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

덤프버전 :




파일:활구.png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 전시 중인 활구 유물.
1. 개요
2. 화폐로서의 특징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활구() 또는 은병()은 고려시대에 통용된 은화이다. 본래는 고려의 지형을 본떠서 주조되었으나 병의 입구가 넓어서 '활구', 또 으로 만든 호리병을 닮아 '은병'으로 불렸다. 1101년(숙종 6) 처음으로 발행되어 약 300여 년간 쓰이다가 조선 건국 직후인 1408년(태종 8)에 금지령이 내려져 사용이 중지되었다.


2. 화폐로서의 특징[편집]


개당 교환 가치는 시대에 따라 달랐으나 대개 포목 100필 이상의 가치를 지녔던 고액 화폐였으며, 이 때문에 주로 상류층 간의 거래 또는 국가 간의 거래에만 이용되었다. 대금거래에 애로사항이 꽃피자 1331년(충혜왕 1)에는 옛 대은병의 사용을 금지하고 소은병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재질은 이 대부분이고 미량의 구리, 주석 등의 합금이다. 그레샴의 법칙에 따른 악화의 남용을 막기 위해 은의 함량을 보증하는 표인(標印)을 찍어 유통해야 했다. 은병 1개를 주조하는 데에는 은(銀) 1근이 사용되었으며, 호조의 경시서에서는 은병에 들어가는 은의 함량을 감독하였다.

은병의 발행에 대한 까다로운 감독에도 불구하고 위조화폐가 횡행하자, 1287년(충렬왕 13) 고려 조정에서는 순은 조각인 쇄은(碎銀)을 통용시켰다. 쇄은은 소액 거래시 필요한 양만큼 떼어서 사용할 수 있었으며 1정당 5,6 가마니에 해당하였다. 그러나 쇄은도 시간이 지나며 함량 위조 문제가 발생했으며, 결국 사용이 중단되었다.


3.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7 00:46:59에 나무위키 활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