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지역별 현황/호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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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주광역시[편집]


1920년 설립된 광주중앙유치원 (당시 광주유치원)이 최초이다. 광주광역시가 광주시도 아니고 광주군이었을 때 설립되었으며, 전남권 최초로 설립된 유치원이다.[1] 광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4년~191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9~110세이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양림동, 양동 등에 살던 유아들이 광주 시내, 나주[2]장성, 화순[3]에서 기차를 타고 광주의 유치원으로 통학하는 경우도 있었다.

1914년생부터 1979년생까지는 유치원생 시기에 광주가 전라남도 소속이었으나, 1980년, 1981년, 1982년생은 유치원 재학 도중에 광주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됐으며 1983년생부터는 유치원 입학 이전에 광주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됐다.

해방 전 광주의 유치원은 주로 동구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다가 1935년 광주군 광주읍이 광주부로 승격되고[4] 광주 시가지가 팽창하면서 점차 외곽 지역에도 유치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생겨난 유치원들은 다음과 같다. 또한 기존 동구에 있던 유치원들 중 일부가 여기로 옮겨 갔다.

한편, 광주시 최초의 유치원인 광주중앙유치원은 2003년까지 동구 금남로에 있었으나 교회가 서구 화정동으로 이전하면서 따라갔다. 다만, 이 곳은 서구[5] 최초의 유치원이 아니다.

사립유치원은 전남과 전북을 통틀어 가장 많은 191곳 있다. 동구 8곳, 서구 37곳, 남구 29곳, 북구 65곳, 광산구 52곳이었다. 1960년대 53만 2,235명이던 인구가 2021년 145만 62명으로 늘면서[6], 유치원도 같이 늘어났다.

광주는 수도권을 제외하면 기씨[7], 범씨[8], 선씨[9], 위씨[10] 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 서울보다 기씨, 범씨, 선씨, 위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를 보기 쉽다고 한다. 본관까지 내려가면 광산 김씨, 나주 정씨, 함평 이씨[11] 등의 성씨들도 역시 보기 쉬울 정도. 다만 기, 범, 선, 위씨 모두 10위권 밖인데 광주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강, 임, 윤, 장, 오씨라 이들 성씨인 원생보다 보기는 힘들다. 또한 전라도라는 지역적 특성상 권씨가 상대적으로 드물다.

야구선수 김병현은 1982년에서 1984년 사이에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12] 강정호 역시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는데 1991~1993년 사이에 다녔다.[13] 양궁선수 안산은 2004~200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14]

2021년 2월 5일 광주의 한 유치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유치원에 선별진료소가 설치되었다. 같은 해 5월 22일에도 유치원생 확진자가 또 생겼고, 12월 23일에도 확진자가 생겼다.


1.1. 동구[편집]


1920년 설립된 광주중앙유치원 (당시 광주유치원)이 최초이다. 광주광역시가 광주시도 아니고 광주군이었을 때 설립되었으며, 전남권 최초로 설립된 유치원이다.[15] 광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4년~191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9~110세이다.

1.2. 광산구[편집]


1931년 송정중앙교회 부설유치원 현존하는 최고는 1981년 설립된 송정중앙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면. 1986년부터 1988년까지는 이 곳이 송정시 최초의 유치원이었다. 첫 입학생은 1925년~192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98~99세이다.


1.3. 남구[편집]


1970년 월산유치원. 월산동 소재.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첫 입학생은 1964년~1966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9~60세이다.


1.4. 북구[편집]


1978년 현대유치원.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첫 입학생은 1972년~1974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1~52세이다.


1.5. 서구[편집]


광주시에 편입된 뒤로도 아직까지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동네들은 대규모 개발 이후에야 겨우 유치원이 들어왔다.

1981년 송학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전라남도 광산군 서창면. 1986년부터 1988년까지는 이 곳이 광산군 최초의 유치원이었다.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2. 전라남도[편집]



2.1. 목포시[편집]


1921년 일본인 전용으로 설립된 명조유치원이 최초이다. 전주시보다 2달 늦게 유치원이 들어왔다. (전주 1921년 7월, 목포 1921년 9월). 목포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한국인 원생들은 1917년~1919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6~107세이다. 일본인은 1915, 1916년생도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다.

목포에 설립된 최초의 한국인 유치원은 1923년에 설립된 희성유치원이었으나, 현재는 폐원되었다. 현존하는 유치원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38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경동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모유치원이다. 이 곳에 처음으로 입학한 사람들은 1932년~1934년생인데, 첫 졸업생들은 현재 살아 있다면 91~92세가 됐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무안군 (주로 일로읍, 삼향읍)에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으나 현재 무안에서의 원정 통학 건수는 줄어들었고[16], 목포의 유치원 추첨에 모두 떨어진 아이들이 영산강 하굿둑을 건너 영암군 삼호읍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한다.

목포시의 성씨 분포 특성상[17] 목포의 유치원에는 이씨보다 박씨 성을 가진 원생이 더 많을 정도이다. 실제 성씨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목포시 10대 성씨는 김, 박, 이, 최, 정, 강, 조, 윤, 오, 서씨이다.

인구는 여수가 더 많지만 (여수 약 28만,목포 약 23만), 사립유치원은 전남에서 가장 많은 26곳 있다. 1960년대 16만 2,166명이던 인구가 2020년 22만 9,235명으로 늘었는데도 그대로다.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이주석[18]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4월 23일 목포의 유치원 교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2. 순천시[편집]


1924년 설립된 순천중앙유치원이 최초이다. 순천시 매곡동 소재로, 전라남도 동부[19] 최초의 유치원이며, 이후 1926년 순천유치원, 1928년 소화유치원이 설립되었다. 현존하는 유치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1950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저전동 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모유치원이다. 순천시 저전동 소재로, 순천여자고등학교에서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어 간혹 가다가 성모유치원 졸업생인 순천여자고등학교 출신들이 스승의 날 등에 순천성모유치원을 방문하기도 한다. 이 곳을 처음 다닌 사람들은 1944년~1946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이 현재 79~80세의 어르신이 됐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벌교읍이나 광양읍에서 기차를 타고 순천에 있는 유치원에 다니기도 했다. 2020년 현재는 광양시에서의 원정 통학 건수는 줄었으나 교통의 발달과 농어촌 지역의 사립유치원 감소가 겹치면서 곡성군, 구례군, 고흥군, 보성군[20] 등지에서는 순천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건수가 제법 되는 편이다. 특히 곡성군보성군철도[21]를 이용한 원정 통학 건수가 제법 되며, 구례군순천완주고속도로, 고흥군남해고속도로 개통 이후 원정 통학 건수가 늘었다. 순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8년~1920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5~106세이다.

한편 오랫동안 시골로 남아 있었고 지금도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이 많은 옛 승주군 지역에는 1980년대에 와서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되었고 황전면에 살았던 유아들은 강 건너 구례군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사립유치원은 23곳 있는데, 신대지구 개발의 영향으로 시내에만 몰려 있지 않고 해룡면에도 있다. 1960년대 23만 7,196명이던 인구가 2019년 28만 1,534명으로 늘었다가 같은 해 27만 9,578명으로 감소, 2021년 28만 2,189명으로 증가하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는데도[22], 유치원의 수는 그대로다. 순천시의 유치원들은 순천만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매우 많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순천시 상위 10개 성씨가 김-이-박-정-최-조-장-강-서-송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며, 권(權)씨는 보기 드물다.[23]

김옥빈이 순천에서 유치원을 다녔다[24]고 한다.

2021년 1월 8일 순천시의 유치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또 2021년 1월 27일 1명, 9월 8일 7명, 9월 15일 1명의 유치원생이 추가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3. 고흥군[편집]


1926년 설립된 고흥유치원이 최초로, 1980년에 새로 설립된 고흥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 고흥군에 2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자, 고흥군 최초로 철제 미끄럼틀이 들어온 유치원이다. 1920년생부터 1922년생까지를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들은 사망했거나, 살아 있을 경우 103~104세가 됐을 정도로 역사가 길다.

나머지 다른 사립유치원은, 도양읍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녹동성당 부설 성 바오로 유치원이다. 고흥군 자체가 타 지역과의 접근성이 떨어지고[25] 별다른 산업단지가 들어서지 않아서, 1960년대 23만 4,592명이던 인구가[26] 2021년 6만 3,922명으로 줄면서[27],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이런 이유로 면에 사는 아이들은 몇몇 예외적인 케이스를 빼면 사립유치원을 다니지 못하고[28]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닐 수밖에 없다.

지역적 특성상 고흥 류씨, 영광 정씨, 고령 신씨 등 고흥에 집성촌이 있는 성을 가진 원생과 교사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어느 정도이면 고흥 출신자들 중 일부는 자신이 유치원 시절 만났던 담임교사의 성씨가 류씨나 신씨였다고 할 정도이다. 이는 실제 통계로도 잘 증명되는데 고흥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송-신-정(鄭)-최-장-류-정(丁)이라 신씨가 5위, 류씨가 9위, 정씨가 10위이다.

전라도 중에서는 의외로 폭설에 의한 휴원이 잦아, 유치원 앞에 제설차가 지나가는 풍경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참고로 박지성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나왔다[29]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4. 강진군[편집]


1929년 설립된 강진읍교회 부설유치원이 최초이다. 광역시울산시는 물론, 경기도에 있는 도시들 중 29곳이 강진군보다 유치원이 늦게 설립되었다. 1923년생부터 1925년생까지를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현재 첫 졸업생들은 사망했거나, 살아 있더라도 100~101세가 되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그러나 현재 강진읍교회 부설유치원은, 강진군의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하여 휴원 상태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은 1981년 설립된 성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사립유치원은 없다. 이는 고령화와 이촌향도에 따른 인구 급감의 영향이 큰데, 1960년대 12만 6,812명이던 인구가 2021년 3만 4,597명으로 줄면서[30],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때문에 강진군에 사는 유아들은 거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해남군, 장흥군 등지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니는 실정이고, 강진군에서 태어난 유아교사들도 비슷한 처지인데, 다른 지역의 대학[31]에 있는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임용고시에 통과해야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고, 사립유치원에 취업하려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 정도[32]이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강진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윤-최-정-강-조-오-장 순서라 최씨보다 윤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그나마 그 윤씨들 대부분이 해남 윤씨다.

인터넷 방송인 이기광이 이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5. 영광군[편집]


1930년 영광읍 무령리에 설립된 영광읍교회 부설유치원이 최초이다. 1955년에 현 위치로 이전했다. 1924년~1926년생이 첫 입학생이고, 첫 졸업생들은 모두 사망했거나, 혹은 99~100세의 어르신이 됐을 정도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사립유치원은 영광읍교회 부설유치원을 포함해 2곳이 있는데, 영광읍교회 부설유치원과 중앙유치원은 영광읍에 있고 샛별유치원은 홍농읍 상하리에 있었으나 폐원되었다. 심지어 경기도에 있는 도시들 중 27곳이 여기보다 유치원이 늦게 들어왔다.[33] 이는 영광군의 지리적 특성상 개발에 불리해[34] 인구가 유출되면서 1960년대 15만 9,451명이던 인구가 2021년 5만 3,099명으로 줄면서[35] 같이 줄었다. 심지어 백수읍은 읍 주제에 사립유치원이 없다. 미래에 영광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된다면 영광군에 사는 유아들은 사립유치원을 다니기 위해 광주까지 가야 한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영광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강-정(丁)-장-임-서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골프선수 신지애와 체조선수 김대은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10월 16일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 발생했다.

2.6. 보성군[편집]


1932년 보성읍 보성리에 설립된 보성유치원이 최초이다(현재는 휴원 상태). 보성에 2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다. 보성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6년~1928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97~98세이다.

보성읍보다 벌교읍의 인구가 더 많은데도[36], 사립유치원은 모두 보성읍 1곳에 몰려 있는 특징이 있다. 이유는 아마 벌교 사람들은 다들 보성읍의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병설유치원이나 순천에 있는 유치원에 보내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벌교읍의 생활권은 순천에 가깝고, 벌교역 앞에서 88번 버스가 와서 순천까지 한 방에 질러 주니 벌교 주민들도 순천에 있는 유치원으로 보내고 싶어할 것이다. 사실 옛날에는 벌교읍에도 사립유치원이 있었으나 벌교읍 자체의 인구 감소와 순천시 사립유치원으로의 유아 유출 등이 겹쳐서 폐원되는 바람에 없어진 것이다. 벌교읍 외에도, 웅치면[37]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에는 공립 병설유치원만 있다. 게다가 보성군에는 대학이 없어서 보성군 출신이 고향에서 유아교사로 일하고 싶으면 광주나 순천 등지에 있는 대학을 다니거나 방송통신대를 졸업한 후 유아교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보성군으로 돌아와야 한다.

1960년대 18만 1,161명이던 인구가 2021년 4만 482명으로 줄면서[38] 유치원 수가 줄었다. 특히 벌교읍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는데, 1966년 4만 5,633명으로 벌교시 승격을 노리던 수준의 인구가 1만 1,913명으로 줄어 읍내에 있던 사립유치원들이 모두 폐업했다. 때문에 벌교읍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순천에 있는 사립유치원에 다닐 수밖에 없으며, 미래에 보성군의 모든 사립유치원이 폐원되면 보성군 거주 유아들은 순천시 등지로 가야 사립유치원을 다닐 수 있게 된다. 심지어 득량초등학교 병설유치원과 문덕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생을 다 합쳐도 1명밖에 없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보성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송-문-안-임-강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코미디언 한현민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7. 담양군[편집]


1932년 담양읍 천변리에 설립된 담양유치원이 최초이다. 지역 대지주인 국채웅이 사재 1만 엔을 들여서 설립했다. 현재는 원생 수 감소로 휴원 상태. 첫 입학생들은 1926년~1928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이 살아 있다면 97~98세의 할머니, 할아버지일 정도로 유서가 깊은데도 이 모양이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담양읍 객사리, 담주리, 지침리, 천변리, 양각리에 살았다고 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81년 설립된 고서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사립유치원은 담양읍 지침리에 1곳 있다. 이는 지형상의 이유로 광주 시가지가 담양까지 확장되지 못해 인구가 광주 등지로 유출되는 바람에 1960년대 12만 6,805명이던 인구가 2021년 4만 6,280명으로 줄어든[39] 탓이 크다. 교통의 발달로 인해 수북면에서 담양읍 에덴유치원으로 등하원하는 유아들도 있고, 고서면과 대전면에서는 아예 광주로 가는 유아들도 있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담양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강-조-송-임-장 순서라 윤씨보다 송, 임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야구선수 김창평[40]과 축구선수 나상호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8월 14일 담양군의 유치원생 3명이, 9월 12일 1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되었다.


2.8. 구례군[편집]


1938년 구례읍 봉동리에 설립된 구례중앙교회 부설 중앙유치원이 최초였으나 구례군의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1996년 폐원된 뒤 어린이집으로 전환되었다. 이 유치원의 마지막 졸업생은 1990년생이고 1991, 1992, 1993년생은 인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분산 배치되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78년 설립된 청운유치원이 최초로, 구례군 유일의 사립유치원이다. 구례읍 봉동리 소재. 구례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32년~1934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91~92세이다. 그 전에는 섬진강 건너편 순천시 황전면의 구례구역에서 전라선 열차를 타고 순천으로 가야 했다.

