 동안 (9월 17일~10월 2일) 단축수업을 했는데 서울은 사립유치원이 많았기 때문에 올림픽 기간에는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의견이 오갔을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올림픽을 다시 개최한다면 올림픽 기간에는 올림픽 개최지에 있는 유치원이 단축수업을 할 가능성이 높다.[96] 최씨 2,896명, 박씨 2,818명. 그나마 그 최씨들 대부분이 강릉 최씨이다.[97] 홍잠언은 2011년 6월 3일생(12세)이라 2014~201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2011년생은 유치원 시절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Windows XP 지원 종료, 인천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 메르스 대유행을 겪은 셈. 평창군의 사립유치원이 평창읍에만 있어서 (옛날에는 진부면, 대관령면에도 있었으나 모두 폐원) 정황상 병설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홍잠언이 유치원을 다닐 시절에는 저가 항공사가 활성화되어 유치원생 중 해외여행을 경험한 비율이 1990년보다 10배 이상 높아졌고 동시에 이들이 다녀온 여행지 또한 다양해졌다. 또한 KTX를 타 본 유치원생도 많이 늘었다. 이들은 유치원 시절 원내 컴퓨터가 윈도우 XP에서 윈도우 7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 중에는 KTX, ITX-청춘, ITX-새마을, 새마을호, 무궁화호, 누리로는 알아도 통일호비둘기호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참고로 홍잠언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는 9급 공무원 시험에 사회, 수학, 과학이 있었다.[98] 2002년 5만 명 선이 붕괴됐고, 16년 만인 2018년 영월군 인구 4만 명 선이 붕괴됐다. 그만큼 영월읍을 제외한 나머지 읍면의 상태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영월군의 읍면별 인구는 영월읍 2만 1,098명, 주천면 3,784명, 한반도면 3,010명, 남면 2,261명, 북면 2,181명, 무릉도원면 2,026명, 김삿갓면 1,736명, 산솔면 1,472명, 상동읍 1,094명으로 영월읍을 뺀 나머지는 인구가 5,000명도 넘지 못하며, 상동읍은 춘천시 퇴계동 (4만 6,914명)의 41분의 1 수준밖에 안 될 정도로 인구가 적다. 심지어 군 전체 인구도 춘천 퇴계동보다 적다.[99] 영월읍의 인구는 1960년대의 2만 5,932명에서 2021년 2만 1,098명으로 감소했으나 읍내 집중도는 20.8%에서 54.7%로 높아졌다.[100] 한때 인구가 4만 명을 넘어 시 승격까지 고려될 정도였으나 이제는 1,094명으로 줄어서 산솔면 (인구 1,472명)과 김삿갓면 (1,757명)에도 밀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 일본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시인 우타시나이시(歌志内市)도 인구는 2020년 기준 3,019명으로 상동읍보다 3배 정도 많다.[101] 영월군 주민들은 TOEIC 응시 등 많은 일을 제천에서 해결한다. 또한 남면이나 한반도면 등지에 사는 아이들이 제천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한다. 반대로 제천 시민들은 영월로 놀러 가는 경우가 많고, 영월의 유치원 교사 중 일부는 제천에서 출퇴근을 하기도 한다.[102] 영월군 주민들은 제천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보러 갈 때 원주로 간다. 무릉도원면, 주천면에 사는 아이들은 원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한다.[103] 주로 상동읍, 북면, 김삿갓면, 산솔면에 사는 아이들이 읍내로 원정 통학을 한다.[104] 제주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들은 상위 5개 성씨가 ‘김이박최정’일 때, 영월은 ‘김이박최엄’일 정도. 이는 엄씨가 영월 엄씨 단본이기 때문이다.