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지역별 현황/충청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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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전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충청남도[편집]



1.1. 공주시[편집]


1912년 설립된 공주유치원이 최초로, 충청도 최초의 유치원이기도 하다. 공주시가 아직 공주군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공주 시내에서 설립되었고, 공주시 인구의 8배나 되는 청주보다 17년, 6배나 되는 천안보다는 10년 빨리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경기도의 그 어느 도시도 공주보다 유치원이 빨리 들어온 곳은 없는 셈. 공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06년~190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17~118세이다. 당시 공주는 충청남도의 도청 소재지였다. 원생들은 현재의 공주시 봉황동, 반죽동, 중학동, 금학동에 살았다고 한다.

현재 공주유치원은 폐원되고 없다. 공주시에 현존하는 유치원들 중에서 오래된 곳은, 1946년 천주교 대전교구 중동성당 부설로 설립된 근화유치원이다. 경상북도 경주시에도 같은 이름의 유치원이 있는데, 역시 1946년에 설립되었으며 가톨릭계이다. (경주 근화유치원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에서 설립, 운영.) 1940년~1942년생이 첫 원생이었는데, 첫 졸업생이 벌써 83~84세가 됐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반면, 아직도 시골인 옛 공주군 지역에는 1980년대에야 제대로 된 유치원이 설립됐다.

  • 공주군 지역: 1981년 탄천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공주군 공주읍이 시로 승격되기 전에 설립됐다.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사립유치원은 7곳 있는데, 정안면 화봉리의 한국영상대학교 부설유치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시내에만 있다. 1960년대 20만 2,635명이었던 인구가 2021년 10만 4,545명으로 줄었는데도[1] 유치원 수는 오히려 늘었다. 심지어 세종특별자치시, 청양군, 부여군에서 사립유치원을 찾아 넘어오는 경우도 있다. 청양군과 부여군이야 농촌 지역이라서 사립유치원을 찾아 공주로 오지만, 세종시는 시내에 공립유치원밖에 없어서 넘어오는 것.

공주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오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공주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오, 윤, 조, 임, 강씨이기 때문이다.

개그우먼 오나미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2]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2. 대전광역시[편집]


1913년 설립된 대전유치원이 최초이다. 대전광역시가 대전시도 아니고 충청남도 대전군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대전시 동구에 설립되었으며, 일본인 전용이었다. 한국인을 위한 유치원은 1929년의 대덕유치원이 최초이다. 대전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한국인 원생들은 1923년~192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0~101세이다. 일본인의 경우는 1907년~1909년생이 최초. 나이는 현재 생존해 있다면 116~117세의 초고령자이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대전광역시 동구 원동, 인동, 중동, 정동과 중구 은행동에서 살았다고 한다.

1923년생부터 1982년생까지는 유치원생 시기에 대전이 충청남도 소속이었으나, 1983년, 1984년생은 유치원 재학 도중에 대전이 충청남도에서 분리됐으며 1985년생부터는 유치원 입학 이전에 대전이 충청남도에서 분리됐다.

해방 전 대전의 유치원은 시가지가 형성된 동구를 중심으로 설립됐다. 당시 대전군 대전면→대전읍은 동구 원동, 인동, 중동, 정동과 중구 은행동이었기 때문.

그러다가 1935년 대전군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되고[3]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점차 외곽 지역에도 유치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생겨난 유치원들은 다음과 같다.


대전시 확장 이후에도 오랫동안 시골로 남아 있었던 지역들은 1970년대 대규모 개발 이후에야 겨우 유치원이 생겨났다.


대전은 청주, 천안과 함께 충청도에서는 해외로 이민 등을 간 사람이 주소지로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 동네 중 하나이다.

대전 역시 시가지 팽창에 따라 기존에 동구, 중구 등 도심에 있던 유치원들이 다른 구로 이전하기도 했다. 또한 공군교육사령부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으로 이전한 이후 둔산동, 갈마동, 탄방동에 사립유치원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유성구[4]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세종특별자치시[5], 계룡시, 옥천군 등지에서 기차를 타고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고, 교통이 발달한 현재는 더 멀리 있는 논산시, 금산군, 보은군[6], 영동군[7], 공주시, 무주군에서의 원정 통학도 늘었다.

서구 갈마동에 있는 경성유치원은 루빈 카잔에서 뛰고 있는 축구선수 황인범[8]이 졸업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외 대전에서 유치원을 다닌 유명인으로는 유튜버 강혜진[9]과 배우 한다감[10], 수학강사 주예지[11], 펜싱선수 오상욱[12]이 있다.

사립유치원은 충남충북을 통틀어 가장 많은 172곳 있다. 중구 29곳, 동구 24곳, 서구 57곳, 대덕구 22곳, 유성구 40곳으로 갑천, 유등천의 서쪽에 97곳, 동쪽에 75곳으로 서부 지역에 사립유치원이 더 많았다. 1960년대 43만 1,540명이던 인구가 2021년 146만 3,882명으로 늘면서[13] 유치원 수가 늘었다.

대전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송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대전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강, 송, 조, 윤, 오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충청남도 곳곳에 흩어져 살던 송씨들이 대전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4일 대전 서구의 한 유치원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7월 7일부터 10일까지 서구 모든 유치원이 원격수업에 들어갔다. 2021년 2월 12일 대전 중구의 한 유치원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같은 해 5월 17일과 7월 15일, 9월 23일에도 유치원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1.3. 홍성군[편집]


1920년 설립된 홍성유치원이 최초이다. 홍성읍 오관리 소재로, 홍성보다 인구가 6배 이상 많은 천안제주도는 물론, 경기도에 있는 도시들에 비해서 빨랐다고 한다. 충청남도 서부 지역 최초의 유치원이었으나, 현재 홍성유치원은 폐원되고 없다. 2018년 2월 14일에 17명의 원아를 졸업생으로 마지막 졸업식을 치렀다.[14] 과거에는 보령에 살던 아이들이 장항선 열차를 타고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으나, 보령군 대천읍이 대천시로 승격된 이후에는 원정 통학 건수가 감소했다.[15] 홍성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4년~191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9~110세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광천유치원으로, 1962년 광천읍 신진리에 설립됐다. 이 쪽은 1956년~1958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이 67~68세가 됐다.

1960년대 15만 2,362명이던 인구가 계속 줄어 2010년 8만 8,000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2021년 10만 102명으로 회복해 현재 인구가 10만 명을 넘는데도[16] 사립유치원은 4곳밖에 없다. 그나마도 광천읍에 있는 광천유치원 하나를 뺀 나머지는 전부 홍성읍에 있으며, 충남도청이 위치하고 있는 홍북읍에는 사립유치원이 없고 공립 병설유치원만 있다. 도청소재지 중 사립유치원이 없는 지역은 이 곳과 경북도청이 있는 안동시 풍천면뿐이다.

홍성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장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홍성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장, 조, 강, 한, 윤씨이기 때문이다.

가수 차준호와 연예인 유병재[17]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4. 논산시[편집]


1921년 설립된 황금정유치원이 최초로, 논산시가 아직 논산군이던 시절[18] 지금의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개원했다. 논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5년~191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8~109세이다.

특이하게 논산 시내보다 강경읍에 먼저 유치원이 설립되었는데, 이는 과거 논산 시내보다 강경읍이 더 발전되었기 때문이다.[19] 논산 시내 최초의 유치원은 1931년 설립된 논산유치원이다. 이것은 논산보다 인구가 많은 도시인 포항시, 구미시, 경주시 등보다 20년 이상 빠른 것이었다. 첫 원생은 1925년~1927년생으로 첫 졸업생이 살아 있다면 98~99세의 어르신이 됐다. 원생들은 대체로 논산 시내에 거주하지만 드물게 은진면 등지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현재 사립유치원은 논산 시내에 3곳, 연무읍[20]에 1곳 있다. (여기보다 사립유치원이 많은 군이 전국적으로 7곳이나 된다.) 연무읍의 동산유치원은 수도권에서 육군훈련소로 가는 관문인 연무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다. 그래서 동산유치원 졸업생들이 육군훈련소에 입대를 하면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 후배가 자신이 훈련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한다. 교통 덕분에 부여군에서 원정을 오는 아이들도 있고, 연산면 등 대전에 가까운 동네에서는 아예 대전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1960년대 25만 9,540명이던 인구가 2021년 11만 6,675명으로 줄면서[21] 유치원 수가 줄었다.

논산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윤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논산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윤, 강, 조, 임, 서씨이기 때문이다.

개그우먼 박은영[22]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5. 천안시[편집]


1922년 천안감리교회 부설로 설립된 천안유치원이 최초로, 천안시가 아직 천안군이었던 시절 지금의 동남구 사직동에 설립되었다. 해방 전 천안의 유치원들은 동남구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인 천주교 대전교구 오룡동 성당 부설 복자유치원도 동남구 오룡동에 있다. 오랫동안 시골로 남아 있었던 서북구에는 1981년에야 겨우 유치원이 들어왔고 199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사립유치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16년~1918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는데, 첫 졸업생들은 대다수가 사망했거나, 살아 있더라도 107~108세의 노인이 됐다.

유치원이 드물었던 과거에는 평택군[23], 안성군[24], 아산군[25], 연기군[26]에서 천안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천안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유치원 원정 통학이 가장 활발한 곳인데, 평택시, 안성시에 사는 아이들이 천안에 있는 유치원으로 오거나, 천안에 사는 아이들이 평택의 유치원으로 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주로 평택, 안성에서 가까운 성환읍이나 입장면에 사는 아이들이 이런다고 한다. 실제로 아침 시간대에 평택, 안성, 아산을 가 보면 천안의 유치원 버스들이 그 지역 유아들을 태우고 유치원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교통의 발달로 더 멀리 예산군, 공주시에서도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할 정도이다. 이런 이유로 천안은 충청남도이지만 사투리 억양이 많이 희석되어 천안에서 유치원을 다니는 원생들과 천안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거의 표준어를 구사하며, 간혹 부모의 고향이 경상도전라도, 제주도인 경우에나 사투리 혹은 그 억양이 섞인 표준어를 쓰는 정도이다.

  • 서북구: 1981년 직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충청남도 천원군이었으므로, 옛 천원군 지역 최초의 유치원도 되는 셈이다.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사립유치원은 충남에서 가장 많은 51곳 있는데,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성환읍, 직산읍, 목천읍[27], 입장면 등지에도 분산되어 있다. 수도권에서 이사 오는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면서 1960년대 20만 4,129명이던 인구가 2021년 65만 8,808명으로 늘었고[28], 이로써 사립유치원의 숫자는 60곳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전국에서 맹씨[29]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라 천안의 유치원에서는 서울보다 맹씨 성을 가진 원생이 많다고 한다. 또한 방씨[30], 복씨[31]들도 보기 쉽다. 다만 이 성씨들은 상위권에 못 드는데 천안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윤, 조, 강, 장, 한씨이며 맹씨와 복씨는 50위 밖이다.

현직 유아교사인 전직 개그우먼 장효인이 천안에서 유치원을 다녔다.[32]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6. 예산군[편집]


1927년 설립된 신명유치원이 최초로, 지금은 광역시가 된 울산시보다(!!!) 3년이나 빨리 유치원이 설립되었다.[33] 첫 번째 졸업생이 벌써 90세를 넘겼을 정도로 매우 오래된 유치원이었으나 2017년 폐원되었고[34], 현존하는 곳 중 가장 오래된 곳은 1967년 설립된 천주교 대전교구 예산성당 부설 성모유치원이다. 2곳 모두 예산읍 예산리에 있다. 예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1년~192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2~103세이다. 당시 원생들은 대체로 예산읍 예산리나 산성리에 살았고 멀리는 신례원리에서 오기도 했다.

1960년대 17만 6,202명이던 인구가 2021년 7만 8,084명으로 줄었지만[35], 사립유치원은 시골치고는 많은 7곳 있다. 예산군 역시 경상북도 칠곡군처럼, 사립유치원이 읍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여러 개의 읍면에 분산되어 있다. 사립유치원이 있는 읍면은 예산읍, 삽교읍, 봉산면, 신암면 4곳이다. 과거 아산군 (현 아산시) 선장면 등에 살던 아이가 장항선 기차를 타고 예산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거나, 덕산면 낙상리[36] 등에 살던 아이가 홍성의 유치원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

예산에서는 9위까지는 전국과 같고 10위만 신씨라 임씨보다 신씨 성을 가진 원생을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예산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강, 조, 윤, 장, 신씨이기 때문이다.

강원 FC에서 뛰고 있는 축구선수 이광연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37]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7. 청양군[편집]


1929년 청양감리교회 부설로 설립된 청양유치원이 최초였으나 무기한 휴원 중이고, 운영 중인 곳 가운데는 1980년 설립된 청남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관내에 사립유치원은 2곳 있고, 비봉면과 청양읍에 하나씩 있다. 심지어 지금은 광역시가 된 울산보다도 빨랐다. 청양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3년~192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0~101세이다.

