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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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성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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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북 예천군)
선거구 개편
반형식[A]
채문식[A]

제13-14대
유학성[B]

제14대
반형식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장
제13대 후반기
김영선

제14대 전반기
유학성
[B]

제14대 전반기
신상우



대한민국 제11대 국가안전기획부장
유학성
兪學聖 | Yoo Hak-sung


파일:yhs_.jpg

출생
1927년 2월 28일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어신리#
사망
1997년 4월 3일 (향년 70세)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2
본관
기계 유씨
재임기간
제11대 중앙정보부장
1980년 7월 18일 ~ 1981년 4월 7일
제11대 국가안전기획부장
1981년 4월 8일 ~ 1982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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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안부성
자녀
슬하 3남 3녀
학력
단국대학교 법정대학 (정치학 / 학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학사)
종교
가톨릭 (세례명: 요셉)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2, 13, 14
경력
제11대 중앙정보부장
제11대 국가안전기획부장
제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 전국구)
제13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 예천군)
제14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 예천군)
군사 경력
임관
육군사관학교 (정훈 1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49년 ~ 1980년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제3야전군사령관
참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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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유학성, 노태우, 전두환.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4. 기타
5. 선거 이력
6. 수훈 경력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군인, 정치인, 내란사범.


2. 생애[편집]


1927년 2월 28일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어신리에서 태어났다. 1949년 5월 정훈 제1기로 임관하여 제8사단에서 군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단국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5.16 군사정변국가재건최고회의 내무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다. 1965년 육군 준장으로 진급하여 육군본부 인사관리처장, 주월 군수사령관, 26사단장을 지냈고, 1971년 육군 소장으로 진급하여 동해안경비사령관, 육군본부 교육참모부장을 거쳐 1977년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였다.

1979년 국방부 군수차관보[1] 신분으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였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제3야전군사령관으로 있었으며 그 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임명직 위원 10인 중 1인이 되었고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을 지냈다.

1980년 6월 육군 대장으로 진급하고 전두환의 뒤를 이어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면서 예편했다.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된 후에도 계속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있었으나,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터지면서 경질되었다. 이후 반공연맹(현 한국자유총연맹) 이사장, 총력안보중앙협의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회기 동안 서울올림픽 지원위원장과 민주정의당 국책평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예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해당 지역구의 현역 의원이었던 통일민주당 반형식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회기 동안 국방분과위원장도 역임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정의당의 후신인 민주자유당 후보로 예천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어 국방상임위원장을 지냈으나 1993년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가 시행되면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1996년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기소되어 제1심과 제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석방되었고 대법원 상고심 재판 중인 1997년 지병으로 사망하여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무죄 추정의 원칙[2]에 따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3]

3. 대중매체에서[편집]


  • 1995년 SBS 드라마 <코리아게이트>에서는 성우 겸 배우 이치우가 연기했으며, 1998년 <삼김시대>에서도 동일 배역을 맡았다.


파일:LyuHS.jpg

  • 2005년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박영지가 연기했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제7화에서는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의 포스가 너무 강력해서 부각이 안 되기는 하는데 "야이 반란군 노무 시키야! 니들 거기 꼼짝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니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라는 말을 작중에서 직접 들은 사람이다. 그 후 ''장태완이가 전차로 우리를 날려 버리겠다는데 어쩌지?"라고 데꿀멍했다.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을 다룬 제29화에서는 국가안전기획부장 직을 걸고 전두환의 친인척들이 대표로 앉은 이순자의 새세대육영회, 이규동[4]의 대한노인회, 전경환[5]새마을운동중앙본부[6]에서 이들이 물러나야 한다고 직언한다. 유학성을 국가안전기획부장에 앉힐 때는 선배 대접을 하던 전두환이 "당신 미쳤어?"라고 하지만 유학성은 굽히지 않고 "지금은 원인 분석이 아니라 사태 수습이 필요한 시기입니다."라면서 사직서를 꺼내든다. 그제야 "이봐요, 유 선배"라고 말하는 전두환에게 "때로는 극약이 명약"이라며 "내내 평안하시라"는 말로 하차하는데 전두환은 마지막에 유리 화병을 발로 차서 깨부수며 격분한다.[7] # 흥미로운 점은 다른 작품에서도 쿠데타주역으로 나왔다.

  • 2023년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배송학'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며 배우 염동헌이 연기했다. 실존인물과 외모가 위의 박영지 이상으로 흡사했다. 한영구이태신과의 통화를 떠넘기다 배송학이 마지못해 이어받았고 이태신에게 진정 좀 하라는 말을 꺼냈다가 도리어 "넌 또 누구야!!" 소리를 듣고 찌그러진다. 이태신에게서 "야, 이 뇌가 썩어빠져 문드러진 인간아."라는 욕을 먹는 건 덤. 이에 배송학은 '이젠 위아래도 없다'는 식으로 찌질거린다.[8] 염동헌은 지병으로 2022년 별세해 이 영화가 유작이 됐다.


4. 기타[편집]


  • 1980년대 후반 중앙고속도로 노선을 기획할 때 안동시에서 영주시로 직결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고향 예천군으로 우회하게 하였다는 설이 있다. 예천공항도 유학성의 주도로 개항되었다고 해서 '유학성 공항'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예천공항이 폐항된 계기가 중앙고속도로의 개통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예천공항을 살리고 죽이는 역할을 모두하게 된 셈이었다.