[105] 현재 노인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일본어 교육 때문에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경우가 있다. (간이학교를 나왔더라도) 일제의 강압적인 일본어 교육 때문에 한글 사용이 금지돼 한글을 읽고 쓸 줄 모르지만 일본어는 읽고 쓸 수 있는, 또는 숫자를 일본어로 세거나 구구단을 일본어로 외우는 할머니도 있을 정도. 심지어 학교 동창 중 일본인이 있기도 한다.[106] 국내에 있는 헌혈 제한 지역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경기도 파주시연천군, 강원도 철원군이다. 이들 지역에 유치원이 들어온 연도는 철원이 1925년, 강화가 1926년, 연천이 1965년, 파주가 1966년이다. 당연히 서울에서 이들 지역을 잇는 편도 교통비는 10,000원 이내인 경우가 많다.[107] 이 때문에 윤세영 (동송읍 오지리)과 황을수 (출생지 불명)는 한때 실항민이었다.[108] 시로 승격될 경우 철원시 동 지역.[109] 현재는 경기도 연천군으로 편입됨.[110] 현재는 정연리가 갈말읍으로 넘어갔고, 나머지 지역은 북한에 남아 있다. 물론 북한 특성상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절대 사립유치원이 못 들어온다. 이는 평양이 한반도에서 사립유치원 없는 도시들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111] 동송읍 1만 5,642명, 갈말읍 1만 2,224명, 철원읍 5,499명. 철원읍은 서면 (5,874명)에도 밀리며, 여기보다 인구가 적은 곳이 김화읍 (3,728명), 근남면 (2,255명), 근북면 (111명) 3곳뿐이다. (근동면, 원남면, 원동면, 임남면에는 주민이 없다.) 또한 동송읍은 동송면 시절에 인구 2만 1,013명을 찍기도 했다.[112] 첫 원생은 1919년~1921년생이다.[113] 그만큼 철원에는 군인들만 넘쳐나는 셈이다. 철원군의 읍면별 인구는 동송읍 1만 5,483명, 갈말읍 1만 2,054명, 서면 5,797명, 철원읍 5,414명, 김화읍 3,571명, 근남면 2,271명, 근북면 109명이며 근동면, 원남면, 원동면, 임남면에는 거주 인구가 없다. 통합 이전 인구대로 조립해 보면 옛 철원군 지역의 인구는 3만 2,951명, 김화군 지역의 인구는 1만 1,748명이다. 이런 인구 규모 차이를 감안하면 사립유치원들이 예전의 철원군에 설립될 수밖에 없다.[114] 이 동네는 할로윈에 눈이 올 정도로 춥다. 크리스마스에는 당연히 영하 10도는 기본이고 추울 때는 영하 20~30도까지 떨어진다.[115] 이 동네에서는 포천보다 철원이 더 가깝다.[116] 동해시, 태백시도 지역 내 첫 유치원이 개원했을 때는 강원도 삼척군 북평읍, 장성읍이었다.[117] 때문에 삼척시 출신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1970년 3월 22일생)는 어린 시절 유치원에 다니지 못했다.[118] 북평읍과 장성읍을 뺀 나머지인 현재 삼척시 지역만으로 계산하면, 1960년대 당시 인구는 13만 4,781명이었다.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3만 5,117명에서 3만 9,590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14%(북평읍과 장성읍을 제외하면 26.1%)에서 60%로 높아졌다. 현재 삼척시의 인구는 홍천군보다도 적다. 그만큼 시내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이 매우 열악한데, 삼척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3만 9,590명, 도계읍 1만 44명, 근덕면 5,209명, 원덕읍 5,080명, 미로면 1,862명, 하장면 1,338명, 노곡면 725명, 가곡면 702명, 신기면 673명으로 인구가 1,000명도 안 되는 면이 이 곳에만 3개나 있고, 시내 인구도 춘천시 퇴계동보다 6,380명 더 적다. 만약 동해시와 태백시가 분리되지 않고 그대로 삼척에 남았다면 삼척시의 인구가 17만 8,812명이 됐고 원주, 춘천, 강릉에 이은 강원도 4대 도시가 됐을 것이다. 이는 심지어 포천시보다 많은 수치다.[119] 1975년 당시 도계읍은 4만 2,660명, 원덕읍은 2만 2,026명이었다. 당시 강원도 전체 인구는 186만 2,107명으로 지금의 수원시, 울산광역시, 광주광역시, 대전광역시, 충청북도보다도 많았다.[120] 현지인들은 주로 ‘임원’이나 ‘호산’이라고 부른다. 포항이나 경주에서 하이원리조트로 갈 때는 한 번씩 들르는 동네.[121] 당연히 원생의 대부분이 광부의 자녀였다.[122] 이런 줄폐원 사태는 삼척과 같이 탄광으로 먹고살던 동네인 태백시, 영월군, 정선군에서도 발생했다. 