이촌향도 현상에 따른 인구 감소로 인해 청양군에 사립유치원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했고, 이대로라면 청양군이 서천군에 이어 충청남도에서 2번째로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공주시 등 인근 도시로 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1960년대 10만 5,211명이던 인구가 2021년 3만 948명으로 줄면서[38] 사립유치원의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

청양군은 전국에서 복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아서[39] 그나마 복씨 성을 가진 원생을 보기 쉽다고 한다. 다만, 복씨는 20위에 불과한데 청양군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최, 윤, 정, 조, 강, 한, 임씨이고 바로 아래에 명씨가 자리잡고 있어 명씨 성을 가진 유치원생은 청양군에서는 희귀 성씨가 아니게 된 셈이다.

농구선수 김정은이 청양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40] 임정환 역시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41]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8. 보령시[편집]


1932년 대천제일감리교회에서 유치원을 운영했으며, 현재는 어린이집으로 용도가 변경됐다.[42]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81년 낙동초등학교, 남포초등학교, 대창초등학교, 송학초등학교, 웅천초등학교, 주산초등학교, 천북초등학교, 청룡초등학교, 청보초등학교, 청소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개설되었다. 참고로 보령시가 아직 보령군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보령시 대천동에서 개원했다. 보령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6년~192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97~98세이다.

  • 보령군 지역: 1981년 낙동초등학교, 남포초등학교, 송학초등학교, 웅천초등학교, 주산초등학교, 천북초등학교, 청룡초등학교, 청보초등학교, 청소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보령군 대천읍이 시로 승격하기 전에 설립됐다.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시 주제에 사립유치원은 어지간한 군 수준인 4곳밖에 없고, 그마저도 모두 시내(구 대천시)에 몰려 있다. 보령시보다 사립유치원이 더 많은 군들이 널렸을 정도다. 보령시보다 사립유치원이 많은 군은 달성군, 울주군, 기장군, 칠곡군, 예산군, 함안군, 창녕군 등이다. 수도권에는 없고 (연천 2곳, 가평 3곳, 양평 3곳) 모두 지방이다. 과거에는 여주군이 보령보다 사립유치원이 많은 유일한 수도권 군이었으나, 시로 승격되면서 빠졌다.

1960년대 15만 338명이던 인구가 2021년 10만 229명으로 줄면서[43],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보령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신, 오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보령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신, 조, 강, 한, 오씨이기 때문이다.

오버워치 프로게이머였던 스트리머 김준혁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44]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9. 서산시[편집]


1937년 서산제일교회 부설 유치원이 설립됐으나, 1차 폐원 이후 1985년에 재건됐다. 현재 폐원 없이 영업한 곳 중에서는 1947년 천주교 대전교구 산하 서산동문동성당이 설립한 천사유치원이 최초이다. 세 번째로 1972년 설립된 서령유치원은 천사유치원에 이어 세 번째로 개원했으나, 서령유치원은 원생수 감소로 인해 2020년 폐원되어 천사유치원이 서산시에서 가장 오래된 유치원 타이틀을 지켜내고 있다. 참고로 세 곳 모두 서산시가 아직 서산군이고 태안군까지 관할하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서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31년~193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92~93세이다. 천사유치원의 경우는 1941년~1943년생이 첫 원생이었고, 첫 졸업생은 82~83세가 됐다. 서령유치원의 경우는 1966년~1968년생이 첫 원생이었고, 첫 졸업생은 57~58세가 됐다. 당시 원생들은 현재의 서산시 동문동, 읍내동, 온석동, 석림동, 석남동, 예천동에 살았다고 한다. 아직도 시골인 지역이 있는 옛 서산군 지역에는 1981년에야 겨우 유치원이 들어왔다.

  • 서산군 지역: 1981년 성연초등학교[45], 언암초등학교, 운산초등학교, 운신초등학교, 음암초등학교, 인지초등학교, 해미초등학교에 개원한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사립유치원은 2022년 현재 휴원중인 유치원을 포함해 10곳이 있으며 이중 6곳은 서산 시내, 나머지 4곳은 각각 대산읍, 인지면, 지곡면, 성연면에 산재해있다. 군인 비율이 가장 높은 해미면은 공군기지가 있음에도 사립유치원이 없지만 공군 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1960년대 27만 3,581명이던 인구가 태안군 분리 등의 이유로 2021년 17만 5,591명으로 줄었는데도[46] 유치원은 늘었다.

서산시의 성씨 분포 특성상 서산의 유치원에는 가씨 성을 가진 원생이 서울보다는 많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서울에서는 10개 유치원에서 가씨 성을 가진 원생이 없거나 많아야 한둘인데, 서산에서는 유치원 한 반에 가씨 성을 가진 원생이 한두 명은 있을 정도이다. 또한 가씨 성을 가진 담임교사를 만나기도 쉽다. 다만, 가씨는 상위권이 아닌 중상위권 정도인데 서산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조, 유, 한, 장, 강씨이다.

공군기지가 있는 지역적 특성상 공군 장교나 부사관 자녀들도 많다고 한다.

코미디언 김기리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47]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10. 서천군[편집]


1952년 설립된 장항유치원이 최초이다. 현존하는 유치원 기준으로는 바로 윗동네 보령시보다 29년 일찍 설립되었다. 서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6년~194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7~78세이다.

특이하게 서천읍보다 장항읍에 유치원이 먼저 설립되었는데, 이는 바로 아랫동네인 전라북도 군산시의 영향으로 서천읍보다 장항읍에 시가지가 먼저 형성된 도시 구조[48] 때문이다. 서천읍 최초의 유치원은 1985년 설립된 서천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사립유치원은 서천읍과 장항읍에 각 1곳씩 총 2곳 있다. 그나마도 장항유치원은 2017년에 폐원됐고[49], 서해유치원은 무기한 휴원 상태에 있는데, 1960년대 16만 1,159명이던 인구가 2020년 5만 1,866명으로 감소[50]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서천군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다른 지역의 사립유치원을 다니는데, 군산시 등 주변 도시로 넘어가서 유치원을 다니는 유아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또한 서천군에 고향인 유아교사도 상태는 비슷해서,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51]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고향을 떠나거나 군산시 등 주변 도시에서 취업하고 고향과 그 도시를 매일 왔다갔다 해야 한다. 이 곳은 사립유치원 없는 군 중 인구가 가장 많다. 이런 군들 중 인구가 가장 적은 군은 당연히 영양군.

서천군은 충청도 중에서는 눈이 제법 오는 편이라 폭설에 의한 휴원이 강원도 수준으로 잦은 편이다.

서천군은 전국에서 구씨[52] 인구가 가장 많아 서천의 유치원에서는 원생 중 丘씨 성을 가진 경우를 보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실제 통계로도 서천군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최, 신, 나, 조, 정, 구, 윤씨이며 강씨는 10위권 밖에 머물러 있다.

BJ 김보겸이 서천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11. 금산군[편집]


1953년 금산읍 중도리에 설립된 백합유치원이 최초로, 금산군이 전라북도 소속이었던 시절에 천주교 전주교구[53] 금산성당 부설로 설립되었다. 금산군보다 인구가 최소 8배는 많은 구미용인에 비해서 10년 이상, 경기도의 어지간한 도시들에 비해서는 30년 가량 빨랐다고 한다. 첫 원생은 1947년~1949년생으로, 첫 졸업생이 칠순을 넘겨 76~77세일 정도로 유서가 깊다. 1947년~1956년생들은 전라북도 금산군 소속일 때 유치원에 입학해서 졸업까지 했고, 1957년, 1958년생들은 전라북도 금산군 소속일 때 입학해서 충청남도 금산군 소속일 때 졸업했으며, 1959년생부터는 충청남도 금산군 소속일 때 입학했다. 때문에 금산군의 유치원생들의 말에 전라도 사투리 억양이 섞인 경우가 있다. 당시 원생들은 금산읍 중도리, 상리, 아인리, 하옥리에 살았다고 한다.

백합유치원은 금산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기도 하며, 금산읍 중도리에 있다. 대전시와는 산으로 가로막혀 시가지가 확장되지 못한 탓에, 1960년대 12만 4,994명이던 인구가 2020년 5만 1,413명까지 줄면서[54] 사립유치원이 경영 악화를 감수하고 들어서지 않아, 백합유치원이 금산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 된 것이다.[55] 또한 이 곳은 무주군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이다.[56]

금산군은 남한에서 그나마 길씨 성이 많은[57] 동네라, 다른 지역에 비해 길씨 성을 가진 원생과 교사가 많다. 금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사람들은 자신이 유치원 다닐 때 적어도 한 번은 길씨 성을 가진 선생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는 실제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금산군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길, 전, 강, 양, 한씨이다.

펜싱선수 신아람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58]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12. 당진시[편집]


1956년 당진군 당진읍 읍내리[59]천주교 대전교구 당진성당 부설로 설립된 소화(小花)유치원[60]이 최초이다. 당진시가 아직 당진군이었던 시절에 설립되었으며, 당진시에 6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다. 당진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0년~195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3~74세이다.

송산면 금암리와 신평면 금천리에 1곳씩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내에 몰려 있다. 즉 합덕읍과 송악읍에는 공립 병설유치원만 있다. 송악읍이 송산면, 신평면보다 인구가 많다[61]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다. 1960년대 18만 5,453명이던 인구가 계속 줄어 2003년 11만 6,477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2021년 16만 6,249명으로 회복[62]했는데도 사립유치원 수는 거의 그대로이다. 송악읍에서는 사립유치원을 보내기 위해 아예 서해대교를 건너서 평택으로 가는 경우가 있고, 합덕읍에서는 아산 등지로 많이 간다.

당진은 전국에서 인씨[63], 호씨[64] 인구가 가장 많아서 당진의 유치원에서는 인씨, 호씨 성을 가진 원생을 보기 쉽다. 다만, 인씨와 호씨는 상위권 밖인데 당진시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조, 한, 강, 윤, 장씨라 한씨가 10대 성씨에 당당히 올렸다.[65]

BJ 춤추는 곰돌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66]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13. 아산시[편집]


1956년 룻소유치원이 설립됐으나 현재는 폐원됐고, 현존하는 것 중에는 1980년 설립된 온양제일유치원이 최초로, 아산시가 아직 아산군이던 시절 지금의 아산시 권곡동에 개원했다. 천안시의 위성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늦게 유치원이 들어왔다. 아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0년~195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3~74세이다. 온양제일유치원의 경우는 1974년~1976년생이 첫 원생, 첫 졸업생은 현재 49~50세이다. 아산시 편입 이후로도 배방읍, 탕정면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도 시골로 남은 옛 아산군 지역에는 25년 후 유치원이 들어왔다.


온양제일유치원이 설립되기 이전에는 아산시에 살던 아이들이 장항선 열차를 타고 천안에 있는 유치원에 다니기도 했는데, 주로 배방읍 장재리, 세교리, 휴대리에 살았던 아이들이 이렇게 했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이들 동네를 가면 천안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으며 둔포면에서는 평택의 유치원 버스도 볼 수 있다.

사립유치원은 24곳 있다. 시내 외에 배방읍, 신창면, 음봉면 등 읍면 지역에도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17만 1,858명이던 인구가 2021년 31만 6,129명으로 늘면서[67] 유치원 수가 늘었다.

아산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오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아산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강, 윤, 조, 장, 오씨이기 때문이다.

