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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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상
Yoon Suk-Min Award

1. 개요
2. 유래
3. 윤석민상 제정 이전의 불운 투수
4. 윤석민상이라는 명칭은 타당한가?
6. 기타



1. 개요[편집]



2007년부터 KIA 타이거즈 팬 사이에서 신설된 가상의 상. 선발로 등판하여 호투를 했음에도 팀 타선이 침묵하거나 불펜이 승리를 지키지 못해 승리가 적고 패배가 많은 불운한 투수에게 주어진다. 이 상의 수상자들은 투수의 승수만 가지고서 투수를 평가해선 안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인들이다.

2. 유래[편집]


2007년 KIA 타이거즈는 '김기아', '송산이 4번 치던 시절'[1]로 불릴 정도로 안 터지는 타선으로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에이스였던 윤석민이 떠안게 됐다. 더군다나 윤석민의 등판일에는 안 터지는 타선이 더욱 안 터지면서 평균자책점 3.78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7승 18패로 역대 최다 선발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물론 이 해 투고타저로 인해 윤석민의 평균자책점 순위는 12위였지만, 8월까지만 해도 평균자책점이 2점 후반이었기 때문에 "최초 2점대 20패 나오나?"라는 기사도 나오는 실정이었다. 그로 인해 KIA 팬들 사이에서 '고생한 윤석민한테 뭐라도 좀 해주자'라는 의미로 이런 가상의 상을 수여한 것이 연례행사가 된 것.

KIA 팬들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후, 2008년에는 봉중근, 류현진 등 불운한 선발 투수들이 워낙 많았던 탓에 잠시 퍼져서 사용되었으나 2009년 이후 점차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매년 불운한 투수들이 나오고는 있으나 이를 대체할 만한 마땅한 용어가 없는 탓에 아직도 윤석민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사용한다고 해도 나무위키처럼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 아닌 승리를 잘 못 얻는다 싶으면 가끔 윤석민상 수상 후보라고 언급은 하는 정도.

윤석민상과 대비되는 말로 김혁민상이 있는데, 2009년 평균자책점 7점대를 찍고도 8승을 거둔 김혁민이 기원으로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도 다승에 실패한 윤석민상 수상자와는 달리 리그 평균 아래급인 폭망한 성적으로도 10승, 그 이하여도 명백히 운빨이 많이 담긴 승수를 거둔 선수들을 지칭한다. 윤석민상보다 훨씬 임팩트는 더 떨어지지만 김혁민상 수상자들 역시 엄청난 운을 거둔 것은 틀림없다.


3. 윤석민상 제정 이전의 불운 투수[편집]


2021 시즌 종료 기준으로, KBO 리그에서는 역대 18패 이상이 총 7번 나왔는데 그 중 5번이 1982~1986년의 초창기에 나온것이며, 나머지 2번은 2002년 롯데 김영수의 2승 18패와 2007년 KIA 윤석민이다. 즉, 20여 년 간 2번 밖에 없는 기록인데 김영수가 18패를 기록했던 2002년은 프로야구의 암흑기 시절이라 관심을 가진 팬이 없어서 이런 상이 나올 수 없었고, 규정이닝을 먹지 못한데다가 평균자책점도 리그 평균에 한참 못미쳤다. 그나마 인기가 좀 살아난 상황에서 윤석민이 선발 최다패 신기록을 세웠으니 어느정도 상징성이 생긴 셈이다. 게다가 고작 7승이다.

리그 초창기 풍운아 장명부는 당시 최약체였던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이런 기록을 남겼다. 커리어 하이인 1983년에도 16패를 기록했지만, 대신 30승이나 달성했으니 불운했다고 볼 수는 없고 워낙 많이 던지다 보니 나온 기록이다. 절반만 나왔다면 15승 8패정도로 무난한 성적이었지 모른다. 그러다가 1984년은 리그 평균에 가까운 투구를 하자 팀전력대로 20패를 해버렸고, 이후 기량도 급락하자 2년 동안 엄청난 패를 쌓았다.