지리적 이유로 폭설에 의한 휴원이 전라남도 동부치고는 잦은 편이다.

순천 시가지가 지형상의 이유로 구례로 확장되지 못하고, 1960년대 7만 8,337명이던 인구가 2021년 2만 5,719명까지 줄어[41] 전라남도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군 지위를 50년 넘게 유지해서, 사립유치원이 경영악화를 감수하고 설립할 이유가 없었다. 때문에 2030~2040년대에는 구례군마저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되어 남원이나 순천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구례군 거주 유아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구례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강-장-조-양-한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가수 인호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9. 여수시[편집]


1945년 여수시 문수동에 설립된 여수중앙유치원이 최초이다. 8.15 광복 후 정확히 1달 뒤에, 여수시가 아직 여수군이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여수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39년~1941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4~85세이다.

사립유치원은 21곳 있다. 소라면 죽림리의 킨더숲유치원 딱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내 (옛 여수시+여천시)에만 있다. (다만 섬 지역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 해방 후 1970년대까지 여수시의 유치원은 주로 옛 여수시 지역에 설립되었고, 한동안 시골이었던 옛 여천시와 여천군 지역에는 여천공단 개업과 동시에 실시된 대규모의 개발 이후에야 겨우 유치원이 들어왔다.

  • 여천시: 1981년 소호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전라남도 여천군 쌍봉면.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 여천군: 1981년 거문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소라초등학교 병설유치원, 화양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1960년대 25만 8,163명이던 인구가 1995년 31만 4,178명을 찍은 뒤 증감을 반복하다 2021년 28만 242명으로 정체되었지만[42], 유치원 수는 늘었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여수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강-조-장-서-임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수영선수 정다래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43]

2021년 7월 19일 여수의 병설유치원에서 3세 원아가 어머니와 함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21일까지 총 25명이 확진되었다.

2.10. 완도군[편집]


1945년 완도읍 군내리 소재의 완도읍교회에서 완도유치원을 설립했으나, 현재는 청해어린이집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용도 변경을 제외하면 1980년 설립된 약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로, 특이하게 완도읍보다 약산면에 먼저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완도읍 최초의 유치원은 1981년 개원한 화흥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완도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39년~1941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4~85세이다.

사립유치원은 2곳 있는데, 모두 완도읍 군내리에 있다. 특히 금일도[44]노화도는 행정구역이 읍인데도 불구하고 사립유치원은 하나도 없다. 섬이 흩어진 지리적 특성상 사립유치원은 거의 완도읍, 군외면 거주 유아들이 다니며[45], 고금면, 약산면 등 다른 섬에 사는 유아들은 거주하는 면에서 병설유치원을 다닌다. 물론 드물게 고금면에서 읍내 사립유치원으로 가는 유아도 있다.[46]

1960년대 14만 51명이던 인구가 1970년대 14만 3,095명까지 늘었다가 2021년 4만 9,916명으로 줄면서[47] 지역 사립유치원의 경영이 악화되었다. 이렇게 되면 10년 안에 완도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완도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황-강-임-조-신 순서라 조씨보다 황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전직 당구선수 차유람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11. 함평군[편집]


1945년 설립된 함평읍교회 부설유치원이 최초였으나 함평군의 인구 감소로 휴원 상태이다. 함평읍 함평리 소재였다. 함평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39년~1941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4~85세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80년 설립된 대동향교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사립유치원은 함평읍 함평리에 있는 샛별유치원 1곳뿐이었으나, 그마저도 2020년 폐원되어 함평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했다. 이는 함평군에서 함평읍 (인구 8,401명)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의 인구가 4,000명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라 사립유치원을 설립해도 원생을 모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2명[48]이나 배출했음에도 사립유치원은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인구 감소 탓이 크다. 지형상의 이유로 광주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하고 인구가 끊임없이 유출되어, 1960년대에 13만 8,908명이었던 인구가 1/4 수준인 3만 2,050명까지 쪼그라들었다.[49] 때문에 사립유치원이 경영악화를 감수하고 함평까지 내려와서 설립할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이 추세라면 늦어도 2020년대 중후반에는 함평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군 대열에 합류해[50] 함평군에 사는 유아들도 공립유치원을 다니거나 아예 광주, 목포 등지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니게 된다. 결국 2020년 함평군에 있던 모든 사립유치원이 폐원되어 함평군에 사는 유아들은 타지로 원정을 가야 사립유치원을 다닐 수 있는데 함평읍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은 광주로 많이 가지만, 학교면, 엄다면은 목포로 많이 간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함평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장-윤-서-임-조 순서라 조씨보다 윤, 서, 임씨들을, 최씨보다 정씨를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야구선수 노경은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12. 장흥군[편집]


1946년 장흥읍 건산리에 설립된 장흥읍교회 부설 유치원이 최초였으나, 인구 감소로 현재는 에덴어린이집으로 용도가 변경된 상태이다. 현존하는 곳은 1970년 설립된 중앙유치원이 최초이다. 장흥에 2곳(장흥읍 건산리, 남동리 각 1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다. 장흥에서 유치원을 다닐 수 있었던 최초의 원생은 1940년~1942년생으로, 첫 졸업생이 현재 83~84세가 되었다. 그 이전 세대는 유치원 교육의 혜택을 아예 받지 못한 셈. 이는 장흥읍이 과거 전라남도 5대 읍에 속했기 때문.[51] 때문에 나머지 읍이나 면 지역에서는 읍내나 목포 등지로 가야 사립유치원을 다닐 수 있다. 장흥군 출신인 유아교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고[52] 장흥군으로 돌아와야 고향에서 취업할 수 있다.

주변이 모두 군 지역이라 인구 유입보다 유출이 많아[53] 유치원이 늦게 들어왔다. 그나마도 사립유치원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데, 1960년대 14만 4,478명이던 인구가 2021년 3만 7,800명으로 줄었기 때문이다.[54]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장흥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문-백-안-윤-기타 희귀 성씨들 전체[55]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며, 위씨마씨 역시 상대적으로 보기 쉽다. 이는 위씨가 장흥 위씨, 마씨가 장흥 마씨 하나뿐이기 때문. 완도군 금일읍과 더불어 김해 김씨 축은공파[56] 출신인 원생을 보기 쉽다고 한다

배구선수 김규민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57]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13. 해남군[편집]


1946년 설립된 해남유치원이 최초로, 해남읍 수성리 소재였다. 해남에 3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였으나 2019년 8명의 졸업생으로 마지막 졸업식을 치른 뒤 폐원됐다.[58] 현재 남아 있는 2곳의 사립유치원도 모두 해남읍에만 있다. (구교리 해남원광유치원, 구교리 미래클유치원) 화원면과 문내면은 목포와 가까운데도[59] 사립유치원은 없다. 해남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0년~194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3~84세이다. 당시 원생들은 해남읍 수성리, 구교리, 성내리, 읍내리, 평동리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는 해남군에서 해남읍만 2만 4,912명으로 1만 명을 넘고 다른 면의 인구가 1만 명도 안 되기 때문에[60] 사립유치원을 세워도 원생을 모집하기 곤란한 점 때문이다. 이로써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치원 타이틀은 1981년 설립된 삼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가져갔다. 이 곳의 첫 원생은 1975년~1977년생, 첫 졸업생은 48~49세이다. 지리적인 이유로 개발에 불리하여[61] 인구가 줄면서 유치원 경영난이 악화되고 있는데, 1960년대 22만 9,747명이던 인구가 2021년 6만 8,806명으로 줄면서[62],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해남군 화원면, 문내면은 해남읍보다 목포가 더 가까워, 목포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배를 타고 갔으나, 현재는 자동차로 많이 간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해남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윤-강-오-임-장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윤씨가 강씨보다 많은 것은 해남 윤씨 때문이다.

레이싱모델 주다하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14. 나주시[편집]


1948년 나주시 성북동에서 개원한 나주교회 부설 유치원이 최초였으나, 11만 4천 명에 불과한 나주시의 인구 때문에 현재는 휴원 중이다. 현존하는 곳 중에서는 1964년 까리따스 수녀회에서 설립한 까리따스성모유치원이 최초로, 까리따스 수녀회는 나주 말고도 여러 지역에서 어린이집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나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2년~1944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1~82세이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나주시 성북동, 과원동, 중앙동, 삼도동, 청동, 대호동, 금성동 일대에 살았다고 한다.

까리따스성모유치원은 나주시가 아직 나주군이었던 시절에 개원되었다. 위치는 나주시 대호동으로 동신대학교에서 가까이 있다. 최초의 원생은 1958년~1960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이 현재 65~66세가 됐고, 그 이전에는 나주역에서 호남선 기차를 타고 광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다니기도 했다.[63] 한편 나주에서도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옛 나주군 지역에는 1980년대에야 겨우 유치원이 설립됐다.

  • 옛 나주군 지역: 1981년 금천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사립유치원은 5곳 있는데, 1곳은 빛가람동에, 나머지 4곳은 나주 시내에 있다. 1960년대 24만 5,162명이던 인구가 2010년 7만 8,679명까지 줄었다가 2021년 11만 5,613명으로 회복[64]해서 사립유치원이 증가했고, 차후 인구 증가로 사립유치원이 더 들어올 수도 있다.

나주는 전국에서 나씨 비중이 가장 높아서[65] 나주 출신들은 유치원 시절 한 반에 나씨 성을 가진 원생이 몇 명은 꼭 있었고, 심지어는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 적어도 한 명의 교사는 나씨였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이다. 실제 나주시의 성씨 통계를 보면 10위까지의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강, 나, 임, 윤, 장씨로 나씨가 무려 7위이다.

가수 나단비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15. 광양시[편집]


1950년 설립된 광양제일교회 부설 무궁화유치원이 최초로, 광양시가 아직 광양군이었던 시절에 설립되었다. 1944년~1946년생들이 첫 원생이었으며, 첫 졸업생들은 현재 79~80세의 어르신이 됐다. 당시 원생들은 광양읍 구산리, 칠성리, 읍내리, 목성리, 인동리, 덕례리에서 살았다고 한다.

특이하게 시내보다 광양읍에 먼저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이는 당시 광양읍이 광양군의 중심지였고, 시내는 골약면이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유치원은 1979년 설립된 광양동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옛 동광양시 지역이자 현재의 시내에는 제철소 개발이 시작된 1980년대에야 겨우 유치원이 들어왔다.

  • 동광양시: 1984년 광영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광양군 옥곡면 관할.[66] 첫 입학생은 1978년~1980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5~46세이다.

여담으로 광양시는 전라남도의 시 중에서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왔다. 원래 전라남도 자체에 시가 5개밖에 없으니(...).[67] 호남권 전체로 넓히면 김제시, 정읍시가 더 늦지만 모두 1950년대이다.

사립유치원은 12곳 있는데 시내에 10곳, 광양읍에 2곳 있다. 그 전에는 광양에 사는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순천에 있는 유치원으로 다니기도 했다. 1960년대 9만 7,748명이던 인구가 1980년대 7만 8,626명까지 줄었다가 2021년 15만 1,769명으로 늘면서[68] 유치원 수가 늘었다.

순천, 여수, 광양은 상호 교류가 잦아 순천에 사는 유아들이 광양에 있는 유치원으로 오거나, 광양에 사는 유아들이 순천의 유치원으로 가기도 한다. 반면 여수의 경우 해룡면 쪽으로 돌아서 가야 한다는 불편으로 인해 광양에서는 잘 오지 않고 순천에서 더 많이 온다. 실제로 광양읍에 가면 순천의 유치원 버스들이 도로를 지나갈 정도.[69]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광양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서-강-장-조-윤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축구선수 이슬찬[70]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7월 15일 광양에서 4세 유치원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해당 유치원생 53명과 교직원 7명이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2.16. 진도군[편집]


1964년 설립된 진도유치원이 최초이다. 진도에 2곳(진도읍 교동리, 성내리 각 1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다. 진도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8년~1960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65~66세이다. 진도읍에 2곳 있는 사립유치원들은 직선거리로 450m 떨어져 있을 정도로 매우 가깝다.

진도군은 전국에서 4곳밖에 없는 박씨가 이씨보다 많은 동네[71]라 해당 지역에 있는 유치원은 원생들 중 박씨가 이씨보다 많은 곳이 많다. 실제 진도군 10대 성씨도 김, 박, 이, 조, 최, 정, 한, 장, 강, 허씨인데 4위 조씨는 '조나라 조'자를 쓰지 않고 '성 조'자를 쓴다. 사실상 전국에서 '조나라 조'씨보다 '성 조'씨가 많은 유일한 지역.

이렇게 된 원인은 진도군이 타 지역과의 접근성이 떨어져서[72] 인구가 계속해서 감소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10만 7,705명이던 인구가 2021년 3만 1,227명으로 줄면서[73],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진도서초등학교 병설 가사도분교장유치원은 원생을 다 합쳐도 1명밖에 없다.

트로트 가수 송가인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17. 영암군[편집]


1965년 영암읍 서남리에 설립된 영암읍교회 부설 유치원이 최초였으나, 현재는 무기한 휴원 중이며, 현재 영업하는 곳 중 가장 오래된 곳은 1981년 덕진초등학교, 독천초등학교, 용당초등학교, 금정초등학교, 신북초등학교, 시종초등학교, 시종초등학교 종남분교장, 도포초등학교, 장천초등학교, 학산초등학교, 삼호중앙초등학교, 구림초등학교, 미암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개원되었다. 영암에서 유치원을 다닐 수 있었던 최초의 원생은 1959년~1961년생으로, 첫 졸업생이 현재 64~65세의 아저씨, 아주머니가 됐다. 이 이상의 세대는 유치원을 못 다녔거나 목포 등 인근 지역으로 버스나 배를 타고 나가야 했다.

특이하게 영암읍에는 사립유치원이 없고 삼호읍에만 몰려 있다.[74] 이는 삼호읍이 목포의 베드타운 역할을 해서 각종 산업단지가 많이 들어와서인지, 영암읍보다 삼호읍의 인구가 더 많은[75] 도시 구조 때문이다. 때문에 영암읍은 가평읍 (경기도 가평군), 연천읍 (경기도 연천군), 음성읍 (충청북도 음성군), 용진읍 (전라북도 완주군), 무안읍 (전라남도 무안군)등과 함께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청 소재지가 됐다.[76]

영암읍 최초로 현재까지 운영 중인 유치원은 1992년 설립된 영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사립유치원은 3곳 있는데 3곳 모두 삼호읍에 몰려 있다. 이런 이유로 목포 시내의 유치원 추첨에서 모두 탈락한 목포 거주 아동이 차선책으로 삼호읍의 유치원으로 가는 경우가 소수 케이스로 있다. 반대로 시종면에서는 목포로 많이 간다. 게다가 지리적 특성상 영암군의 유치원생들은 목포로 소풍을 가기도 한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영암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강-윤-문-임-조 순서라 조씨보다 문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여기서 조씨는 '성 조'자를 쓰는 조씨이다.

1960년대 13만 9,731명이던 인구가 2021년 5만 3,699명으로 줄면서[77] 사립유치원의 경영이 악화되었다.

