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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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원
2. 본관
3. 특징
4. 항렬(行列)
5. 인물



1. 기원[편집]


시조 김석(金錫)은 경순왕과 고려 왕건의 장녀 낙랑공주 왕씨 소생으로 고려 태조의 외손이다. 그는 고려조에서 의성군(義城君)에 책봉(冊封)되어 후손들이 의성(義城)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한편 《의성김씨족보(義城金氏族譜)》에 의하면 김석(金錫)이 경순왕의 4남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신라김씨 2천년사(新羅金氏二千年史)》·《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 등의 문헌과 《신라김씨 분파연원도(新羅金氏分派淵源圖)》에는 5남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 개국과 함께 문호를 개방한 의성김씨는 8세손 김공우(金公瑀)의 대에서 크게 번창하였는데, 장자 김용비(金龍庇)가 태자첨사(太子詹事)를 지냈고, 차자 김용필(金龍弼)은 수사공(守司空)을, 막내 김용주(金龍珠)는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참고로 가족관계부에 본관이 문소(聞韶)로 표기가 되어있는 사람도 있다. 참고로 문소는 아래에도 있다싶이 의성의 옛 이름이며 문소와 의성은 동일한 본관이다.

2. 본관[편집]


의성(義城)은 경상북도 중앙부에 위치한 고장으로 삼한시대에 조문국(召文國)이었다. 그 후 185년(신라 벌휴왕 2) 신라에 병합되어 소문군(召文郡)이 설치되었다.

757년(경덕왕 16) 문소군(聞韶郡)로 개칭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일계현(日谿縣)과 고구현(高丘縣)을 합병해 의성부(義城府)로 승격했으나, 1018년(현종 9)에 안동부(安東府)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1143년(인종 21)에 의성현이 되었으며, 1199년(신종 2)에 강등되어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의성현(義城縣)으로 유지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의성군(義城郡)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이 되었다. 1940년에 의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실제 거주지도 안동, 의성, 영양, 봉화, 영주, 군위, 성주, 구미 등 본관이 있는 경상북도 내륙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본관은 후손들의 거주지와는 달리 지명(명칭)만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의성김씨는 단일 성씨로는 드물게 현재까지도 안동, 의성 중심으로 위의 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유학 전통을 지키면서 근대 이후에 들어서도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등 실천 유학으로 영향력을 가진 영남지역 명문가로 통하고 있다.

3. 특징[편집]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한 우국지사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 경상북도 안동인데 그 중심에 의성김씨 가문과 그들의 친인척이 있다. 단일 성씨로는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으로 유명하며, 그런 연유로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도 의성김씨 집성촌이며 종가가 있는 안동 내앞마을(천전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만 33명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으며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일송 김동삼 선생의 생가와 협동학교가 있다.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석주 이상룡의 부인 김우락 지사 또한 의성김씨이며, 한국대표 여성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진 남자현 지사도 일제와 싸우다 순국한 의성김씨 김영주 의병의 부인이다. 이렇듯 가문과 친인척 전체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특이한 면을 보이는 본관이다.

이러한 면은 의를 숭상하는 기질적 특성과 퇴계에서 시작된 유학의 중심을 지켜온 가문 차원의 선비정신이 구국운동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퇴계의 직계 제자인 학봉 김성일에서 시작하여 근대 최고 한학자인 서산 김흥락으로 이어온 명문 가문 차원의 책임감이 독립운동에 투신에 강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전국 유림대표로 유학자를 결집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한 심산 김창숙 선생(성균관대 설립자) 역시 의성김씨로서 그런 면모를 잘 보여 준다.

4. 항렬(行列)[편집]