  • 당시 뉴스 영상을 틀면 유학성의 실제 육성을 들을 수 있는데 제5공화국에서 유학성으로 분했던 박영지의 목소리와 매우 흡사하다.(KBS, MBC)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7,040,477 (35.2%)
당선 (5번)
초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예천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31,196 (63.06%)
당선 (1위)
재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24,361 (60.74%)
3선 [9]

역대 선거 벽보


6. 수훈 경력[편집]


  • 화랑무공훈장 (1950, 52.10, 52.11)
  • 충무무공훈장 (1954, 68)
  • 보국훈장 광복장 (1962)
  • 무공포장 (1965)
  • 보국훈장 천수장 (1966, 68)
  • 을지무공훈장 (1968)
  • 대통령 표창 (1969)
  • 국민훈장 무궁화장 (1988)


7. 둘러보기[편집]


12·12 군사반란 주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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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tablewidth=100%><tablebgcolor=#03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hnh.jpg|width=100%]]}}} ||
||<bgcolor=#141414> {{{-2 1979년 12월 14일 12·12 군사반란 성공 기념사진}}}
{{{-3 [[국군보안사령부|{{{#FFF 국군보안사령부}}}]] 청사 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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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141414> {{{#DDD {{{-2 ※ 사진 인물 배치 순서상 표기}}}}}}
{{{#DDD {{{-2 ※ 단 우국일 [[준장|{{{#FFF 준장}}}]]은 군사반란 주동자로서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국군보안사령부|{{{#FFF 국군보안사령부}}}]] 참모장 자격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다.[*A 비 하나회 였던 우국일 준장이 12.12 군사반란 당시 한 일은 연희동 요정에서 접대업무를 맡았을 뿐 접대를 제외한 모든 상황에서 그는 결백한 인물이었다.]}}}}}} ||
||<bgcolor=#141414> {{{-2 
[ 각주 보기 ]
[각주]
}}} ||



파일:민주정의당 심볼.svg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제12대 국회 전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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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진의종
노태우[B]
왕상은
유학성
이상재
서정화
박종문
강경식
황인성[B]
박동진[B]
이용훈
나웅배[B]
조일문
권중동
이성열
김현자
배성동
현홍주
이영욱
김영작[B]
조상현
김영정
안갑준
김성기[B]
조종호
이상희
류근환
한양순
홍종욱
정창화
김종인
김영구
최병렬
강용식
송용식
지연태
임두빈
정현경
진치범
최영덕
임영득
김집
지갑종
최명헌
이종률[B]
조경목
김형효
김학준[B]
서정화
김두종
양경자
문희갑[B]
김양배[B]
정휘동
김장숙
박혜경[B]
이철우
안영화
최상진
이성호
이진[C]
정호근[C]
김중위[C]
박성태[C]
김정균[C]
김태수[C]
홍희표[C]
김문기[C]
정동윤[C]
심국무[C]
김종열[C]
[B] A B C D E F G H I J K 임기 중 사퇴.[C] A B C D E F G H I J K 승계.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전국구 제12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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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의당

61석


이재형

진의종

노태우

왕상은

유학성

이상재

서정화

박종문

강경식

황인성
----
박동진

이용훈
----
나웅배

조일문

권중동

이성렬

김현자

배성동

현홍주

이영욱
----
김영작

조상현

김영정

안갑준
----
김성기

조종호

이상희

류근환

한양순

홍종욱

정창화

김종인

김영구

최병렬

강용식

송용식

지연태

임두빈

정현경

진치범

최영덕

임영득

김집

지갑종

최명헌
~~~~
이종률

조경목

김형효
----
김학준

서정화

김두종

양경자
----
문희갑
~~~~
김양배

정휘동

김장숙
----
박혜경

이철우

안영화

최상진

이성호

이진

정호근

김중위

박성태

김정균

김태수

홍희표

김문기

정동윤

심국무

김종열
신한민주당

17석


신달수

임춘원

고한준

김형경

정재문

한석봉

윤영탁

신병렬

박종률

조영수

김병수

김동욱

이길범

김용오

장충준

최훈

신경설
민주한국당

9석


이태구

박해충

신재휴

손태곤

정상구

최운지

신동준

황대봉

송현섭

한국국민당

5석

----
김종철

정시봉

문병하

김규원

최재구

조용직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50%; text-align: right; font-size: .8em;"
제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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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 국방부 군수본부장을 거쳐 군수관리관(소장)으로 낮아졌고 이제는 공무원(고위공무원 나급) 보직이 되었다. 현 관리관 이갑수는 예비역 준장에 불과하다.[2] 이건 국제 관습에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켜야 하는 원칙이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원칙이 깨지는 순간 인민재판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무죄는 죄가 없음이 아니라 죄가 입증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3] 이후 이 논란은 역시 반란에 가담한 안현태청와대경호실장이 사망한 후에도 다시 이어진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쿠데타로 쫓겨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묘소가 있다.[4] 이순자의 부친이자 전두환의 장인. 대한민국 육군본부 경리감을 역임했으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5] 전두환의 동생으로 11살 연하다. 1979년 당시 청와대 경호실 경호5계장이었다.[6] 현 새마을운동중앙회.[7] 주목받지 않은 장면이지만 상당히 미화된 것이다. 실제 유학성은 "영부인도 자중해야 한다" 정도로 진언하고 그 진언 때문에 물러나게 된 정도. 극화된 것이 드라마의 장면인데 드라마에서 그리는 전두환을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 잘못 이해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측근의 충언도 듣지 않고 성질만 부리는 전두환을 부각하기 위해 집어넣었다는 주장도 있다.[8] 장태완은 실제로 유학성과 황영시보다 몇년 연하이자 후배였다(50년에 임관한 장태완 장군은 갑종 11기로, 49년 임관한 유학성보다는 1년 후배고 55년에 임관한 전두환보다는 5년 앞선다). 물론 수경사령관이었던 그가 당시 쿠데타를 일으킨 범죄자들에게 선배 대우를 해줄 이유 따윈 없다.[9] 1993. 3. 26 의원직 사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