배우 음문석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68]

2021년 3월 27일 아산시의 유치원생 5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5월 31일에도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1.14. 세종특별자치시[편집]


1970년 조치원장로교회 부설 성화유치원이 설립됐다. 현재 해당 유치원의 상태는 불명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79년 천주교 대전교구 조치원 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모유치원이다. (조치원읍 소재) 둘 다 세종시가 아직 충청남도 연기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1964년~1966년생들을 첫 원생으로 받았는데, 첫 졸업생들은 현재 59~60세의 아저씨, 아주머니가 됐다. 이 때문에 세종특별자치시는 전국의 광역자치단체들 중 가장 늦게 유치원이 들어온 지역이 됐다.[69]

성화유치원이 설립되기 이전, 조치원 등 세종시 남부에 사는 아이들은 조치원역이나 서창역, 내판역, 부강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전에 있는 유치원에 다녔다. 전의면, 전동면, 소정면에 사는 아이들은 소정리역, 전의역, 전동역에서 기차 타고 천안에 있는 유치원으로 다니기도 했다. 청주로 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특이하게 시내보다 조치원읍에 먼저 유치원이 들어왔는데 이는 조치원읍이 일제 강점기부터 개발이 시작돼 일찌감치 읍으로 승격한 데 비해[70] 세종 시내는 201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종 시내에 처음으로 들어온 유치원은 2012년에 설립된 한솔유치원이다. 그러니까 전한길, 이하영, 이지영, 최태성, 이다지, 고아름 등이 EBSi를 거쳐 가고[71] Windows XP가 한참 전성기를 달리고 Windows 7이 출시될 때까지도 세종 시내에 살던 아이들은 유치원 교육의 혜택을 받기 어려웠던 셈이며, 이들 유치원은 설립 직후부터 몇 년 간 원내 컴퓨터가 윈도우 7을 쓰다가 윈도우 7이 지원 종료가 되는 2020년 1월 14일에 윈도우 10으로 바꾸었던 것[72]이다. 첫 입학생은 2006년~2009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17~18세이다. 즉, 이들은 '하', '호'가 달린 렌터카와 '배' 번호판이 달린 차량을 유치원 졸업 직전에 봤고, 이들 유치원의 원생들 대다수가 KTX는 알고 있거나 실제로 타 봤지만 통일호, 비둘기호를 모르며 해당 유치원의 1회 졸업생들이 현재 중학생 (정확히는 중학교 2학년)이 된 셈이다. 세종시의 동 이름 자체가 순우리말 이름이 많다 보니 유치원 이름에도 순우리말 이름이 많다.[73]

또한 세종시에는 사립유치원보다 공립유치원이 훨씬 많다. 시민들이 사립보다는 공립유치원을 원하고, 또한 세종시에서도 공교육을 중요시해서 공립 교육기관을 우선시하는 교육정책을 펼친 덕분이다. 관내 59개 유치원 중 사립은 단 2곳[74]이고 공립이 56곳이며, 그마저도 사립은 외곽 읍면 지역[75]에 몰려 있고 시내에는 모두 공립유치원만 있다. 세종시 동 지역[76]의 인구가 26만 5,842명으로 세종시 전체 인구의 73.6%나 되는데도 사립유치원이 없고, 세종시 자체의 인구도 1960년대 10만 8,945명이던 인구가 계속 줄어 2000년 8만 428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계속 늘어 35만 5,831명으로 늘었는데도 웬만한 농촌 지역 수준으로 사립유치원 수가 적은 것[77]은 이 때문이다. 심지어 세종특별자치시보다 사립유치원이 더 많은 군들도 있다. 전국적으로 어린이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78] 추세 속에서 홀로 어린이 인구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추가적인 유치원 설립이 기대되는 지역 중 하나이다. 물론 세종시는 연기군 시절에만 사립유치원이 설립됐을 뿐 2012년 특별자치시 승격 이후 사립유치원이 신규 설립된 적이 없다. 때문에 일부 세종시 학부모들은 자녀를 공주시 등 다른 도시의 사립유치원을 보내고[79], 만약 세종시의 사립유치원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원되면[80], 세종시는 사립유치원 없는 광역자치단체가 된다.

때문에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파문 때도 세종시는 한발 벗어났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태가 일어날 때도 세종특별자치시는 비껴갔을 정도다.

세종시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임씨 (주로 부안 임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세종시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임, 윤, 강, 조, 오씨이기 때문이다.

세종시에서 유치원을 다닌 유명인으로는 배우 인교진, 미스코리아 이보림, 유튜버 김유이가 있다.

2020년 10월 30일에는 세종시에 사는 유치원생 1명이 전날 확진된 외조부모로부터 전염되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1.15. 부여군[편집]


1979년 2월 14일 설립된 부여중앙유치원이 최초로, 부여군에 4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다. 그마저도 규암면에 있는 규암성결유치원을 제외한 나머지 3곳은 전부 부여읍에 있다. 그 전에는 부여제일교회 유치원이 있었으나 언제 설립됐는지는 불명이고, 부여에 사는 아이들이 버스 타고 논산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주로 세도면에 사는 아이들이 논산으로 갔고, 부여읍에서는 주로 공주로 갔다고 한다. 부여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3년~197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0~51세이다.

1960년대 19만 4,995명이던 인구가 2021년 6만 5,354명으로 줄면서[81] 유치원 수가 줄었다. 이는 부여군에서 개발을 하려고 땅만 파면 백제 시대 문화재들이 쏟아져 나와 개발이 더뎌지고[82], 이를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 외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과 마정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생이 1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수원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상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83] 유치원생 중 상씨 성을 가진 원생을 그나마 보기 쉬운 곳이다. 다만, 상씨는 상위권이 아닌데 부여군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조, 최, 윤, 강, 임, 백씨이기 때문이다.

배우 박하나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16. 계룡시[편집]


1981년 설립된 두마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당시 논산군 두마면) 계룡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관내에 있는 8곳의 유치원 중 5곳이 사립이다. 대전광역시의 위성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유치원은 늦게 들어왔다. 과거 여기에 유치원이 들어오기 전에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대전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하기도 했다.[84] 다만, 계룡시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모두 다른 지역[85]에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계룡시는 태안군, 서천군과 함께 충청남도에서 대학이 없는 세 지자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1만 2,942명이었던 인구가 1980년대 1만 592명으로 줄었으나, 2021년 4만 2,822명까지 늘면서[86] 유치원이 늘었다.

계룡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송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계룡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강, 조, 윤, 장, 송씨이기 때문이다.

야구선수 김라경[87]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17. 태안군[편집]


1981년 고남초등학교, 근흥초등학교, 남면초등학교, 모항초등학교, 삼성초등학교, 소원초등학교, 송암초등학교, 안면초등학교, 안중초등학교, 안흥초등학교, 원북초등학교, 이원초등학교, 태안초등학교, 화동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설립되었다. 당시에는 서산군 관할 지역이었다. 태안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그 전에는 버스 타고 서산의 유치원으로 가야 했다.[88] 교통이 발달하면서 태안군에 사는 유아들이 사립유치원을 찾아서 더 멀리 당진시, 예산군, 홍성군으로 가기도 한다.

사립유치원은 태안읍 남문리의 파랑새유치원 하나뿐이다. 원생들은 주로 태안읍에서 살고 있지만 가끔씩 소원면 시목리, 근흥면 두야리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태안군 자체가 지형상의 이유로 다른 지역과의 접근성이 떨어져서[89], 1970년대 10만 5,120명에 달하던 인구가 2021년 6만 2,214명으로 줄었고[90], 따라서 유치원 역시 늦게 들어온 것이다.

태안군 역시 가씨 비율이 높아서[91], 태안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사람들은 같은 반에 가씨 성을 가진 원생이 있거나, 유치원 다닐 동안 적어도 한 번은 가씨 성을 가진 선생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냐면 서울에서는 유치원 10군데가 있으면 가씨 성을 가진 원생이 있는 곳이 하나 있을까 말까 하는 수준인데, 태안에서는 한 반에 가씨 성을 가진 원생이 2명인 경우도 있을 정도. 심지어 가씨 비율이 김씨를 넘기도 한다. 성씨 통계상 가씨는 신씨, 장씨 바로 뒤의 13위인데 태안군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조, 문, 한, 윤, 강씨이다.

아나운서 가애란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 충청북도[편집]



2.1. 충주시[편집]


1922년 지금의 충주시 성서동에 설립된 충주읍교회 부설유치원이 최초이다. 충청북도 최초의 유치원이며, 도청 소재지인 청주보다 7년, 제주도보다도 2년 빨랐다.[92] 충주시가 아직 충주군이던 시절에 설립된 셈이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음성군에서의 원정 통학이 빈번했으며[93], 교통이 발달한 현재는 괴산군, 제천시[94]는 물론 심하면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에서도 오는 경우가 있다. 주로 괴산군 감물면, 불정면, 장연면에서 충주로 오는 모양. 다만, 충주에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71년 천주교 청주교구 교현동 성당 부설로 설립된 해성유치원이다. 이 곳의 최초의 원생은 1965년~1967년생, 첫 졸업생은 현재 58~59세이다. 충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6년~191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7~108세이다. 충주시에서도 아직까지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은 옛 중원군 지역에는 충주읍교회 부설유치원이 설립된 이후 60년 가까이 지나서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 중원군 지역: 1981년 주덕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엄정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수안보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대소원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사립유치원은 11곳이고, 모두 시내에만 몰려 있다. 이런 이유로 주덕읍과 면 단위 지역에서는 사립유치원을 다니려면 시내로 가거나 원주시 등 타 지역으로 가야 한다. 1960년대 인구는 23만 3,420명이었으나, 1990년 19만 3,608명으로 최저점을 찍고 1998년 21만 8,843명으로 회복했으나 2006년 20만 6,236명으로 줄어들었으며, 21만 186명으로 회복되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지만[95], 인구 약 2만 명에 사립유치원이 하나씩 있어서,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의 숫자는 적다.

앙성면 단암리는 충주보다 여주, 원주에 더 가까워 단암리에 사는 유아들 중 이들 도시로 원정 가서 유치원을 다니는 유아들도 볼 수 있다.

충주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안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충주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안, 장, 임, 윤씨이기 때문이다.

축구선수 구자철은 충주에서 유치원을 다녔다.[96]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2. 제천시[편집]


1924년 제천시 고암동 (당시 제천군 제천면 고암리)에 설립된 제천유치원이 최초로, 제천시가 아직 제천군이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제주도와 설립 동기. 제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8년~1920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5~106세이다. 제천에서도 오랫동안 시골로 남아 있는 예전의 제원군 지역에는 1980년대가 돼서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됐다.

  • 옛 제원군 지역: 1981년 백운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청풍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지리적 특성상 12~2월에는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고, 4월에도 눈놀이가 가능하며[97], 5월에도 외투를 입을 정도이다.

충주시보다 인구가 적지만[98] 사립유치원은 충주보다 1곳 많은 12곳이 있고 모두 시내에만 있다. 인구 대비 사립유치원의 수가 많은 편인데, 제천시 인구가 1960년대 15만 5,922명에서 1980년 17만 292명을 찍은 뒤 감소해서 13만 3,018명이 되어[99] 약 11,238명에 1곳의 사립유치원이 있는 셈이다. 단양군에 사립유치원이 없는 관계로 단양군에 사는 유아들이 사립유치원을 찾아 여기로 넘어오는 경우도 있고, 백운면, 수산면, 청풍면 등 일부 면 지역에서는 아예 충주원주로 넘어가서 유치원을 다닌다. 심지어는 다른 지역에서 넘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주천면, 한반도면, 남면, 영월읍과 멀리는 평창군 평창읍에서 도 경계를 넘어서 제천으로 원정 오기도 한다. 제천시 내에서도 원정을 가는 경우가 있는데 봉양읍 미당리[100], 금성면 동막리 등 제천 시내와 가까운 지역은 아예 시내로 원정을 가기도 한다.

전국에서 지씨[101]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 살아서 제천에서는 智씨 성을 가진 유치원생을 보기 쉬운 편이다. 다만, 그 성씨는 순위권에서 벗어나 있는데 제천의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장, 권, 조, 윤, 안씨이기 때문이다.

배구선수 정지윤이 제천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3. 청주시[편집]


1929년 설립된 상당유치원이 최초로, 청주시가 아직 청주군이었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당시의 청주군 청주면은 지금의 청주시 상당구였으므로 상당유치원은 청주시 최초이자 상당구 최초의 유치원이 되는 셈이다. 통합 이전의 청원군에는[102] 청주 시내보다 52년 늦은 1981년에야 유치원이 들어왔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증평군[103]에서도 충북선 기차를 타고 청주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그 건수가 줄었으나 여전히 증평에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제법 있고[104], 교통이 발달한 현재는 진천군[105], 괴산군[106], 보은군[107]에서 오는 경우가 늘었다. 특히 보은의 경우, 서산영덕고속도로 개통 이후 급속하게 원정 통학 건수가 늘었다. 청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3년~192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0~101세이다.

1970년대 이전 청주시의 유치원은 주로 도시화가 상당히 진행된 현재의 상당구를 중심으로 설립되었고, 청주시 편입 이후에도 한동안 시골로 남아 있던 청원구, 서원구, 흥덕구는 1980년대가 돼서야 겨우 유치원이 들어왔다.

  • 서원구: 1981년 남이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청원군 남이면.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 흥덕구: 1981년 내곡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청원군 강서면.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 청원구: 1981년 북이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청원군 북이면.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사립유치원은 충북에서 가장 많은 57곳 있는데,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오창읍, 오송읍, 내수읍[108], 남일면 등 읍면 지역에도 분산되어 있다. 1960년대 34만 8,554명이었던 인구가 2021년 84만 4,993명으로 2.5배 가량 늘어나[109] 사립유치원이 계속해서 늘고 있으며, 공립 단설유치원만 있는 옥산면에도 사립유치원이 설립되면서 사립유치원 수가 60곳을 넘어갈 수도 있다. 또한 서울[110], 부산, 대구[111] 등 기타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청주시 역시 시가지 팽창으로 옛 청주면->청주읍 지역에 있던 유치원들이 외곽으로 옮겨 가기도 했다. 보은군, 증평군, 괴산군 등 청주 근교의 군 지역[112]에 사립유치원이 부족한 관계로 보은군 내북면, 산외면, 회인면, 보은읍, 증평군 전체, 괴산군 청안면, 사리면 등에 사는 아이들이 청주의 유치원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는 청주의 유치원생들이 청주 사투리를 많이 썼으나 외지인의 유입으로 사투리 억양은 상당히 희석되었고, 완전히 표준어로 바뀌고 있다. 다만, 경상도나 전라도 출신 부모를 둔 원생은 해당 사투리 억양이 섞인 표준어나 아예 해당 사투리를 쓰기도 한다.