방송인 작약꽃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18. 장성군[편집]


1966년 장성읍 영천리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장성성당 부설로 설립된 장성성모유치원이 최초이다. 장성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60년~196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63~64세이다. 이전에는 장성역 등에서 호남선 기차를 타고 광주에 있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장성에는 사립유치원이 3곳밖에 없다. 장성읍 장성성모유치원, 남면 한마음자연생태유치원, 삼계면 정다운상무유치원[78]이다. 어지간한 군들이 읍내에만 사립유치원이 있는데[79] 장성은 좀 특이한 경우인 셈.

1960년대 12만 9,934명이던 인구가 2021년 4만 4,464명으로 줄면서[80] 유치원이 줄었다. 이 추세라면 2030년대~2040년대에는 장성도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되어 이 시기에 유치원을 다니게 되는 유아들은 장성군에서 유치원을 다니려면 공립유치원으로 가거나, 아예 광주 등 인근 도시로 떠나야 한다. 이미 장성군 북부에 사는 유아들이 사립유치원을 다니기 위해 전라북도 정읍시로 넘어가고 있고, 장성군 남면에서는 광주로 넘어가는 유아들도 있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장성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오-임-강-조-고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미르고은아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19. 화순군[편집]


1978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화순성당 부설로 설립된 요셉유치원이 최초이다. 화순에는 사립유치원이 3곳인데, 화순읍 향청리에 1곳, 화순읍 만연리에 2곳 있다. 인구는 울릉도보다 많지만 유치원은 울릉도보다 4년 늦게 들어왔다.[81] 화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2년~1974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1~52세이다. 그 전에는 경전선 열차나 버스를 타고 광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가야 했는데, 화순군의 형태 때문인지 보통 화순읍에서 이러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도 경전선 철도는 단선에 선형도 좋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버스로 많이 갔다.

화순에 유치원이 늦게 들어온 이유는, 인구는 적은데 그 인구가 계속해서 감소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15만 998명이던 인구가 2021년 6만 2,522명으로 줄었고[82], 광주광역시와 가깝지만 무등산 등 여러 산들로 가로막혀 광주 시가지가 화순까지 확장되지 못했다. 그래서 1970년대 이전에는 사립유치원들이 경영 악화를 감수하고 화순군에 설립할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화손에는 문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고 있어[83] 유치원 시절 한 반에 문씨가 여러 명 있었거나, 교사들 중 문씨 성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은 꼭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실제 화순군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정, 최, 조, 문, 임, 강, 양씨 순서이다.

배드민턴 선수 이용대는 1992~1994년 사이에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84]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20. 무안군[편집]


1979년 설립된 일로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특이하게 무안읍보다 일로읍에 먼저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무안읍 최초의 유치원은 1999년 설립된 무안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그 전에는 무안역, 몽탄역 등지에서 호남선 기차 타고 목포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85] 무안군에서 유치원을 다닐 수 있던 첫 유치원생이 1973년~1975년생으로, 첫 졸업생이 현재 50~51세가 됐다. 그래서 무안이 고향인 50대 이상인 어른들은 ‘고향에 유치원이 없어서 못 다녔다.’거나 ‘고향에 유치원이 없어서 버스나 기차 타고 목포까지 가야 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무안군은 ‘도청 소재지 중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지역’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86]

무안군이 1970년대가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유치원을 가지지 못했고[87], 또 사립유치원이 2곳밖에 없다. 무안군은 사실상 목포시 멀티라고 할 정도로 생활권이 목포에 많이 종속돼 있는 데다[88], 1966년 당시 31만 7,742명[89]이던 무안군의 인구가 1968년 신안군을 내 준 이후 13만 4,162명까지 줄어들고, 이후에도 계속 목포 등지로 유출되어 인구가 8만 6,132명까지 줄어든 탓이 크다.[90]

사립유치원은 2곳 있으며 일로읍삼향읍에 하나씩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안읍보다 삼향읍의 인구가 더 많은[91] 도시 구조 때문이다. 다만, 남악신도시의 유치원 교사 중에는 주소지가 목포인 경우도 있다.[92] 참고로 일로읍에 있는 중앙유치원은, 연예인 박나래[93]박진주[94]가 졸업한 유치원으로도 유명하다. (박나래가 선배, 박진주가 후배)

무안군은 전국에서 4곳밖에 없는 박씨가 이씨보다 많은 동네[95]라 해당 지역에 있는 유치원은 원생들 중 박씨가 이씨보다 많은 곳이 많다. 실제 무안군 10대 성씨는 김, 박, 이, 최, 정(鄭), 정(丁), 강, 서, 임, 장씨 순서이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21. 곡성군[편집]


1980년 설립된 옥과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특이하게 곡성읍보다 옥과면에 먼저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그 전에는 곡성읍, 오곡면에서 전라선 기차를 타고 도 경계를 넘어서 남원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1974년~1976년생을 첫 원생으로 모집했고, 첫 졸업생은 현재 49~50세가 됐다. 그러니까 곡성이 고향인 50대 이상의 어른들은 ‘고향에 유치원이 없어서 못 다녔다’거나 ‘고향에서 나름 잘 살아서 유치원 다닐 형편이 되지만, 고향에는 유치원이 없어서 전라선 기차 타고 남원[96]까지 나가야 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참고로 곡성군은 KTXITX-새마을 정차역이 있는 지역 중 유일하게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이었으나[97] 2021년 평창군이 KTX가 정차하지만 사립유치원이 없는 2번째 군이 되었고[98] 뒤이어 단양군도 KTX, ITX-새마을은 정차하지만 사립유치원이 없는 3번째 군이 되었다.[99]

곡성읍 최초의 유치원은 1984년 개원한 곡성중앙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었으나, 주변 병설유치원들과 합쳐 공립 단설유치원인 곡성유치원을 설립하면서 폐원되었다.

순천, 남원과는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 탓인지는 몰라도 시가지가 곡성까지 확장되지 못해 1960년대 10만 9,739명이던 인구가 2021년 2만 8,039명까지 줄었고[100], 이 때문에 옆 동네 구례군에도 있는 사립유치원은 없다. (심지어 겸면[101], 목사동면[102], 오곡면[103]에는 교육기관이 없다.) 때문에 곡성군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곡성유치원을 다니거나 순천, 남원에 있는 사립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할 수밖에 없다.[104] 현재 곡성군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전라북도 남원시의 소화유치원으로 곡성군청에서 차로 약 30분 가량 걸린다. 이는 유아교사도 마찬가지라 곡성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들은 전남과학대학교나 다른 지역[105]의 대학에서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임용고시에 합격해야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거나, 아예 순천시 등지의 사립유치원에 취업하고 곡성과 주변 도시 (남원, 순천 등)를 매일 왕복해야 한다.

전라남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곡성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정-최-조-강-오-장-임 순서라 최씨보다 정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여기에 희귀 성씨인 경주 빙씨들도 보기 쉬운 편. 이는 곡성군이 빙씨 집성촌이라 과거에는 한 반에 3명이 빙씨인 유치원도 있었을 정도이다.

축구선수 박태민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2.22. 신안군[편집]


1981년 도초초등학교, 비금초등학교, 안좌초등학교, 암태초등학교, 압해초등학교, 임자초등학교, 자은초등학교, 장산초등학교, 증도초등학교, 지도초등학교, 팔금초등학교, 하의초등학교, 흑산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개설되었다. 신안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이 곳은 지리적인 특성상 태풍으로 인한 휴원이 잦은 편이다.[106] 이 곳은 역대 대통령의 고향[107]중 유일하게 사립유치원이 없다.

중심지가 없고[108], 섬들이 난립해 있으며, 목포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한 탓인지는 몰라도, 인구가 1만 명을 넘는 읍면이 하나도 없어[109] 사립유치원은 물론 공립 단설유치원도 없다. 이 지경이 되도록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고 지금도 사립유치원이 없는 이유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개발이 어려웠고[110] 이로 인해 1960년대에 16만 6,478명이었던 인구가 현재 3만 8,938명까지 줄어 4만 명대에 미달한 탓이 크다. 때문에 신안군에 사는 유아들은 거의 자신이 거주하는 읍면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니는 실정이고, 압해읍, 암태면 등 연륙교가 있는 섬에 사는 유아들만 가끔씩 다리 건너 목포시의 사립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고 있다. 이는 신안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같은 처지라,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111]에서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고, 사립유치원에서 근무하려면 사실상 고향을 떠나야 하는 셈이다. 그나마 연륙교가 개통돼 있는 섬에 살면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고향과 목포를 매일 왕복할 수도 있지만.

신안군은 전국에서 4곳밖에 없는 박씨가 이씨보다 많은 동네[112]라 해당 지역에 있는 유치원은 원생들 중 박씨가 이씨보다 많은 곳이 많다. 실제 신안군 10대 성씨도 김, 박, 이, 최, 정, 강, 장, 조, 고, 문씨일 정도.

바둑기사 이세돌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113]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 전라북도[편집]



3.1. 군산시[편집]


1909년 일본인을 위해 세워진 군산유치원이 최초였으나[114], 현재는 폐원됐고, 한국인을 위한 유치원으로 1917년 구암유치원, 1925년 설립된 군산유치원[115]이 개원했는데, 군산시가 아직 군산부와 옥구군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에 개원했다. 군산유치원이 설립되기 이전에도 군산에 유치원이 있기는 했지만, 일본인 전용이었다. 군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한국인 원생들은 1911년~191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12~113세이다. 다만, 일본인은 1903년~1910년생도 유치원생이 될 수 있었다. 한편, 군산에서도 아직까지 시골인 옛 옥구군 지역에는 1980년대가 돼서야 제대로 된 유치원이 들어왔다.


시 승격은 전주시보다 20년 이상 빨랐으나 인구가 26만 7,859명밖에 없는 탓에[116] 사립유치원은 전주의 반도 안 되는 26곳만 있고, 모두 시내에만 있다. 이는 군산시 전체 인구 27만 1,526명 가운데 86.1%[117]인 23만 1,581명이 시내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전라북도에서 인구가 2번째로 많은 읍면동인 수송동 (인구 5만 5,999명)이 여기에 있다.

군산은 전국에서 두씨[118], 채씨[119]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아서 원생이나 교사 중 성이 채씨인 경우가 많을 정도이며 서울보다 두씨 성을 가진 원생을 보기도 상대적으로 쉽다. 다만 이 두 성씨 모두 상위 10개 성씨에는 못 드는데 군산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강---장- 순서에 두씨는 39위, 채씨는 20위이다.

야구선수 문규현과 프로게이머 문호준, 최윤서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2. 전주시[편집]


1921년 개설된 전주유치원이 최초이다. 전주유치원은 전라북도 최초의 유치원이었으나, 원아 부족으로 1959년 폐원되었다. 설립 당시 전주시의 행정구역은 전주군 전주면이었으나, 1931년 전주면이 전주읍으로 승격하고, 1935년 전주부가 분리되면서 완주군은 한동안 유치원 없는 군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전주유치원 원생 중에는 완주군에서 오는 경우도 드물게 있었다. 전주유치원의 마지막 졸업생은 1953년생으로, 이들은 현재 67세[120]가 됐고, 남아 있던 원생들 (1954년~1955년생. 현재는 65, 66세[121]의 어르신이 됐다.)은 인근 유치원들로 분산됐다. 전주유치원 제1회 졸업생은 대부분 사망했고, 60대 아저씨, 아주머니나 70대 이상인 노인들만 전주유치원을 기억할 정도이다. 전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15년~191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살아 있다면 108~109세이다. 참고로 전주시는 국회의원을 3명 이상 뽑을 수 있는 동네들 중 유치원이 가장 일찍 들어왔다.[122]

해방 전부터 1960년대까지 전주의 유치원은 주로 완산구를 중심으로 세워졌으나[123], 1970년대 이후 덕진구까지 확장되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치원 중 가장 오래된 곳은, 1948년 천주교 전주교구 전동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심유치원이다. 이 곳의 첫 입학생들은 1942년~1944년생으로 첫 졸업생들은 현재 81~82세의 어르신이 됐다.

  • 덕진구: 1979년 동산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3년~197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0~51세이다.

과거 유치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완주군, 임실군 등지에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는데, 주로 기차나 버스로 전주에 가기 쉬운 완주군 삼례읍 등지에서 원정 통학을 많이 했다고 한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더 멀리 있는 진안군, 김제시, 장수군 등지에서도 오는 경우가 있으며, 특히 진안군은 새만금포항고속도로 개통 이후 원정 통학 건수가 늘었다.

이는 1960년대 22만 432명이던 인구가 2021년 65만 7,432명으로 늘어[124] 유치원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전주시의 지리적 특성상 전주의 유치원에서는 전주한옥마을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많다.

65만 5,000명을 넘는 인구[125] 덕분에, 사립유치원은 전북에서 가장 많은 80곳 있으며, 경상북도 포항시보다도 많다.

전주는 전국에서 경씨[126], 국씨[127], 류씨[128], 서문씨[129], 소씨[130], 양씨[131], 온씨[132], 은씨[133], 태씨[134], 형씨[135]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이 살고 있어 전주의 유치원에서는 서울보다 경씨(景), 국씨, 서문씨, 소씨, 양씨(楊), 온씨, 은씨, 태씨, 형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를 보기 쉽다. 송씨 역시 보기 쉬운데, 전주시 상위 10개 성씨가 김-이-박-최-정-강-임-송-조-장씨 순서이기 때문이다.

2020년 이곳의 한 유치원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났다.

축구선수 정승원은 1999~200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136] 또한 바둑기사 이창호는 1979~198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137]

2021년 8월 24일 유치원생 6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3.3. 남원시[편집]


1941년 남원군 남원읍 쌍교리 (현재의 남원시 쌍교동)의 남원제일교회 부설로 유치원이 설립됐으나 폐원된 이후 1983년 재건했다. 폐원 없이 영업한 곳 중 가장 오래된 곳은 1967년 천주교 전주교구 쌍교동 성당 부설로 설립된 소화(小花)유치원이나, 2022년 폐원하면서 1981년 설립된 공립유치원들에 타이틀이 넘어갔고 사립유치원은 1982년 남원시 동충동에 설립된 동북유치원 하나만 남았다.[138] 참고로 두 곳 모두 남원시가 아직 남원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남원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35년~193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88~89세이다. 한편 남원에서도 시골인 옛 남원군 지역에는 1970년대에도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 옛 남원군 지역: 1981년 아영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남원시는 전라북도에 있지만 눈이 많이 와서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고, 4월에도 눈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이다.[139] 또한 남원시는 제주도 못지않게 양씨 비율이 높아 남원의 유치원에서는 한 반에 양씨가 꼭 한두 명은 있을 정도이다.

시 주제에 사립유치원은 소화유치원을 포함해 3곳밖에 없다.[140] 소화유치원은 남원시 쌍교동에 있고 다른 2곳도 시내인 월락동과 동충동에 있다. 이 숫자는 부산광역시 중구, 세종특별자치시[141]와 같은 수치이고, 어지간한 군들도 여기보다는 사립유치원 숫자가 많다.[142] 이는 1960년대에 18만 7,479명이었던 인구가 2000년 10만 3,571명으로 줄고, 2001년 10만 3,977명으로 잠깐 회복했으나 2021년에는 절반 이하인 8만 662명으로 줄어들어서[143] 그렇다. 그렇지만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이 남원 주변에만 4개나 있어서[144], 임실군, 순창군, 장수군전라남도 곡성군(!!!)에 사는 아이들이 사립유치원을 찾아 남원에 오기도 한다. 임실군, 순창군, 곡성군, 장수군은 사립유치원이 없고 생활권이 남원이기 때문. 다만, 이백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생을 다 합쳐도 1명밖에 없다.

