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1963)

덤프버전 :


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영화부문 시나리오상
제39회
(2003년)


제40회
(2004년)


제41회
(2005년)

박정우
(라이터를 켜라)

유하
(말죽거리 잔혹사)


정윤철
(말아톤)



파일:attachment/uha_director.jpg

예명
유하
본명
김영준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출생
1963년 2월 9일 (61세)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1] 하라마을[2]
신체
190cm[3]
학력
고창초등학교 (전학)
전농중학교 (전학)서울 영동중학교 (졸업)
상문고등학교 (졸업 / 6회[4])
세종대학교 어문학부 (영어영문학 81[5] / 학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 / 석사[6])
직업
영화감독, 시인, 각본가
데뷔
1990년 영화 '시인 구보씨의 하루'

1. 개요
2. 경력
3. 연출 특징
4. 작품 목록(영화, 연도순)
5. 작품 목록(드라마, 연도순)
6. 작품 목록(시집, 연도순)
7.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2. 경력[편집]


1963년 2월 9일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 하라마을에서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창초등학교 2학년 때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상경해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답십리동거주했다. 이곳에서 전농중학교에 입학해 다니다가, 이후 아버지의 전근으로 강남구 역삼동으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영동중학교전학해 졸업했다. 그 뒤 상문고등학교(6회), 세종대학교 어문학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12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극영화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평소 영화와 문학 양쪽에 조예가 있어 1988년에는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공모에 당선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1세기 전망'의 동인으로 활동하던 도중 무협지와 풍자를 섞은 첫 시집 '무림일기'와 소비자본주의의 총화인 압구정동에서 살아가는 1990년대 한국인들을 그려 낸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시단에 파란을 일으켰으며, 장정일과 함께 1990년대 대한민국 젊은 시를 대표하는 총아로 자리잡게 됐다. 2003년 천일마화 이후로는 영화에 집중해서 시작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7]

1993년에 자신의 시를 바탕으로 한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각본과 감독으로 첫 장편 영화 데뷔를 했다. 하지만 반응은 시원찮았고 흥행도 실패(서울관객 24,000여 명)하면서 잊혀졌다가 2002년엄정화, 감우성 주연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컴백하면서 약간의 화제를 일으켰다[8]

2004년 자신의 모교인 상문고 출신 선후배들을 끌어모아[9] 모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출해 전국 311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 및 비평에도 성공을 거두고, 2006년에는 조인성을 주연으로 배신으로 점철된 조직폭력배와 폭력 조직의 생리를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한 《비열한 거리》를 연출하여, 관객 204만을 동원하면서 2연타 흥행에 성공했다.[10]

2008년 연출한 《쌍화점》은 379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의 감독작 중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되었다. 이 영화의 주연 역시 비열한 거리를 함께한 조인성과 함께 했는데, 두 사람 모두 흥행 2연타를 쳤다.

2012년에는 송강호, 이나영 주연의 스릴러 영화 《하울링》을 연출했으나, 이전 작품들에 비해 평가가 떨어졌고 관객 161만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을 거뒀다.

2015년, 이민호, 김래원 주연의 《강남1970》를 연출하였고, 2015년 1월 21일 개봉했으나, 난해한 완성도로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으며 아쉬운 흥행을 보였다.[11]

2019년에는 서인국, 이수혁 주연의 영화 《파이프라인》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개봉은 2년이 지난 2021년에 했다.


3. 연출 특징[편집]


무난하면서 묵직한 연출과 사회비판을 많이 꼬집는 각본, 너무 지루하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의 전개 등의 특징이 있는 감독이며, 전성기인 2000년대에서는 출중한 연출 및 각본으로 메세지와 대중성을 모두 챙기는 한국의 몇 안되는 감독이었다. 다만 쌍화점 이후 2010년대의 작품에서는 그런 평을 찾기는 힘들고, 그저그런 상업 영화 감독이라는 평을 받으며 가라 앉은 감독이다.

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작품에서는 도시적이고 친숙하면서, 세련되고 깔끔한 영상미를 바탕으로 결혼에 관한 고찰과 고민을 출중한 드라마와 절제된 노출에도 불구하고 농염한 베드신으로 표현했다. 흥행적으로 출세작인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1970년대의 모습과 당시 사교육의 악폐습을 섬세하게 담아낸 것은 물론, 액션까지 출중하게 연출해 호평받았고, 비열한 거리에서는 조폭세계의 비열함과 부패, 친구의 배신과 이로 인한 갈등을 섬세하게 담아내었다. 드라마를 연출하는 능력이 좋은 감독이며, 다양한 작품과 주제로 구체적인 영상 연출 특징은 별로 없지만 무난한 연출을 활용해 시각적으로도 좋은 퀄리티의 작품을 만든 감독이다.

또한 전성기 시절 작품에서의 장점은 장르에 비해 한국 영화에서도 흔히 보이는 과하고 부담스러운 수위로 접근하지 않는 점이다. 결혼은...이란 작품도 주제 상 더 노출 심한 베드신이 들어가도 되었으나, 체위를 다양하게 하는 대신, 적절히 가려지게 해 절제된 노출로 부담없이 볼 수 있게 만들었고, 말죽거리 잔혹사는 당시 청소년 범죄에 관한 노골적인 장면도 많지만, 너무 부담스러운 장면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비열한 거리도 느와르 특성에 비해 너무 잔인하지 않고, 주인공이 무엇을 했고 당했는지에 대해서만 깔끔하게 연출해서 보여준다. 아래에 후술하였듯 쓸데없이 잔인하고 야한 수위로 연출한 연출작들하고는 비교되는 양상이다.