여담으로 청주는 비수도권에 일반구가 있는 도시들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곳[113]이자 정규 4년제 사관학교가 있는 곳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곳[114]이다.

청주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곽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아서[115] 현재 청주의 유치원에서는 서울의 어느 자치구보다도 곽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를 보기 쉽다. 그 밖에 경씨[116], 민씨[117], 반씨[118], 봉씨[119], 사씨[120], 신씨[121], 어씨[122], 음씨[123], 지씨[124] 성인 원생들, 충주 최씨인 원생들도 서울에 비해서는 보기 쉽다고 한다. 다만, 청주의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신, 윤, 조, 오, 강씨 순서라 이런 성씨들도 10대 성씨보다는 적다.

청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유명인으로는 유튜버 효기심[125], 배우 이이경[126], 체조선수 신재환[127]이 있다.

2021년 3월 29일 청주시의 유치원생 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4. 증평군[편집]


1955년 증평읍 대동리의 증평교회에서 설립한 샛별유치원이 최초였으나, 1996년 샛별선교어린이집으로 용도를 변경하면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유치원은 1980년 설립된 증평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참고로 당시 괴산군 관할이었으며, 충청북도의 군 가운데 가장 먼저 유치원이 들어온 곳이다. 증평초등학교 외에도 죽리초등학교병설유치원이 존재한다. 그 전에는 증평에 사는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청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하기도 했다. 지금도 드물지만 증평에 사는 아이들이 청주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하며, 도안면에 사는 경우는 거의 100% 증평읍으로 원정 통학을 한다. 간혹 괴산군 청안면, 사리면에 사는 유아들이 증평의 유치원으로 가기도 한다.[128] 증평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9년~1951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4~75세이다. 또한 현재 34~35세인 1989년생들이 유치원으로 있을 때의 마지막 졸업생이며, 1990년생부터 이 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린이집 졸업생이 됐다.

사립유치원은 2011년 증평읍에 설립된 동화나라유치원 1곳만 있다. 1960년대 약 3만 명, 1970년 3만 586명, 2003년 3만 1,159명이었던 증평군의 인구가 계속 늘어 2021년 3만 6,807명[129]으로, 보은군[130], 단양군[131]을 진작에 추월한 것으로도 모자라 거의 괴산군을 추월할 정도인데도 그 모양이다.[132]

증평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연씨 (곡산 연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증평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연, 최, 정, 장, 윤, 조, 신씨이기 때문이다. 충청도에서는 사실상 유일하게 '김이박최'의 공식이 깨진 지역인 셈.

박보영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5. 영동군[편집]


1957년 영동제일교회 부설 영동유치원이 최초였으나, 영동군의 인구 감소로 무기한 휴원 중이다. 소재지는 영동읍 계산리이다. 현존하는 곳은 1972년 천주교 청주교구 영동성당 부설로 설립된 대건유치원[133]이 최초이다. 영동군에 3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며, 황간면 남성리에 있는 루시유치원을 제외한 나머지 2곳(대건유치원, 한빛유치원)은 모두 영동읍에 있다. 영동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1년~195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2~73세이다. 그 이전에는 경부선 열차를 타고 김천시 등지로 원정 통학을 해야 했다. 지금도 영동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에서 사립유치원을 보내려면 대부분 영동읍에 있는 사립유치원으로 가고, 옥천이나 김천으로 가기도 한다.

영동군은 충청북도에 있지만 지리적인 이유로 폭설에 의한 휴원이 상대적으로 잦고[134], 4월까지도 눈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옛날에는 어린이날에도 눈이 와서 어린이날 행사를 눈 맞아 가면서 했을 정도라고 하며, 당시 영동군 주민들은 어린이날이 봄도 아니고 겨울이었다(...)고 할 정도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지리적인 이유로 인한 개발의 불리함[135]과 그에 따른 급격한 인구 감소 때문이다. 지형상의 이유로 대전 시가지가 확장되지 못한 데다, 영동군의 인구가 대전, 김천, 청주 등지로 유출되면서, 인구가 1960년대의 12만 3,564명에서 40% 수준인 4만 7,475명으로 추락했다.[136] 때문에 경영 악화를 감수하고 사립유치원을 설립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동군은 정씨가 최씨보다 많아 정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영동군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정, 최, 장, 손, 강, 전, 배씨이기 때문이다.

유튜버 성시훈한스밴드의 모든 멤버들[137]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6. 보은군[편집]


1972년 천주교 청주교구 보은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모유치원이 최초이다. (보은읍 삼산리 소재.) 보은군 최초이자 보은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다. 이런 이유로 성모유치원 원생들의 거주 지역도 매우 다양한데, 보은읍 삼산·교사·장신·죽전·이평·월송·봉평·강산리 외에 수한면 발산·후평리, 삼승면 원남리 등 원거리 통학생들도 보일 정도이다. 다만, 교사들은 모두 다른 지역[138]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는데, 보은군에는 대학이 없기 때문이다.[139] 충청북도의 군 중에는 의외로 유치원이 일찍 들어왔으며[140], 경기도에도 여기보다 유치원이 늦게 들어온 곳이 있다.[141] 이 곳의 첫 원생이 1966년~1968년생이라 첫 졸업생은 현재 57~58세이며, 보은이 고향인 58~59세 이상의 경우 형편이 돼야 청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시켰을 정도였다. 과거에는 속리산면에 법주사[142] 산하의 성림유치원이 있었으나, 2008년경 인구 감소에 따른 경영난으로 인해 폐원되면서 성모유치원이 보은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으로 남게 되었다.

산이 많은 지역적 특성상 매년 겨울폭설로 인한 휴원이 충청북도치고는 잦아서[143], 겨울에 눈이 오면 유치원을 관리하는 아저씨들과 제설차들이 유치원 앞의 눈을 치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지형상의 이유로 대전, 청주 시가지가 보은까지 확장되지 못한 데다[144] 대청댐 건설로 인해 회남면 일부 지역이 수몰되는 악재까지 겹쳐 보은군의 인구가 대전, 청주 등지로 유출되면서 인구가 1960년대의 11만 3,620명에서[145] 1991년 5만 2,270명까지 줄고 1992년 5만 3,510명으로 잠깐 회복한 뒤 계속 줄어 2021년에는 1960년대의 1/4 정도인 3만 2,412명으로 줄어들어[146] 사립유치원들이 경영 악화를 감수하고 설립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차후 보은군 인구의 감소가 지속되면 보은군 역시 양구군[147], 단양군[148] 등과 함께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면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아예 다른 지역의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하는데 수한면, 삼승면, 탄부면, 속리산면, 마로면, 장안면에 사는 아이들은 보은읍의 성모유치원으로, 회인면과 회남면은 대전으로, 산외면과 내북면은 청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향이 있다.

보은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송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보은군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윤, 강, 송, 조, 안씨이기 때문이다.

축구선수 이정근이 보은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7. 음성군[편집]


1977년 설립된 신명유치원이 최초이다. 음성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1년~197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2~53세이다. 이 동네가 고향인 50대 이상인 어른들은 형편이 돼야 청주나 충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갈 수 있었다. 현재는 이천시 장호원읍, 충주시 신니면에서 음성으로 원정 오는 경우도 있다.

사립유치원은 금왕읍 1곳, 대소면 2곳, 감곡면 1곳 등 총 4곳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음성읍보다 금왕읍의 인구가 더 많은[149] 도시 구조가 원인이다. 인구는 1960년대의 12만 5,108명에서 1990년 7만 4,717명으로 추락했다가 9만 3,153명으로 회복[150]되어 사립유치원 숫자가 늘었는데, 그마저도 금왕읍과 대소면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음성읍이나 기타 면에 사는 아이들은 아예 충주시 등 인근 도시로 가야 사립유치원을 다닐 수 있으며, 삼성면 등지에서는 아예 청주시로 가는 건수가 많다.

충북혁신도시로 인해 맹동면에 사립유치원이 생길 수도 있다. 그 전에는 음성에 사는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충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151]하기도 했다.

음성은 전국에서 4번째로 반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아서[152] 원생이나 교사 중 반씨 성을 가진 경우가 서울보다는 많다고 한다. 다만, 반씨는 10대 성씨 밖인데 음성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조, 장, 윤, 권, 안씨이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 황지애[153]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5월 14일 음성군의 병설유치원 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았고 5월 15일 교사마저 확진 판정을 받았다. 교사의 확진 판정은 2021년 5월 14일 원생의 확진 때문에 유치원생과 교사가 검사를 받아 교사가 양성을 받은 것이다. 다만, 원생 중 2명은 이천에서 검사를 받아 이천 확진자로 분류되었다.

2.8. 옥천군[편집]


1977년 옥천읍 삼양리의 천주교 청주교구 옥천 성당 부설의 성모유치원이 최초였으나, 현재 상태는 불명. 1981년 군남초등학교, 군서초등학교, 동이초등학교, 안내초등학교, 안남초등학교, 이원초등학교, 죽향초등학교, 증약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개설되었다. 그 전에는 옥천에 사는 아이들이 옥천역이나 이원역, 지탄역에서 경부선 기차를 타고 대전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하기도 했다. 사립유치원은 4곳 있으며, 그마저도 옥천읍에 몰려 있다. 옥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1년~197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2~53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대전과 산으로 가로막혀 시가지가 확장되지 못한 데다 대청댐 건설로 안내면, 안남면 일부가 수몰되는 악재까지 겹쳐 인구가 1960년대의 11만 1,991명에서 이의 절반 수준인 5만 527명으로 추락해[154] 사립유치원이 경영난을 감수하고 추가로 설립되지 못한 탓이 크다. 이 때문에 옥천에 사는 유아들 중 일부는 아예 대전광역시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북부는 원주로 기울고 남부는 대전으로 기운 충청북도의 형태 때문에 옥천군의 생활권이 대전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침 시간대에 옥천읍, 군북면에 가면 대전의 유치원 버스들이 오기도 한다. 사실상 대전의 유치원에 다니는 옥천 아이들은 매일 도 경계를 넘는 셈. 심지어 청성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생을 모두 합쳐도 1명뿐이다.

이름만 보면 옥천군에 있을 법한 옥천유치원은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다. 다만 한자는 다른데, 충청북도 옥천군은 沃川 (물댈 옥, 내 천)으로 쓰고, 순창 옥천유치원은 玉川 (구슬 옥, 내 천)으로 쓴다.

전국에서 육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모여 살고 있어 옥천 사람들은 유치원 시절 친구나 교사들 중 육씨 성을 가진 사람이 꼭 한두 명은 있을 정도이다. 이는 육씨가 옥천 육씨 단본이기 때문이다. 다만, 육씨는 옥천군 상위 10개 성씨 밖인데 옥천군의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강, 황, 전, 조, 오씨이기 때문이다.

금동현이 옥천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9. 괴산군[편집]


1979년 설립된 괴산명덕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사립유치원은 괴산읍 동부리에 1곳만 있는데, 천주교 청주교구 괴산성당 부설 성신유치원이다. 그마저도 원래는 새마을유아원으로 설립했다가 유치원으로 바뀐 것이다. 이 곳의 원아들은 거의 괴산읍에 살지만, 아주 가끔 칠성면 두천리 등지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한편, 1955년 4월부터 2003년 9월까지는 증평읍의 샛별유치원이 괴산군 최초였다.[155] 괴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3년~197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0~51세이다.

이렇게 된 것은 저출산이촌향도 현상에 따른 인구 감소 때문이다. 지형상의 이유로 청주시 시가지가 괴산까지 확장되지 못한 데다, 괴산군의 위치 특성상 청주, 충주, 증평 등으로의 인구 유출이 끊임없이 일어난 것으로도 모자라 2003년 9월에 증평군까지 분리되면서[156], 괴산군의 인구가 1960년대의 16만 506명[157]에서 약 1/4 수준인 3만 9,393명으로 급격히 추락하였다.[158] 따라서 사립유치원들이 경영 악화를 감수하고 설립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괴산읍의 성신유치원에는 소수면, 문광면, 칠성면 두천리[159] 등 괴산읍과 비교적 가까운 면 지역에서도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도 있고, 청안면과 사리면은 증평, 청천면은 청주, 장연면, 연풍면, 감물면, 불정면 등은 아예 충주까지 가기도 한다. 보은군의 경우는 아예 괴산에서 바로 갈 수 있는 길이 없어[160] 이 쪽으로 원정 통학을 하지는 않는다.