태백시는 시 전체, 영월군은 상동읍, 정선군은 사북읍, 고한읍, 신동읍에서 발생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유치원들도 1980년대보다 학급 수가 줄었고 심지어 태백시는 사립유치원 없는 시로 전락했다.[123] 파주시 진동면과 함께 유치원 입학 대상인 유아가 0명인 단 둘뿐인 지역이다. 연천군 중면은 3명, 노곡면 바로 아래의 가곡면은 4명이다.[124] 심지어 삼척에는 4월에도 눈이 내리는 곳이 있다. 당연히 이런 동네는 일반적으로 겨울이라고 인식하는 12~2월에는 성인의 허리까지 눈이 쌓이기도 한다.[125] 현재 생존 중인 강릉 김씨가 지지법 항렬을 쓰기 때문에 김씨 중 이름에 진(振)○, ○기(起), 남(南)○이 있다면 대부분 강릉 김씨다.[126] 이정운은 1980년 5월 5일생(43세)이므로 1984~198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127] 어째서인지 인터넷에는 1910년 5월 5일 개원으로 나와 있다. 이런 경우,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특별자치도 등 17개 시도 중 절반 이상이 홍천보다 유치원이 늦게 설립된 것이 된다.[128] 양평에서 44번 국도를 타면 홍천군 남면 (통칭 양덕원), 단월까지 44번 국도를 타다가 단월에서 70번 지방도로 갈아타면 홍천군 서면 (통칭 모곡, 비발디파크)이 나온다. 이 도로들은 여름에는 오션월드, 겨울에는 비발디 파크 스키장으로 향하는 차들로 막히지만, 정작 이들 도로 연선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별로 없다. 참고로 비발디파크와 가장 가까운 유치원은 반곡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129] 현재 80대 이상인 어르신들은 간이학교에서조차 일본어가 주당 수업 시수의 30%를 넘을 정도로 매우 강압적인 일본어 교육의 영향으로 일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냐면, 어르신들이 대화할 때 영어 외래어를 일본식 발음으로 말하거나 일본어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 쓰는 것은 기본에 (예: 팬티 -> 빤스, 젓가락 -> 와리바시, 양파 -> 다마네기) 에또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정도.[130] 강원도 산간 지역은 개천절에도 눈이 오는 경우가 있다. 정확히는 대략 개천절 근방에 첫눈이 오고 한글날, 크리스마스, 신정, 설날, 삼일절, 식목일을 거쳐 어린이날 무렵까지 눈이 오는 것이며, 더 옛날에는 추석에도 눈이 왔을 정도.[131]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 평창군은 사립유치원이 아예 없고, 철원군, 고성군, 양양군, 정선군은 1곳, 횡성군, 영월군은 2곳만 있다. 북한으로 넘어가 버린 평강군, 김화군, 이천군, 회양군, 통천군까지 합치면 강원도의 16개 군 중 사립유치원 없는 군은 8곳이 된다. 애초에 북한 자체가 사립유치원을 허가하지 않기 때문.[132] 1,820.14㎢. 북한까지 합치면 광복 전 무산군이 1위이다.[133] 그 와중에 홍천읍의 인구는 1960년대 2만 3,473명에서 2021년 3만 4,754명으로 도리어 늘어나, 17.7%였던 읍내 집중도가 50.7%로 늘었다. 1960년대에는 삼척군이 25만 49명, 홍천군이 13만 2,065명으로 삼척의 인구가 11만 7,984명 더 많았으나 삼척의 인구 감소 속도가 홍천보다 더 빨라서 2019년에는 삼척시가 6만 6,478명, 홍천군이 6만 8,715명으로 홍천의 인구가 1,669명 더 많아졌다. 강원도의 군 지역 중에서는 인구 수가 1위인데, 2위인 횡성보다 2만 명이 더 많다. 홍천군의 읍면별 인구는 홍천읍 3만 4,754명, 남면 6,184명, 화촌면 4,656명, 영귀미면 3,972명, 북방면 3,887명, 서면 3,829명, 서석면 3,753명, 내면 3,217명, 두촌면 2,420명, 내촌면 2,392명으로 이런 인구 특징 때문에 단설유치원은 모두 홍천읍에만 있다.[134] 남면 6,184명, 화촌면 4,656명, 영귀미면 3,972명, 북방면 3,887명, 서면 3,829명, 서석면 3,753명, 내면 3,217명, 두촌면 2,420명, 내촌면 2,392명. 특히 홍천군 서면의 경우는 비발디 파크라는 대규모 리조트 (부속 시설로 오션월드와 스키월드가 있다.)를 가지고 있음에도 인구가 3,829명으로 비중이 미미하며, 홍천군의 읍면 중 인구 순위가 6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천군 서면은 서울과 가장 가까운 비수도권 지역이다. 