항렬(行列)이란 같은 혈족사이의 세계(世系)의 위치를 분명히 하기 위한 문중율법이며, 항렬자(行列字)란 이름자 중에 한 글자를 공통적으로 사용하여 같은 혈족, 같은 세대임을 나타내는 글자로써 돌림자라고도 한다. 선조들은 자손들의 항렬자를 만드는 배합법까지를 미리 정해놓아 후손들이 그것을 따르도록 해 놓았다.
∙31世 --- 洛(강 이름 낙{락})·永(길 영)·浩(클 호)·泳(헤엄칠 영)·淵(못 연)·漢(한수 한)
∙32世 --- 模(법 모)·秉(잡을 병) 東(동녘 동)·植(심을 식)·林(수풀 임{림})·相(서로 상)
∙33世 --- 煥(불꽃 환), 炫(빛날 현), 衡(저울대 형)·大(큰 대)·燮(불꽃 섭)·昌(창성할 창)·魯(노둔할 노{로})
∙34世 --- 時(때 시)·奎(별 이름 규)·逵(한길 규)·在(있을 재)·聲(소리 성)·重(무거울 중)
∙35世 --- 種(씨 종)·鎬(호경 호)·鉉(솥귀 현)·鏞(종 용)·銖(무게 단위 수)·善(착할 선)
∙36世 --- 洙(물가 수)·源(근원 원)·澤(못 택)·泰(클 태)·淳(순박할 순)·河(강 이름 하)
∙37世 --- 權(저울추 권)·穆(화목할 목)·根(뿌리 근)·來(올 래{내})·稷(기장 직)·榮(꽃 영)
∙38世 --- 憲(법 헌)·燁(빛날 엽)·炯(빛날 형)·勳(공 훈)·熙(빛날 희)·悳(덕 덕)
∙39世 --- 圭(홀 규)·赫(붉을 혁)·珪(홀 규)·周(두루 주)·載(실을 재)·垠(끝 은)
∙40世 --- 鍵(열쇠 건)·鈺(보배 옥)·鎰(중량 일)·銓(저울질할 전)·鍊(불릴 련{연})
∙41世 --- 溶(질펀히 흐를 용)·濟(건널 제)·海(바다 해)·浚(깊을 준)·洪(큰물 홍)
∙42世 --- 柄(자루 병)·楨(광나무 정)·和(화할 화)·秀(빼어날 수)·彬(빛날 빈)
※ 항렬은 파(派)마다 각기 다르게 정할 수도 있으며 한자의 음도 옥편에 따라 달리 표현될 수 있다.