인구가 감소하여, 오랜 전통의 성신유치원조차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괴산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지, 우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지씨와 우씨는 24, 25위이다. 실제 성씨 통계로도 괴산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장, 조, 안, 윤, 신씨이며 강씨는 권씨보다 적다.

배구선수 이광호와 배드민턴 선수 고성현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10. 진천군[편집]


1980년 설립된 진천삼수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1970년대 이전에 진천에 살던 아이들은 청주에 있는 유치원을 다녀야 했을 정도이다. 진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4년~197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9~50세이다.

사립유치원은 2곳 있고 모두 진천읍에 있다. 1960년대 8만 7,526명이었던 인구[161]가 1990년 4만 9,259명까지 추락했다가 8만 3,718명[162]으로 1960년대의 95.6% 수준까지 회복했는데 이 모양이다. 충북혁신도시로 인해 덕산읍[163] 등을 중심으로 사립유치원 수는 늘어날 수도 있다. 지금도 안성시 서운면 청용리에 사는 유아들이 진천으로 와서, 혹은 진천군 백곡면에 사는 유아들이 천안시로 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니는 경우가 있다.

진천에서는 서울보다 원생의 성이 임씨인 경우를 보기 쉬운데 실제 성씨 통계로도 충북 진천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 이, 박, 최, 정, 조, 임, 윤, 신, 장씨이기 때문이다.

프로게이머 강명구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11. 단양군[편집]


1981년 단천초등학교, 대강초등학교, 매포초등학교, 상진초등학교, 어상천초등학교, 영춘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상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공립 단양유치원과 통합되었다. 단양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관내에 사립유치원은 없다. 시멘트 공업으로 번성했던 과거에는 사립유치원이 있었다. 단양군 유일의 불교계 유치원이었던 광룡사유치원이 대표적. 그러나 충주댐으로 인한 읍내 수몰[164]과 단양군 자체의 인구 감소로 1960년대에 8만 8,586명이었다가 1970년대에는 9만 2,853명까지 늘어났으나[165], 현재는 그 1/3 수준인 2만 9,155명으로 추락하여[166], 관내 사립유치원들의 경영 상태가 악화되면서 폐원한 듯. 때문에 단양군에 사는 유아들은 공립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제천시[167], 영주시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 이는 단양에서 제천, 영주로 갈 때는 중앙고속도로중앙선 철도가 있어서 가기 쉬운데, 영월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낙후된 군 지역이고, 충주 등지는 너무 멀기 때문이다. 당연히 단양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처지는 비슷해서, 다른 지역의 대학[168]에서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보지 않는 이상 고향에서 근무하지 못하고, 사립유치원 근무를 원한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제천시 등지의 사립유치원에 취업하고 고향과 인근 도시를 매일 왕복해야 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장씨가 4위를 차지하는 지역[169]이라 원생과 교사 중 장씨 성을 가진 사림이 최씨보다 많을 정도이다. 실제로 단양군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장, 최, 정, 조, 권, 윤, 안씨이며 증평군과 마찬가지로 김이박최 공식이 깨진 지역 중 하나이다.[170]