전라북도 동부에 있는 군들이 모두 사립유치원 없는 군[145]이라 남원시는 전라북도 동부에서 유일하게 사립유치원 있는 지역이 된다. 이는 전라북도 동부권이 사립유치원 수요가 빈약할 정도로 인구가 적기 때문인데, 전라북도 동부에서 인구 5만 명이 넘는 지역은 남원시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2만 명대이다.

남원 양씨 덕분에 남원에 있는 유치원에서는 양씨 성을 가진 원생을 많이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실제 남원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장-강-오-조 순서라 양씨가 강씨보다도 많다.

래퍼 기희현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146]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4. 익산시[편집]


1950년 현재의 익산시 마동에 설립된 신광유치원이 최초이다. 익산시가 아직 이리시와 익산군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에 개원했는데, 신광유치원이 있던 지역은 당시 이리시였다. 익산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4년~194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9~80세이다. 한편 익산에서도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옛 익산군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도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 옛 익산군 지역: 1981년 함라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오산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익산은 소씨 집성촌이 있어 익산의 유치원에서는 한 반에 소씨 성을 가진 원생이 꼭 있을 정도이다. 다만, 소씨는 상위 10개 성씨에 못 들었는데 익산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강-조-임-오-장씨 순서이고 소씨는 26위이다.

비록 2001년에 33만 4,757명으로 인구 최고점을 찍고 감소해 1960년대보다 감소했지만 (1960년대 28만 9,706명, 2021년 28만 2,276명) 시내 인구 비중은 높아졌고[147], 전주시에 이어 2번째로 많은[148] 28만 2,276명이라는 인구 덕분에 사립유치원은 34곳 있고, 모두 시내에만 있다.

과거에는 김제군 백구면, 완주군 삼례읍[149] 등지에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바둑기사 이유진이 이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12월 16일 익산의 한 유치원에서 최초 확진자가 보고된 이후 12월 21일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가 48명이나 발생했다.

3.5. 정읍시[편집]


1953년 설립된 원당유치원이 최초로, 최초의 원불교 계열 유치원이기도 하다. 정읍시가 아직 정읍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지금의 정읍 시내인 옛 정주시 지역 소재였다. 한편 정읍에서도 아직까지 시골인 옛 정읍군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도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1947년~1949년생이 정읍에서 유치원을 다닐 수 있던 최초의 원생이었고, 현재는 첫 졸업생들이 76~77세가 됐다. 심지어 신태인읍은 행정단위가 ‘읍’인데도 사립유치원은 없다.


정읍시는 지리적 특성상 폭설에 의한 휴원이 전라도치고는 잦은 편이다.

이 지역 유치원에서 남씨 성을 가진 원생이나 교사가 있다면 대다수가 의령 남씨이다. 다만, 정읍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송-유-강-안-오 순서라 남씨는 은씨, 하씨보다도 보기 힘들어 유치원에 3개 반이 있으면 남씨는 없고 은씨, 하씨가 있는 반이 있을 정도이다. 이는 남씨, 하씨, 은씨가 정읍에 집성촌을 두고 있으나 산업화 이후 전국 각지로 흩어졌기 때문. 그나마 민씨보다는 많다

사립유치원은 9곳 있는데, 9곳 모두 시내에만 있다. 1960년대에 인구가 27만 7,506명이었던 시절에는 사립유치원이 좀 더 많았으나, 인구가 10만 8,508명까지 줄어들면서[150] 경영 악화로 문을 닫은 것이다.

가수 김원주가 정읍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6. 부안군[편집]


1953년 부안읍 서외리에 설립된 부안중앙교회 부설 부안유치원이 최초였으나 부안군의 인구 감소로 2000년에 폐원됐다. 현존하는 곳은 1981년 격포초등학교, 동진초등학교, 백산초등학교, 부안초등학교, 우덕초등학교, 주산초등학교, 줄포초등학교, 창북초등학교, 하서초등학교, 행안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 설립되었다. 부안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47년~1949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6~77세이며, 이 곳의 마지막 졸업생은 1994년생으로 현재 29~30세이다. 남아 있던 원생인 1995년, 1996년, 1997년생들[151]은 인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분산 배치됐다.[152] 그야말로 MS-DOSFDD가 사라질 시점에 같이 폐원된 셈이다. 현존하는 곳의 경우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전국에서 임씨 비율이 가장 높은 동네답게 부안에 있는 유치원에는 원생 중 성이 임씨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실제 부안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장-임-강-오-송 순서로 임씨가 7위에 달해 부안군 출신들은 유치원 시절 임씨 성을 가진 선생님만 만나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나마 그 임씨들 대부분이 부안 임씨다.

사립유치원은 3곳 있고, 3곳 모두 부안읍에 있다. 이는 1960년대에 17만 4,985명에 달했던 인구가 2000년 7만 4,716명으로 줄고 2001년 7만 5,914명으로 잠깐 늘었으나, 2021년 5만 2,140명으로 추락한 영향[153]이 크다. 몇몇 부안군 거주 유아들은 전주시, 군산시 등지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하나, 워낙 멀어서[154] 그 수는 극소수이다.

유튜버 셀옹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7. 김제시[편집]


1956년 김제군 김제읍 요촌리 (현 김제시 요촌동) 소재의 천주교 전주교구 요촌성당 부설로 설립된 성모유치원이 최초로, 김제시가 아직 김제군이었던 시절에 개원했다. 경기도의 어지간한 도시들도 김제시보다 유치원은 늦게 들어왔다. 김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0년~195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3~74세이다. 그 전에는 기차 등을 타고 전주에 있는 유치원으로 가야 했다. 한편, 김제시에서도 시골인 옛 김제군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도 제대로 된 유치원이 없었다.


김제는 전국에서 온씨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라 김제 출신들은 자신의 유치원 시절 친구 중 성이 온씨인 경우를 꼭 한두 명은 봤을 정도이다. 그러나 온씨들이 전국으로 흩어진 현재는 온씨가 상위 10개 성씨에 못 들었는데 김제시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강-조--장- 순서이기 때문이다.

사립유치원은 5곳 있는데, 모두 시내에만 있다. 1960년대에 25만 4,999명이었던 인구가 전주 등지로 유출되면서 계속 줄어들어 현재 8만 2,450명까지 추락[155]했고, 이로 인해 지역의 사립유치원들이 경영악화로 문을 닫으면서 생긴 원인이다. 이런 이유로 읍면 지역에 사는 유아는 시내나 전주 등지로 가야 사립유치원을 다닐 수 있다. 때문에 백구면에서는 익산의 유치원 버스들이, 용지면에서는 전주의 유치원 버스들이 와서 그 지역의 유아들을 태우고 갈 정도이다.

치어리더 김맑음과 가수 김세정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8. 진안군[편집]


1957년 진안읍 군하리의 천주교 전주교구 진안성당 부설로 설립된 소화(小花)유치원이 최초이다. 소화유치원은 1962년 폐쇄되었으나 1976년 재개원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생이 너무 없어서 2008년에 최종 폐원되었다. 2008년 소화유치원이 폐원된 이후 사립유치원은 없다. (심지어 상전면에는 교육기관이 없다. 1999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상전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유치원도 같이 폐원됐다.) 첫 졸업생은 현재 환갑을 넘겼고, 진안읍 소화유치원을 기억하는 사람은 대개 20대 이상이다. 이는 진안 소화유치원의 마지막 졸업생이 2001년생인데, 이들이 현재 22~23세이다. 한편, 해당 유치원에 다니던 2002년, 2003년, 2004년생들이 남아 있었는데, 남은 원생[156]들은 인근 어린이집 등으로 분산 배치됐다.[157] 진안 소화유치원 마지막 원생들이 벌써 신검 받고 군대 갈 나이가 되다니 진안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1년~195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72~73세이다.

진안은 산으로 둘러싸여 눈이 제법 오는 지역이라[158] 눈으로 인한 유치원 휴원이 전라북도 14개 시군 중에서는 잦은 편에 속하며, 진안 출신들은 어린 시절 겨울에 눈이 오면 유치원 앞에 제설차가 여러 대 지나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이다. 심지어 이 동네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159]까지 있는데도 사립유치원은 없다.

전라북도의 시군들이 으레 그렇듯 성씨 순위가 전국과 상당히 달라 유치원생들의 성씨 분포가 상당히 다른데, 진안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전-송-강-안-한 순서라 조씨보다 전, 안씨들을 더 보기 쉬울 정도이다.

지형상의 이유[160]로 전주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한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용담댐 건설로 인해 진안읍, 주천면, 용담면, 안천면, 정천면, 상전면 일부가 수몰되면서, 1960년대에 10만 2,515명에 달했던 진안군의 인구가 2000년 3만 1,273명으로 줄고 2001년 3만 2,635명으로 잠깐 늘었다가 2021년 2만 5,394명까지 줄어들었다.[161] 그래서 사립유치원이 경영악화를 감수하고 들어설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진안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진안군에 사는 유아들은 거의 거주하는 읍면 혹은 인근 읍면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니고, 아주 가끔씩만 전주에 있는 사립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수준이다. 진안에서 전주로의 원정 통학은 새만금포항고속도로 개통 이후에 늘었다. 진안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고향에서 근무하려면 다른 지역의 대학[162]을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전주시 등지로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 게다가 군 지역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대중교통이 미비해 진안군의 유치원 교사들은 모두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

축구선수 주종대가 진안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2021년 4월 30일 진안군의 병설유치원 교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로 인한 검사에서 원생들 몇 명도 확진되었다.

3.9. 고창군[편집]


1970년 설립된 샛별유치원이 최초이다. 고창군에 2곳밖에 없는 사립유치원 중 하나이며, 2곳 모두 고창읍 읍내리 소재이다. 고창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64년~1966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9~60세이다. 그 전에는 버스 타고[163] 정읍까지 가야 했다.

고창군은 지리적 특성상 폭설에 의한 휴원이 전라도치고는 잦은 편이다. 고창군 출신들은 자신이 유치원 다니던 시절, 겨울만 되면 눈 때문에 유치원이 휴원하고, 유치원 앞에 제설차들이 여러 대 지나가는 것을 봤을 정도이다.

이는 지형상의 이유로 광주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한 데다 교통이 불편한 점[164] 때문에 인구가 급감하였는데, 1960년대에 19만 6,377명이었던 인구가 2000년 7만 4,104명으로 줄고, 2001년 7만 4,286명으로 잠깐 회복한 뒤 계속 줄어들어 현재 5만 4,520명까지 추락해[165] 사립유치원들이 문을 닫은 영향이 크다.

고창군은 정씨가 최씨보다 많아 유치원생이나 교사들 중 정씨인 경우기 최씨보다 많다. 실제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고창군 상위 10개 성씨가 김-이-박--최----조-이기 때문이다.

배구선수 송희채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10. 무주군[편집]


1973년 무주읍 읍내리 천주교 전주교구 무주성당 부설로 설립된 소화(小花)유치원이 최초이다. 현재는 어린이집으로 바뀌었다. 무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67년~1969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6~57세이다.

지리적 특성상 무주군의 유치원들은 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고, 4월까지도 눈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166]이다. 사립유치원 원정 통학을 할 때는 대전이나 영동으로 많이 간다.

지형상의 이유로 대전 시가지가 무주까지 확장되지 못한 데다, 1960년대에 7만 6,061명이었던 무주의 인구가 2000년 2만 9,207명까지 줄고 2001년 3만 333명으로 잠깐 3만 명대를 회복한 뒤 2만 4,036명까지 추락하면서[167] 사립유치원에 보낼 아이가 없어지자, 소화유치원도 경영이 악화되어 어린이집으로 용도를 바꾼 것이다. 때문에 무주군에 사는 유아들은 거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무주유치원을 다니고, 아주 가끔씩 대전광역시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이다. 무주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고향에서 근무하려면 다른 지역의 대학[168]을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대전광역시 등지로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 현재 무주군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유치원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백합유치원으로 무주군청에서 차로 약 30분 가량 걸린다.

전라북도에서 황씨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 무주군의 유치원에서는 장씨보다 황씨를 더 보기 쉽다고 한다. 실제 무주군 상위 10개 성씨가 김-이-박-최-정-강-황-한-임-서로 나와 있다.

스키점프 선수 최서우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11. 완주군[편집]


1979년 설립된 삼례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완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3년~1975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50~51세이다.

사립유치원은 4곳 있으며, 그나마도 옛 전주군 지역에 몰려 있다. 옛 고산군 지역에는 사립유치원이 없어서 그냥 자신이 거주하는 면의 병설유치원이나 논산, 전주, 봉동 등지로 나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녀야 한다.[169] 명작유치원, 무지개재능유치원, 새싹유치원은 봉동읍에 있고, 큰인물유치원은 삼례읍에 있으며, 군청 소재지인 용진읍에는 공립 병설유치원 2곳만 있다. 완주군 역시 무안군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가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유치원을 가지지 못했고, 또한 군청 소재지에 사립유치원이 없다.[170] 완주군에 유치원이 생겨나기 이전에는, 완주군에 사는 아이들은 전주시[171]익산시[172], 논산시[173]의 유치원을 다녀야 했다. 완주군에는 대학이 있지만 유아교육과가 없고 유아특수교육과만 있어 완주군 출신이 유아교사가 되려면 거의 전주 등지로 나가서 대학을 다닌 뒤 완주군으로 돌아와야 한다.

1960년대에 18만 6,093명이었던 인구가 2000년 8만 4,009명까지 줄고, 2001년 8만 6,719명으로 잠깐 회복한 뒤 2004년 8만 2,482명까지 줄었다가, 현재 9만 1,609명까지 회복되었다.[174] 차후 이서면의 인구가 늘면 사립유치원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전국에서 유씨 성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 완주군 출신들은 유치원 시절 선생님이 모두 유(柳)씨인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다. 실제 완주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강--조- 순서로 나간다.

트로트 가수 배아현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12. 장수군[편집]


1981년 장수초등학교에 설립된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1975년~1977년생들이 이 곳 최초의 원생으로 첫 졸업생들은 현재 48~49세이다.

장수군은 1970년대가 되도록 유치원 음영지역으로 남아 있던 데다가[175], 사립유치원은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장수군 자체가 전주, 남원 등과 산으로 가로막혀 시가지가 확장되지 못했고[176], 1960년대에 8만 1,143명에 달했던 인구마저 2000년 3만 51명까지 줄고 2001년 3만 445명으로 잠깐 회복한 뒤 줄어들어 현재는 2만 2,285명[177]에 불과해 사립유치원의 수요가 적어서였다. 현재 이 지역은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 가운데 가장 인구가 적었으나 (22,285명) 2020년 영양성모유치원이 폐원되면서 꼴찌 자리를 영양군에 내 주게 되었다. 때문에 장수군에 사는 유아들은 거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장수한사랑유치원을 다니고, 아주 가끔씩 남원시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니는 경우도 있다. 주로 번암면[178]에 사는 아이들이 남원의 사립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듯하다. 이는 장수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마찬가지라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179]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고향에 있는 유치원에 취업하지 않는다면 고향을 떠나거나, 아예 남원시 등지의 사립유치원에 취업하고 고향에서 사립유치원이 있는 지역으로 장거리 출퇴근을 할 수밖에 없다.