연도
이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점
ERA+
1983
장명부
삼미 슈퍼스타즈
60
427⅓
30
16
2.34
143
1984
45
261⅔
13
20
3.30
101
1985
삼미/ 청보
45
246
11
25
5.30
68
1986
빙그레 이글스
22
108⅓
1
18
4.98
63

그 외에 1986년 이상군은 풀타임 선발로 ERA 2.63에 12승 17패를 기록했는데 19완투 4완봉승을 거뒀다. 17패 이상을 기록한 투수들 중 1982년 노상수를 제외하면 해당 시즌 ERA+가 가장 높다. 또한 1989년 최창호와 1998년 염종석도 내용에 비해서는 패전투수가 되는 날이 훨씬 더 많았다. 1990년의 윤학길도 마찬가지.[2] 자신의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했던 1994년의 가득염 또한 최다패를 뒤집어쓰며 불운을 꼽씹어야 했다.[3]

연도
이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점
1986
이상군
빙그레 이글스
35
243⅓
12
17
2.63
1989
최창호
태평양 돌핀스
38
223⅓
10
14
2.22
1990
윤학길
롯데 자이언츠
26
143⅔
3
12
4.07
1994
가득염
26
162
8
14
4.28
1998
염종석
27
163⅔
7
15
3.89

2002년에는 불운한 투수들이 여러명 나왔다. 다만 롯데 김영수의 경우 97패로 역대 최다패전 타이기록을 쓸 정도로 좋지 않았던 팀 사정 탓이 크지만...

연도
이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점
2002
이승호
SK 와이번스
27
142⅔
6
12
3.15
2002
김영수
롯데 자이언츠
36
118⅓
2
18
4.79
2002
손민한
23
142⅓
4
9
3.67

범위를 일본프로야구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까지 확장할 경우, 1987년 놀란 라이언은 41세의 나이에 34경기 211⅔이닝을 던져서 270탈삼진, ERA 2.76으로 방어율, 탈삼진 2관왕에 올랐지만 8승 16패를 기록했고, 2005년 이와쿠마 히사시는 신생팀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라는 초특급 개막장 팀에서 신생팀 첫 시즌을 풀로 뛰며 27경기 27선발 9완투 0완봉승 9승 15패, ERA 4.99의 성적을 거뒀다. ERA가 거의 5에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이와쿠마 히사시 항목에 나와 있는 여러 사정으로 인한 거라 그 항목의 성적표를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철완 구로다 히로키는 LA다저스 시절 마지막 두 해를 30경기 이상 선발등판하여 3점 초중반대 ERA를 찍고도 불펜 방화와 식물빠따때문에 각각 11승 13패와 13승 16패를 찍었다.[4] 심지어 미일통산 200승을 은퇴 직전에 겨우 찍었다.[5]

혹은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의 프렌차이즈 스타인 미우라 다이스케의 경우. 커리어 그 자체가 윤석민상 그 자체이다. 라쿠텐 같은경우 몇시즌 시행착오를 겪고나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간 반면 베이스타즈는...

윤석민이 다패왕을 찍었을 때, 바다 건너 샌프란시스코에는 우완 투수 맷 케인도 있었다. 이 선수 역시 준수한 투구 내용에 비해 승수를 챙기지 못했다.


4. 윤석민상이라는 명칭은 타당한가? [편집]


사실 윤석민의 2007년 시즌은 엄밀히 말하면 불운했다고 할 수는 없다. 알고보면 봉중근상이다. 전반기에는 불운했을지 몰라도, 후반기에는 전반기 이후 당한 아킬레스건 부상과 서정환 당시 감독의 지시로 인한 구원 등판 등으로 인한 혹사를 거치면서 난조를 겪었다. 실제로 그 당시 윤석민의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해보면, 퀄리티 스타트로 막았으나 패전투수가 되거나 노디시전이 된 경기 수가 7경기, 그 중 7이닝 3자책점 이하(QS+)로 막았으나 패전투수가 되거나 노디시전이 된 경기 수는 4경기이다. 이는 류현진의 QS시 패전 또는 노디시전 7경기, QS+시 패전 또는 노디시전 5경기보다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즌 류현진은 30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윤석민보다 무려 49⅓이닝 많은 211⅓이닝을 던졌고, 2실점 2자책점 완투패 1경기에, 심지어는 9이닝 무실점을 하고도 무승부가 되는 바람에 완봉승 하나가 날아간 적도 있다. 4경기 연속 완투라는 괴물투구도 있었다 명실공히 20승 투수가 되었어야 할 투수가 지독한 불운으로 17승에 머문 것이다.

여기에다 2007년의 리그 평균자책점은 3.91이었다. 그리고 윤석민의 2007년 평균자책점은 3.78로 딱 봐도 평균이거나 평균을 조금 넘는 투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때 윤석민이 윤크라이로 화제가 된 것은 무자책 패전도 있었고, 시즌 중반까지 평균자책점이 역대급으로 낮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는 앞서도 말했듯이 부상과 혹사로 성적이 폭락하면서 최종 성적은 그렇게 좋다고 볼 수는 없으나, 후에 결과만 놓고 이게 왜 나왔냐고 지적할만 한 것은 아니다.