사격선수 최영래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171]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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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1960년대 3만 320명에서 2020년 6만 227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15%에서 57.3%로 높아졌다. 또한 장기면과 반포면, 의당면 일부를 세종특별자치시에 넘기면서 인구가 더 줄었으며, 만약 이들 지역이 넘어가지 않았다면 공주시의 현재 인구는 11만 3,259명이었을 것이다. 공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6만 227명, 유구읍 7,461명, 계룡면 5,551명, 우성면 5,258명, 정안면 4,691명, 의당면 4,676명, 반포면 4,222명, 이인면 3,290명, 신풍면 3,241명, 탄천면 2,971명, 사곡면 2,957명으로 읍면 지역은 인구가 1만 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곡면은 중앙소방학교 (2019년경 천안에서 이전), 이인면은 공주역까지 있는데도 그렇다. 1966년 계룡면은 인구가 2만 1,090명이나 될 정도로 잘 나갔으나 계룡읍으로 승격하지 못한 채 그대로 몰락하면서 계룡면에 사는 사람들이 유치원을 찾아 공주 시내까지 오는 경우도 있다.[2] 오나미는 1984년 5월 28일생(39세)이므로 1988~199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오나미의 또래들은 1988 서울 올림픽롯데월드 어드벤처가 개장할 때 유치원생이었던 셈.[3] 이 과정에서 외곽 지역이 대덕군으로 명칭을 바꾼다.[4]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탈리아를 2대 1로 이긴 기념비적인 경기장인 대전월드컵경기장이 이 동네에 있다. 이탈리아에게는 대전 대참사[5] 당시 연기군.[6] 보은군 자체로 보면 청주로 가는 원정 통학이 많지만, 회인면, 회남면에서는 아예 대전으로 가는 건수가 더 많다.[7] 주로 영동읍, 심천면.[8] 황인범은 1996년 9월 20일생(27세)이므로 유치원은 1999년~2002년 사이에 다녔을 것이다. 1996년 3월~1997년 2월생들은 1999~2002년에 유치원 입학 대상이 됐다. 이들은 대전, 광주에 지하철이 없고 양평, 가평에 고속도로가 없을 때 유치원에 다녔는데, 유치원 때 Windows XP 컴퓨터를 처음 썼고, 한일 월드컵을 유치원생 신분으로 봤다. 또 황인범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대전에 살던 유치원생들은 꿈돌이랜드로 소풍을 간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멀리는 세종시에서도 왔을 정도.) 형 황인혁과 같은 유치원 출신인지는 불명. 여담으로 황인범은 유치원 시절에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9] 강혜진은 1989년 11월 20일생(34세)이므로 1992~199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89년생들은 손흥민이 태어나기 직전에 유치원에 입학했고, 유치원 시절에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을 직접 겪어 본 셈. 엄밀히 말하면 '헤이지니'는 성인이 된 후에 지은 예명이므로 유치원은 본명인 '강혜진'이라는 이름으로 다녔다. 오빠 강민석과 같은 유치원을 다녔는지는 불명.[10] 한다감은 1980년 7월 10일생(43세)이므로 1984~198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대전이 충청남도 소속일 때 유치원을 다닌 셈. 엄밀히 말해서 ‘한다감’은 예명이므로 유치원은 본명인 한은정으로 다녔다.[11] 주예지는 1993년 1월 19일생(31세)이므로 원래는 1996~1999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녀야 했으나 빠른 년생을 적용받아 1995~199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즉, 주예지는 1992년생 축구선수 손흥민, 황의조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셈. 1992년생과 빠른 1993년생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는 양평, 가평에 고속도로가 없고 명절만 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15~20시간이나 걸리던 시절이었다.[12] 오상욱은 1996년 9월 30일생이라 1999~2002년 사이에 유치원생이었을 것이다. 오상욱은 황인범과 같은 시기에 다닌 데다 유치원 시절에 2002 한일 월드컵을 봤고, 대전에 지하철이 없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닌 셈. 그 시절이면 전한길이 수능 강사로 위세를 떨치고 KTX조차 없었다. 당시 대전 유치원생들의 소풍 핫플레이스는 꿈돌이랜드였다.[13] 동구 22만 3,021명 (15.4%), 중구 23만 5,550명 (16.3%), 서구 47만 7,880명 (32.6%), 대덕구 17만 6,384명 (12%), 유성구 35만 1,047명 (23.6%)이다. 전체적으로 서구와 유성구에 사립유치원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옛 읍면대로 조합하면 옛 대전부 11만 5,423명, 신탄진읍 4만 7,897명, 유성읍 14만 3,306명, 탄동면 8만 8,540명, 구즉면 8만 4,095명, 진잠면 3만 5,106명, 외남면 15만 5,722명, 유천면 49만 3,063명, 기성면 11만 1,876명, 회덕면 14만 9,094명, 동면 2,491명, 산내면 4만 9,035명이다.[14] 마지막 졸업생들은 2011년생으로, 현재 초등학교 3학년(12~13세)이다. 남아 있던 원생 (2012년~2014년생)들은 인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분산 배치됐다. 그 아이들도 다 초등학생이 됐다.[15] 다만, 안면도에서 보령으로 가는 다리가 완전 개통된다면 원산도에 사는 아이들이 홍성으로 원정 통학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16] 그 와중에 홍성읍의 인구는 1960년대 2만 1,912명에서 2021년 3만 8,232명으로 늘었고 비중 또한 14.4%에서 38.8%로 높아졌다. 홍성군의 읍면별 인구는 홍성읍 3만 8,232명, 홍북읍 2만 8,834명, 광천읍 8,520명, 갈산면 3,533명, 금마면 3,500명, 구항면 3,466명, 홍동면 3,432명, 서부면 3,252명, 장곡면 2,919명, 은하면 2,311명, 결성면 2,103명으로 홍성읍 (38.8%)과 홍북읍 (27.6%)에 전체 인구의 66.3%가 몰려 있다.[17] 유병재는 1988년 5월 6일생(35세)이므로 1992~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야말로 버스, 기차 등 대중교통 수단에서 담배 피우는 게 자연스러웠고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이 발생했을 때 유치원을 다닌 셈.[18] 논산군의 시 승격은 1996년.[19] 심지어 강경이 논산보다 먼저 읍으로 승격됐다.[20] 외지인들에게는 육군훈련소로 잘 알려진 그 곳이다.[21] 그 와중에 논산 시내의 인구는 1960년대 3만 1,780명에서 2021년 5만 1,412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12.2%에서 44.1%로 높아졌다. 논산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5만 1,412명, 연무읍 1만 3,732명, 강경읍 8,375명, 양촌면 6,217명, 연산면 6,137명, 광석면 4,243명, 성동면 4,173명, 은진면 3,978명, 상월면 3,622명, 부적면 3,576명, 가야곡면 3,439명, 노성면 3,020명, 벌곡면 2,477명, 채운면 2,274명으로 면 지역은 인구가 7,000명을 못 넘고 있을 정도로 상태가 열악하다. 특히 연무읍은 1960년대의 3만 8,274명 (14.7%)에서 1만 4,167명 (11.8%)로 거의 3분의 1 수준까지 줄었다.[22] 박은영 1984년 10월 18일생(39세)이므로 1988~199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84년생들은 유치원 시절 롯데월드 어드벤처 개장을 경험한 셈.[23] 주로 옛 평택읍.[24] 주로 옛 안성읍, 미양면.[25] 주로 배방읍 장재리, 세교리, 휴대리.[26] 주로 부군면 통폐합 이전의 전의군 지역.[27] 잘 알다시피 독립기념관이 있는 그 곳이다.[28] 옛 천안시 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 7만 1,182명에서 52만 6,739명으로 늘었고, 옛 천원군 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의 13만 2,947명에서 2021년 12만 5,352명으로 줄었다. 그래서 시내 집중도가 34.9%에서 80.4%로 높아졌다. 또한 동남구의 인구는 25만 8,009명 (39.8%), 서북구의 인구는 40만 799명 (60.2%)이며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53만 3,456명 (동남구 20만 7,174명, 서북구 32만 6,282명), 성환읍 2만 4,358명, 목천읍 2만 4,260명, 성거읍 2만 1,892명, 직산읍 1만 9,716명, 입장면 8,551명, 병천면 6,082명, 북면 4,357명, 광덕면 4,323명, 풍세면 4,123명, 성남면 3,247명, 수신면 2,324명, 동면 2,119명이다. 특히 성남면은 오션파크가 있는데도 인구는 5,000명을 못 넘는다. 여담으로 충청남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읍면동 중 2곳이 천안시에 있다. (1위 아산시 배방읍 7만 3,162명, 2위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 6만 8,102명, 3위 천안시 동남구 청룡동 5만 6,018명)[29] 2015년 당시 맹씨 인구가 2만 2,028명이었는데 그 중 1,126명이 천안에 살고 있었다.[30] 방씨 인구 탑3가 수도권 (고양시, 수원시, 성남시)이고 그 뒤에 천안시가 있는데, 이는 온양 방씨의 관향인 아산시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가 천안이기 때문이다. 천안 바로 뒤의 용인시보다 25명 정도 많다.[31] 시급 이상인 지역들 중 복씨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천안이다. 이는 복씨의 본관이 면천 하나뿐인데, 당진에 살던 복씨들이 천안으로 많이 왔기 때문.[32] 장효인은 1983년 1월 7일생(41세)이므로 1986~198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1988 서울 올림픽을 유치원 시절에 보고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 버스의 번호판에 차~파, 처~퍼, 초~포, 추~후, 그~흐가 들어가기도 했던 셈. 장효인이 현재 근무하는 유치원은 불명.[33] 1927년이면 유치원이 매우 드문 시절이었다. 은퇴한 대학교수나 유력 정치인마저도 유치원에 못 다닌 사람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 당시 보통학교 규정상 보통학교 산하에도 유치원을 둘 수 있었다.[34] 그 때문에 2010년생은 마지막 졸업생이 되고, 2011, 2012, 2013년생은 다른 유치원 및 어린이집으로 분산 배치됐다. 현재 그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생이 됐다.[35] 그 와중에 예산읍의 인구는 1960년대 3만 4,373명에서 2021년 3만 3,401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19.5%에서 43.2%로 높아졌다. 예산군의 읍면별 인구는 예산읍 3만 3,401명, 삽교읍 9,955명, 덕산면 6,677명, 고덕면 4,545명, 오가면 4,454명, 신암면 3,533명, 광시면 3,184명, 신양면 3,057명, 응봉면 2,537명, 봉산면 2,502명, 대술면 2,470명, 대흥면 1,769명으로 예산읍만 인구가 1만 명을 넘고 나머지 지역은 인구가 1만 명 미만이다.[36] 덕산면 낙상리는 예산읍보다 홍성읍이 더 가까워 이 지역 학생들은 중고등학교를 홍성에서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지역 출신 남자들은 수덕초-홍성중-홍성고, 여자들은 수덕초-홍성여중-홍성여고 루트를 많이 탔을 정도. 이 지역이 고향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2시간 가까이 걸어서 등교한 덕에 체력이 좋아 다른 과목은 미, 양, 가를 받아도 체육은 항상 '수'를 받았을 정도.[37] 이광연은 1999년 9월 11일생(24세)이므로 2002~200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공휴일인 식목일을 유치원 시절에 보낸 셈.[38] 그만큼 청양군의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다는 뜻이다. 청양군의 읍면별 인구는 청양읍 1만 23명, 정산면 3,598명, 남양면 2,767명, 장평면 2,335명, 대치면 2,276명, 화성면 2,200명, 운곡면 2,162명, 비봉면 2,128명, 청남면 1,927명, 목면 1,532명으로 청양읍만 인구가 1만 명을 넘고 나머지 면들은 인구가 5,000명도 못 넘는다.[39] 전국 복씨 인구가 9,538명인데 그 중 308명이 청양에 살고 있었다. 복씨 인구 상위 5개 도시 중 4곳이 충청남도일 정도. (청양-홍성-천안-수원-보령)[40] 김정은은 1987년 9월 7일생(36세)이므로 1991~1993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아직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한두 곳에 불과하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고, ‘다니유치원’의 최다은, 야구선수 김현수, 류현진, 축구선수 김진현, 메가스터디의 손고운과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셈.[41] 임정환은 1981년 8월 11일생(42세)이므로 1985~198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81년생들은 1986 서울 아시안게임을 유치원 시절 관람한 셈.[42] 당시 운영하던 유치원은 중간에 폐원하였다가 1988년 재개원하였다. 이후 독립건물을 지어 이전.[43]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2만 8,775명에서 6만 321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19.1%에서 59.4%로 높아졌다. 보령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6만 321명, 웅천읍 6,229명, 주교면 5,332명, 남포면 5,140명, 오천면 4,933명, 청라면 3,939명, 천북면 3,554명, 청소면 2,640명, 주산면 2,453명, 성주면 2,298명, 미산면 1,729명, 주포면 1,663명으로 시내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44] 김준혁은 1997년 10월 29일생(26세)이므로 2000~2003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97년생들은 유치원 입학 후에 21세기를 맞고 Windows XP 발매, 2002 한일 월드컵, SARS를 경험한 셈. 남포면이라는 시골 동네에 살아서 유치원은 공립을 다녔을 가능성이 높다.[45] 2022년 3월 1일 공립(단설)의 성연유치원의 개원으로 휴원중이다.[46]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1960년대 3만 416명에서 2021년 9만 3,525명까지 늘어 시내 집중도가 11.1%에서 53.8%로 높아졌다. 다만, 태안군을 제외한 나머지 서산 지역만으로 하면 1960년대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서산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9만 3,525명, 성연면 1만 5,451명, 대산읍 1만 3,903명, 음암면 9,463명, 지곡면 8,152명, 인지면 7,450명, 해미면 7,418명, 고북면 6,367명, 부석면 5,356명, 운산면 5,133명, 팔봉면 3,373명으로 공업 지대를 중심으로 인구가 몰려 있다.[47] 김기리는 1985년 11월 27일생(38세)이므로 1989~199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시기에 걸프 전쟁을 겪은 셈. 게다가 그 시절이면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한두 곳에 불과했을 정도로 사립유치원이 전국에 고루 퍼져 있었다.[48] 심지어 장항읍이 서천읍보다 먼저 읍으로 승격됐다. (장항읍 1938년 10월 1일, 서천읍 1979년 5월 1일) 인구는 비록 서천읍이 13,723명, 장항읍이 11,355명으로 이미 역전됐지만. 과거에는 장항읍과 군산시를 배로 왕복했다고 한다.[49] 2010년생이 마지막 졸업생이 됐고, 2011년, 2012년, 2013년생은 인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분산 배치됐다. 장항유치원의 마지막 졸업생은 13~14세로, 현재 초등학생이다.