장수군이 남원 생활권이라 유치원생이나 교사들 중 양씨 성을 가진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은데 장수군 상위 10개 성씨가 김-이-박-최-정-한-양-장-강- 순서이며, 그나마 그 양씨들 대부분이 남원 양씨다.

하현우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니다가 졸업 전에 안산시로 이사를 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13. 임실군[편집]


1981년 설립된 오수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임실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특이하게 임실읍보다 오수면에 먼저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임실읍 최초의 유치원은 1987년 설립된 임실기림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며, 사립유치원은 없다. 그 전에는 임실에 사는 아이들은 전라선 열차를 타고 전주에 있는 유치원을 다녀야 했다.

전주시와는 성미산 등으로 가로막혀 시가지가 확장되지 못한 탓에 1960년대에 11만 8,175명에 달했던 인구가 2만 7,314명까지 줄어들었고[180], 이로 인해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이 임실군을 기피해서 임실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된 것이다. 때문에 임실군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임실둥지유치원을 다니고, 사립유치원을 다니고 싶으면 버스나 기차 등을 타고 전주남원으로 넘어가서 다녀야 한다. 임실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처지는 비슷해서 다른 지역의 대학[181]에서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후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고, 사립유치원에서 근무하려면 전주남원 등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한다. 그나마 이들 도시로 갈 수 있는 교통편 덕에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건 장점이다. 현재 임실군은 4년제 대학이 있는 지역 중 사립유치원이 하나도 없는 유일한 군이다.[182] 그 때문에 원생을 다 합쳐도 1명뿐인 유치원이 임실에만 3곳이 있는데 신평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운암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신덕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이들이다.

전라북도의 군들이 으레 그렇듯 이 지역 유치원생의 성씨 분포도 서울과는 상당히 다른데, 임실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강-임-오-송 순서이다.

축구선수 송수란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3.14. 순창군[편집]


1981년 설립된 동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특이하게 순창읍보다 동계면에 먼저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순창읍 최초의 유치원은 1982년 설립된 순창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순창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48~49세이다. 그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유치원에 다니려면 버스 타고 남원이나 광주로 가야 했다.

사립유치원은 없다. 이는 지형상의 이유로 주변 도시들의 시가지가 여기까지 확장되지 못한 데다 교통 인프라가 부실한 탓에[183], 1960년대에 10만 4,966명에 달했던 인구가 2만 7,810명으로 추락한 영향[184]이 크다. 때문에 순창군에 사는 유아들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공립 순창옥천유치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고, 아주 가끔씩 남원이나 광주로 넘어가서 사립유치원을 다니는 경우도 있다. 이는 순창군이 고향인 유아교사들도 마찬가지라, 다른 지역 소재[185] 대학의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고향에 있는 유치원으로 발령받아야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고향을 떠나거나 고향과 유치원이 있는 지역을 매일 왕복해야 하는데, 특히 사립인 경우는 선택지가 2가지밖에 없는데, 고향을 떠나거나 광주광역시, 남원시 등지의 사립유치원에 취업하고 고향과 유치원이 있는 동네를 매일 왕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바람에 복흥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생을 다 합쳐도 1명밖에 없다.

전라북도의 군들이 으레 그렇듯 이 지역 유치원생의 성씨 분포도 서울과는 상당히 다른데, 순창군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강--조-임-한 순서이다. 순창군만의 특징이 있다면 설씨가 20위라 설씨 성을 가진 유치원생이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비율이 높은 것 정도.