특히 서울 강동구 강일동과 홍천군 서면은 직선거리로 33km, 천호동과는 약 38km, 잠실동과는 약 42km, 서울 시내와는 약 50km이다.) 때문에 면 지역에는 사립유치원이 설립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홍천에 사는 사회복무요원들도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할 정도이며, 여름에 오션월드를 갈 것이 아닌 이상 주말만 되면 춘천으로 놀러 가는 것이다.[135] 서면, 남면, 영귀미면, 북방면, 화촌면, 두촌면, 내촌면, 서석면, 내면.[136] 외지인들은 비발디 파크 (오션월드, 스키월드)가 있는 곳으로만 알고 있다.[137] 철정리가 가장 유명한 동네이다.[138] 홍천군 내면 자체도 과거 인제군의 영역이었다.[139] 홍천군홍천군·횡성군·영월군·평창군 선거구로, 인제군속초시·인제군·고성군·양양군 선거구로 편성돼 있다. 참고로 2016년 총선 때는 홍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으로 홍천과 인제가 같은 선거구였다.[140] 뭐 2050년쯤이면 전국에 사립유치원 있는 군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141] 단, 2040년~2043년생은 2050년대에 유치원을 다니지 않으며 (2050년대에도 2043년생을 유치원에서 드물게 볼 수 있지만 2050년 한정이다.), 2044년~2049년생들은 2040년대와 2050년대 모두, 2050년~2056년생들은 2050년대에, 2057년~2059년생은 2060년대에 유치원생이 된다. 이 시기가 되면 부모나 조부모가 다니던 유치원에 다니는 원아가 늘어나게 된다.[142] 지금도 홍천군 북방면에서는 홍천읍이나 춘천으로 원정 통학을 많이 한다.[143] 전방 지역에 있는 유치원들은 원생들 대체로 직업군인의 자녀들이다. (특히 양구에 있는 유치원들은 한 반에 직업군인 자녀가 아닌 경우를 손에 꼽을 정도) 반대로 김포, 고양 등은 전방 지역임에도 인구 증가로 직업군인 자녀가 아닌 유치원생들이 많아졌다.[144] 심지어 홍천에서 용씨는 22위이다. 홍천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허, 장, 안, 조, 윤일 정도.[145] 사재혁은 1985년 1월 29일생(39세)이라 1988~199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1988 서울 올림픽롯데월드 어드벤처 개장을 유치원 때 경험한 셈. 다만, 같은 1985년생이지만 유치원 때 사재혁보다 키가 40cm 이상 더 컸던 농구선수 하승진에 비해서는 유치원을 일찍 다녔다고 한다.[146] 때문에 남한 주민들은 ‘고성’이라고 하면 경상남도 고성군을 먼저 떠올리고, 강원도 고성군은 ‘간성’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도로 표지판에도 고성(간성)이라고 적혀 있을 정도.[147] 남한 최북단 공립유치원이다. 참고로 명파분교는 최북단에 있는 초등학교이지만, 유치원은 없다.[148] 이 곳은 남한 최북단 사립유치원이기도 하다. 한국 최동단은 경상북도 울릉군의 도동유치원 (울릉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최서단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의 진촌유치원 (백령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최남단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의 예원유치원 (가파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최북단은 강원도 고성군의 푸른하늘유치원 (대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참고로 고성군 토성면의 푸른하늘유치원은 무려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보다 위도가 높다.[149] 간성읍 6,981명, 토성면 7,341명으로 토성면에 54명 더 많이 산다. 이건 옛날에도 그래서 1970년 당시 거진읍은 2만 739명, 토성면은 1만 5,893명, 간성읍은 9,928명이었다.[150] 심지어 속초시보다도 많았다. 지금은 그 속초시조차 고성군의 3배는 넘는다.[151] 토성면 7,341명, 간성읍 6,981명, 거진읍 6,251명, 죽왕면 3,777명, 현내면 2,407명. 