5.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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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 시조, 경순왕 제4자, 의성군(義城君)에 책봉
  • 김영렬: 조선 전기의 무신, 호 맹암(孟巖), 시호 양소(襄昭),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책록, 우의정 증직, 장성 학림서원(鶴林書院) 제향
  • 김안국: 조선 전기 문신·학자, 호 모재(慕齋), 시호 문경(文敬), 김굉필(金宏弼) 제자, 조광조·기준(奇遵) 등과 사귐,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화를 당함, 예조판서, 대사헌, 사대부 출신 관료로 주자학적 윤리도덕 규범을 실천하고 보급하기 위해 애씀, 인종 묘정 배향, 평안도 용강 사액 오산서원(鰲山書院), 여주 기천서원(沂川書院), 이천 설봉서원(雪峰書院), 의성 빙계서원(氷溪書院)등 제향
  • 김정국: 조선 중기 문신, 호 사재(思齋), 시호 문목(文穆), 성리학자, 사가독서(賜暇讀書), 황해도관찰사,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화를 당함, 병조참의·공조참판·경상관찰사·동지돈녕부사를 지냄, 사후 이조판서 양관 대제학 추증, 오산(鰲山)·임강(臨江)·문봉서원(文峯書院)등 제향
  • 김진: 호는 청계. 학봉 김성일의 부친, 5형제(약봉(藥峯) 김극일, 귀봉(龜峯) 김수일, 운암(雲岩) 김명일, 학봉(鶴峯) 김성일, 남악(南嶽) 김복일)를 모두 과거 급제 시켰으며[1], 부인 없이 홀로 8남매를 키웠다. 특히 부인과 사별 후 강보에 싸인 어린 아이들이 보채면 남자인 자신의 젖꼭지를 물려 달래었다고 한다.[2]
  • 김성일: 위 청계 김진의 4째,
  • 김복일 : 위 청계 김진의 5째, 울산군수, 창원부사 역임
  • 김우옹: 호는 동강. 조식의 제자이자 외손녀 사위로, 조식의 성물중 하나인 방울 성성자를 물려 받았다. 같은 조식의 제자인 한강 정구와 함께 남인으로 활동한다.
  • 김대락: 호는 백하[3]. 김대락 선생은 온 일가를 데리고 만주로 망명[4], 일가의 독립운동을 이끔. 만주 망명길에 손자 김쾌당[5]을 얻게됨
  • 김정식(金正植)은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건국훈장 애족장)이다.[6]
  • 김하락: 구한말 의병장, 경기도1895년 11월 17일 경기 이천에서 화포군(火砲軍) 소속 포군(砲軍)들을 중심으로 모병 및 거병함. 남한산성전투 등 강도 높은 활동을 거듭하다 이후 경주연합의진을 구성, 경주성을 함락시켰음. 이후 의진은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경주성을 포기함. 이후 영덕에서 영해의진 및 안동의진과 합진하여 대규모의 연합의진을 구성하고 영덕 탈환을 도모하였으나, 격렬한 교전 중에 총상을 입자 자진순국. 건국훈장 대통령장. (1846.12.14. ~ 1896.7.14.)
  • 김흥락: 호는 서산. 구한말 대유학자, 영남 독립운동의 시작점이 되신 분으로 이 분에 대한 신망이 매우 두터웠다고 한다.[7] 아래의 김용환 선생은 김흥락 선생의 손자로 종가의 대를 이었다
  • 김득기: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장이며 사충신으로 불리운다.
  • 김규만: 제4대 국회의원
  • 김길홍: 제13·14대 국회의원
  • 김낙순: 제17대 국회의원
  • 김도창: 제9대 국회의원
  • 김도현: 제2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 김동삼: 독립운동가
  • 김명옥: 경북대학교 교수
  • 김명윤: 제6대 민주회의 부의장
  • 김명훈: 가수
  • 김솔비: 배우
  • 김수민: 가수
  • 김승규: 축구선수
  • 김시명: 공무원
  • 김건민: 배우
  • 김용대: 공무원
  • 김용환: '조선 삼대 파락호'라는 위장 아래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문 참조
  • 김창숙: 호는 심산. 독립운동가, 교육가, 성균관대 초대총장, 초대 전국유림회장, 성균관대 설립자, "밝은 하늘 정녕 다시 안 오면, 차라리 죽음이여 빨리 오려무나". 본문 참조
  • 김거익(생몰연대 미상): 호는 퇴암. 고려 후기 문신 벼슬: 정당문학(종2품)
  • 김시백: 호는 추강, 시인
  • 김호길: 포항공과대학교 초대총장
  • 김영길: 한동대학교 초대총장
  • 김원웅: 제14·16·17대 국회의원
  • 김윤주: 제10·11·13·14대 군포시장
  • 김종갑: 제18대 특허청장
  • 김국진: 개그맨, 방송인
  • 김병준: 제49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겸 부총리
  • 김애란: 소설가
  • 김은정: 컬링선수
  • 김선영: 컬링선수
  • 김원용: 고고학자
  • 김재춘: 제3대 중앙정보부장
  • 김중위: 초대 환경부 장관
  • 김창근: 제33대 국토교통부 장관
  • 김창환: 제8·9대 국회의원
  • 김충수: 제9대 국회의원
  • 김현권: 제20대 국회의원
  • 김현기: 제10대 경상북도 부지사
  • 김화남: 제4대 경찰청장
  • 김형일: 배우
  • 김준표: 기업인.
  • 김기대(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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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국대전에 ‘아들 다섯이 과거에 합격한 부모에게는 임금에게 보고해 해마다 쌀을 보내주고, 부모가 죽으면 벼슬을 추증하고 제사를 지내준다’라는 조항이 있다.[2] 소문에는 그래서 인지 젖꼭지가 유독 길고 검었다고 했다. 비슷한 얘기로 조선시대 어느 소년가장도 모친을 떠나보내고 어린 동생들 젖을 물리다가 발달이 돼 남자임에도 흰 젖이 콸콸 나왔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닌데 남자들 중에도 가슴에 젖선이 있다고 하며, 영양실조로 인해 호르몬 계통에 문제가 생겨 가슴이 나오고 허리가 잘록해지는 등 여체화 현상을 겪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한다.[3] 만주에 들어가 백두산 아래서 산다는 뜻[4] 150여명의 일가를 데리고 안동에서 추풍령까지 걸어가고, 거기에서 기차를 이용하여 신의주 까지, 신의주에서는 걸어서 압록강을 건너고, 만주에서는 수레로 이동하는 멀고 험한 망명길[5] 통쾌할 쾌(夬), 당나라 당(唐) 즉 국권을 잃은 조선에서 낳지 않고 당나라에서 낳게 되어 기쁘다는 의미로.[6] #[7] 신임 부사가 아전들과 짜고 부민들의 고혈을 짜자 부민들이 민란을 일으켰고 겁을 먹은 부사가 벌벌 떨다 서산 선생에게 부민들을 달래어 달라고 부탁했다(이때 선생이 부폐한 부사에게 "민정이란 순리로 임하면 잘 따르고, 거스르면 반발하는 것이니, 깊이 반성하라" 라고 꾸짖으셨다). 서산 선생이 민란을 잠재우기 위해 나섰다는 소문이 나자 피난 갔던 읍민들이 “금계 나으리께서 나셨으니 이젠 됐다.”고 환호했을 정도이며, 저녁 무렵, 난을 일으킨 백성들이 몽둥이를 들고 몰려들자 “곧 모든 폐정을 고치게 할테니, 물러나 기다리라.”고 하자 격앙했던 군중들이 서산 선생의 말씀이면 믿을 수 있다며 모두 몽둥이를 던지고 흩어졌다고 한다.