축구선수 이규로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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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산유치원은 일본인 전용, 구암유치원은 상태 불명.[2] 주로 노안면.[3] 주로 화순읍.[4] 이 때 외곽 지역이 광산군으로 이름을 바꾼다. 광산군은 현재 광산구의 유래가 되는 지명이다.[5] 광주 서구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아 최초의 4강을 확정지은 기념비적인 지역이지만 스페인에게는 광주 대참사, 유치원은 1980년대에 와서야 설립됐고, 그 전에는 서구에 살던 아이들이 동구 등지로 가서 유치원을 다녔다.[6] 동구 10만 2,897명 (6.7%), 서구 29만 6,576명 (20.7%), 북구 43만 431명 (29.8%), 광산구 40만 5,579명 (27.8%), 남구 21만 4,579명 (14.9%)로 전체적으로 인구가 많은 신시가지인 북구, 광산구, 서구에 사립유치원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옛 읍면대로 조합하면 옛 광주부 지역 17만 3,780명, 옛 송정시 지역 9만 8,901명, 효지면 18만 2,311명, 극락면 23만 9,159명, 서방면 22만 6,702명, 하남면 5만 1,026명, 비아면 24만 3,115명, 서창면 9만 3,149명, 지산면 12만 995명, 대촌면 6,216명, 석곡면 2,671명, 임곡면 2,140명, 동곡면 1,932명, 삼도면 2,278명, 평동면 4,122명, 본량면 2,065명이다.[7] 전라남도 지역에 살던 기씨들이 광주로 많이 이사를 갔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8] 여기는 아예 범씨 인구가 전국에서 1위이다, 전국 범씨 인구가 3,826명인데 그 중 1,229명이 광주에 살고 있었다. 이는 범씨가 금성 범씨 단본이나 다름없게 때문이다. 전국적으로는 수도권 집중, 그러나 범씨는 호남권 집중[9] 아마 보성군 등 전라남도 지역에 살던 선씨들이 광주로 많이 이사를 갔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선씨는 보성 선씨가 대종이다.[10] 아마 장흥군 등지에 살던 위씨들이 광주로 많이 이사를 갔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위씨의 대종은 장흥 위씨이다.[11] 이종범의 본관이기도 하다. 정작 이종범 본인은 1970년 8월 15일생이라 유치원을 다녀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12] 김병현은 1979년 1월 19일생(45세)이다. 보통 1979년생은 1983년에서 198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니지만, 김병현은 빠른 년생이라 1978년생들과 함께 1982년에서 198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이들은 유치원 시절 대학생 형이나 누나들이 강의실에서 담배를 피웠던 것은 물론, 버스나 기차를 타면 버스나 기차 내부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볼 수 있었던 셈. 게다가 그 시절 광주의 대중교통이라고는 호남선, 경전선 열차와 버스 정도밖에 없었다.[13] 강정호는 1987년 4월 5일생(37세)인데 강정호의 또래인 1987년생들은 주로 1991~1993년에 유치원에 다녔다. 이들은 황영조의 금메달 획득을 유치원 시절에 봤던 셈이며, 야구선수 류현진과 크리에이터 최다은, 사회문화 강사 손고운이 그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셈이다.[14] 안산은 2001년 2월 27일생이라 원래대로라면 2000년 3~12월생과 같이 2003~200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어야 하나 (그랬으면 소울리스좌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생이었을 것이다.), 이강인과 함께 2004~2007년 사이에 유치원생이었다. 2001년생들은 유치원생 당시 공휴일 천국 속에서 다녔는데 2006년과 2007년에는 주말에 겹치는 공휴일이 설날 연휴, 어린이날 등 3개 이내에 불과했기 때문. 반대로 안산과 함께 금메달을 딴 김제덕은 공휴일 지옥 속에서 유치원을 다녔는데 2008년은 연휴가 많았으나 2009년은 공휴일 8개가 주말에 겹쳤고 2010년은 공휴일 6개가 주말에 겹친 데다가 대체 휴일 제도의 적용을 전혀 받지 못했다. 게다가 그 시절이면 전한길EBSi메가스터디에서 수능 강사로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언니 안솔, 동생 안결과 같은 유치원 출신인지는 불명.[15] 군산유치원은 일본인 전용, 구암유치원은 상태 불명.[16] 대신 신안군에서의 원정 통학 건수가 늘었는데, 신안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기 때문. 영암군 삼호읍, 시종면, 서호면, 학산면과 해남군 화원면, 문내면, 산이면에서도 목포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17] 박씨가 이씨보다 더 많다. 이런 지역이 3곳 더 있는데, 무안군, 신안군, 진도군이다.[18] 이주석은 1998년 2월 8일생(26세)이라 원래대로라면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유치원을 다녀야 하나, 빠른 년생이라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다. 1998년생들은 양평, 가평, 포천에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으며, 유치원생 시절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려 벤투포체티노를 TV에서나마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시절이면 풍납토성이 문화재라는 인식이 약해서 토성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텐트를 치고, 겨울만 되면 박스들이 엄청나게 널브러져 있었다.[19] 순천시, 여수시, 광양시, 곡성군, 구례군. 간혹 고흥군보성군이 끼기도 한다.[20] 특히 벌교읍. 벌교읍에는 사립유치원이 없다.[21] 곡성군전라선, 보성군경전선.[22] 옛 순천시 지역의 인구는 7만 9,273명에서 18만 9,830명으로 늘었으나 옛 승주군 지역의 인구는 15만 7,903명에서 9만 2,359명으로 줄어 시내 집중도는 33.4%에서 67.5%로 높아졌다. 순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18만 9,830명, 해룡면 5만 5,514명, 서면 1만 2,103명, 별량면 5,544명, 낙안면 3,264명, 주암면 3,182명, 황전면 2,941명, 상사면 2,845명, 승주읍 2,750명, 월등면 1,797명, 송광면 1,519명, 외서면 900명으로 외서면은 인구가 1,000명을 못 넘고 있다. 여담으로 전라남도에서 인구가 많은 읍면동 중 1곳 (해룡면)이 순천시에 있다. 나머지 2곳은 인근 광양시 소재.[23] 전라도에서는 권씨를 보기 힘들고, 심지어는 아예 권씨가 없는 반도 있을 정도. 이는 권씨들이 대부분 안동 권씨인 데다 이들이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에 몰려 살아 전라남도의 권씨 순위가 30위권에 불과하기 때문.[24] 김옥빈은 1986년 12월 29일생(37세)이라 1990~199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86년생들은 춘천에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고, 유치원 시절 황영조의 금메달 획득 장면을 봤던 셈.[25] 다른 지역에서 고흥군을 가거나 고흥군에서 다른 지역으로 나가려면 무조건 보성군을 지나가야 한다. 서울에서 오는 경우는 대체로 벌교읍을 경유한다. 정확히는 서울-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새만금포항고속도로-순천완주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벌교-고흥 루트. 이런 이유로 서울의 유명 입시 컨설턴트들이 고흥군을 기피하는 것이다.[26] 심지어 1970년대 당시 고흥군에는 모든 면의 인구가 1만 명을 넘었고, 인구가 2만 명을 넘는 읍면이 3개나 있었다. 도양면 (인구 3만 2,793명), 금산면 (인구 2만 1,568명), 점암면 (2만 408명)이며, 고흥읍은 1만 7,974명에 불과했다. 그 시기 2만 명이 넘던 읍면 중 도양면만 읍으로 승격했다. 지금이었다면 진작에 고흥시로 승격하고도 남을 수준이었으나, 도농복합시 기준이 없던 시절이라 시가 되지는 못했다.[27] 그만큼 고흥군의 상태가 열악하고 고령화율도 매우 높다. 1979년에는 인구 20만 명 선이 붕괴됐고, 2001년에는 결국 인구 10만 명 선이 붕괴됐다. 고흥군의 읍면별 인구는 고흥읍 1만 2,522명, 도양읍 1만 662명, 포두면 4,954명, 금산면 4,345명, 도화면 3,893명, 과역면 3,316명, 풍양면 3,155명, 동강면 3,117명, 두원면 3,066명, 도덕면 2,960명, 점암면 2,651명, 남양면 2,319명, 대서면 2,300명, 봉래면 1,905명, 동일면 1,481명, 영남면 1,275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모두 1만 명 미만이다. 반대급부로 고흥읍의 인구 비중은 높아져서 1970년대 7.9%였던 비중이 19.2%까지 높아졌다.[28] 포두면, 풍양면, 도덕면 등 고흥읍, 도양읍에 붙어 있는 면들. 동강면의 경우는 아예 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29] 박지성1981년 3월 30일 (음 2월 25일)생(43세)이므로 유치원은 1985~1987년에 다녔다. 박지성은 2002 한일 월드컵 멤버 23명 중 유치원 나온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이다. 이는 2002 월드컵 멤버들의 출생연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최고령인 황선홍이 1968년 7월 14일, 홍명보가 1969년 2월 12일생으로 1960년대생이 2명 있는 데다 박지성보다 어린 선수는 이천수 (1981년 7월 9일생) 하나뿐일 정도로 대부분이 1970년대생이었고, 이들의 어린 시절은 유치원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박지성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고흥군의 인구는 15~16만 명이었다. 점암면 신안리에 살았던 정황상 점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나 농어촌버스를 타고 고흥읍에 있는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30] 그만큼 강진군이 인프라가 매우 열악해서, 지역 내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이었던 성화대학이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2012년 폐교될 정도이다. 폐교 당시 교직원의 월급은 겨우 13만 원으로, 현역병이나 사회복무요원보다도 낮을 정도로 열악했다. 강진군의 읍면별 인구는 강진읍 1만 3,722명, 군동면 4,328명, 성전면 2,796명, 도암면 2,514명, 칠량면 2,316명, 작천면 1,847명, 마량면 1,803명, 신전면 1,797명, 병영면 1,669명, 대구면 1,157명, 옴천면 648명으로 면 지역은 인구가 5,000명을 넘지 못하고, 특히 옴천면은 인구가 1,000명을 못 넘는다. 반대급부로 강진읍의 비중은 높아졌는데, 인구는 1960년대의 2만 4,403명에서 2021년 1만 3,722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19.2%에서 39.7%로 높아졌다.[31] 성화대학 폐교 이후 강진군에는 대학교가 없다. 아이러니하게 성화대학이 폐교된 이후 근처에 강진무위사IC가 들어섰다.[32] 주로 목포로 많이 가고, 드물게는 수도권이나 대전 등지로 가기도 한다. 이강인의 어머니는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 처인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강진에는 사립유치원이 많이 없어서 서울로 가서 유치원 교사로 일했을 정도이다.[33] 1930년 당시 경기도에 유치원이 있던 도시는 여주, 이천, 안성, 수원이었고 모두 경기도 남부였다. 그 시절이면 서울, 인천, 개성도 경기도였기 때문에 경기도 7개 지역에 유치원이 있었다고 봐도 무방했으나 서울과 인천은 각각 특별시, 광역시로 떨어져 나가고, 개성은 북한으로 넘어갔다.[34] 영광군은 주변에 시 지역이 하나도 없고, 고속도로도 21세기에 들어와서야 겨우 생겼다. 이 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광주까지는 차로 40분 가량 걸린다. 심지어 유아교육과가 있는 대학도 없어서 영광군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는 모두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35] 그만큼 영광군의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영광군의 읍면별 인구는 영광읍 2만 1,893명, 홍농읍 6,922명, 법성면 5,268명, 백수읍 4,693명, 염산면 4,038명, 군남면 2,409명, 군서면 2,322명, 대마면 1,812명, 묘량면 1,777명, 불갑면 1,372명, 낙월면 593명으로 백수읍의 인구가 법성면보다 적고, 심지어 낙월면은 인구가 1,000명 미만이다. (전라남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인 광양시 중마동 (인구 5만 9,577명)의 100분의 1 수준이다. 심지어 군 전체 인구도 광양시 중마동보다 적다.) 반대로 영광읍의 비중은 높아졌는데 영광읍의 인구는 1960년대 2만 2,586명에서 2021년 2만 1,893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14.2%에서 40.8%로 높아졌다.[36] 보성읍 9,303명, 벌교읍 1만 2,250명으로, 벌교읍의 인구가 약 1.32배 더 많다. 사실 이건 옛날에도 그랬다. 1960년대 당시에도 보성읍의 인구는 2만 2,247명이었으나 벌교읍의 인구는 4만 5,633명으로 2배 더 많았고, 심지어 벌교읍은 시 승격까지 노리고 있었다. 비율도 보성읍은 12.3%→22.4%, 벌교읍은 25.2%→29.6%로 높아졌다. 그러나 전국지리올림피아드 수상자는 보성읍의 보성고등학교에서만 배출되었다.[37] 2017년 웅치면의 마지막 교육기관인 웅치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웅치면은 교육기관이 없는 면이 되었다.[38] 그만큼 보성군의 상태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보성군의 읍면별 인구는 벌교읍 1만 1,913명, 보성읍 9,195명, 득량면 4,026명, 조성면 3,732명, 회천면 2,782명, 복내면 1,696명, 미력면 1,405명, 율어면 1,201명, 겸백면 1,165명, 노동면 1,118명, 웅치면 1,084명, 문덕면 886명으로 면 지역은 인구가 5,000명을 못 넘고 있고, 특히 문덕면은 인구가 1,000명 미만이다.[39] 그만큼 담양군의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담양군의 읍면별 인구는 담양읍 1만 4,667명, 수북면 4,547명, 대전면 4,406명, 창평면 3,704명, 고서면 3,171명, 봉산면 2,707명, 무정면 2,795명, 금성면 2,654명, 월산면 2,470명, 대덕면 1,935명, 용면 1,870명, 가사문학면 1,264명으로 면 지역은 인구가 5,000명을 못 넘고 있는데, 면지역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수북면 (축구선수 나상호가 태어난 곳이다. 정확한 고향은 수북면 풍수리)도 인구가 4,493명에 불과할 정도이다. 반대로 담양읍의 인구 비중은 높아졌다. 담양읍의 인구는 1960년대 1만 4,856명에서 2021년 1만 4,667명으로 미량이나마 줄었지만, 비중은 11.7%에서 30.9%로 높아졌다.[40] 김창평은 2000년 6월 14일생(23세)이므로 2003~200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2000년생들은 유치원 입학 초반에 SARS 소식을 듣고 오션월드 개장과 21세기 최초의 윤7월 (2006년 8월 23일~9월 21일)을 유치원생 말미에 겪은 셈. 2000년생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2004년과 2005년은 공휴일이 유난히 주말에 많이 겹쳐 (2004년은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일요일에, 제헌절크리스마스토요일에 겹치고 2005년에는 새해 첫날이 토요일, 추석 연휴 3일 중 이틀이 토요일과 일요일, 부처님오신날, 제헌절, 크리스마스가 모두 일요일이었다.) 1998, 1999년생 선배와 2001, 2002년생 후배보다 등원일수가 더 많았다. 그의 고향인 담양군 창평면은 사립유치원이 없어 정황상 창평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녔거나 담양읍의 사립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형 김창권과 같은 유치원 출신인지는 불명.[41] 그만큼 구례군의 인프라가 가장 열악하다는 뜻이다. 구례군의 읍면별 인구는 구례읍 1만 845명, 산동면 2,987명, 마산면 2,702명, 토지면 2,561명, 광의면 2,286명, 간전면 1,546명, 용방면 1,487명, 문척면 1,305명으로 면 지역 인구가 3,000명을 못 넘고 있다. 다만, 구례읍 인구의 비중은 높아지고 있는데, 1960년대 2만 428명이던 인구가 2021년 1만 845명까지 줄었지만 비중은 26.1%에서 42.3%로 높아졌다.[42] 옛 여수시 12만 3,365명 (44.2%), 옛 여천시 (묘도동, 삼일동, 시전동, 쌍봉동, 주삼동, 여천동) 10만 3,337명 (36.4%), 여천군 5만 3,540명 (19.4%). 옛 여수시 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 10만 1,851명에서 2021년 12만 4,381명으로 늘었고, 비중은 1960년대의 39.5%에서 44.2%로 늘었다. 여수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옛 여수시 지역 12만 3,365명, 옛 여천시 지역 10만 3,337명, 소라면 2만 426명, 돌산읍 1만 3,229명, 화양면 6,518명, 율촌면 6,292명, 남면 2,846명, 화정면 2,167명, 삼산면 2,062명으로 시내에 인구의 70% 이상이 몰려 있다.[43] 정다래는 1991년 12월 2일생(32세)이므로 1994~1997년에 유치원을 다녔다. 정다래가 유치원을 다닐 시절에는 삼여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아 여수시가 여수시•여천시•여천군 3개의 지자체로 나뉘어 있었다. 정다래의 또래인 1991년생들은 1994~1997년 (1, 2월생은 1993~1996년)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야말로 1991년생은 유치원에 입학한 뒤 Windows 95가 발매되고, 유치원 졸업할 때 즈음 IMF 금융위기를 겪은 셈. 그 시절이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문과과학탐구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를 보고, 이과사회탐구 (정치경제, 국민윤리, 국사, 한국지리, 세계사)를 봤던 시절이었으며 유치원 시절 판다 밍밍과 리리를 볼 수 있었다. (밍밍(明明)과 리리(莉莉)는 1998년 중국으로 반환)[44] 여기서는 오히려 장흥이나 녹동이 더 가깝다. 국회의원 선거구가 해남군·완도군·진도군으로 바뀌면서 국회의원 후보들이 금일도에 와서 선거운동을 하기가 힘들어졌을 정도. 그 때문에 금일도에는 김해 김씨 축은공파 장흥계(항렬에 ‘빛날 환’, ‘투구 주’, ‘동녘 동’을 쓰면 거의 그 쪽 계열이다.)가 상당히 많이 거주하고 있다.[45] 드물게 해남군 등 다른 군에서 원정 오기도 한다.[46] 이런 경우는 2000년대 이후 늘었다. 고금면 출신자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 고금면에서 읍내로 가려면 고금면에서 배를 타고 강진군 마량면으로 간 뒤, 마량에서 읍내로 가는 배를 타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안 맞으면 마량에서 자고 가야 했을 정도) 때문에 고금중학교가 1960년대에 생긴 것이다.