수동면에는 민간인이 거주하지 않는다.[152] 실제 속초에서 사립유치원은 단 3곳인데 리조트는 그보다 몇 배는 넘는다. 가장 유명한 리조트로 한화리조트롯데리조트가 속초에 있다.[153] 이 동네는 눈이 많이 오면 최소 30cm는 온다고 한다.[154] 다만, 세종특별자치시에 사립유치원이 적은 이유는 인구 감소 때문이 아니라, 세종시 주민들이 사립보다는 공립유치원을 원하고, 지역에서도 공교육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기에는 영어학원 유치부 (일명 영어유치원)도 없다.[155] 고성, 양양, 인제는 속초와 국회의원 선거구가 같다.[156] 권민석은 1999년 2월 20일생(25세)이라 2001~200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99년생들은 2002~2005년에 유치원을 많이 다니지만 권민석이 2월생이라 1998년생과 같이 유치원을 다녔으므로 이들은 대학교에 아직 1970년대생 학생이 남아 있고 (2002년 1979년생 여학생이 졸업해서 1970년대생 여대생은 보기 드물어지고 남자는 1976, 77, 78, 79년생이 남아 있다.), Windows XP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때 유치원을 다녔고, 유치원 시절 말미인 2004년에 공휴일이 주말과 많이 겹쳐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은 일요일, 제헌절과 크리스마스는 토요일.) 실제 등원일수는 1997년생들보다 더 많있다.[157] 양훈은 1986년 5월 29일생(37세)이라 1990~1992년에, 양현은 1992년 8월 23일생(31세)이라 1995~199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양훈과 양현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는 플로피 디스크가 주요 저장 매체였고 유치원생들이 토요일에도 등원하던 시절이었다. 1992년생들은 유치원 시절 유치원 컴퓨터가 Windows 95에서 Windows 98로 바꾸는 것을 보기도 했다.[158] 반대급부로 양양읍 집중도는 높아졌다. 양양읍 인구는 1970년대 1만 741명에서 2019년 1만 1,995명으로 늘었고, 비중 역시 22.7%에서 43.4%로 높아졌다. 양양군의 읍면별 인구는 양양읍 1만 2,549명, 강현면 4,569명, 현남면 3,054명, 서면 2,877명, 현북면 2,561명, 손양면 2,336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1만 명은커녕 5,000명도 못 넘고 있다.[159] 속초시 자체도 과거 양양군 속초읍이었다.[160] 1945~1953년에 양양군 현북면, 현남면, 서면이 잠시 강릉군 관할이었고, 지금도 현북면과 현남면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강릉으로 넘어가서 쇼핑 등을 해결한다.[161]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므로 유치원에서 힘을 써야 하는 일들은 대부분 유치원을 관리하는 아저씨들이 맡는다.[162] 김청수는 1998년 10월 9일생(25세)이므로 2001~200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생일이 한글날이지만, 그의 유치원 시절에는 한글날이 공휴일이 아니었다. 1997~1999년생들은 유치원 시절 원내 컴퓨터가 윈도우 98 SE에서 윈도우 XP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163] 동해시의 모체가 삼척이었다. 그 흔적이 북평선, 북평중학교 북평고등학교, 북평여자고등학교 등에 남아 있고, 50대 이상은 '북평여자중학교' (현 예람중학교), '북평역' (현 동해역) 등의 표현도 사용한다.[164] 이 동네는 12~2월에는 성인의 허리 높이까지 눈이 쌓일 정도로 눈이 많이 오고, 과거에는 4월에도 눈이 내린 적이 있었다.[165] 북평선이 이 시기에 생겼다. 그리고 이 때면 강원도 인구가 180만 명에 육박했던 시절이다.[166] 옛 명주군 묵호읍 지역 (부곡동, 발한동, 동호동, 묵호동, 망상동) 2만 746명, 옛 삼척군 북평읍 지역 (천곡동, 송정동, 북삼동, 북평동, 삼화동) 6만 9,847명.[167]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병사’나 ‘사병’ 대신 그냥 ‘병’으로 호칭한다.[168] 김지민은 1984년 11월 30일생(39세)이므로 1988~1990년에 유치원을 다녔다. 