[50] 서천군의 읍면별 인구는 서천읍 1만 3,744명, 장항읍 1만 1,126명, 마서면 4,939명, 서면 4,403명, 비인면 2,950명, 한산면 2,540명, 화양면 2,264명, 판교면 2,135명, 종천면 2,049명, 기산면 1,674명, 마산면 1,494명, 시초면 1,286명, 문산면 1,262명으로 서천읍, 장항읍만 인구 1만 명을 넘고 나머지 면들은 5,000명도 못 넘는 곳이 많은데, 그만큼 서천군은 여름 휴가철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에는 사람이 거의 찾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열악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심지어 충청도에서 가장 먼저 소멸 고위험지역으로 진입했다.[51] 서천군에는 대학이 없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대학이 군산, 논산 등지에 있다 보니 서천군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이 대부분 군산 등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왔고, 드물게는 수도권에서 내려온 케이스도 있다.[52] 한자가 丘이다. 전국적으로 1만 5,382명만 사는 희성이지만 서천에는 1,309명이 살고 있다. 게다가 무려 성씨 순위 9위이다. 서천군의 성씨 순위 10위까지의 성씨는 '김이박최신나조정구윤'일 정도.[53] 1963년 금산군은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편입되었으나, 성당은 아직까지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이었다. 1980년 8월 29일, 금산군의 모든 성당은 천주교 대전교구 관할로 바뀐다.[54] 반대급부로 금산읍의 인구 비중은 높아졌다. 금산읍의 인구는 1960년대 2만 4,108명에서 2021년 2만 2,858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19.3%에서 44.2%로 높아졌다. 금산군의 읍면별 인구는 금산읍 2만 2,858명, 추부면 6,095명, 금성면 3,320명, 진산면 3,213명, 복수면 3,072명, 남일면 2,871명, 제원면 2,841명, 군북면 2,527명, 부리면 2,462명, 남이면 2,154명으로 추부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인구가 5,000명도 못 넘을 정도로 상태가 열악하다.[55] 이 때문에 면에 사는 아이들은 병설유치원이나 백합유치원, 또는 금산유치원으로 몰리고, 복수면 등지에서는 아예 대전광역시로 가기도 한다.[56] 무주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 통영대전고속도로 연선에서 금산군 다음으로 나오는 사립유치원 있는 군이 무려 경상남도 함양군(!!!), 그 다음은 진주시일 정도로 해당 고속도로 연선에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4곳 (무주, 장수, 산청, 고성)이나 있다.[57] 길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내려가면 금산이 1,418명으로 전국 1위가 된다. 물론 길씨는 해평 길씨 하나밖에 없지만, 집성촌은 금산에 있다.[58] 신아람은 1986년 9월 23일생(37세)이므로 1990~199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시기에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했다는 뉴스를 본 셈.[59] 現 당진시 읍내동.[60] 소화(小花) 데레사 성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61] 송악읍 3만 259명, 신평면 1만 6,158명, 송산면 1만 2,106명, 합덕읍 9,357명.[62] 시내 인구는 1960년대 2만 1,245명에서 2021년 6만 3,968명으로 늘어 시내 비중이 11.5%에서 37.9%로 높아졌다. 당진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6만 3,086명, 송악읍 3만 426명, 신평면 1만 5,1814명, 송산면 1만 1,914명, 석문면 9,701명, 합덕읍 9,099명, 고대면 5,498명, 우강면 5,177명, 순성면 5,122명, 정미면 3,679명, 면천면 3,584명, 대호지면 2,434명으로 공업 지대가 형성된 시내-송악-신평-송산 라인에 인구의 70% 이상이 몰려 있다.[63] 전국적으로 2만 2,363명, 당진에는 1,010명밖에 없는 희귀 성씨이다. 그러나 당진은 기초자치단체 중 인씨 인구는 1위인데, 2위인 천안과의 격차도 200명을 넘는다.[64] 전국적으로 4,340명, 당진에 194명밖에 없는 희귀 성씨이다. 그러나 당진은 기초자치단체 중 호씨 인구가 1위이다.[65] 이는 인천도 마찬가지라 인천에서도 한씨가 10대 성씨에 들어가 있으며 인천에 있는 유치원생 중 한씨 성을 가진 경우는 부모나 조부모가 충남 당진에서 인천으로 온 경우일 가능성도 있다.[66] 춤추는 곰돌은 1986년 1월 30일생(38세)이므로 1989~199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시절 대표팀이 3번 연속으로 월드컵에서 패배한 것을 봤던 셈. 엄밀히 말하면 춤추는 곰돌은 예명이므로 유치원은 본명인 '김별'이라는 이름으로 다녔다.[67]온양시 지역인 시내 인구는 1960년대 3만 926명에서 2021년 12만 6,777명으로 4배 가까이 늘었고, 시내 인구의 비중은 18%에서 40.6%로 높아졌다. 옛 아산군 지역의 인구도 1960년대 14만 932명에서 18만 9,952명으로 늘었으나 비중은 82%에서 59.4%로 떨어졌다. 아산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12만 6,777명, 배방읍 7만 5,617명, 둔포면 2만 1,724명, 탕정면 2만 1,675명, 신창면 1만 9,945명, 음봉면 1만 9,932명, 인주면 6,553명, 염치읍 6,531명, 영인면 5,524명, 도고면 4,464명, 송악면 4,254명, 선장면 3,133명으로 수도권 전철 1호선이 다니는 지역에 인구의 대부분이 거주하고 있다. 여담으로 배방읍은 충청남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이다.[68] 음문석은 1982년 12월 7일생(41세)이므로 1986~198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1988 서울 올림픽이 열릴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셈.[69] 참고로 해방 당시에는 충청북도, 1946년부터 1997년까지는 제주특별자치도 (당시 제주도), 1998년부터 2012년까지는 울산광역시가 가장 늦게 유치원이 들어온 광역자치단체였다.[70] 1960년대 조치원읍의 인구는 2만 5,423명이었다가 2021년에는 4만 3,100명으로 늘었으나 비중은 23.3%에서 12.9%로 낮아졌다. 반면 1960년대 인구가 2,000명도 안 돼서 전체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하던 시내 인구는 26만 5,482명으로 거의 1,000배 가까이 늘어 전체 인구의 73.2%까지 높아졌다.[71] 그 중 전한길, 이다지, 고아름은 메가스터디로 넘어가고 (전한길은 메가공무원으로 한 번 더 넘어갔다.), 이하영과 이지영은 이투스로 완전히 넘어가 EBSi에 남은 사람은 최태성뿐이다.[72] 물론 2020년 1월 14일에 바로 바꾸지는 않았고 2020년 봄~여름 사이에 바꾸었을 것이다. 2025년 10월 윈도우 10이 지원 종료되면서 2025년 겨울~2026년 봄에는 원내 컴퓨터의 운영체제를 윈도우 11으로 바꾸는 유치원이 생길 것이다.[73] 물론 다른 지역에도 순우리말 이름을 가진 유치원은 있지만 세종시는 그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세종시에 있는 공립 단설유치원 37곳 중 33곳 (약 89.2%)이 순우리말 이름을 가졌을 정도.[74] 연서면 아이마루유치원, 조치원읍 성모유치원, 전의면 전의유치원 3곳이 있었으나 전의유치원은 2021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2곳으로 줄었다.[75] 조치원읍 (4만 3,100명), 금남면 (8,865명), 연서면 (7,481명), 장군면 (6,703명), 부강면 (6,245명), 전의면 (5,686명), 전동면 (3,578명), 연동면 (3,160명), 연기면 (2,729명), 소정면 (2,442명). 이들 지역 인구의 총 합은 8만 9,989명으로 세종시 전체 인구의 26.6%에 불과하다.[76] 새롬동, 고운동, 도담동, 종촌동, 소담동, 아름동, 한솔동, 보람동, 대평동.[77] 여기와 사립유치원 개수가 같은 곳이 강원도 속초시, 부산광역시 중구, 전라북도 남원시 정도이다. 농촌 군 지역들의 사립유치원 숫자가 적은 것은 인구 감소 때문이지만, 세종시는 사립유치원의 시내 진입을 불허하는 지역 교육 정책 때문에 사립유치원이 적다.[78] 심지어 어린이 인구가 100만 명에 근접한 서울이나, 전국에서 어린이 인구가 가장 많다는 경기도조차 어린이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79] 농촌에서는 사립유치원이 아예 없어서 사립유치원을 보내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도시로 보내지만 (대표적으로 강원도 양구군이 있는데 여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어서 양구 주민들이 사립유치원에 보내고 싶으면 춘천까지 가야 한다. 물론 사립유치원이 있는 군도 있는데, 대부분 읍내에만 있어서 면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읍내로 가야 사립유치원을 보낼 수 있다.), 세종시는 공립유치원만 있어서 다른 도시로 보내는 경우가 있다.[80] 현재까지 이런 경우는 전국에 24개 군 (강원도 화천, 양구, 인제, 평창, 충청북도 단양, 충청남도 서천, 전라북도 무주, 진안, 장수, 임실, 순창, 전라남도 강진, 곡성, 신안, 함평, 경상북도 군위, 청송, 울진, 영양, 경상남도 의령, 산청, 하동, 남해, 고성)과 1개 시 (강원도 태백)밖에 없다.[81] 부여군의 읍면별 인구는 부여읍 2만 330명, 규암면 1만 2,027명, 은산면 3,780명, 세도면 3,174명, 석성면 2,923명, 홍산면 2,901명, 임천면 2,899명, 장암면 2,763명, 외산면 2,382명, 구룡면 2,378명, 초촌면 2,136명, 남면 1,853명, 양화면 1,688명, 내산면 1,555명, 옥산면 1,427명, 충화면 1,138명으로 인구 5,000명 미만인 면들이 14곳이나 된다. 또한 충화면은 충청남도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읍면동으로, 가장 많은 읍면동인 아산시 배방읍 (7만 3,407명)의 62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반대급부로 부여읍의 비중은 높아졌는데, 부여읍의 인구는 1960년대 2만 4,867명에서 2019년 2만 898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12.8%에서 31.4%로 높아졌다. 과거 규암면이 2만 2,200명으로 잘 나갔으나 규암읍으로 승격하지 못한 채 그대로 인구가 줄면서 규암면 주민들이 부여읍으로 유치원 통학을 시키기도 한다.[82] 서울에도 부여군과 비슷한 처지인 동네가 있는데 송파구 풍납동이다. 이 쪽은 풍납토성 유적지 때문에 개발이 더뎌진 것.[83] 상씨 자체도 희귀해서 2,376명인데, 100명 이상인 지자체가 단 하나도 없다. 수원 77명, 부여 75명.[84] 지금도 계룡시 학생들은 대전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대전에 더 가까이 사는 아이들은 대전의 유치원에 다니는 경우가 소수 있다. 또한 계룡에서 대전으로 바로 가는 시내버스도 있어 계룡시 주민들이 대전 은행동 등지로 놀러 갈 때 많이 이용한다.[85] 주로 수도권이나 대전.[86] 계룡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엄사면 1만 8,498명, 신도안면 8,630명, 금암동 8,618명, 두마면 7,076명으로 금암보다 엄사의 인구가 더 많다. 다만, 소멸위험지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심지어 일본에는 계룡시보다 인구가 적은 시가 무려 228개나 된다.[87] 김라경은 2000년 11월 4일생(23세)이므로 2003~200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플로피 디스크가 거의 사라지고 하드디스크 용량이 늘어나는 시기에 유치원을 다녔으며, 유치원 시절 어린이날부처님오신날이 겹치고 (덤으로 윤7월이 생겼다.) 오션월드 개장을 경험한 셈.[88] 주로 서산 시내로 나갔다고 한다. 태안군 지역이 고향인 어르신들은 서산 시내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었다.[89] 다른 지역에서 태안군에 가거나 태안군에서 다른 지역으로 나가려면 무조건 서산시를 지나가야 한다. 이는 고흥군도 비슷하다. (이 쪽은 외지로 가거나 외지에서 돌아올 때 무조건 보성군을 지나가야 한다.) 서울에서 태안군으로 가는 경우는 대개 서산 시내를 지나 팔봉면 방향으로 간다.[90] 그만큼 태안읍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여름 휴가철을 제외하면 사람이 찾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태안군의 읍면별 인구는 태안읍 2만 9,525명, 안면읍 8,601명, 근흥면 5,358명, 소원면 5,340명, 원북면 4,411명, 남면 4,312명, 고남면 2,386명, 이원면 2,281명으로 인구 5,000명 미만인 면이 4곳이나 있다. 그 와중에 태안읍의 인구가 2만 1,729명에서 2만 9,525명으로 늘어 태안읍의 비중이 21.2%에서 47%로 높아졌다.[91] 가씨는 서산과 태안에 많다. 태안에 가 보면 가씨가 김씨보다 많은 학교가 있을 정도.[92] 이 때문에 해방 전에는 충청북도가 전국 시, 도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시, 도가 됐는데, 당시에는 서울, 인천, 개성이 경기도 산하였기 때문이다.[93] 주로 음성읍이나 소이면에서 충주로 원정을 왔다.[94] 주로 청풍면, 덕산면 등. 제천 시내에서는 오히려 자기 지역의 유치원에 많이 보낸다.[95]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8만 212명에서 15만 4,070명까지 늘어 시내 집중도가 34.4%에서 73.5%로 높아졌다. 충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15만 4,070명, 중앙탑면 1만 3,226명, 대소원면 8,734명, 주덕읍 4,864명, 앙성면 3,944명, 금가면 3,782명, 동량면 3,706명, 엄정면 3,256명, 신니면 3,010명, 수안보면 2,988명, 노은면 2,317명, 산척면 2,297명, 살미면 2,039명, 소태면 1,953명으로 주덕읍보다 인구가 많은 면이 2곳 (중앙탑면, 대소원면)이나 있다.[96] 구자철은 1989년 2월 27일생(35세)이므로 1991~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말 그대로 이이경과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녔으며 그는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을 유치원 때 겪은 셈. 다만, 그의 출생지는 충남 논산이고, 형 구자충과 같은 유치원인지는 불명.[97] 옛날에는 무려 개천절어린이날에도 눈이 왔다.[98] 충주시 약 22만, 제천시 약 13만[99]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4만 9,883명에서 11만 185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32%에서 82.8%로 크게 늘었다. 제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11만 185명, 봉양읍 6,772명, 송학면 4,633명, 백운면 3,263명, 덕산면 2,194명, 수산면 2,044명, 금성면 1,936명, 청풍면 1,283명, 한수면 708명인데, 청풍면과 한수면은 충주댐으로 인한 수몰의 악재에 의해 인구가 줄었으며, 한수면은 인구가 1,000명을 넘지 못하는 데다 충청북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인 청주시 오창읍 (6만 8,874명) 인구의 96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게다가 2010년대 초반에는 청원군 (현재의 청주시 읍면 지역)에 인구 수로 밀리기도 했다.[100] 이 곳은 이경용 前 금강유역환경청장의 고향이기도 하다.[101] 한자가 智이다. 智씨는 전국적으로 6,070명만 있지만, 제천에는 310명이 살고 있다.[102] 현재는 청원구 (내수읍, 오창읍, 북이면), 서원구 (남이면, 현도면), 상당구 (남일면, 낭성면, 미원면, 문의면, 가덕면), 흥덕구 (오송읍, 강내면, 옥산면)로 분할. 이 과정에서 부용면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돼 부강면으로 바뀌었다.[103] 당시 괴산군 증평읍, 도안면.[104] 증평에는 사립유치원이 하나밖에 없다.[105] 주로 문백면, 초평면.[106] 주로 청천면.[107] 주로 회인면, 내북면, 산외면.[108] 청주국제공항이 있는 이 곳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 거주하는 사회복무요원들과 제주도에서 복무했던 의경, 의방들이라면 들어 봤을 지명이다.[109] 옛 청주시/청원군으로 나누면 옛 청주시 인구는 12만 3,666명에서 66만 2,677명으로 증가했고, 옛 청원군 인구는 22만 4,888명이었던 인구가 계속 감소해 2004년 11만 9,745명으로 최저점을 찍고 18만 2,316명으로 회복해 시내 인구 비중은 35.5%에서 78.6%까지 높아졌다. 구별로는 청원구 19만 4,373명 (23.4%), 서원구 19만 4,720명 (24.3%), 상당구 19만 34명 (21.2%), 흥덕구 26만 5,866명 (31.1%)이다. 부강면세종특별자치시에 뺏겼는데도 이 정도이며, 만약 부강면을 뺏기지 않았다면 청주시 인구가 85만 1,196명이 됐을 지도 모른다. 