[47] 그만큼 완도군이 타지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완도군의 읍면별 인구는 완도읍 1만 8,283명, 노화읍 5,220명, 고금면 4,273명, 금일읍 3,757명, 신지면 3,423명, 군외면 3,260명, 보길면 2,694명, 소안면 2,531명, 약산면 2,377명, 청산면 2,076명, 금당면 980명, 생일면 815명으로 금일읍은 고금면보다 인구가 적고, 금당면과 생일면은 인구가 1,000명도 안 된다. 게다가 완도읍의 인구 비중도 36.5%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것도 1960년대에 해서는 높아졌는데, 1960년대에서 2021년으로 오는 동안 완도읍의 인구는 1만 9,003명에서 1만 8,282명으로 미량이나마 줄었지만 비중은 13.6%에서 36.5%로 높아졌다.[48] 레슬링 김영남, 레슬링 김원기. 정작 이 두 선수는 함평군 대동면이라는 시골 동네에 살아서 유치원은 꿈도 못 꿨다.[49] 반대로 읍내 집중도는 더 높아진다. 함평읍의 인구는 1960년대 2만 4,786명에서 8,401명으로 감소했으나 함평읍의 비중은 17.8%에서 26.4%로 높아졌다. 함평군의 읍면별 인구는 함평읍 8,401명, 학교면 3,888명, 월야면 3,725명, 손불면 3,401명, 대동면 3,122명, 나산면 2,875명, 해보면 2,860명, 엄다면 1,923명, 신광면 1,855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4,000명 미만 (2020년 학교면의 인구가 4,000명 미만으로 감소)일 정도로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호남선 함평역은 함평읍이 아니라 학교면에 있고, 함평역에서 함평읍까지는 택시나 버스로 10분 걸린다.[50] 전라남도에는 이미 강진군, 곡성군, 신안군에 사립유치원이 없어서 함평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된다면 전라남도 4번째가 된다. 이렇게 되면 함평군은 대도시에 접한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된다. 심지어 군위군은 아예 광역시 산하이면서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되었다.[51] 전라남도 5대 읍은 광산군 송정읍, 나주군 나주읍/영산포읍, 고흥군 도양면(녹동), 장흥군 장흥읍, 보성군 벌교읍이었다. 이들 중 송정읍은 광주광역시 광산구로, 나주읍•영산포읍은 나주시 동 지구가 되었다.[52] 성화대학 폐교 이전에는 성화대학으로 많이 갔으나, 폐교 이후로는 수도권, 광주, 목포 등지로 가야 한다. 게다가 군내 유일한 대학이었던 전남도립대학교 장흥캠퍼스는 자금난을 이유로 2006년 폐교되었다.[53] 장흥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무려 66km나 떨어진 목포시이다. 그나마도 자동차를 타고 약 45~50분은 가야 한다.[54] 그만큼 장흥군의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장흥군의 읍면별 인구는 장흥읍 1만 5,465명, 관산읍 4,998명, 대덕읍 3,409명, 안양면 2,850명, 회진면 2,829명, 용산면 2,341명, 장평면 2,105명, 부산면 1,456명, 장동면 1,268명, 유치면 1,079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3,000명을 못 넘고 있다. 장흥읍 인구도 3만 166명에서 1만 5,465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은 20.9%에서 40.5%로 높아졌다. 이런 시골 동네에도 법원교도소가 있다.[55] 단일 성씨로 보면 강씨가 10위.[56] 김해 김씨들 중 이름에 '투구 주'자가 들어가 있다면 100% 이 파 출신이다.[57] 김규민은 1990년 12월 28일생(33세)이므로 1993~199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는 Windows 95가 발매될 시점에 유치원을 다녔고, 유치원 시절 한 자리 번호판 (용도기호: 가~마, 거~퍼, 고~호, 구~후, 그~흐/바~하/허)과 두 자리 번호판 (용도기호: 가~마, 거~머, 고~모, 구~무/바, 사, 아, 자/허)을 모두 보았던 셈. 장흥읍에 사립유치원이 몰려 있는 정황상 병설유치원에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58] 첫 번째 졸업생은 현재 82세가 됐고, 남아 있던 11명의 원생들은 인근 유치원 및 어린이집으로 분산됐다. 해남유치원의 마지막 졸업생들은 2012년생인데, 이들은 현재 11~12세로, 현재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며 남은 원생들은 초등학교 1학년 (2015년생), 2학년 (2014년생), 3학년 (2013년생)이 됐다.[59] 과거 이 지역이 고향인 어르신들은 국민학교만 해남에서 다니고 중학교고등학교 시절에는 배를 타고 목포에 있는 학교에 가거나, 목포에서 하숙하며 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대학을 진학할 때 대체로 전남대학교를 갔다고 한다.[60] 해남읍과 송지면의 인구 차이는 거의 4배나 난다. 그나마 1970년대에는 황산면, 북평면, 송지면이 인구 2만 명을 찍기도 했다. 이런 탓에 해남군에 사는 사회복무요원들은 대체로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로 출퇴근할 정도.[61] 해남군 자체가 한반도에서 매우 남쪽인 데다 가장 가까운 도시인 목포시까지는 육로보다 배로 가는 게 가까울 정도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해남군 주민들이 서울에 가거나,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해남에 갈 때는 목포를 거치지 않는다는 것인데, 서울에서 해남으로 가는 경우는 서해안고속도로-영암-해남 루트를 이용한다. 이런 점 때문에 해남, 강진, 장흥, 보성, 고흥 5개 군은 서울의 유명 입시 컨설턴트들이 기피하는 지역이 되었다.[62] 그 와중에 해남읍의 인구는 1960년대 2만 3,472명에서 2019년 2만 4,912명으로 늘어나 읍내 집중도가 10.2%에서 35%로 높아졌다. 해남군의 읍면별 인구는 해남읍 2만 4,912명, 송지면 6,154명, 황산면 4,856명, 문내면 4,046명, 산이면 3,795명, 화원면 3,625명, 화산면 3,244명, 옥천면 3,019명, 삼산면 2,915명, 현산면 2,835명, 북평면 2,823명, 마산면 2,406명, 계곡면 2,160명, 북일면 2,016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1만 명 미만일 정도로 상태가 열악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정도이다.[63] 지금도 노안면에서는 광주로 가기도 한다. 실제로 노안면에 가면 광주의 유치원 버스들이 오기도 하며, 노안면에 사는 유아들 중 광주에 있는 유치원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케이스이다. 노안면 외에 남평읍, 금천면 등지에서도 광주로 원정을 오기도 한다.[64] 다만 시내 인구는 1960년대 5만 9,236명에서 2021년 3만 1,188명으로 줄어 시내 비중은 23.9%에서 28.4%로 5% 가량 높아지는 데 그쳤다. 다만, 여기에 빛가람동을 합하면 동 지역 인구가 6만 7,472명까지 늘고 전체 인구의 56.4%까지 높아진다. 나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빛가람동 3만 6,284명, 시내 3만 1,188명, 남평읍 1만 2,044명, 노안면 4,688명, 금천면 4,343명, 봉황면 4,286명, 다시면 3,585명, 산포면 3,503명, 왕곡면 2,933명, 세지면 2,664명, 동강면 2,507명, 공산면 2,334명, 문평면 1,971명, 다도면 1,899명, 반남면 1,452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5,000명을 못 넘는다.[65] 나씨의 본관은 나주이다. 다만 나주 나씨와 금성 나씨는 서로 다른 가문이다.[66] 옛 동광양시의 나머지 지역이 시 승격 이전 골약면, 태금면 관할인데 광영동만 혼자 옥곡면 관할이었다.[67] 1960년대 보성군 벌교읍이 시 승격을 노렸으나 실패로 끝났고, 이후에도 해남군, 무안군 등이 시 승격을 노렸으나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68] 광양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8만 6,985명, 광양읍 4만 9,131명, 옥룡면 3,126명, 옥곡면 2,877명, 진상면 2,867명, 진월면 2,831명, 봉강면 2,212명, 다압면 1,840명으로 면 지역의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 시내 인구는 1970년대 1만 5,423명에서 2021년 8만 6,985명으로 늘어 비중이 16.3%에서 57.3%로 높아졌으며, 광양읍 인구는 1960년대 2만 8,706명에서 5만 938명까지 늘었다가 4만 9,131명으로 줄었으나 비중이 29.4%에서 32.4%로 높아졌다. 여담으로 전라남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 3곳 중 2곳이 광양시에 있다. (광양시 중마동 5만 8,390명, 순천시 해룡면 5만 4,908명, 광양시 광양읍 4만 9,415명)[69] 수도권의 경우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강동구 성내동, 천호동이 상호 간 교류가 잦아 풍납동에 천호유치원 등 강동구의 유치원 버스가 다니거나, 반대로 천호동에서 우일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 송파구 가락동강남구 수서동 간에도 교류가 잦다.[70] 이슬찬은 1993년 8월 15일생(30세)이므로 1996~1999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93년생들은 유치원 시절 IMF 사태를 겪고 Windows 98 발매, 20세기 마지막 윤달도 겪은 셈. 생일이 광복절이기 때문에 그는 유치원 시절 당일에 생일축하를 받지 못했다. 사실 이는 생일이 주말이거나 공휴일인 원아들은 누구나 겪는 문제이긴 하다.[71] 나머지 3곳은 목포시, 무안군, 신안군이다. 참고로 부동의 1위는 김씨.[72] 타지에서 진도군을 가려면 무조건 해남군을 지나가야 한다. 서울에서 오는 경우는 대체로 서해안고속도로를 지나 해남을 거쳐 진도대교를 통해 진도로 들어간다.[73] 그만큼 진도군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진도군의 읍면별 인구는 진도읍 1만 1,131명, 고군면 3,711명, 의신면 3,581명, 임회면 3,495명, 지산면 3,206명, 군내면 3,079명, 조도면 3,024명으로 진도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모두 인구가 2~3,000명대에 불과하다.[74] 때문에 만약 삼호읍이 목포로 넘어간다면 영암군은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한다. 이미 전라남도에서만 강진군곡성군신안군함평군에 사립유치원이 없으니 영암군은 5번째가 되겠지만, 고흥군, 보성군, 구례군, 담양군 등 전라남도에 있는 사립유치원 1곳뿐인 군 중 하나가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된다면 6번째가 된다.[75] 영암읍 8,251명, 삼호읍 2만 1,451명으로 삼호읍이 약 2.5배 많다. 그것도 1996년에는 영암읍에 밀렸다가 역전한 것이다.[76]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양구읍), 화천군 (화천읍), 인제군 (인제읍), 평창군 (평창읍), 고성군 (간성읍),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진안군 (진안읍), 장수군 (장수읍), 임실군 (임실읍), 순창군 (순창읍),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곡성군 (곡성읍), 신안군 (압해읍), 함평군 (함평읍),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울진군 (울진읍), 영양군 (영양읍), 영덕군 (영덕읍),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산청군 (산청읍), 고성군 (고성읍), 하동군 (하동읍), 남해군 (남해읍) 등 26개 군은 관내 모든 읍면에 사립유치원이 없으며, 이들까지 합하면 32개 군의 군청소재지에 사립유치원이 없으며 시에서는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속초시만 사립유치원이 없다.[77] 그만큼 삼호읍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영암군의 읍면별 인구는 삼호읍 2만 1,451명, 영암읍 8,251명, 신북면 3,782명, 시종면 3,581명, 군서면 3,200명, 학산면 3,015명, 미암면 2,287명, 도포면 2,287명, 금정면 2,076명, 서호면 1,924명, 덕진면 1,853명으로 면 지역은 상태가 매우 열악하여 사립유치원을 설립하지 못할 정도로 인구가 적은 것이다.[78] 현재는 폐원.[79] 게다가 영암군 등 5개 군은 읍내에 사립유치원이 없고, 양구군 등 26개 군은 아예 사립유치원 자체가 없다. 시에서는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와 태백시만 사립유치원이 없다.[80] 그만큼 장성군의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장성군의 읍면별 인구는 장성읍 1만 3,517명, 삼계면 6,152명, 황룡면 4,098명, 남면 3,726명, 진원면 3,694명, 삼서면 3,378명, 북이면 2,886명, 북하면 2,218명, 동화면 1,852명, 서삼면 1,556명, 북일면 1,387명으로 장성읍을 제외하면 1만 명 이상인 읍면이 없다. 반대로 장성읍의 인구 비중은 높아졌는데, 장성읍 인구는 1960년대 2만 6,816명에서 2021년 1만 3,517명으로 감소했지만 비중은 20.6%에서 30%로 높아졌다.[81] 참고로 울릉도 최초의 유치원은 1974년에 설립되었다.[82] 그 와중에 화순읍의 인구는 1960년대 2만 4,291명이었다가 2011년 3만 9,066명으로 늘었고 비중도 16.1%에서 62.4%로 크게 높아졌다. 화순군의 읍면별 인구는 화순읍 3만 9,066명, 동면 3,435명, 능주면 3,269명, 도곡면 2,901명, 사평면 2,182명, 춘양면 1,810명, 이양면 1,798명, 동복면 1,625명, 백아면 1,597명, 도암면 1,436명, 한천면 1,360명, 청풍면 1,041명, 이서면 1,002명으로 면 지역은 인구가 4,000명을 못 넘고 있다. 심지어 화순읍과 동면의 인구 차이는 11배나 난다.[83] 어느 정도냐면 문씨가 강씨보다 많을 정도. 당장 화순 옆에 있는 남평읍이 문씨의 관향인데, 문씨 중 대종이 남평 문씨이기 때문.[84] 이용대는 1988년 9월 11일생(35세)인데, 6개월 차이로 3세 유치원 입학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용대의 또래인 1988년생들은 대개 1992~1994년 (1, 2월생은 1991~1993년)에 유치원을 다녔다.[85] 무안군이 목포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86] 2004년까지는 청주시 (1929년)이었다.[87] 때문에 1960년대 무안군 몽탄면, 일로읍, 삼향읍 일대에 살던 유아들은 호남선 기차를 타고 목포의 유치원으로 가야 했는데, 그 유아들이 현재는 거의 환갑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환갑을 넘겼다.[88] 때문에 아침 시간대에 무안군 삼향읍 일대를 가 보면 목포시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고, 무안군에 사는 유아들 중 일부는 목포로 유치원 원정 통학을 가기도 한다.[89] 신안군을 제외한 무안군 지역만 계산하면 14만 2,746명.[90] 정확히는 2006년 6만 1,766명을 최저점으로 계속 늘어 8만 6,132명까지 회복했다. 무안군의 읍면별 인구는 삼향읍 3만 8,371명, 일로읍 1만 2,902명, 무안읍 1만 646명, 청계면 6,367명, 해제면 5,017명, 현경면 4,701명, 몽탄면 3,120명, 운남면 2,991명, 망운면 2,017명으로 면 지역의 상태가 열악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91] 무안읍 10,646명, 일로읍 12,902명, 삼향읍 38,371명으로, 삼향읍이 무안읍에 트리플 스코어로 앞서고 있다. 때문에 만약 목포시, 무안군, 신안군이 하나로 통합하면 현재의 무안군 북부와 신안군 북부에 구가 하나 생기는데 이럴 경우 해당 구는 사립유치원 없는 일반구로 전락하게 된다.[92] 지방에서는 직장을 시골에 두고 주변 도시에 사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칠곡군만 해도 유치원 교사들이 주소지를 구미시대구광역시에 두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93] 박나래는 1985년 10월 25일생(38세)이므로 1989~199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1985년생들은 손흥민이 태어나기 전 (손흥민은 1992년 7월 8일생이다.)에 유치원을 다녔고, 유치원 시절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문을 열었던 셈. 박나래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사람으로는 이수지, 김기리, 하승진 등이 있으며, 특히 하승진은 유치원 시절 박나래보다 키가 50cm 이상 더 컸다고 한다.[94] 박진주는 1988년 12월 24일생(35세)이므로 1992~1994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악명높은 1994년 폭염을 유치원 시절에 겪은 셈.[95] 나머지 3곳은 목포시, 신안군, 진도군이다.[96] 또는 순천.[97] 함평군은 2020년 사립유치원이 모두 문을 닫으면서 사립유치원 없는 군으로 전락했다. 함평군에는 KTX가 지나가지만 역은 없다.[98] 평창군의 경우 2017년 KTX가 개통했지만 당시에는 사립유치원이 있었다. 그래도 KTX가 지나가는 지역에는 없고 평창읍에 있었다.[99] KTX 정차역이 있는 지역 중에서는 단양군, 평창군, 곡성군이, KTX-이음이 정차하는 지역 중에서는 단양군평창군이, ITX-새마을 정차역이 있는 지역 중에서는 단양군과 곡성군, 함평군이, 새마을호 정차역이 있는 지역 중에서는 서천군이, 무궁화호 정차역이 있는 지역 중에서는 태백시단양군서천군하동군군위군임실군곡성군함평군영덕군이 사립유치원 없는 시와 군이고, 나머지는 철도가 없다.[100] 그만큼 곡성읍의 인구도 매우 적다. 곡성군의 읍면별 인구는 곡성읍 7,841명, 옥과면 4,226명, 입면 2,480명, 석곡면 2,357명, 죽곡면 1,921명, 오곡면 1,892명, 겸면 1,701명, 삼기면 1,673명, 오산면 1,434명, 목사동면 1,338명, 고달면 1,176명으로 곡성읍조차 인구 1만 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101] 2004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겸면초등학교와 겸면초등학교 마산분교가 동시에 폐교되었다.[102] 1999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평호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103] 2004년 면내 마지막 교육기관인 오곡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104] 옥과면 등 곡성군 서부에 사는 유아들은 광주로도 간다.[105] 주로 광주나 순천. 드물게는 대전이나 수도권으로 가기도 한다.[106] 반대로 국토 최동단의 울릉군폭설로 인한 휴원이 잦다.[107] 이승만: 황해도 평산군, 윤보선: 충청남도 아산시, 박정희: 경상북도 구미시, 최규하: 강원도 원주시, 전두환: 경상남도 합천군, 노태우박근혜: 대구광역시 (출신 구는 다르다.), 김영삼문재인: 경상남도 거제시 (출신 면은 다르다.), 김대중: 전라남도 신안군, 노무현: 경상남도 김해시, 이명박: 경상북도 포항시 (출생은 일본 오사카), 윤석열: 서울특별시.[108] 과거 군청이 목포시에 있었다. 또한 지금도 신안군을 관할하는 공공기관 중 목포에 있는 것이 있다.[109] 압해읍 6,279명, 지도읍 4,464명, 흑산면 3,839명, 비금면 3,553명, 임자면 3,149명, 안좌면 2,988명, 도초면 2,741명, 자은면 2,253명, 암태면 2,023명, 증도면 1,796명, 하의면 1,770명, 장산면 1,565명, 신의면 1,544명, 팔금면 974명으로 전부 인구 1만 명 미만이다.[110] 이 곳은 2000년대까지도 아파트가 없었다. 그러니까 전한길EBSi 수능 강사로 활동하고 Windows XP가 전성기를 누릴 동안 신안군민들은 아파트를 보지 못했던 셈이다.[111] 신안군에는 대학교가 없다. 사립유치원 없는 25개 시군 중 대학이 있는 곳은 4곳뿐이다. 신안군 출신이 유아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개 수도권, 광주, 목포 등지로 나가서 대학을 다니고 고향으로 돌아온다.