김지민의 유치원 시절에는 동해시 인구가 10만 명을 넘었고, 유치원 2년차에 롯데월드 어드벤처의 개장을 경험했다. 그 시절이면 대학입시에 음악, 미술, 체육도 있던 시절이었고 서울에서는 올림픽도 열렸다.[169] 전라남도 장성군의 장성읍은 長城邑, 강원도 삼척군의 장성읍은 長省邑으로 한자가 달랐다. 이 명칭도 읍 승격과 함께 바뀐 것으로,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이 동네는 ‘상장면’(上長面)이었다.[170] 봉화군 석포면과 태백시는 영동선으로,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는 태백선으로 연결돼 있다.[171] 이는 과거 탄광으로 흥했던 영월군, 정선군, 삼척시도 동일했다. 여기서는 한때 ‘개도 입에 10000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172] 이건 강원도 영동 지방에서는 거의 일상이다. 이 곳 주민들과 서울 등지에 나가서 사는 영동 지방 출신들의 말을 들어 보면 하나같이 자신이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는 겨울에 눈이 왔다 하면 미터 단위로 쌓여서 휴원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173] 과거 태백시에서는 거의 개천절부터 스승의 날까지 눈이 왔었다고 한다. 실제 태백시 출신인 어르신들의 증언을 빌면,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는 10월부터 5월까지 눈이 왔는데 10월에 무릎을 덮을 정도로 쌓인 눈이 11월에는 허리나 가슴을 덮을 정도까지 오고, 12월부터 2월까지는 사람 키보다 더 많은 눈이 쌓여 오도가도 못한 것이 다반사였으며, 3월에 가슴, 4월에는 허리, 5월에는 정강이를 덮을 정도로 눈이 왔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태백에서도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10월부터 5월까지 눈 때문에 등교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자 결국 중퇴하는 일이 속출했을 정도이다. 다만, 서울에서도 드물지만 4월에 눈이 오는 경우가 있다.[174] 이 동네는 8월 말부터 긴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175] 유일한 예외가 있는데 바로 대구이다. 대구에서는 4월 말부터 여름이라 어린이날이 여름이다.[176] 늦게는 어버이날을 지나 스승의 날까지 간다.[177] 양구군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이다. 이 곳의 원생들은 거의 인제군 인제읍에 살지만 드물게 양구군에서 넘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주로 양구읍이나 국토정중앙면에서 이런다고 한다.[178] 인제읍 1만 355명, 북면 8,223명으로 인제군 인구의 56.8% (인제읍 29.8%, 북면 27%)가 이 두 면에 거주한다. 3위 기린면은 5,051명, 4위 남면은 3,956명, 5위 서화면은 2,576명, 꼴찌 상남면은 1,533명으로 2011년 인제읍의 인구 1만 명 선이 무너진 이후 2020년까지 인구 1만 명 이상인 읍면이 단 하나도 없었다가 2021년 인제읍이 1만 명을 회복했다.[179] 양구군 인구의 대부분이 몰린 상리, 중리, 하리, 정림리에서 이러는 경우가 많다.[180] 두무리, 용하리 등지에서 많이 이런다. 심지어 두무리는 1973년까지 인제군 관할이었다.[181] 거의 임당리, 팔랑리에서 이런다.[182] 보통 ‘현리’라고 부른다. 인제양양터널이 기린면에서 시작해서 양양군 서면에서 끝난다.[183] 남면보다는 신남이라고 많이 불린다.[184] 현지인, 외지인 모두 북면보다는 원통이라고 많이 부른다.[185] 인제군에는 대학이 없다.[186] 이 동네에서 복무하는 군인들은 크리스마스를 그저 눈 치우는 날로 여길 정도로 겨울만 되면 눈이 엄청나게 온다. 크리스마스는 넉가래와 함께[187] 김청은 1962년 6월 1일생(61세)생이라 1966~196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 시절 유치원을 다녔다는 것은 그녀가 매우 부유한 집안 출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김청은 예명, 본명인 안청희는 1996년 이후 사용한 본명이므로 유치원은 예전 이름인 '김청희'라는 이름으로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