다만 쌍화점 이후의 작품들은 빈약한 각본으로 평가도 많이 떨어지고, 흥행 실적도 나빠지는 등 하락세를 겪는다. 쌍화점은 호화스러운 영상미와 배우들이 고생해서 찍은 베드신에 관해서는 호평이고 흥행도 감독작 중 제일 성공했지만, 부족한 각본 때문에 평론가에겐 나쁜 평을 받았다. 국민배우 송강호까지 출연한 스릴러 영화인 하울링은 여태까지 받은 호평이 무너질 만큼 혹평을 받았고, 야심차게 준비해서 돌아온 강남1970은 흔하고 잔인하기만 한 한국 느와르란 평을 받고 흥행에 실패한다. 6년 만에 돌아온 파이프라인은 흥행과 평은 고사하고 언급조차 안되는 망작이다.

최근의 작품 중에 청불이 아닌 하울링과 파이프라인을 제외한 공통적인 특징은 상당한 수위라는 점인데, 야한 베드신으로 소문나 흥행한 쌍화점과는 다르게, 강남1970은 각본은 부족하면서 맥락없이 과한 베드신과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이 넘쳐 욕심이 과했다는 평을 받았다.


4. 작품 목록(영화, 연도순)[편집]


유하 감독 장편 연출 작품

[ 펼치기 · 접기 ]
파일:1993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로고.png
파일:2002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고.png
파일:2004 말죽거리 잔혹사 로고.png
파일:2006 비열한 거리 로고.png
파일:2008 쌍화점 로고.png
파일:2012 하울링 로고.png
파일:2015 강남 1970 로고.png
파일:파이프라인 로고.png





연도
제목
역할
비고
1993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12]
2002
결혼은, 미친 짓이다


2004
말죽거리 잔혹사


2006
비열한 거리


2008
쌍화점


2012
하울링


2015
강남1970


2021
파이프라인




5. 작품 목록(드라마, 연도순)[편집]


연도
제목
역할
비고
2023
아이 킬 유




6. 작품 목록(시집, 연도순)[편집]


  • 1989년: 《武林일기》
  • 1991년: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 1993년: 《세상의 모든 저녁》
  • 1995년: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13]
  • 1999년: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 2000년: 《천일마화》


7. 여담[편집]


  •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본래 시인, 그것도 소비 사회를 비판하는 경향이 강한 시인이었는데, 뜬금없이 상업 영화감독이 되어 성공한 케이스이다. 영화가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으로 심심찮게 비춰진다는 것을 보면 꽤나 아이러니한 셈이다.[14]

  • 그의 영화에 음악감독을 맡았던 신해철이 사석에서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어봤더니 "깡패였습니다."라고 말해 놀랐던 적이 있다고 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2 07:50:55에 나무위키 유하(1963)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디지털고창문화대전[2] yes24 저자 소개 등을 보면 "하나대"라고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3] 큰 키에 상당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 중에서도 키가 크기로 유명한 조인성이나 이민호보다도 더 크다.[4] 박근혜 정부 시절 초대 특별감찰관을 지낸 이석수와 동기동창이다. 그래서 모교를 베이스로 한 영화였던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반장 배역명을 이석수라고 붙였다.[5] 김성수 영화감독과 동기동창이다.[6] 석사 학위 논문 :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연구 : 현대 공상과학 영화를 중심으로(1993. 12).[7] 소설가로 등단해서 문단의 유망주로 주목 받다가 영화 감독으로 전업한 이창동과 비슷한 케이스다.[8] 서울 관객 42만, 전국 관객 110만대로 그럭저럭 흥행도 성공. 참고로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전국 관객 60만 명이었다고 한다. 제작비의 2배 가까이 되는 수익을 올리고, 사회적으로도 신드롬을 일으켰기에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9] 선도부장으로 나오는 배우 이종혁(18회), 영화 OST 타이틀곡을 불렀던 김진표(21회), 영화 제작자인 싸이더스 노종윤 이사(7회) 등이 모두 상문고등학교 출신 인물들이다.[10] 다만, 영화의 호평과 별개로 비열한 거리는 상업적으로만 보면 흥행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손익분기점이 전국 관객 230만 명이었는데 실제 동원 관객수는 204만 명이었다. 그래도 2006년 독일 월드컵 기간에 개봉하고 여러 쟁쟁한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서 상당히 선방한 셈이다.[11] 그래도 해외 판권 및 2차 시장에서 선방해 손익분기점은 넘겼다.[12] 이 영화는 엄정화의 첫 영화 주연작이다. 그리고 신해철이 처음으로 영화음악 작업을 한 작품이다. 이 음반에 실린 <Komerican Blues>는 이후 N.EX.T의 3집 앨범에서 리메이크된다[13] 제1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14] 마냥 뜬금 없지는 않은 것이 유하가 속해있던 21세기 전망 동인은 '대중적 전위주의'라는 기치를 내세웠다. '대중적 전위주의'란 거칠게 요악하자면 매스미디어가 대중을 조직하는 매커니즘을 지녔고, 대중문화는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전위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이를 활용하여 진정한 대중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획이었다. 이 기획의 실천적 방법 중 하나가 '장르간 길트기'로 다른 장르에 실질적 참여하는 것이었다. 유하는 이에 적극적인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