[112] 나머지 3곳은 목포시, 무안군, 진도군이다.[113] 이세돌은 1983년 3월 2일생(41세)이므로 1987~1989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1988 서울 올림픽롯데월드 어드벤처 개장을 유치원 시절에 봤던 셈. 당시 신안군의 인구는 10만 명을 넘었으나, 군청은 목포에 있었다. (신안군청이 목포에서 압해읍으로 이사한 시기는 2011년이다.)[114] 동시에 전라도 최초이다.[115] 2010년 새로 설립된 군산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116] 그나마도 1960년대에는 전주가 22만 432명, 군산이 25만 753명으로 군산이 인구가 더 많았으나 현재는 역전되었다. 현재 군산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23만 1,581명, 대야면 5,043명, 옥산면 4,720명, 회현면 3,484명, 옥도면 3,394명, 옥구읍 3,184명, 옥서면 3,039명, 개정면 3,021명, 성산면 2,903명, 임피면 2,677명, 서수면 2,589명, 나포면 2,224명으로 읍면 지역의 인구가 6,000명을 못 넘는다. 이렇게 개발이 가능했던 이유는 군산의 지형이 수도권 서부와 비슷하게 산이라고 명함을 내밀 만한 산이 없었기 때문이다.[117] 1960년대의 40.8%에서 2배 넘게 높아졌다.[118] 전국 두씨 인구가 6,428명인데 그 중 1,037명이 군산에 살고 있었다.[119] 기초자치단체 1위. 울산에 사는 채씨 인구를 모두 합쳐도 군산을 못 넘는다.[120] 생일이 안 지났다면 66세.[121] 생일이 안 지났다면 각각 64세, 65세.[122] 천안시가 전주보다 1년 늦게 유치원을 설립했다. 참고로 선거구가 4개 이상인 곳 중에서는 청주시, 5개 이상인 곳 중에서는 창원시가 유치원 교육의 혜택을 먼저 받았다.[123] 전주유치원은 전주서문교회 부설로,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소재였다. 당시에는 전주역전주고등학교와 가까운, 현재의 전주시청 자리에 있었다.[124] 심지어 전라북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 3곳 중 2곳 (송천1동 5만 9,340명, 평화2동 4만 5,878명)이 전주에 있다.[125] 덕진구 31만 7,714명, 완산구 33만 9,718명.[126] 한자가 景이다. 전국적으로 3,923명밖에 없는 희귀 성씨이지만 전주에 230명이 살고 있었다. 전국 景씨 인구 2위는 김제시.[127] 무려 서울특별시 송파구보다도 많다. 참고로 서울 송파구의 인구는 약 67만. 하지만 국씨는 본관이 담양 국씨 하나뿐이다.[128] 한글 표기를 '류'로 하는 경우는 수원에 많이 살지만, '유'로 하는 경우는 전주에 더 많이 산다. 합쳤을 경우 전주보다 수원에 더 많다.[129] 서문씨 자체도 전라도에 많이 살지만, 그 중 전주에 몰려 산다. 전국 서문씨 인구가 2,028명인데 그 중 132명이 전주에 살고 있었다.[130] 소씨 자체도 전라도에 몰려 살지만, 그 중 전주에 특히 많이 몰려 산다. 전국 소씨 인구가 5만 2,427명인데 그 중 3,452명이 전주에 살고 있어 기초자치단체 1위를 차지했다.[131] 여기서 말하는 양씨는 한자가 楊이다. 전국 인구 6만 9,101명 중 1,996명이 전주에 살고 있었다.[132] 온씨는 금구 온씨 단본인데, 김제에 살던 온씨들이 전주로 많이 이사를 와서 온씨 인구 1위인 기초자치단체가 됐다.[133] 은씨 자체는 수도권에 더 많이 살지만 (전국 은씨 인구 1만 6,894명 중 8,683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었다.), 시군구 단위로 내려가면 전주가 766명으로 1위이다.[134] 전국 태씨 인구가 9,063명인데 그 중 338명이 전주에 살아 기초자치단체 1위로 등극했다. 수도권에서 그나마 태씨가 많이 산다는 용인도 태씨 인구는 200명 미만이다.[135] 전국적으로 7,239명밖에 없는 희성이지만, 전주에 483명이 살고 있어 형씨 인구 1위를 지키고 있다. 형씨 인구 2위는 같은 전라북도의 남원시.[136] 정승원은 1997년 2월 27일생(27세)이다. 보통 1997년생은 2000~2003년에 유치원을 다니지만 정승원은 빠른 년생이라 1996년생들과 함께 유치원을 다녔다. 그야말로 양평에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닌 셈. 다만, 그는 고교 시절 부상으로 유급해서 고등학교는 1997년생들과 함께 다녔다. 그에게는 형이 3명 있는데, 형들과 같은 유치원을 다녔는지, 또 형들 중 몇 명과 같은 유치원을 다녔는지는 불명.[137] 이창호는 1975년 7월 29일생(48세)이다. 1975년생들은 보통 1979년부터 198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니는데, 이창호가 유치원을 다닐 당시에는 유치원 취원율이 10% 미만이었으므로 이창호의 집안은 상류층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그 시절이면 아직 캘리포니아가 경합주였고, 전주역이 노송동에 있었으며 교련국기하강식이 남아 있던 시절이며,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에 겨우 1번 (1954 스위스 월드컵) 나갔던 약체였다.[138] 때문에 만약 이 곳마저 폐원하면 전라북도 동부 지역은 사립유치원 없는 동네로 전락하고, 남원시·임실군·순창군은 사립유치원 없는 선거구가 되며, 전라북도 동부 지역 (남원시, 진안군, 무주군, 장수군, 임실군, 순창군)에 사는 유아들은 전주 등지로 나가야 사립유치원을 다닐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남원시는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속초시에 이어 3번째로 사립유치원 없는 시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갖게 된다.[139] 더 옛날에는 개천절어린이날에도 눈이 내렸을 정도이다.[140] 같은 도의 완주군보다도 적다.[141] 이 쪽은 특수한 케이스이다. 어지간한 농촌 군 지역은 인구 감소로 사립유치원이 줄줄이 문을 닫아 숫자가 줄어든 데 비해, 이 곳은 인구가 늘어서 사립유치원 수요가 늘어날 법 한데도, 시민들이 사립보다는 공립유치원을 원하고, 세종시 자체가 공교육을 중시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142] 심지어 칠곡군은 군인데도 사립유치원 개수가 10곳을 넘어간다.[143]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4만 4,193명에서 4만 8,636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는 23.6%에서 59.7%로 높아졌다. 남원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4만 8,636명, 운봉읍 3,840명, 인월면 2,730명, 주천면 2,631명, 금지면 2,301명, 이백면 2,282명, 산내면 2,111명, 송동면 2,045명, 아영면 1,915명, 산동면 1,872명, 주생면 1,833명, 대산면 1,656명, 대강면 1,623명, 보절면 1,528명, 사매면 1,511명, 수지면 1,146명, 덕과면 1,002명으로 읍면 지역의 인구가 모두 5,000명 미만인 데다 덕과면은 인구가 958명으로 1,000명에도 미달했으나, 2019년 11월 1,000명을 회복했으나, 2020년 다시 1,000명 선이 무너지는 등 인구 증감을 반복하고 있다.[144] 남원과 접하는 지역들 중 사립유치원이 있는 곳은 구례군함양군뿐이다.[145] 진안군은 2008년 군내 마지막 사립유치원이 폐원되고, 무주군은 그나마 있던 사립유치원이 어린이집으로 전환됐으며 임실군, 장수군, 순창군은 유치원 자체가 늦게 들어온 데다 인구가 매우 적어서 사립유치원이 들어올 턱이 없었다. 전라북도에 있는 군 가운데 사립유치원이 있는 군은 3곳 (완주군, 부안군, 고창군)뿐인데, 그마저도 전부 도 서부에 있다. 어찌 보면 사립유치원 없는 군들이 모두 서부에 몰려 있는 경상남도와 비슷한 처지.[146] 기희현은 1995년 6월 16일생(28세)이므로 1998~200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때 Windows 98-Windows 2000/Me-Windows XP 순서대로 운영체제가 바뀌었고 스타크래프트리니지, 롤러코스터 타이쿤의 발매를 유치원 시절에 겪은 셈.[147] 익산시 전체 인구 1960년대 28만 9,706명에서 1970년 27만 9,521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2000년 32만 2,636명을 찍고 계속 줄어 현재는 28만 2,276명까지 줄었다. 그 와중에 시내의 인구는 1960년대 7만 8,198명에서 2021년 22만 3,763명으로 도리어 늘어나, 27%였던 시내 집중도가 79.1%로 늘었다.[148] 1960년대에는 반대로 익산이 전주보다 인구가 많았다. 익산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22만 3,763명, 오산면 7,892명, 황등면 7,186명, 함열읍 6,960명, 금마면 5,295명, 춘포면 4,597명, 왕궁면 4,409명, 여산면 3,357명, 낭산면 3,109명, 망성면 3,007명, 용안면 2,671명, 삼기면 2,612명, 함라면 2,324명, 성당면 1,940명, 용동면 1,578명, 웅포면 1,576명으로 읍면의 인구가 1만 명을 못 넘고 있다.[149] 특히 해전리는 전주보다 익산이 더 가깝다.[150]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4만 7,036명에서 5만 1,838명으로 (내장상동 포함 시 6만 8,977명)으로 늘었고 시내 집중도가 16.9%에서 44% (내장상동 포함 시 63%)로 높아졌다. 신태인읍 역시 인구가 2만 4,844명에서 5,566명으로 줄었고, 비중도 9%에서 5.3%로 낮아졌다. 정읍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6만 8,977명, 신태인읍 5,566명, 북면 4,276명, 태인면 3,456명, 입암면 2,860명, 고부면 2,811명, 감곡면 2,784명, 정우면 2,603명, 칠보면 2,343명, 산외면 2,128명, 이평면 2,105명, 소성면 2,080명, 덕천면 1,807명, 영원면 1,798명, 옹동면 1,692명, 산내면 1,223명으로 읍면 지역이 매우 열악하다.[151] 각각 28~29, 27~28, 26~27세. 이들은 주로 대학생이다.[152] 유치원이 폐원될 경우 남은 원생들은 인근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분산 배치한다. 이사나 해외 이주를 할 경우는 새로운 유치원을 알아봐야 한다.[153] 그만큼 부안읍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는 뜻이다. 부안군의 읍면별 인구는 부안읍 2만 1,003명, 변산면 4,526명, 계화면 3,440명, 동진면 2,891명, 하서면 2,691명, 줄포면 2,635명, 백산면 2,585명, 보안면 2,462명, 진서면 2,315명, 행안면 2,244명, 상서면 2,223명, 주산면 1,969명, 위도면 1,156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가 5,000명도 못 넘고 있다. (심지어 대명 리조트가 있다는 변산면조차 인구가 4,526명에 그치고 있다.) 반대급부로 부안읍의 비중은 높아졌는데 1960년대에서 2020년으로 오는 동안 인구는 2만 6,569명에서 2만 1,003명으로 감소했지만 비중은 15.2%에서 38.9%로 높아졌다.[154] 부안에서 전주까지는 55분, 군산까지는 40분이나 걸린다. 그나마 가까운 도시인 정읍까지는 자차로 34분.[155] 그 와중에 시내 인구는 3만 4,190명에서 4만 2,046명으로 늘어 시내 집중도가 13.4%에서 50.8%로 높아졌다. 김제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4만 2,046명, 금구면 4,992명, 금산면 4,621명, 백구면 3,856명, 용지면 3,593명, 만경읍 2,665명, 진봉면 2,654명, 백산면 2,553명, 공덕면 2,541명, 죽산면 2,497명, 봉남면 2,237명, 황산면 1,898명, 성덕면 1,810명, 청하면 1,785명, 광활면 1,359명, 부량면 1,343명으로 읍면 지역의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156] 현재 19~22세/고3~대2.[157] 유치원이 폐원되면 그 다음 해 신입생들을 받지 않고, 남은 원생들은 인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분산 배치된다.[158] 옛날에는 개천절 무렵에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159] 역도 전병관. 정작 전병관 본인은 진안군 마령면이라는 시골에 살아서 유치원은 구경도 못 했다.[160] 지도를 잘 보면 완주군진안군 사이를 수많은 산들이 가로막고 있다. 이런 이유로 고속도로도 21세기에 가서야 생겼다. 이런 이유로 옛날에는 서울에서 진안으로 가려면 기본 7~8시간은 걸렸을 정도이다.[161] 그만큼 진안군의 상태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진안군의 읍면별 인구는 진안읍 1만 139명, 부귀면 2,860명, 백운면 1,950명, 마령면 1,870명, 성수면 1,792명, 주천면 1,493명, 동향면 1,400명, 안천면 1,096명, 정천면 1,073명, 상전면 885명, 용담면 836명으로 인구 1,000명 미만인 읍면이 2곳이나 있다. 특히 용담면은 전라북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읍면인데 가장 인구가 많다는 전주시 송천1동 (인구 5만 9,177명)의 69분의 1 수준밖에 안 되고, 군 전체 인구도 전주시 송천1동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162] 진안군에는 대학이 없다. 한때 전라대학이 진안군에 설립될 예정이었으나 재산 부족으로 미개교 상태로 남게 되었다. 현재 진안군에서 근무하는 유아교사들은 대체로 전주 등지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그나마 한국방송통신대학교로 진학하면 진안군을 떠나지 않고 학점 취득이 가능하다.[163] 고창군에는 철도가 없다.[164] 철도는 아예 없고, 서해안고속도로도 21세기에 와서야 생겼다.[165] 그만큼 고창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의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는 셈이다. 고창군의 읍면별 인구는 고창읍 2만 1,394명, 대산면 3,337명, 흥덕면 3,114명, 해리면 2,807명, 무장면 2,795명, 아산면 2,672명, 부안면 2,648명, 공음면 2,525명, 심원면 2,519명, 상하면 2,435명, 신림면 2,252명, 고수면 2,246명, 성내면 1,971명, 성송면 1,814명으로 고창읍 혼자만 인구가 1만 명을 넘는다. 반대급부로 고창읍의 비중은 높아졌는데 1960년대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면서 인구는 2만 4,177명에서 2만 1,304명으로 감소했으나 비중은 12.3%에서 38.7%로 높아졌다.[166] 과거 이 동네는 보통 10월 중순, 빠르면 개천절 전후에 눈이 오기 시작했다.[167] 심지어 무주읍의 인구도 1만 명을 넘지 못한다. (비중은 전체 군 인구의 39.2%) 현재 무주군의 읍면별 인구는 무주읍 9,442명, 안성면 4,258명, 설천면 4,052명, 적상면 2,618명, 무풍면 2,254명, 부남면 1,412명이다.[168] 무주군에는 대학이 없다. 무주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은 대전에 있다.[169] 때문에 만약 고산군이 분군된다면 고산군은 전라북도에서 6번째로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되고, 전라북도는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가장 많은 도로 등극하게 된다.[170] 이런 군이 완주, 무안 외에 가평, 영암, 음성, 연천 등 4곳이 더 있다. 사립유치원이 아예 없는 양구, 화천, 인제, 고성, 평창, 단양, 서천, 무주, 진안, 장수, 임실, 순창, 강진, 곡성, 신안, 함평, 군위, 청송, 영양, 울진, 영덕, 의령, 산청, 하동, 남해, 고성 등 26개 군까지 합치면 군청 소재지에 사립유치원이 없는 군은 31개로 늘어난다. 이를 다시 시도별로 나누면 대구광역시 1곳 (군위), 경기도 2곳 (가평, 연천), 강원특별자치도 5곳 (화천, 양구, 인제, 고성, 평창), 충청북도 2곳 (음성, 단양), 충청남도 1곳 (서천), 전라북도 6곳 (완주, 진안, 무주, 장수, 임실, 순창), 전라남도 6곳 (강진, 곡성, 신안, 무안, 영암, 함평), 경상북도 4곳 (청송, 영양, 영덕, 울진), 경상남도 5곳 (의령, 산청, 하동, 남해, 고성)이며 2023년 편입된 대구광역시 군위군을 제외한 나머지 광역시 산하의 군 (부산광역시 기장군, 대구광역시 달성군, 인천광역시 강화군, 옹진군, 울산광역시 울주군)들은 모두 사립유치원이 있고, 강화군과 옹진군을 제외하면 사립유치원이 있는 읍면이 2곳을 넘는다. 2022년 태백시, 2023년 속초시의 모든 사립유치원이 휴•폐원되면서 사립유치원 없는 시가 생겨났는데, 시에서는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속초시만 사립유치원이 없다.[171] 완주군이 사실상 전주시 읍면지역의 역할을 하고 있고, 전주•완주 통합론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172] 삼례읍 해전리는 전주보다 익산이 더 가깝다.[173] 화산면은 전주보다 논산이 더 가깝다.[174] 완주군의 읍면별 인구는 봉동읍 2만 6,030명, 이서면 1만 4,342명, 삼례읍 1만 4,302명, 용진읍 7,168명, 소양면 6,198명, 구이면 5,804명, 고산면 4,724명, 상관면 4,393명, 화산면 2,733명, 운주면 1,947명, 비봉면 1,913명, 동상면 1,084명, 경천면 971명인데, 전체적으로 옛 고산군 지역의 인구가 적고, 특히 경천면은 인구가 1,000명을 못 넘고 있다.[175] 이 곳이 고향인 50대 이상인 어른들은 ‘고향에 유치원이 없어서 못 다녔다’거나, ‘고향에 유치원이 없어서 아침에 남원으로 갔다가 점심 때 장수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176]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장수를 가려면 전주, 오수 (임실군), 남원 등지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려서 서울에서 장수까지 가는 데만 기본 7시간은 걸렸다고 한다.[177] 그만큼 장수읍의 인구도 7,406명으로 매우 적다. 장수군의 읍면별 인구는 장수읍 7,406명, 장계면 4,429명, 번암면 2,318명, 계남면 2,160명, 산서면 2,107명, 천천면 2,089명, 계북면 1,576명으로 모두 1만 명 미만이다.[178] 옛날에 여기 사는 사람들이 '읍내 간다'라는 말을 하면 장수가 아니라 남원에 간다는 것을 의미했을 정도이다. 이는 인근 산서면도 마찬가지.[179] 장수군에는 대학교가 없다. 서남대학교가 폐교된 이후 그나마 장수군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은 전주에 있다.[180] 2019년 10월 2만 8,096명까지 추락한 적이 있다. 그만큼 임실읍도 인구가 매우 적다. 임실군이 읍면별 인구는 임실읍 7,447명, 오수면 3,727명, 관촌면 3,343명, 성수면 1,683명, 운암면 1,613명, 강진면 1,541명, 삼계면 1,522명, 신평면 1,454명, 신덕면 1,305명, 청웅면 1,302명, 지사면 1,208명, 덕치면 1,169명으로 모두 1만 명을 넘지 못하고, 임실읍의 비중도 군 전체 인구의 26.7%에 불과하다.[181] 임실군에는 대학이 있지만, 예원예술대학교에는 유아교육과가 없다. (서남대학교의 폐교 이후 이 곳이 전라북도 동부권의 유일한 대학이 되었다.) 때문에 임실군이 고향인 사람들은 유치원 교사가 되려면 다른 지역의 대학으로 진학해야 한다.[182] 나머지 25개 군에는 전문대학만 있거나, 대학교 자체가 없다.[183] 철도는 없고, 고속도로도 2015년 이전에는 왕복 2차선이었다.[184] 그만큼 순창군의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뜻이다. 순창군의 읍면별 인구는 순창읍 1만 308명, 구림면 2,356명, 복흥면 2,210명, 동계면 2,023명, 쌍치면 1,978명, 금과면 1,760명, 풍산면 1,730명, 인계면 1,565명, 팔덕면 1,426명, 적성면 1,311명, 유등면 1,143명으로 순창읍에 전체 인구의 35.9%가 몰려 있는 반면 (이는 1970년대의 16.6%보다 높아진 것이다.) 면 지역의 인구가 3,000명도 못 넘고 있다.[185] 순창군에는 대학이 없다. 그나마 가까운 대학은 도 경계를 넘어 담양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