청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66만 2,677명, 오창읍 7만 66명, 오송읍 2만 3,602명, 내수읍 1만 9,527명, 옥산면 1만 8,018명, 강내면 1만 859명, 남이면 1만 118명, 남일면 6,870명, 미원면 5,030명, 북이면 4,644명, 문의면 4,029명, 가덕면 3,951명, 현도면 3,350명, 낭성면 2,260명으로 인구 2만 명 이상인 읍면이 3개나 되고, 시내 인구가 낭성면 인구의 287배나 된다. 또한 충청북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 3곳이 모두 청주에 있다. (1위 오창읍 6만 8,854명, 2위 복대1동 5만 1,474명, 3위 가경동 5만 425명) 심지어 미국에도 청주보다 인구가 적은 주가 4개나 있다.[110] 중앙유치원이 1998년 중구에서 동작구로 이전하고, 현재 폐원된 운경유치원이 용산구 동자동에서 강남구 청담동을 거쳐 송파구 가락동으로 이전하는 등 유치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정부의 강남 개발 정책에 맞물려 이전한 것이다.[111] 대구에서는 유치원 3곳이 중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112] 심지어 이 세 지역은 청주 시민들이 당일치기로 많이 찾는 지역이다. 서울 시민들이 경기도 가평군, 양평군, 포천시, 파주시강원도 춘천시, 화천군, 양구군, 홍천군 등 전방 지역을 당일치기로 많이 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113] 천안시 1921년, 청주시 1929년, 전주시 1921년, 포항시 1922년, 창원시 1926년.[114] 서울특별시 (육군사관학교) 1900년, 대전광역시 (국군간호사관학교) 1913년, 창원시 (해군사관학교) 1926년, 청주시 (공군사관학교) 1929년. 참고로 사관학교 소재지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곳은 영천시 (육군3사관학교 소재지, 1951년)이다.[115] 곽씨는 본관이 현풍이지만, 정작 관향인 대구 달성군보다 청주에 더 많이 산다.[116] 경씨는 본관이 청주 하나뿐이다. TK 지역의 경씨 인구를 합해도 청주를 못 넘는다. 청주의 유치원에서는 한 반에 청주 경씨가 2명 있는 경우도 있을 정도.[117] 민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지만 시군구로 내려가면 청주가 5,808명으로 가장 많다.[118] 아마 음성군에 살던 반씨들이 청주로 와서 이렇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119] 전국 봉씨 인구가 1만 2,927명인데 그 중 510명이 청주에 살고 있었다. 2위인 평택보다 109명 더 많다.[120] 전국 사씨 인구가 1만 730명인데 그 중 441명이 청주에 살고 있었다. 고양시보다도 많다.[121] 신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국 신씨 인구 74만 1,081명, 수도권 거주 신씨 인구 38만 7,330명),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가면 청주가 1만 9,353명으로 1위이다.[122] 전국 어씨 인구가 1만 8,849명인데 그 중 619명이 청주에 살고 있었다. 2위 용인과의 격차는 74명. 참고로 유명 유튜버인 뚜아뚜지의 성이 어씨다 (어수아, 어수지).[123] 음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국 음씨 인구 5,604명, 수도권 거주 음씨 인구 3,471명), 시군구 단위로 가면 청주가 462명으로 1위이다.[124] 지씨 자체도 수도권에 많이 살지만, 시군구 단위로 내려가면 청주가 4,331명으로 지씨 인구 1위이다. 충청북도에 유독 지씨 인구가 많은 이유는 지씨의 대종이 충주 지씨이기 때문이다.[125] 효기심은 1991년 8월 11일생(32세)이므로 1994~199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는 유치원생 시기에 컴퓨터의 주력 OS가 MS-DOS에서 윈도우 (Windows 95)로 넘어갔고, IMF 금융위기를 유치원생 말미에 겪은 셈. 엄밀히 말하면 효기심은 예명이므로 유치원은 본명인 최영효라는 이름으로 다녔다.[126] 이이경은 1989년 1월 8일생(35세)이므로 1991~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보통의 1989년생들은 1992~199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니지만 그는 1월생이라 1988년생들과 같이 유치원을 다닌 탓에 그는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을 유치원생 말미에 겪은 셈.[127] 신재환은 1998년 3월 3일생이라 2001~200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98년생들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유치원생이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4세반이었다.[128] 이 두 면은 증평군 생활권이며, 증평군 편입론도 있다.[129] 인구의 대부분이 증평읍에 몰려 있다. 증평군 읍면별 인구는 증평읍 3만 4,917명, 도안면 1,890명으로 증평읍에 94.8%, 도안면에 5.2%가 거주한다. 이러니 기차도 증평역에만 서고 (도안역은 여객 취급 중단),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이 증평읍에 설립하려고 하지 도안면에는 설립할 계획도 수립하지 않는다.[130] 인구 3만 2,949명.[131] 2019년 2만 9,816명으로 3만 명 선이 무너졌다.[132] 게다가 이 세 곳은 소멸위험지수가 낮다. 괴산군 0.2, 보은군 0.201, 단양군 0.258.[133] 한국 가톨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이름을 땄다.[134] 영동군 출신들은 어린 시절에 눈이 오면 유치원이 며칠씩 휴원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135] 영동군의 중심지인 영동읍에 평지가 좀 있을 뿐 나머지 지역은 거의 산지이다. 게다가 인근에 행정단위가 시급 이상인 동네가 김천시 하나뿐이다.[136] 영동읍 역시 2만 6,264명에서 2만 911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21.3%에서 44.7%로 높아졌다. 영동군의 읍면별 인구는 영동읍 2만 911명, 황간면 4,376명, 용산면 3,298명, 심천면 3,272명, 양강면 3,249명, 학산면 2,852명, 상촌면 2,388명, 추풍령면 2,300명, 매곡면 1,943명, 양산면 1,872명, 용화면 1,014명으로 영동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인구가 5,000명을 넘지 못하고 심지어 용화면은 인구가 1,000명 이하였다 이상이었다를 반복한다.[137] 첫째 김한나는 1983년 4월 2일생(41세)이므로 1987~1989년에, 둘째 김한별은 1984년 8월 18일생(39세)이므로 1988~1990년에, 셋째 김한샘은 1985년 12월 24일생(38세)이므로 1989~199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시절에는 1988 서울 올림픽, 롯데월드 어드벤처 개장, 1990 이탈리아 월드컵 3연패,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을 차례대로 겪은 셈. 형제자매가 같은 유치원을 다닌 경우가 있지만, 이 3자매가 모두 같은 유치원을 나왔는지는 불명.[138] 주로 서울이나 청주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고, 드물게는 대전에서 대학을 다닌 교사도 있다. 21세기에는 방송통신대학교를 통해 보은군을 떠나지 않고 학위를 취득한 교사도 소수 존재한다.[139] 보은군과 단양군은 충청북도에서 대학이 없는 단 둘뿐인 군이다.[140] 1위는 증평군 (1955년 샛별유치원), 2위는 영동군 (1957년 영동제일교회 부설 유치원)이다. 충북 군 지역에 유치원이 들어온 순서는 증평-영동-보은-음성-옥천-괴산-진천-단양 순이다.[141] 대표적으로 남양주시가 있다. 이 곳은 서울과 가까운데도 유치원은 1981년에야 들어왔다.[142] 조계종 교구본사 중 하나로, 스님들이 세븐포커 도박판을 벌여 물의를 빚은 그 절 맞다.[143] 옛날에는 개천절 무렵에 첫눈이 내리고, 어린이날에도 눈이 와서 당시 보은군 주민들은 어린이날까지 겨울이라고 인식했다.[144] 보은군 중 대전, 청주와 접한 곳이 회인면, 회남면, 내북면, 산외면이고 시내까지는 거기서 또 한참을 가야 할 정도이다. 심지어 고려 시대에는 보은, 옥천, 영동이 충청도가 아니라 경상도(!!!)였다. 이런 이유로 보은에서 유치원에 다니는 원생과 교사들 중 간혹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섞인 표준어나 충청 방언을 구사하는 경우가 있다.[145] 게다가 그 시절에는 보은군이 옥천군, 용인군, 김포군보다 인구가 많았고, 양평군과의 격차도 그리 크지 않았다. 1969년에 옥천에 추월당하고 1990년에는 진천에게마저 추월당해 현재는 옥천군은 물론 진천군, 증평군에게까지 추월당할 정도이며 양평군조차 보은 인구의 3배를 넘는다. (양평 약 11만, 보은 약 3만 3천)[146] 1972년에 10만 명 선이 무너진 후 1994년에는 5만 명 선이 무너졌고, 2003년쯤을 기점으로 보은군 인구 4만 명 선이 무너졌다. 그만큼 보은읍을 제외한 다른 면들이 열악한 셈이다. 보은군 읍면별 인구는 보은읍 1만 4,938명, 삼승면 2,295명, 마로면 2,193명, 수한면 1,932명, 속리산면 1,907명, 산외면 1,785명, 회인면 1,763명, 내북면 1,704명, 탄부면 1,667명, 장안면 1,467명, 회남면 761명으로 보은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3,000명 미만이며 특히 회남면은 대청댐의 영향으로 인구가 1,000명을 못 넘는다. 그만큼 보은군 인구의 읍내 집중도는 높아서 1970년 당시 19.8%였던 보은읍 인구의 비중이 2019년 45.4%로 높아졌다. 양평군 용문면도 여기보다 인구가 많다 이런 이유로 사회복무연수센터의 위치가 여기로 결정된 것이고 (정확히는 보은군 장안면 장안로 323-88. 2020년에는 이 곳이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로 이용된다.), 현재 이 곳의 소멸위험지수가 0.192로 떨어져 결국 소멸 고위험지역이 됐다.[147] 1996년 이후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했다. 양구에 사는 유아들은 춘천에 가야 사립유치원을 다녀 볼 수 있다.[148] 단양에 사는 유아들은 사립유치원을 다니려면 제천이나 영주로 가야 한다.[149] 음성읍 1만 6,951명, 금왕읍 1만 9,222명으로 금왕읍의 인구가 3,238명 더 많다. 그나마 과거에는 음성읍이 금왕읍보다 인구가 더 많았으나 (1970년 음성읍 2만 942명, 금왕읍 2만 233명) 2000년대 들어서 역전되었다.[150] 음성군의 읍면별 인구는 금왕읍 1만 9,222명, 음성읍 1만 6,951명, 대소면 1만 5,714명, 맹동면 1만 3,094명, 감곡면 1만 45명, 삼성면 6,933명, 생극면 4,526명, 원남면 3,062명, 소이면 2,906명으로 인구 1만 명 미만인 면이 4개나 있다.[151] 감곡면은 예외로 이천시 장호원읍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이 두 지역이 청미천을 사이에 두고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있으며, 과거 통금 제도가 있던 시절 장호원읍에 살던 아저씨들이 술을 마시다가 통금을 넘기면 다리를 건너 감곡으로 넘어갈 정도로 교류가 깊기 때문이다.[152] 거제 반씨의 집성촌이 음성에도 있는데, 반기문이 반씨 집성촌 중 한 곳인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서 태어났다.[153] 황지애는 1988년 3월 30일생(36세)이므로 1992~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을 유치원 때 겪은 셈.[154] 그 와중에 옥천읍의 인구는 1960년대 2만 1,340명에서 2021년 2만 8,977명으로 늘었으며, 한때는 인구가 3만 명을 넘기기도 했다. 그만큼 옥천읍 집중도도 높아져서 1960년대에 19%였던 옥천읍의 비중은 2019년 57.3%까지 높아졌다. 옥천군의 읍면별 인구는 옥천읍 2만 8,977명, 이원면 4,253명, 동이면 3,220명, 군북면 3,045명, 청산면 3,036명, 청성면 2,347명, 군서면 2,290명, 안내면 1,941명, 안남면 1,418명으로 면 지역 중 인구가 5,000명을 넘는 곳은 없다.[155] 다만, 1991년부터 2003년까지는 증평읍, 도안면이 충청북도 증평출장소 소속이라 괴산군은 이들 지역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괴산군수, 괴산군의회 선거에 참여했다고.[156] 1991년 충청북도 증평출장소 설치, 2003년 증평군 분리.[157] 증평군 제외 시 약 13~14만 명.[158] 2008년 3만 6,566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2010년대 들어서 증가세로 돌아서서 현재는 3만 9,393명으로 회복했지만, 소멸 위험 지수는 0.200으로 오히려 낮아져 지역 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심지어 괴산읍의 인구도 1만 506명밖에 안 된다. 괴산군의 읍면별 인구는 괴산읍 1만 506명, 청천면 5,226명, 청안면 3,631명, 칠성면 3,231명, 불정면 2,939명, 사리면 2,917명, 연풍면 2,419명, 문광면 2,231명, 감물면 2,190명, 소수면 2,103명, 장연면 2,000명으로 괴산읍, 청천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인구가 5,000명도 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열악하다. 과거 청천면은 2만 702명으로 괴산읍보대 인구가 많았으나 그대로 몰락하면서 괴산읍보다 적어졌다. 현재 괴산군보다 인구가 적은 충북의 지자체는 증평군 (3만 6,807명), 보은군 (3만 2,412명), 단양군 (2만 9,816명)뿐이다. 만약 증평군이 분리되지 않았다면 괴산군의 인구는 7만 6,582명이 됐을 것이다.[159] 이 동네 사람들은 생활권이 괴산읍이라 칠성면의 칠성초등학교 대신 괴산읍의 괴산명덕초등학교로 가는 경우가 있다.[160] 때문에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 선거구 획정 당시 괴산군에서 투표 거부 운동이 강하게 일어난 것이다.[161] 이 때는 보은군, 단양군보다 인구가 적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진천이 인구를 조금씩 회복하는 와중에 보은과 단양은 인구가 계속 줄어 1991년 진천이 보은과 단양을, 2000년 영동을, 2002년 옥천을 인구 수로 추월한 이후, 지금은 보은군조차 진천군의 40% 수준밖에 안 된다.[162] 읍면별 인구는 진천읍 3만 13명, 덕산읍 2만 8,280명, 광혜원면 1만 534명, 이월면 6,067명, 문백면 3,524명, 초평면 3,218명, 백곡면 2,082명으로 진천읍, 덕산읍에 몰려 있다.[163] 과거 덕산면. 참고로 이 동네는 이투스의 스타 강사 이지영이 잠시 살았던 동네이기도 한데 (심지어 초가집에서 살았었다.), 이지영의 말버릇 중 하나인 '진천군 덕산면 옥동리에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정작 이지영은 인천 출신으로, 가난으로 인해 유치원을 다녀 보지 못했거나 상대적으로 원비가 낮은 병설유치원을 다녔을 가능성이 높다.) 우연의 일치로 덕산읍에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있다.[164] 이로 인해 단양군은 아예 군청을 별곡리로 옮겼고, 원로배우 임하룡은 이 때 실향민이 됐다. 단양읍 인구도 1만 883명으로 감소한 건 덤.[165] 이 때는 매포읍이 단양읍보다 인구가 많았다. 매포읍 1만 9,667명, 단양읍 1만 9,077명.[166] 2001년 인구 4만 명 선이 무너진 후 2019년에는 3만 명 선도 무너졌다. 단양읍 역시 1만 9,077명에서 1만 615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20.5%에서 36.5%로 높아졌다. 단양군의 읍면별 인구는 단양읍 1만 615명, 매포읍 5,419명, 영춘면 3,299명, 대강면 2,499명, 가곡면 2,102명, 어상천면 1,932명, 단성면 1,755명, 적성면 1,534명으로 단양읍과 매포읍을 제외한 나머지 읍면은 인구가 5,000명을 넘지 못할 만큼 매우 열악하다.[167] 단양과 제천은 국회의원 선거구가 같고, 단양에서 제천으로 가는 교통편이 잘 발달돼 있어 단양에 사는 아이들이 사립유치원을 갈 때는 거의 제천으로 간다.[168] 단양군에는 대학이 없다. 단양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절대다수가 원주, 충주 등 인근의 큰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했다.[169] 어느 정도냐면, 단양군 5대 성씨가 ‘김이박장최’일 정도. 이는 단양 장씨의 영향이 크다.[170] 증평군은 김이박연, 옥천군과 영동군은 김이박정, 단양군은 김이박장 순서이다.[171] 최영래는 1982년 5월 13일생(41세)이므로 1986~198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시절에는 컴퓨터라고 하면 DOS플로피 디스크를 먼저 떠올리고 1988 서울 올림픽이 한창이라 몽촌토성에 대한 관심은 매우 컸고, 반대로 풍납토성은 문화재라는 인식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당시 풍납동은 침수가 잦은 탓에 별명이 물납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