또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2002년 평균자책점 3.15로 리그 5위였음에도 불구하고 6승 12패를 기록한 이승호(당시 SK), 2003년 191⅔이닝(1위), 평균자책점 3.19(2위)에 탈삼진 1위(157개)를 차지하고 11승 11패를 거둔 이승호,(당시 LG(위 이승호와는 다른 선수다.))[6] 2005년 평균자책점 2.86(2위), 탈삼진 1위(147개)를 하고도 11승 11패를 거둔 배영수(삼성), 본인 소속팀인 최약체 롯데를 상대하지 못한 4승 투수 손민한 등의 예도 있다.

1996년 정민철은 32경기 중 29경기를 선발로 등판해 9번의 완투를 하고 총 219⅔이닝을 던져 203개의 삼진을 잡고 평균자책점 3.03을 마크했다. 그의 승패는 13승 12패. 그나마 패전이 승보다 많거나 같지나 않아서 다행이다. 분통이 터지는 건 같은 시즌에 정민철을 제치고 삼진왕(221개)에 오른 롯데 주형광이 조금 뒤쳐지는 3.36의 평균자책점으로 18승을 올리며 다승 공동 1위[7]에 올랐다는 점. 두 팀 간의 게임차가 11게임이나 되고 한화의 대 롯데전 전적이 13승 4패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2007년 윤석민의 기록은 충분히 당시 윤석민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역대 최다 선발패, 역대 공동 5위 패수, 17패 이상 투수 중 10승을 못거둔 유일한 리그 평균 이상의 투구를 한 투수(ERA+ 104)라는 특별함이 있다. 다만 이는 윤석민상이라는 이름이 가장 좋다는것이 아니라, 그 당시 이런 이름이 지어졌어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즉 요약하자면 그 때 윤석민이 리그 평균보다 좋은 피칭을 하면서도 7승 18패라는 경이적인 승패를 기록한 임팩트에 야구 관련 커뮤니티의 확대 등이 겹치는 가운데 KIA 팬덤을 중심으로 이를 부각시키면서 윤석민상이라는 이름이 정착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윤석민상은 정식으로 주는 상이 아닌, 어디까지나 그 해의 타선 지원을 못 받은 불운한 투수를 꼽는 것일 뿐이다. 투수에 대해 승수가 아닌 다른 면에서 정당한 평가를 해주고, 또 그에 따른 대우를 해준다면 윤석민상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실제로 이후 세이버메트릭스가 활성화되면서 야구팬들이나 관계자들이 선발 투수를 평가할 때, 그 선수의 승수를 배제하고 보는 경우가 많아진 걸 보면 이 윤석민상의 창설(?)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

메이저리그에서는 2010년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상을 13승 12패에 그친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수상했고, 2018년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을 10승 9패에 그친 제이콥 디그롬이 받았다. 그리고 1승 투수가 연봉조정 신청에서 승리하는 등, 승수가 투수를 평가하는 절대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8]

새옹지마인지 2011년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낸 윤석민은 게임당 타점 지원이 가장 많은 선수였다.#

5. 역대 수상자와 수상 과정[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윤석민상/수상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기타[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2 12:30:44에 나무위키 윤석민상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단, 송산은 한 번도 4번에 들어선 적이 없다. 간간히 5번에 서거나 대타로 한두번 4번에 선 게 와전된 것.[2] 참고로 저 시즌에 거둔 3승 중 2승이 완봉승이다.[3] 시즌 초반 6승 3패로 다승왕 레이스에서 공동 1위를 달리며 좋은 페이스를 보였고, 이후에도 큰 기복없이 꾸준한 피칭을 보여줬으나 팀 성적탓에 고작 2승밖에 더 추가하지 못했고 패수는 무려 11패를 떠안았다.[4] 한 해는 평자 3점대인데도 다패왕 경쟁을 했을정도.[5] 카프시절에 승수가 지독하게 적었다.[6] 참고로 2003년은 지독한 타고투저로, 3.01을 기록한 현대의 바워스가 평균자책점 1위이었다. 이는 평균자책점 3점대가 평균자책점 왕이었던 최초의 시즌. 여담으로 골든글러브는 평균자책점 3.31(3위)에 17승 2패정민태가 수상했다.[7] 또 한 명은 정민철의 팀 동료인 구대성으로 이 해에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MVP까지 수상했다.[8] 다만 에르난데스의 사이영상 수상은 근 2년 사이에 잭 그레인키팀 린스컴이 15승만 올리고 사이영상을 받은 선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킹의 경쟁자였던 21승의 다승왕 사바시아가 3점이 넘는 평균자책점(3.18)이었고 19승에 2.7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데이빗 프라이스가 논타이틀이었기 때문에 경쟁 우위에 있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